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06
늦잠을 자고 난 뒤 오후가 찾아온 아가씨의 저택·
고즈넉한 아가씨의 방에서는 누군가의 힘찬 기합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흐이이익!”
몸에 있는 힘이란 힘을 전부 주는 우렁찬 기합·
점심을 늦게 먹어서 그런지 아가씨의 우렁찬 기합은 평소보다 더욱더 힘있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흐이이이이··· 이이익!”
역시 사람은 운동을 하고 살아야 하나· 깨달음을 얻는 나는 침대에 앉아 운동하는 아가씨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자! 조금만 더 힘을 내봅시다!”
“이이익!”
아가씨는 미간을 찌푸리며 운동에 집중하고 있었다· 오늘처럼 열정적으로 운동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여행이 기대돼서 그러는 건가 노력하는 아가씨의 모습에 감탄이 나왔다·
“이익··· 자고 일어나면 어디로 여행갈지 정하기로 했었잖아!”
“목욕하면서 정하기로 했습니다·”
“처음 듣는 소리인데····”
“괜찮습니다· 제가 처음 안 들었으니까요·”
“이이익···”
“자! 이 기세를 몰아서 한 세트 더 해봅시다·”
거창한 운동은 아니었다·
역기를 든다던가 필라테스 같은 운동은 더더욱 아니고 그저 발바닥을 땅에 붙이고 몸에 힘을 주는 것이 전부인 운동이었다·
코어를 잡아주는 운동이라고 해야 할까 조금씩 좋아지는 아가씨의 다리에 빠른 발전을 기대한 나는 사용하지 않은 근육들을 깨워주기 위해서 아가씨에게 운동을 시키고 있었다·
다리가 낫더라도 몸이 안 따라주면 소용이 없을 테니까·
그동안 아가씨께서는 운동과 담을 쌓으신 분이었다·
초콜릿을 좋아하고 누워있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분이었지· 솔직히 말하면 요즘 살이 찌기도 했고···· 볼살이 평소보다 오르기도 했었다·
안 그래도 ‘걸음’에 필요한 근육들이 사용하지 않아서 굳어 버렸을 텐데 운동까지 싫어하는 아가씨의 몸 상태는 최악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다리가 낫기도 전에 운동 부족으로 쓰러질 미래가 훤히 보이는 몸 상태에서 나는 더 나은 미래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가씨를 응원하고 있었다·
“화이팅!”
“이이익! 흐이·· 못해···”
“할 수 있습니다·”
재활의 손길이란 능력이 몸과 다리를 단번에 낫게 해준다면 운동을 할 필요가 없을 텐데 안타깝게도 재활의 손길이 만능이 아니라서 아가씨의 노력이 필요했다·
근육이나 마음 같은 부가적인 요소를 아가씨께서 준비할 필요가 있었다·
오랜만에 운동이란 걸 하는 아가씨는 바닥에 붙인 발바닥을 보며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이이익! 어때 리카르도! 방금 조금 움직이지 않았어?! 0·1초는 일어선 것 같은데·”
“오···! 확실히 그런 것 같습니다·”
나는 박수를 치며 조금의 미동이 없는 아가씨의 다리를 보며 감탄사를 뱉었다· 채찍질만 하다 보면 사람은 금방 지치기 마련이니까·
내 칭찬에 고개를 든 아가씨는 활짝 미소를 지으며 배시시 웃음을 터뜨렸다·
“나 잘하고 있지?”
“네~”
“엄청 엄청 잘하고 있지!”
“그럼요· 엄청 잘하고 계십니다·”
나는 아가씨 이마에 송글송글하게 맺힌 땀방울을 손수건으로 닦아주며 최선을 다하는 아가씨의 모습에 칭찬을 더 해줬다·
발전이 없는 모습에 의지가 꺾일 만한데 아가씨는 실망한 내색을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대견했다· 운동하는 아가씨도 시끄러운 소음에도 바닥에 누워 잠을 자는 곰탕이도 대견했었다·
아가씨의 기합은 계속해서 들려왔다·
*
사선을 넘나드는 운동을 마친 아가씨는 침대에 누워서 가슴을 뜰썩이고 있었다·
“허억··· 허억··· 리카르도 오늘 나 너무 열심히 산 것 같은데 리카르도가 말한 수염 긴 할아버지가 선물 주는 거 아니야?”
열심히 살았다고 산타에게 선물을 요구하는 아가씨· 분주하게 목욕을 준비하는 나는 옷장에서 갈아입을 옷을 꺼내면서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할아버지는 열심히 살았다고 선물을 주지 않습니다·”
“그럼···?”
“착한 일을 해야 선물을 주는 거죠·”
“엄청 깐깐해·”
“그 할아버지도 밑지는 장사를 할 수 없으니까요· 게다가 그 할아버지는 겨울에 단기로 일하시고요·”
“그럼 겨울에만 착하게 살래· 매일 착하게 살면 힘들어·”
“그렇게 살면 선물이 작아질 텐데요·”
선물을 받기 위해 겨울에만 착해진다는 속물적인 아가씨의 답을 산타할아버지가 듣는다면 뒷목을 잡고 쓰러질 게 분명했다·
역시 악녀라서 그런지 이득을 뽑아내려는 악독함이 대단한 것 같았다·
산타할아버지의 수지타산을 들은 아가씨는 깔끔하게 선물을 포기하고 침대에 대짜로 누워 피로를 풀어냈다·
“흐익··· 몰라!”
누군가에게는 숨 쉬듯이 하는 운동이 아가씨에게는 격렬한 마라톤과 같겠지·
그동안 운동을 안 한 잘못도 있었고 말이다·
최선을 다한 아가씨가 멋져 보이는 나는 아가씨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안주머니에 숨겨둔 초콜릿을 꺼내려고 했었지만·
귓가에 들려오는 이질적인 소리에 안주머니로 향하던 손은 멈춰 세웠다·
-오독·
무언가를 씹는 소리가 귓가에서 선명하게 들리고 있었다·
‘오독’이라 지금 나면 안 될 소리안데 왜 나고 있는 걸까·
나는 고개를 돌려 침대에 누워있는 아가씨를 바라봤고 퀭한 표정으로 보물 주머니에서 초콜릿을 꺼내고 있는 아가씨를 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가씨는 멍한 표정으로 보물 주머니에서 초콜릿을 계속해서 꺼내고 있었다· 도대체 저 보물 주머니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계속해서 나오는 초콜릿을 보며 나는 헛웃음을 뱉었다·
“흠냐 안 먹으면 당 떨어져서 죽어·”
하여간 신기한 악녀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아가씨의 침대 옆 테이블에 초콜릿을 올려두고 땀에 젖은 몸을 씻겨주기 위해 아가씨의 손을 잡았다·
“목욕하러 갑시다·”
“으이이···”
저항 없이 질질 끌려오는 아가씨·
아가씨는 침대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는 의지를 여실히 드러내며 침대의 시트를 붙잡고 있었지만 할 일이 많은 집사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저녁을 준비하려면 빨리 움직여야 했으니까· 절대로 목욕이 설렌다는 변태적인 이유는 절대 아니었다·
질질 끌려오는 아가씨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투정을 부렸다·
“못 움직여· 지금 움직이면 나 죽어·”
“괜찮습니다· 어차피 제가 움직이는 거니까요·”
“···오·”
현명한 답에 고개를 끄덕인 아가씨는 손에 쥐었던 힘을 풀고 평안한 여행을 부탁한다는 듯이 ‘끙차!’라는 기합과 동시에 나를 향해 팔을 벌리며 말했다·
“그럼 업어줘·”
“평안히 모시겠습니다·”
“격렬하게 모셔도 돼·”
“그럼 오늘은 빠르게 걸어가 보죠·”
“웅·”
-터벅
-터벅
“히힛··· 민트 초코 입욕제·”
“그렇게 좋습니까?”
“응·”
욕조에 들어갈 입욕제를 손에 들고 해맑게 웃는 아가씨를 뒤로하고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무거운 생각은 아니었다·
그냥 지금까지 아가씨에게 했던 일들에 대한 고찰 정도· 내가 잘하고 있나 하는 생각을 1분이라는 시간 동안 작게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간호라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내 몸 하나 챙기는 것도 어려운데 남의 건강을 챙기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내 몸이라면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살았겠지만 아가씨의 몸은 어딜 건드려도 아파할 것 같았으니까 말이지·
지켜야 할 게 많았다·
여자로서의 자긍심을 지켜야 했었고·
환자로서의 건강 증진에 힘을 써야 했었다· 내가 편하려고 하면 아가씨께서 불편해지는 게 많았으니까·
기저귀를 채우면 나야 편하겠지만 그걸 감당하는 아가씨의 자존감은 크게 상처를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뭐가 됐는 잘 따라와 주시는 아가씨의 노력이 가장 컸지만 가끔은 나의 간호가 오답일 때가 있을 테니까 매일이 조심스러웠다· 그럴 때마다 실수를 눈감아주는 아가씨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이익···! 움직이기 싫어!
-그래도 괜찮아· 오늘은 어제보다 덜 아프게 들었으니까· 용서해줄게·
번거롭고 힘들더라도·
귀찮고 할 게 많더라도·
아가씨께서 웃을 수만 있다면 그 정도 수고는 감수할 수 있었다·
뭐 내 직업이 의료인도 아닌데 대단한 걸 해줄 수 없기도 하고 말이다·
어느새 욕실 앞에 도착한 나는 흥분에 젖은 아가씨의 환호성을 들으며 마음속에 품었던 상념에서 깨어났다·
“호오오···! 목욕!”
“어제도 하셨는데 그렇게 좋습니까?”
“웅· 목욕하면 젊어지는 것 같잖아· 몸이 막 으어어··· 하고 몸도 나른해지고·”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손에 든 입욕제를 내게 보여주는 아가씨는 ‘이거 봐봐·’라며 기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취미가 목욕이라서 오히려 다행인가· 나는 미소를 지으며 욕실의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아가씨를 바닥에 앉혔다·
쏴아아아· 욕조에 물이 채워지는 소리와 동시에 욕조 벽에 턱을 기댄 아가씨는 샤워 가운을 홀로 입으면서 풀어지는 입욕제를 보고 있었다·
코를 ‘킁킁’ 거리면서 상큼하면서 동시에 달콤한 냄새가 풍기는 입욕제가 도대체 뭐가 좋다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거품을 보며 미소를 짓고 있는 아가씨의 콧노래에 덩달아 미소가 지어졌다·
민트초코만 아니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지·
혼자서 옷을 다 입은 아가씨는 샤워 가운의 줄을 꼭 묶고서 내게 말했다· ‘욕조에 넣어 달라고·’ 웅웅하게 울리는 욕실 안에서 아가씨의 조용한 음성에 나는 작게 미소를 지으며 아가씨를 번쩍 들었다·
“리카르도 힘 엄청 세!”
“알고 있습니다·”
“팔뚝도 막 단단하고·”
“으흠~”
“핏줄도 있고·”
“으흠~!”
역시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말은 사실인 것 같다·
*
어둠이 찾아온 다르바브의 집무실·
“···”
회의를 끝낸 올리비아의 아버지 다르바브는 집무실에 앉아 어둠을 받아내고 있었다·
다르바브는 진지한 표정으로 회의를 마친 장남 카일을 바라보며 물었다·
“오랜만에 같이 목욕을 하고 싶다·”
카일은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싫습니다·”
오늘도 딸이 보고 싶은 다르바브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reader님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항상 감사합니다!
추신)
다음 회차까지 일상입니닷!
[후원 감사]
유니유니야님 3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순애빔!!!
이 요정 하렘의 탈을 쓴 순애라는 말에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습니닷···!
하지만 하렘이 좋은 요정··· 포기할 수 없는 의지입니닷!
리카르도는 죄가 많은 남자니까 말이죠···!
물론 여자를 홀리는 죄입니닷!
독자님에게 비가 오는 날씨를 안전하게 보낼 수 있는 일교차의 요정···! 바람막이의 요정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비공개로 100코인 감사합니다!
이집 맛있네라는 극찬을 남겨주신 독자님···!
감사합니닷··· ! 한가지 tmi를 드리자면 13악녀의 정실은 아가씨랍니닷!
알고 계셨을 지 모르겠지만 말이죠!
유리아 일러는 아직까지 미완이랍니닷···!
완성이 되더라도 공개할 지 고민 중에 있습니다!
나중에 더 멋진 일러로 등장해야 될 것 같아서 말이죠·
독자님에게 야식이 끌이는 이밤에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요정···! 배달비 무료의 요정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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