EP.20
히스타니아의 장남·
히스타니아 말릭은 완벽주의자다·
아버지를 가장 닮은 자식이자·
아버지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아들·
그리고 아버지를 닮고 싶은 그였다·
말릭은 아카데미에서 수석을 놓치지 않았고 아카데미를 졸업한 이후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황실 기사단에 들어갔다·
모두가 인정했고 자신도 만족하는 인생을 살던 그는 지금 오러을 코앞에 둔 시점에 멈춰있다·
지금이 말릭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감을 잃기 전에 빨리 오러를 습득해야 했으니까·
27살에 오러라·
제국의 최연소 오러 사용자가 25살이었으니 늦은 편은 아니다· 오히려 굉장히 이른 편이었지·
제국의 평균 오러 사용자의 나이는 30대 초반· 선발대의 영역에 들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의미가 없어졌다·
히스타니아에서 최연소 오러 사용자가 탄생했으니까·
그렇게 무시했던 동생이 한순간에 초신성이 되어 나타난 것이 말릭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진행했던 모험가 사냥꾼 ‘파스칼’의 호송 작전이 대차게 실패하면서 지금까지 쌓아온 업적들이 흔들릴 위기에 처했다·
“젠장· 젠장···· 젠장···!”
“물주님· 왜 그렇게 화를 내고 계시는가요· 제가 어깨라도 주물러드릴까요?”
“···닥쳐라·”
말릭은 고개를 들었다·
자신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붉은 머리의 남자· 신을 영접한 듯 경건한 몸짓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는 이번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고용한 용병이었다·
확실한 경력과 익명을 보장해주는 조건에 혹해서 고용했는데 다시 얼굴이 맞이하니 기분이 상당히 언짢았다·
“물주님의 명령이라면 죽은 척이라도 하죠·”
리카르도의 말에 말릭은 입술을 꾹 닫았다·
***
마차 안은 조용했다·
50만 골드는 그냥 넘길 것 같은 마차와·
푹신한 마차의 의자·
1시간만 타면 디스크가 탈출하려는 1실링짜리 마차와 차원이 달랐다·
내가 여기에 온 이유는 단 한 가지·
의뢰자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호송 중에 탈출한 범죄자 추적을 의뢰합니다·
└감사합니다· 고객님· 접선 장소하고 날짜 남겨주세요· ^·^
└내일· 오후 11시 30분 분수대 앞 검은색 마차로·
└의뢰 신청 감사합니다 🙂
마차에 올라타니까 한나와 똑같은 머리카락 색을 가진 말릭이 앉아있었다·
다리를 꼬고 나를 본 척도 안 하는 녀석· 나는 그를 보고 고개를 냅다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미간을 찌푸리는 말릭· 그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창피를 준 사람이자 얼굴을 붉히고 싸운 당사자니까·
그런 사람에게 의뢰를 부탁하는 상황이 마음에 안 들어서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말릭이었다·
“정식으로 소개하겠습니다·”
나는 가슴속에서 반듯한 명함을 꺼냈다·
[이름 : 리카르도]
[집안일 요리 잡일 모두 맡겨주세요! 세상에서 제일 예쁜 데스문트 올리비아의 집사가 달려갑니다·]
반듯한 글씨가 적힌 명함·
그리고 이상한 수식어가 붙은 소개란·
아가씨에게 초콜릿을 주고 맞춤 제작한 명함이다·
이런 글씨는 쓰기 싫다고 소리치는 아가씨를 겨우 설득해서 만든 수제 명함· 세상에서 제일 예쁜이란 말을 포기할 수 없다는 아가씨의 예술적 가치가 담겨 있는 명함이다·
명함을 받은 말릭은 언짢은 눈으로 나를 훑어봤다·
아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악녀의 집사라는 수식어가 부러운 모양·
나도 안다·
성격이 조금 괴팍하고 남의 말을 듣지 않는 독불장군이지만 외모만큼은 여주인공도 한 수 접고 가는 미인인 것을·
“평민?”
하지만 말릭은 이 부분에서 화가 난 게 아닌 것 같았다·
“성도 없는 평민에··· 데스문트 올리비아?”
“예 그렇습니다· 저는 데스문트 올리비아 영애님의 직속 집사 리카르도라고 합니다·”
조심스럽게 악수를 청했지만·
받아주지 않는 말릭이었다·
뻘쭘하게 남은 손으로 뒤통수를 긁었다·
“아하하··· ”
‘머쓱하네·’
“네가 왜 아버지에게 소속을 알려주지 밝히지 않았는지 이제야 알았네·”
“워낙 자랑스러운 이름이라 소개하기가 꺼려져서 말이죠·”
“아니지· 가문이 망해서잖아?”
왜 루인도 그렇고 말릭도 우리 가문이 망했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직도 잘나가고 있는데·
“망하지 않았습니다· 정확하게는 올리비아 아가씨가 망한 거지 저희 데스문트 가문은 마탑에 비견될 정도로 건재하답니다·”
“따지고 보면 너는 망한 게 맞잖아?”
“그렇다면 그런 거죠·”
그에게 따지고 싶었지만 길바닥으로 쫓겨날 우리를 구해주신 물주님께 말대꾸할 용기 따위는 나지 않았다·
7억을 그냥 벌게 해준다는 데 세상에 어느 누가 대들 수 있을까· 발을 핥으라고 안 한 게 어디냐·
돈 많은 놈이 형이고·
누나고 그런 거다·
“급전이 필요했어?”
말릭이 내게 비아냥거렸다·
“돈이 필요했냐고·”
“네 조금 필요했습니다·”
“음····”
말릭은 턱을 쓸었다·
검은색 정복에 날카로운 턱선·
소설에 묘사된 대로 잘생기긴 했다·
묘사된 대로 성깔이 더럽기도 했지·
말릭은 다시 내게 물었다·
“벌금 때문이지?”
“···네?”
“너 일하는 거 말이야· 벌금 때문이냐고·”
나는 답하지 않았다·
이 녀석의 도발에 휩쓸리고 싶지 않아서·
말릭은 소설에서 유리아를 짝사랑하는 조연으로 등장한다·
아버지의 관심을 빼앗아가는 미하일 그리고 초라해지는 자신· 이 사이에서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해주는 유리아에게 말릭은 반해버리고 말았다·
삼각관계였다·
서로 유리아를 차지하기 위해 치정 싸움을 벌이는 모습이 제법 쏠쏠했으니까·
말릭은 제법 비중 있는 조연이다·
명색의 서브 남주인공이라서 그런가 착하기도 했고 말이다·
오만하고 자존심이 강하긴 했지만 자기 사람을 끝까지 챙기는 의외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성격은 개차반이지만 자신의 사람만큼은 최선을 다해 챙기는 남자였다·
지금은 내가 아니꼬워서 저러고 있는 거지만 만약 내가 그의 사람이었다면 대우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지·
확실한 건 그는 자신의 사람을 챙길 줄 아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나한테 의뢰를 맡긴 거고·
의뢰 내용은 아마 파스칼을 생포하는 것· 이것 말고 다른 의뢰는 없을 것 같다·
말릭이 나에게 부탁할 정도면 파스칼 정도가 딱 적당하니까·
소설에서 파스칼은 탈옥의 귀재였다· 잡히면 어느 순간 탈옥하고 ‘짜잔’ 주인공 앞에 등장했으니까·
마차의 문 앞에서 호위하고 있는 기사들의 얼굴에 상처가 있는 것을 봤으니까· 아마 호송 과정에서 마찰이 생긴 모양이다·
보통이라면 기사단을 해고하고 일의 책임을 물었겠지만 나에게 의뢰를 맡긴 걸 봐서는 조용히 해결하려는 생각인가보다·
이런 부분에서는 의리가 넘쳐나는데 말이지· 말하는 것은 참 싹수가 없었다·
나는 도발을 참고 일을 빨리 해결하자는 의미를 담아서 말릭에게 말했다·
“조금 민감한 질문이라서 말이죠· 하하 빨리 의뢰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어떨까요·”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하하···· 제가 지켜야 할 자존심이 있어서 무례를 용서해주시죠·”
“흐음·”
말릭은 곰곰이 생각했다·
넘어오지 않는 나를 믿을 만하다고 판단한 건지 아니면 기분이 상한 건지·
손가락을 튕기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얼마지?”
“네?”
“얼마냐고 벌금· 제국에서 흑마법사용은 엄하게 처벌하니까 네가 감당하지 못할 금액이란 걸 대충 알겠는데·”
저걸 왜 물어보는 걸까·
지가 내줄 것도 아니면서·
무시하면 화낼 것 같아서 나는 그에게 답해줬다·
“100만 골드입니다·”
“100만 골드라····”
말릭은 곰곰이 생각했다·
뭔 생각을 하는지 나도 알려줬으면 좋을 것 같은데·
자기만 알고 있는 게 치사했다·
나를 꼽주려고 하는 건지·
의뢰는 없던 일로 하자고 하려나 본지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 거래에서 나는 을이 아니었다·
흑마법을 파훼하는 건 나만이 가능하고·
아무도 모르게 파스칼을 잡을 수 있는 건 내가 유일하니까·
다른 오러 사용자들한테 부탁한다면 히스타니아의 위상은 떨어지겠고 정보 길드에 의뢰한다면 나한테 제시한 금액보다 더 큰 값이 나갈 수도 있고 이번 일에 대한 정보가 팔리게 되니까·
조금 비싸더라도 나를 고용하는 게 말릭의 입장에서 이득이었다·
“일주일·”
“뭐가 말입니까?”
“너도 어떤 의뢰인지 대충 눈치챘잖아· 파스칼 말이야 일주일이면 잡아 올 수 있겠냐고·”
“사마귀· 아니 모험가 사냥꾼을 말하는 겁니까?”
말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의 질문에 확답할 수 없었다· 잡는 거야 쉽지만 이 녀석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니까·
“노력은 해보겠습니다만 위치가 명확하지 않아서···”
“만약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30분도 안 걸립니다·”
잠깐의 고민을 마친 말릭은 말했다·
“있지· 아직도 나는 네가 어느 정도 실력인지 몰라· 파스칼을 잡을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인지 의심이 돼·”
맞는 말이다·
그가 왔을 때는 모든 일이 끝나있었으니까·
“그렇다고 내가 직접 움직일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잡을 수야 있겠지만···”
“아니요· 공자님이 가시면 100퍼센트 죽습니다·”
말릭은 나를 째려봤다·
자신을 무시하는 내가 아니꼬웠나 보지만 내 말이 정답인 걸 어떡하냐·
오러도 깨우치지 못한 말릭이 파스칼과 싸운 다라· 행위 예술을 당할 거로 모자라서 시체도 못 찾을 수 있었다·
“주제 넘지 마라·”
“그럼 혼자 가시죠· 저는 이 일에서 손 떼면 그만입니다·”
“이 일 만한 고수익은 있고?”
“공자님이 실패하시면 그때 제가 잡아 오면 되죠· 현상금도 제법 쏠쏠하답니다·”
“역시 네가 한 게 맞구나·”
말릭은 고집을 꺾었다·
“그래 인정할게· 지금 나로는 불가능해·”
그도 보는 눈이 있다·
황실 기사단에서 실전을 이뤘고·
검술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으니까·
레벨로 따지면 Lv· 5 정도 되려나·
검술 만큼은 말릭이 한나보다 뛰어났다· 오러만 발현하지 못했을 뿐이지· 그도 엘리트 중의 엘리트니까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상대 정도는 알고 있을 거다·
“파스칼을 호송 작전에서 치명상을 입은 기사가 셋이야 중상을 입은 기사가 둘이지· 모두 뛰어난 기사들이었어·”
말릭은 나를 올곧이 보고 말했다·
“그 녀석들이 실패했다는 건 나도 불가능했다는 소리고 한나는 더더욱 불가능했다는 소리야· 그럼 그 자리에 있던 네가 혼자서 파스칼을 제압했단 뜻이 되는데·”
“맞습니다· 제가 한 거·”
나는 숨김없이 드러냈다·
이 순간에서 겸손을 찾는다면 그게 더 큰 사고가 아닐까·
지금이 내가 가진 무기를 보여주는 최적의 시간이다·
말릭은 이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의뢰를 맡기는 대신 조건 하나만 추가하자·”
“조건 말입니까?”
“그래 조건· 파스칼 잡으러 갈 때 말이야· 나도 데려가·”
“거절합니다·”
“100만 골드 딱 채워서 줄게·”
말릭의 검 손잡이를 꽉 잡으며 말했다·
“키우는 개의 복수는 주인이 해야 하지 않겠어?”
나는 말릭의 자신감 넘치는 웃음을 보고 직감했다·
‘파스칼한테 끔찍하게 깨지겠구나·’
라는 확신 말이다·
그렇지만 삶의 지혜를 돈을 주고 배우러 간다는 샌드백의 용기를 짓밟긴 싫었다·
예의 없게 말한 벌을 받았으면 했으니까·
“그러죠· 대신 공자님도 저에 대한 내용은 비밀로 하셔야 합니다·”
“그러지·”
간단한 계약서를 작성한 뒤·
나와 말릭은 마을 외곽에 있는 어느 폐성당에 도착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reader님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Void님 5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재밌게 읽고 있다니! 다행이네요!
요정이 되어 날아 갈 것 같습니다· 제가 행운의 꽃가루를 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호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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