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37
평화로운 아카데미·
“천삼백육십일·”
“천삼백육십이·”
“천삼백육십삼·”
오늘도 연무장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는 미하일은 쏟아지는 땀을 닦아내며 거친 숨을 토하고 있었다·
강해진다는 목적 하나만 보고 휘두르는 검·
잡념을 떨쳐내는데 이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미하일은 오늘도 검을 휘두르며 잡념을 떨쳐내고 있었다·
“천삼백육십사···!”
수업이 끝나면 훈련장으로·
주말에도 훈련장으로·
땀을 쏟아내면 걱정 없이 잠을 잘 수 있는 것은 미하일의 유일한 취미였기에 쉽게 그만둘 수 없었다·
단지 꿈이 달콤했다면 좋았겠지만 말이지·
“아직도 검을 휘두르는 거예요?”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고 있는 미하일의 옆에 훈련복을 입은 한나가 어깨를 스트레칭하며 다가왔다·
“진짜 대단하다· 그러니까 실력이 확확 늘지·”
검은색 타이츠에 하얀색 셔츠를 입고 있는 한나는 오랜만에 찾아와서 미하일에게 말을 걸었다·
“선배·”
“···”
“선배·”
“···”
“아직도 화나 있어요?”
미하일은 고개를 저었다· 그날의 패배는 자신이 부족해서 진 것이니까 패배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한나에게 쉽게 말을 걸지 못하고 있었지 한나 개인에게 화가 난 건 아니었다· 자존심의 문제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한나의 사정을 알지도 못하고 진심을 다해 싸웠던 것에 미안함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
쉽게 이렇다 할 말을 생각 못 한 미하일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검을 휘둘렀던 손을 멈춰 세웠다·
“아니야· 그냥 말하기 어색해서 그런 거야·”
한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검을 쥐었다·
“왜요· 제가 이겨서 그래요?”
“···아니·”
“거짓말·”
한나는 힘차게 검을 내지르며 말했다·
“좋은 스승님을 둬서 그래요· 저희 아버지보다 인격적으로나 검으로 훨씬 뛰어난 스승님을 제가 먼저 만나서 그래요·”
“···”
“집사님은 저한테 정말 과분한 스승님이니까요·”
“···”
미하일은 한나의 말에 긍정할 수 없었다·
리카르도의 실력은 인정하지만 리카르도가 좋은 스승이라는 말은 인정할 수 없었으니까· 미하일은 봐왔다· 리카르도가 아카데미에서 어떤 짓을 벌였는지를·
-또 리카르도야···?
-이번에도 화재 현장 근처에 있었데·
-걔는 무슨 사건이 터지는 곳에 맨날 있어·
-왜 있겠어· 개가 한 짓이니까 그렇겠지·
검술이 뛰어나단 것도 알지만 착하다는 것은 미하일의 심기를 건드리는 말이었다·
미하일은 미간에 미세한 변화를 일으키면서 한나에게 말했다·
“아니 네가 잘해서 그런 거야·”
“아니에요· 집사님이 알려주셔서 이길 수 있던 거에요· 예전에도 지금도 전부 집사님이 있어서 이룰 수 있었어요·”
“···”
“아마 집사님이 없었으면 저는 지금 검도 못 들었을걸요?”
“···하·”
미하일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입술을 꾹 깨물고 참아냈다· 지금 한나에게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
좋은 사람이라면 왜 모두가 싫어하는 걸까· 미하일은 리카르도를 겪어본 사람으로서 한나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리카르도는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좋은 사람이 아니야·”
한나는 그런 미하일에게 표정을 굳히고 답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한나는 리카르도의 편에 서는 사람이었으니까·
“선배가 생각하는 집사님은 뭔데요·”
“어···?”
“집사님이 선배한테 뭘 했길래 그런 말을 하시는 거냐고요· 적어도 저한테만큼은 집사님은 좋은 사람이거든요·”
“나는····”
미하일은 입술을 다물고 말을 잃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리카르도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싶어서·
한참을 생각한 미하일은 한나를 향해 답했다· 자신이 생각하는 리카르도라는 인물에 대한 결론은 이 한 문장으로 충분하게 정리할 수 있었으니까·
“나랑 정반대의 사람이야·”
“어쩌라고요·”
한나는 묵묵하게 검을 휘두르며 말했다·
“선배는 집사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요·”
미하일은 한나의 답에 입을 꾹 다물고 말했다·
“··· 알고 싶지 않아·”
*
어둠이 찾아온 남자 기숙사 안·
훈련을 마치고 방안으로 돌아온 미하일은 지친 숨을 뱉으며 침대에 앉았다·
“씻어야 하는데 귀찮네·”
성적을 상위권으로 유지한 덕분에 개인 샤워실이 코앞에 있었지만 미하일은 지친 몸을 쉽게 일으키지 못하고 있었다·
“흐아··· 그래도 찝찝하니까 씻어야겠지·”
어렵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미하일· 더 눕고 싶었지만 게으름에 끝이 없다는 걸 알기에 미하일은 침대에 몸을 일으켜 세웠다·
-터벅·
힘없는 걸음으로 샤워실을 향하던 중· 미하일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옷장 옆에 있는 거울을 바라봤다·
“몰골이 말이 아니네·”
땀에 젖은 머리카락·
축축한 훈련복·
목 뒤까지 오는 은색 머리카락·
남자나 다름없는 행색에 미하일은 헛웃음 뱉었다·
“진짜···· 볼품없어 보인다·”
한창 꾸미고 다닐 20대 초반·
거울 속의 자신을 보는 미하일은 형편없는 자신의 몰골에 한숨을 뱉었다·
외견에 신경을 안 쓴다고 했지만 정작 속마음은 그게 아니었으니까·
오늘따라 형편없어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 미하일은 미웠다·
“···”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는 미하일은 남들이 들을 수 없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뭘까·’
짙은 회의감이 담긴 목소리를 텅 빈 방 안에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여자도 아니고 남자도 아니고·’
미하일은 셔츠의 단추를 풀며 스스로에 대한 의문을 물었다· 너는 대체 뭐냐고·
‘이제 돌아갈 수도 없는데·’
다시 돌아가려면 많은 것을 버려야 하는데 왜 이런 의미 없는 생각을 하는 건지· 미하일 자신도 이런 질문을 하는 스스로가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욕심이란 게 있었다·
미하일은 거울 속에 담긴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말했다·
‘나도···’
예쁜 옷을 입고 싶고·
화장도 하고 싶고·
꾸미고 싶은데·
할 수 없는 일을 꿈꾸는 미하일은 입술을 깨물고 셔츠의 단추를 풀던 손을 멈췄다· 지금 자신의 모습은 정반대로 달려가고 있었으니까·
몸은 땀에 절여져 냄새가 나고·
머리카락은 짧아서 남자 같아 보이고·
아무런 매력이 없는 자신이 미하일은 오늘따라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스스로가 선택한 길이면서 말이지·
미하일은 자신이 이런 외적인 것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자신을 속이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 관심이 없다고 그냥 목표를 쫓아 달려가라고 자신을 몰아세우다 보니까 생각할 틈을 주지 않았으니까·
“하아···”
미하일은 다시 손을 움직였다·
‘톡’ 풀어지는 단추 사이로 하얀 살결이 드러나고 가슴을 감았던 붕대가 풀어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욕심으로 시작했던 고집을 풀어내는 미하일은 고개를 들어 옷장 문에 걸려있는 하나의 옷을 바라봤다·
하얀색 원피스·
누군가에게 꼭 보여주고 싶어서 산 원피스를 바라본 미하일은 입술을 꾹 다물며 충동적인 생각을 했다·
‘한 번 정도는 입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말이다·
작게 중얼거리는 미하일은 조심스럽게 옷장 문에 있는 옷을 꺼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한 번 정도는····’
바닥에 떨어지는 아카데미의 셔츠와 바지·
미하일은 허물을 벗듯이 입었던 옷을 바닥에 던져버리고 깊은 한숨과 함께 그동안 입어보지 못했던 원피스를 몸에 걸치기 시작했다·
“···”
맞춤 제작이라도 한 것처럼 하늘거리는 원피스는 미하일의 몸을 깔끔하게 잡아 단아한 모습을 만들어냈다·
언젠가 그 소년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산 옷이었는데 딱 들어맞는 옷에 미하일은 어린아이처럼 웃음이 나왔다·
“예쁘다···”
신이 난 미하일은 거울 앞에서 ‘빙그르르’ 돌아보며 자신을 바라봤다· 어색하게 웃으며 치마를 살짝 들어보기도 하고 여학생들이 하던 행동을 따라 하며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었다·
“진짜 예쁘다·”
미하일은 자신의 본래 모습을 즐기고 있었다· 어쩌면 당연하게 즐겼어야 했을 일상을 미하일은 아무도 없는 곳에 숨어서 즐기고 있었다·
신이 나고·
설레기도 한 기분·
오랜만에 느껴보는 해방감을 만끽하며 미하일은 미소를 지었지만·
아쉽게도 그 기분은 오래가지 못했었다·
구름에 가려진 달빛이 모습을 드러내며 어두운 방안을 비추기 시작했다·
서서히 색감이 입혀지는 거울 속의 자신·
짧은 머리카락과 투박한 다리를 비추는 달빛의 장난에 미하일은 살짝이 지었던 웃음을 사그라뜨리며 거울을 바라봤다·
“아···”
웃음이 사라진다·
얼굴에 경련이 온다·
미하일은 온전히 거울에 담기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못생겼다고·
그저 가슴이 나온 남자가 원피스를 입고 신나하는 것 같아서· 두 주먹을 쥐고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봤다·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음에도 동화 속의 나오는 공주님처럼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음에도 미하일은 거울 속의 자신이 형편없게만 보였었다·
미하일은 은은하게 지었던 미소를 지우며 울상을 지었다·
“···이게 뭔 여자야·”
미하일은 서둘러 원피스를 벗으려 했다· 이 이상이 이러고 있으면 기분이 더 안 좋을 것 같으니까·
미하일은 원피스를 구기며 마음속으로 말했다·
‘미안해·’
‘예쁜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예쁜 모습 보여주고 싶었는데·
‘못 볼 꼴을 보여줬네·’
미하일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원피스를 옷장으로 구겨 넣으려 했고 하늘거리는 원피스가 아쉬워하는 미하일의 손길에서 떨어지려는 순간·
-띵·
잔인한 알람이 미하일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Q· 본래의 모습으로·]
·
·
·
1· 리카르도에게 당신의 본래의 모습을 보여주세요· (0/1)
2· 리카르도와 데이트를 하세요· (0/1)
3· 리카르도의 진심을 들으세요· (0/1)
보상 : 이민혁의 생존 여부·
실패 시 : 없음
미하일은 두 주먹을 쥐고 푸른 창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reader님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항상 감사합니다!
[후원 감사]
iyi_884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닷!
오늘도 좋은 작품 감사합니다라는 맨트를 보내주신 독자님! 이 요정 미소를 짓습니닷!
오늘 엄청 매움 음식을 먹은 요정···! 속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닷!
항상 배탈 조심하시면 좋겠습니닷! 특히나 여름은 위험한 계절이니까 말이죠!
독자님에게 음식이 쉽게 상하는 계절에 건강을 챙길 수 있는 요정! 유통기한의 요정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닷!
늑대몬스터인간님 1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닷!
히익! 요정 독자님의 사랑에 고개를 숙입니닷!
독자님의 과분한 사랑을 받는 요정···!
언젠가 꼭 연참으로 보답하는 날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닷!
강해져보겠습니닷!
독자님에게 감기가 찾아오는 위험한 계절을 이길 수 있는 마법의 요정! 면역력의 요정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닷!
비공개로 2코인 후원 감사합니닷!
독자님의 사랑을 느끼는 요정···!
좋은 작품 감사합니다라는 멘트를 받으며 요정은 고개를 숙입니닷!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요정입니다·
실제로 많이 부족하고 말이죠!
요정 발전하고 나아가 보겠습니닷!
독자님에게 냉방의 무서움을 알려주는 전기세를 이길 수 있는 마법의 요정! 태양열의 요정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닷!
감사합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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