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10
한적한 북부의 산꼭대기·
“오···”
오늘로 북부에서의 다섯 번째 하루를 맞이하는 아가씨와 나는 탐구라는 것을 하기 위해 북부의 설원에 올라와 있었다·
-으르릉···
구덩이를 파고 나뭇가지를 잘라 구덩이 위에 덮어 위장한 우리는 움직이는 늑대 무리를 관찰하고 있었다·
킁킁거리며 땅바닥에 얼굴을 박고 있는 늑대의 모습을 보아하니 먹잇감을 찾는 모양·
망원경으로 늑대를 관찰하던 아가씨는 뚱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리카르도·”
“네·”
“쟤네들 짝짓기 언제 해?”
“모르겠습니다·”
좀 전까지 ‘호오오····’하며 자연의 신비로움을 관찰할 기대에 감탄사를 뱉던 아가씨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재미없어·”
아가씨와 나는 자연의 신비를 탐구하기 위해 설산에 올라와 있었다·
북부에서 해볼 수 있는 이색적인 경험을 하고 싶다는 아가씨의 바람에서 시작된 여정인데 정작 하라는 짝짓기를 안 하고 먹이만 찾는 녀석들의 부적절한 모습에 아가씨의 표정을 굳어가고 있었다·
“아저씨가 쟤네들 발정기라고 그랬잖아·”
“네·”
“성격도 더럽고 만나면 문다고 했잖아·”
“그렇죠·”
“근데 왜 안 해?”
“···”
나는 아가씨의 말에 입을 꾹 다물었다· 나도 못 하는 데 그걸 어떻게 알까· 답할 수 없는 질문만 골라서 하는 아가씨가 처음으로 미웠다·
“모르겠습니다·”
아가씨와 나는 다큐를 제작하는 카메라맨처럼 그 자리에 앉아 가만히 늑대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저 녀석들이 언제까지 저러고 있을까 잡담을 나누며 내기를 하고 졸리면 낮잠을 자는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다·
그래도 나름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낮잠을 자는 사이에 먹이를 찾고 있던 곰이 킁킁거리며 우리가 숨어있는 구덩이를 지나가고·
-킁킁·
-호오···! 곰탕이 엄마!
-조용히 하세요· 잡아 먹힙니다·
-이익··· 그래도 구우면 맛있겠지?
-벌 받습니다· 아가씨·
거대한 트롤이 늑대를 내쫓고 노상 방류를 하고·
-못생겼어·
-그렇네요·
-리카르도 닮았어· 으에엑···하고
-···아가씨 싸움 잘하세요?
-···미안·
다양한 마물의 살아가는 모습에서 지루함을 느낄 틈 없이 의미있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줬다· 정작 보고 싶은 건 못 봤지만 말이지·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빙의자의 특권을 활용해 개발해낸 물약의 효력이 끝날 시간이 점차 다가오고 있었다·
냄새와 기척을 지워주는 물약·
아무리 내가 귀찮을 걸 싫어해도 마물의 서식지에 아무런 준비 없이 찾아오는 미친놈은 아니었다· 게다가 아가씨도 함께니까 더욱 준비를 철저히 했고 말이다·
“하아암·”
하품을 뱉는 아가씨는 노을이 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숙소로 돌아가고 싶은 티를 내기 시작했다·
“리카르도·”
“네·”
“오늘 저녁은 뭐야?”
망원경을 바닥에 집어 던지고 저녁에 대해 묻는 아가씨의 피곤한 얼굴에 나는 손에 든 망원경을 내려놓으며 아가씨의 질문에 답을 뱉었다·
“드시고 싶은 것 있습니까?”
아가씨는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국밥만 아니면 돼·”
최근 여관 사장님의 덕분에 국밥만 먹은 아가씨는 혀를 내두르고 질색을 표했다·
“꿈에서 이제 돼지가 나와· 그만 좀 먹으라고 그러면서 괴롭힌다고·”
“그럼 먹기 싫다고 말씀하시면 되잖아요·”
“어떻게 말해···”
아가씨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어떻습니까! 제가 만든 국밥이 더 맛있지 않습니까? 귀하신 분께 대접하려고 비싼 재료를 팍팍 넣었는데·
-으···
-별로입니까···? 그럼 다시 만들어보죠·
-으으···
열정적인 중년의 의지를 차마 밟을 수 없는 아가씨는 노인을 공경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맛이 없다고 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국밥을 먹는 횟수가 늘어나기 때문에 뭐라고 말하지도 못하겠고·
아가씨는 우울한 속마음을 뱉으며 내게 말했다· 국밥은 먹기 싫다고·
“아무튼 국밥 먹기 싫어·”
“저는 괜찮은데····”
“내가 안 괜찮아·”
나는 피식 웃으며 아가씨를 바라봤다·
“오늘까지만 먹고 내일 다른 걸 먹으면····”
“이이익···”
“왜요·”
“리카르도· 오늘따라 리카르도가 잘생겨 보여·”
“어라··· 지금 아부하는 겁니까·”
“아니야· 그냥··· 그·· 리카르도가 요리하는 모습이 보고 싶어서·”
아가씨는 어색하게 웃으며 ‘엣큥!’하는 고양이 포즈를 지었다· 워낙에 애교와 친하지 않은 아가씨께서 자존심을 버리고 귀여운 척을 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와 버렸다·
“푸핫··· 뭡니까· 그 잔망스러운 포즈는·”
“···이익·”
나는 아가씨의 진심 어린 부탁에 고개를 끄덕이며 저녁 메뉴를 하나둘씩 생각하기 시작했다·
일단 아가씨께서 좋아하시는 음식부터 천천히 말해봤다·
“피자·”
“느끼해서 싫어·”
“된장국·”
“오늘은 안 땡겨·”
“스테이크·”
“소가 불쌍해서 싫어·”
“육포·”
“···”
“맨밥·”
“이이익···”
형편없는 보기에 화가 난 아가씨는 짜증을 가득 담은 눈으로 눈덩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다른 거·”
당장이라도 던질 것처럼 손에 눈덩이를 장전하고 협박을 하는 아가씨의 살벌한 모습에 나는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오전에 생각해 둔 요리를 조심스럽게 말해봤다· 사실 나도 국밥만 먹어서 질렸으니까 다른 것이 먹고 싶었다·
추운 북부와 잘 어울리는 음식·
따뜻하면서 국밥과 다른·
그리고 아가씨께서 좋아하는 고기를 듬뿍 넣을 수 있는 요리·
나는 아가씨의 입에 부정적인 답이 나오지 않을 거란 것을 확신하며 말했다·
“전골 어떻습니다· 배낭에 메운 향신료가 있으니까 매콤하게 만들어서 먹으면 맛있을 것 같은데요·”
흡족한 메뉴에 아가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발 장전했던 눈덩이를 입으로 가져가기 시작했다·
-아삭···!
“그걸 왜 먹습니까!”
“···맛있을 것 같아서·”
아삭아삭 눈덩이를 맛있게 먹는 아가씨의 모습에 나는 머리에 물음표를 띄우고 똑같이 눈을 뭉치기 시작했다·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까 맛있을 것 같아서·
내가 살았던 곳에 아가씨가 있었다면 분명 먹방 유튜버를 직업으로 삼았을까 싶을 정도로 맛있게 먹는 모습에 나도 뭉친 눈을 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맛없는데요·”
“웅···”
“근데 왜 먹습니까·”
“나만 먹기 싫어서·”
하여간 악녀다운 답변이다·
영양가 없는 잡답을 계속하고 있던 중 귓가에서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서걱’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말이다·
“리카르···”
“쉿· 잠시만요·”
동물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무겁고 마물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차가운 발소리에 나는 재빨리 아가씨의 입을 막고 숨을 죽였다·
갑작스러운 손짓에 아가씨는 손바닥에 침을 묻히며 말했다·
“우우움···?”
“쉿·”
“짜지기해? (짝짓기 해?)”
“아닙니다· 그것보다 조금···”
-터벅··· 터벅···
발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사람의 것 같은 일정한 발소리가 바닥을 두드리며 울리고 있었다· 이곳에 들려서 안 되는 소리 정확하게는 평범한 사람이 있으면 안 될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나는 기감을 펼치기 시작했다·
‘서른 명···?’
‘누구지···’
‘상급 마물이 사는 곳에 사람이 있으면 안 되는데···’
가까이 오는 발소리가 하나둘씩 늘어갈 때마다 마물의 으르렁거리는 소리는 점차 격해지고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늑대 중 한 마리는 털을 곤두세우고 소리가 난 방향을 올곧게 노려보고 있었다·
-으르르···
늑대의 으르렁거림이 동료를 모으기 위한 울음으로 바뀌는 순간· ‘퍽’하는 소리와 함께 늑대의 머리에 작은 손도끼가 꽂혀왔다·
빠른 속도였다·
어지간한 모험가는 눈으로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의 속도· 나는 티르빙에 손을 얹고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마물의 비명이 들려온다·
경고하는 짖음이·
동료를 끌어모으는 울음이·
발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멈추지 않고 울려대기 시작한다·
비명이 울릴수록 피의 향은 짙어졌고 그들의 걸음을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온 신경을 집중하고 가까이 오는 그들의 모습을 올곧이 바라보기 시작했다·
죽일지·
아니면 살리지를 결정하기 위해서·
아가씨에게 눈을 감으라는 말을 입안에 숨겨두고 천천히 그들을 응시했다·
-터벅···
-터벅···
“성도님 지나친 학살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 모두가 성직자인데 손에 피를 많이 묻히면 되겠습니까?”
“”···””
“조잡한 생명일지라도 그런 생명 하나하나를 아껴야 아름다운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거랍니다·”
인자하게 들리는 노인의 목소리와 함께 많은 이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행렬과 같은 광경·
-쿵···쿵···
나는 비릿하게 미소를 지었다·
‘큰일 났는데·’
선두에 선 노인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늑대의 사체를 기괴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감정이 담기지 않은 표정· 동시에 눈가에 그늘이 지었다고 착각할 만큼의 오싹한 표정으로 늑대를 내려다보는 노인·
나는 순백과 같은 하얀색 수도복을 입은 노인을 보며 고개를 떨궜다·
‘씨발·’
사도가 북부에 왔다·
유리아의 아버지를 죽일 사도가·
유리아를 성녀로 각성시키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사도가·
조금은 이른 시점에 북부에 왔다·
[올라프· Lv· 95]
직업 : 자비의 사도(使徒)
*
올리비아는 그저 멍하니 그들을 보고 있었다·
저들의 손에 들린 무기를 한번·
차가운 표정으로 서 있는 노인을 두 번·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는 리카르도를 보며 세 번을 깜빡였다·
올리비아는 멍하니 그들을 응시했다·
악의도·
살의도 담지 않은 멍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끔뻑···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reader님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항상 감사합니다!
[후원 감사]
(오늘은 컨디션 이슈로 다음 회차에 작성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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