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08
5시간 전·
기나긴 시간 동안 마차를 타고 온 나는 뻐근한 허리를 기지개 켜며 북부의 하늘을 바라봤다·
“아으으···! 더럽게 머네·”
제국의 끝자락에 있는 북부라서 그런지 오랜 시간 동안 마차를 탔었다· 일주일 정도 걸렸으려나· 도로가 잘 되어있어서 이 정도였지 아니었다면 십오일은 더 걸렸을 거리였다·
비싼 마차를 타서 여독이 비교적 덜하긴 했지만 몸이 피곤한 건 변하지 않았었다· 일주일이란 시간 동안 우린 마차에서 노숙을 했으니까·
의외로 놀라웠던 점은 아가씨께서 투정을 부리지 않았다는 거였다· 푹신한 침대에서 일상을 보낸 아가씨는 피로를 더 느꼈을 테니까·
-노숙···! 거지 같아!
-아가씨는 거지 맞습니다· 저는 부자고요·
-호오···!
밖에서 모닥불을 피고 노숙을 할 때마다 신이 난 아가씨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북부 여행을 기대하고 있었다·
북부에 볼 게 뭐가 있다고 그러는 건지· 소설 속에서 열악한 환경과 주인공들의 고난만 봐온 나로는 아가씨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웃고 있는 아가씨를 보며 의문을 지워낼 수 있었다·
아가씨도 계획이 있을 테니까·
생각 없이 북부로 가자고 한 게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었기에 나는 이번 여행을 아가씨만 믿고 있었다·
마차에서 내린 나는 짐을 내리며 아가씨를 바라봤다·
“흠냐·”
일정을 길게 잡아서 내릴 짐이 많은데 아무것도 안 하는 아가씨는 멀뚱히 페x리 1호기에 앉아있었다·
“후아···! 눈이다 눈···!”
입가에서 흘러나오는 하얀 입김을 뱉으며 차가운 손을 비비고 있는 아가씨· 도와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나는 한숨을 뱉으며 아가씨를 향해 말했다·
“얼마 전에도 보시지 않았습니까·”
“그건 맛없는 눈· 이건 숙성된 눈·”
목에 목도리를 돌돌 말은 아가씨는 휠체어에 앉아 밝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뭐 어떻게 되겠지·’
나는 떠나는 마차를 보며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다소 비싼 값을 치르긴 했지만 긴 여행을 함께 해준 것이 고마웠으니까·
“고생하셨습니다· 이건 돌아가실 때 경비로 쓰세요·”
“아이고 이렇게 안 주셔도 되는데···· 너무 많이 받았습니다·”
“아닙니다· 저희 때문에 고생하셨는데 더 드리지 못해서 죄송하죠·”
조금의 팁을 얹어서 마부에게 주자 좋아 죽으려고 하는 마부는 머리를 긁적이며 나를 바라봤다·
“근데 정말로 돌아가실 생각 없으십니까? 지금 북부 분위기도 좋지 않고 마물도 발정기 철이라···· 너무 위험할 텐데요·”
마부의 걱정에 나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하다못해 숙소에 짐이라도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아···”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마부에게 답했다· 숙소 따윈 생각해두지 않고 왔다고·
마부는 벙찐 표정으로 우릴 보고 있었고 괜찮다는 말을 열 번 정도를 더 한 뒤에야 보낼 수 있었다·
“그럼 즐거운 여행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다음에도 꼭 찾아주십쇼···!”
“감사합니다· 아가씨도 인사하셔야죠·”
“잘 가·”
-휘이잉·
이제 어디를 갈까·
멍하니 북부의 도심 한가운데에 선 아가씨와 나는 가득 쌓인 짐은 옆에 둔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여행을 시작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자세한 계획을 세우지 않고 왔으니까· 뭐가 됐는 돈이 해결해주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숙소를 잡는다던가 기본적인 것을 하지 않은 우리는 멍하니 서서 눈앞의 설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와 예쁘다···”
“그러게요·”
아가씨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고 말했다·
“리카르도 이제 우리 어디가?”
“그러게요·”
“···”
“생각해둔 곳 없습니까?”
“나?”
“네·”
“없는데?”
아가씨는 당당하게 말했다·
자신의 머리에는 계획 따위는 존재하지 않다고 그런 사소한 것을 생각할 시간에 눈앞에 있는 설산이나 더 보라고 내게 말했다·
“북부에 오고 싶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웅·”
“보고 싶은 거나 먹고 싶은 거 없으십니까?·”
“비밀이야·”
“제 낭만의 비키니는 어디 가고요·”
“도망갔어·”
“···”
아가씨는 눈웃음지으며 내게 말했다·
“몰라! 비밀이야!”
역시 계획을 짜는 건 집사의 일이라는 건가 아가씨를 믿은 과거의 나를 탓하며 나는 한숨을 뱉었다· 돈이 있다면 불가능한 것은 없으니까·
비록 아둔한 집사의 머리로 짜는 계획을 아가씨께서 좋아하실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일단은···’
짐부터 처리하기 위해 근처에 있는 주민을 잡아 물었다· 이 근처에 묵을 만한 숙소가 어디 있냐고·
“죄송한데 길 좀 묻겠습니다· 여행을 온 관광객인데 근처에 열흘 정도 묵을 만한 여관이 있을까요·”
“예?”
“네·”
“예에?!”
“네·”
두꺼운 털모자를 쓴 북부의 주민은 아가씨와 나를 이상한 사람을 보는 듯한 눈으로 바라봤다·
귀를 한 번 후비고 자신이 들은 말이 맞는지 확인하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주민은 우리 옆에 가득 쌓인 케리어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행을 왔다고요?”
“네·”
“지금?”
“네·”
“서리 늑대 발정기 시즌인데?”
“아가씨 좋은 구경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짝짓기···!”
북부의 주민은 이런 미친놈을 처음 본다는 눈빛으로 아가씨와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으며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다 죽어요·”
“괜찮습니다· 저희 명줄이 생각보다 길어서요·”
“허허···· 그쪽이 좋다면 다행인데 이걸 어쩌지· 지금 묵을 곳이 없을 텐데·
“네?”
“없어요·”
“···”
“괜찮은 여관은 전부 닫았다고요· 외곽 쪽에 호텔이 있었는데 눈사태로 무너졌고요·”
최후에 보류로 생각해둔 숙소가 무너졌단 소식에 굳은 표정을 지은 나는 태평한 표정을 지으며 눈사람을 만들고 있는 아가씨를 보며 말했다·
“아가씨 잘 곳이 없다는데요·”
“···왜?”
“파업을 했다고 합니다· 유지 비용보다 쉬는 쪽이 돈이 더 잘 벌린다고 하네요·”
“똑똑한데·”
“그렇습니다·”
나는 주민을 돌려보내며 세차게 바람이 부는 거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일단 밥이나 먹으러 갈까요·”
“짐은 어떡하게·”
“대부분 빈 가방입니다· 초콜릿이나 식칼 집사 복 털옷 정도가 전부라서 도둑맞아도 괜찮습니다·”
“그럼 왜 가지고 왔어?”
“기념품 가지고 가려고요·”
“···”
아가씨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우린 식당에서 밥을 먹었고 소화를 하기 위해 북부의 산맥에 올라갔다·
거창한 이유는 아니었다·
재미있어 보였으니까·
눈 덮인 산에 왔으면 가장 먼저 해봐야 할 일이 썰매라고 생각했기에 아가씨와 나는 생각을 비우고 높은 경사에 몸을 맡겼다·
페x리 1호기에 보호 마법이 있으니까 안전은 걱정할 필요 없었으니까 우린 자연스럽게 유희를 즐기기 시작했다·
-이이익!!!
-아가씨 가속 버튼 누르지 마세요· 그러가다 묻힙니다·
-뭐라고? 바람 소리 때문에 잘 안 들려! 히힛··· 히이이익!!!
그렇게 우린 계속해서 썰매를 탔고·
운 좋게 여관을 운영하는 아저씨를 만나게 되었다·
*
제임스는 세상이 미웠다·
정신이 이상한 손님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눈앞에 있었으니까·
“하아···”
토벌 일을 마치고 돌아온 제임스의 여관에는 짐을 바리바리 든 여행자가 서 있었다·
-영업하나요?
-어··· 그게·
-아가씨!
-이이익! 출발!
돌려보낼 틈을 주지 않고 빠르게 들어온 터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제임스는 지금까지 10년 동안 여관을 운영하면서 큰 위기를 겪고 있었다·
과연 이 손님을 받는 게 맞을까 싶었으니까·
좀 전에 미친 사람처럼 썰매를 타고 있는 걸 직관한 제임스는 떨리는 어깨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후히힛! 재미있다! 또 탈래!
-하하! 제가 조금만 더 늦게 잡았으면 아가씨 낭떠러지로 떨어질 뻔했습니다!
-히익! 다음에는 조심히 운전해볼게!
-괜찮습니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수많은 손님을 받았지만 이런 손님이 처음인 제임스였다·
제임스는 깊은 한숨을 뱉으며 눈앞의 손님을 바라봤다·
훤칠한 붉은 머리카락 남자·
다리가 불편한 여자·
‘맞나···?’
바퀴가 달린 의자에 앉아있는 여자의 다리 위에는 가방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흐이이익··· 무거워···!”
“저는 괜찮습니다·”
“이이익···!”
생긴 것을 보아하니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정신부터 신분까지 복합적인 요소에서 말이다·
관리가 잘 된 머리카락을 보면 평민이 아닌 것 같은데 하는 행동을 보면 야만인 같은 기분·
제임스는 불길한 예감을 지울 수 없었다·
손님으로 받으면 뭔가 단단히 잘못될 것 같은 기분이 본능적으로 느껴졌으니까·
“이이익···!”
“조금만 더 참으십쇼·”
“리카르도는 내려놨잖아!”
“저는 괜찮습니다·”
“내가 안 괜찮아!”
조용하게 보낼 수 없다는 예감이 강하게 드는 제임스였다·
고민을 하는 제임스의 귓가에 테이블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는 제임스를 바라보며 작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똑똑똑·
“사장님 혹시 오늘 묵을 방 있을까요·”
“네?”
“근처에 열은 숙소가 없다고 해서 겨우겨우 찾아왔는데 이곳마저 닫으면 곤란할 것 같아서··· 돈이라면 2배··· 아니 3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제임스는 두 남녀를 봤다·
“킁···!”
“옷에다 닦지 마세요· 아가씨·”
“손수건이 없어·”
“저한테 달라고 하시면 되시지 않습니까·”
“그럼 지금 줘·”
다리가 불편한 아가씨를 보면 딱한데 하는 행동을 보면 여관이 잘못될 것 같은 기분·
깊은 고민의 빠진 제임스가 3분 정도 입을 닫았을까·
-쾅·
남자는 테이블 위에 묵직한 금화 주머니를 올려놓으며 말했다·
“방 있나요?”
거절하기에는 너무 큰 금액이었다·
*
아카데미의 여자 기숙사·
오늘도 책상에 앉아 아버지에게 보낼 편지를 적는 유리아는 펜촉을 입술로 깨물며 어떤 내용을 써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
-안녕하세요· 아빠!
봄이 시작되고 처음 쓰는 편지네요·
최근 아카데미 일정이 너무 바빠서 편지를 보내지 못해서 죄송해요···· 3학년이 되면서 배울 게 너무 많아졌거든요·
·
“하아···”
유리아는 다음 내용을 써 내려가지 못하고 있었다· 아빠가 보면 웃을 만한 내용을 적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으니까·
아카데미 공부는 힘들지·
루인과 싸웠지·
이교도의 문제까지 무엇을 적어야 할지 좀처럼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본래라면 순위전에서 높은 성적을 얻었다는 자랑으로 시작하고 싶었지만 이교도 문제 때문에 그것마저도 할 수 없었으니까· 유리아는 깊은 한숨을 뱉으며 고민에 잠겼다·
찰나의 순간 유리아의 머릿속을 스쳐 가는 한 가지 이야기가 떠올랐다· 조금 오래되긴 했지만 아버지가 알만한 이야기가 하나 있었으니까·
아카데미에 적응하지 못했던 자신을 도와준 친구가 있다고· 근데 그 친구와 싸워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편지를 보낸 적이 있었기에 유리아는 작게 웃으며 편지지에 잉크를 적시기 시작했다·
-아 참 예전에 말했던 친구 기억나세요?
저랑 같이 밥도 먹고 아카데미에서 길을 잃어버렸을 때 도와줬던 친구 말이에요·
예전에 그 친구와 싸웠다고 편지를 보냈는데 이번에 그 친구랑 화해할 수 있었어요· 아직 많이 어색하긴 해도 천천히 나아가다 보면 분명히 예전처럼 친하게 지낼 수 있겠죠···?
유리아는 작게 웃으며 편지를 가득히 채워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줄에 아버지에게 걱정을 담은 편지를 조심스럽게 적기 시작했다·
-요즘 북부에 마물이 늘어난다는 소식이 들리는데 설마 위험한 일 하는 거 아니죠···!
-보고 싶어요· 아빠·
-사랑하는 딸이·
*
그 시각·
“자네 내 딸하고 사귈 생각 없나····”
제임스는 붉은 머리의 남자를 꼬시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reader님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항상 감사합니다!
추신)
오늘은 퇴고를 못하다시피 했습니다···
시간이 부족해서···!
죄송합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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