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
짝다리를 집고 있는 루인·
불만이 많은 표정으로 나를 보는데 왜 저러는지 알 수 없었다·
“여기서 뵙네요· 루인 씨 반갑습니다·”
“반갑다고?”
루인은 헛웃음을 뱉었다· 왜 저러는 걸까· 저번에 한나 씨와 함께 삶의 교훈도 나누고 좋은 시간을 보냈는데 왜 저런 표정으로 보는 거지·
좋았던 추억을 잊어버린 루인에게 서운함을 느꼈다·
그래도 여기서 만난 것도 인연이니까·
이야기하면서 풀어보면 괜찮지 않을까 우린 아카데미 동기니까·
나는 재회의 기쁨을 담아 루인에게 말했다·
“저번에 저택에서 만나고 처음 아닌가요? 그때 아가씨도 못 뵙고 가신 것 같은데·”
“뭐? 누구?”
“데스문트 올리비아 영애님이요·”
루인은 작게 비웃었다·
데스문트 올리비아·
자신의 라이벌이자 자신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 겨준 여자·
용서할 수 없는 여자의 이름이 용서할 수 없는 놈의 입에서 달콤하게 흘러나왔다·
먹잇감을 물은 루인이었다·
리카르도를 부른 목적은 하나였다· 돈이 없는 리카르도가 숲의 친구에 온 것이 웃겨서·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창피를 주고 지난번 일을 사과하게 만들고 싶었다·
뒤에 하얀 머리 여자가 업혀있긴 했는데 루인이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리카르도랑 다니는 사람이면 리카르도와 똑같은 수준이겠지· 유행 지난 드레스를 입고 있는 걸 보니 변방에 사는 몰락한 귀족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올리비아는 검은 머리니까·
올리비아가 여기 없을 거라고 확신하고 루인은 말했다·
“그래 네 주인은 어디 갔냐· 이런 데 왔으면 주인이랑 같이 와야지·”
“네?”
“그리고 집사라는 놈이 다른 년이랑 오는 게 말이 되냐· 꼴에 데이트는 한다고· 풉· 돈은 있냐?”
“다른 여자라뇨· 아가씨가 여기 있는데·”
“뭔 소리 하는 거야·”
흠칫· 루인은 어깨를 떨었다·
소문으로 올리비아의 소식을 들은 루인은 알지 못하는 게 많았다·
올리비아가 하얀 머리로 변한 것부터 시작해서 간단한 거리 정도는 등에 업혀서 산책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저 루인이 올리비아에 대해 아는 것은 친구들이 들려주는 소문이 전부· 자신들이 퇴학시킨 여자를 다시 불러오고 싶지도 않았고 알고 싶지도 않았기에 가끔 들려오는 소문이 루인이 올리비아에 대해 아는 전부였다·
-올리비아가 말이야· 다리를 못 쓰고 불구가 됐데!
사실에서 시작된 소문이·
-올리비아가 목숨이 위독하대·
극단적인 소문으로 바뀌는 절차를 걸쳐 결말을 전해 들은 루인은 올리비아가 당연히 집에서 시름시름 앓고 있을 거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루인은 등 뒤에 있는 아가씨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했고 아가씨의 눈앞에서 보고 싶다고 고백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나는 바닥에 타일 개수를 세고 있는 아가씨에게 작게 속삭였다·
“아가씨· 루인입니다·”
“루인?”
새초롬하게 고개를 드는 아가씨·
순간 루인은 어깨를 떨었다·
아가씨와 눈을 못 마주치는 루인은 계속해서 바닥만 보고 있었다·
왜 저러지·
아가씨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야?”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아가씨는 루인을 바라봤다·
“그 있잖아요· 아카데미에서 아가씨 라이벌이라고 떠들던 분·”
“내 라이벌은 유리아 밖에 없는데·”
“본인이 그렇다고 하는데요?”
“쟤가?”
아가씨는 다시 루인을 봤다·
움찔·
어깨를 떠는 루인·
저택에 왔을 때는 올리바아의 얼굴을 봐야 한다고 노발대발했던 루인의 모습은 사라지고 지금은 털을 곤두세운 고양이가 된 루인이었다·
성질을 내고 싶은데 성질내다가 되로 당할 것 같아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 보는 내가 안쓰러웠다·
“쓰읍·”
“어때요· 기억나십니까?”
“흐음···”
미간을 찌푸리며 루인을 오목조목 뜯어보는 아가씨· 13년 동안 아가씨의 훌륭한 기억력을 봐온 나는 단번에 알아차렸다· 아무래도 오늘 안에 기억하긴 힘들 것 같다고·
“고깃집 아들이야?”
“아니요·”
“그럼?”
“녹조 마을 이장님이요·”
“아하!”
정확한 소개에 발끈한 루인은 크게 소리쳤다·
“그딴 거 아니야!”
“그럼 누구야?”
“나···· 나는·”
올리비아 앞에서 다리를 떠는 루인·
소설에서 할 말 다 하는 성격이었는데 진정한 광기 앞에 서니까 맥을 못치는 루인이었다·
아카데미에서도 저랬다·
뒤에서 신나게 아가씨의 뒷담을 하다가 아가씨가 닥치라고 하면 깨갱하고 교실을 떠나는 철새·
왜 아가씨 앞에서만 저러는지 나도 모르겠다·
확실한 건 루인은 아가씨를 무서워했다는 거다·
올리비아는 내 목을 꼭 껴안았다·
등 뒤에 느껴지는 풍만한 가슴이 수컷의 존엄성을 위협했지만 애국가를 부르며 겨우 참아냈다·
“리카르도 가자· 나 배고파·”
“잠시만요 누군지 알고는 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지금 움직이면 여러모로 곤란합니다·
“흐음·”
올리비아는 루인에게 말했다·
“너 누구야·”
“나··나나나··나는”
“말 더듬지 말고 똑바로 말해·”
아가씨의 불호령에 겨우 입을 여는 루인·
“마탑주의 제자야·”
“오· 그렇구나·”
올리비아는 엄지손가락을 척하니 올렸다·
“그럼 맛있게 먹고 가·”
지금 올리비아는 녹조 대가리든·
서브 남주인공이든 간에 눈앞의 고기가 소중했다·
“기다려!”
“왜 나 바빠·”
“나 진짜 기억 안 나? 폭염의 화염 마법사 루인· 아카데미 차석까지 했었는데·”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애쓰는 모습·
보는 내가 안타까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에 이름 좀 외우라고 할 껄·
여러모로 루인에게 미안했다·
“그때 내가 파이어볼로 네 드레스 태워서 엄청나게 욕했었잖아·”
그만해라 서브 남주·
흑역사로 아가씨의 기억을 살리려고 하지마·
“기억 안 나는데·”
“아니? 기억나야 할 걸? 그때 엄청 비싼 드레스 태워서 30분 동안 얼음 마법으로 나 괴롭혔잖아· 그때 진짜 얼어 죽는 줄 알았다니까?”
“흠·”
아가씨는 말했다·
“기억 안 나·”
나는 루인의 맨탈을 지켜주기 위해 근처에 있는 점원을 불렀다·
“사장님 죄송한데 두 명 자리 좀 준비해 줄 수 있을까요?”
“죄송한데 저희가 예약제라서 성함 말씀해주시겠어요·”
“아···· 보여주세요 아가씨·”
아가씨는 자신의 이마에 척하니 식사권 두 장을 붙였다· 잃어버리지 말고 잘 들고 있으라고 했는데 온 힘을 다해 꽉 잡고 있었는지 식사권에 주름이 가득했다·
“힛·”
미소를 보이는 아가씨·
점원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리를 안내했다·
“특실로 모시겠습니다·”
루인은 떠나는 우리의 뒷모습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트···특실?”
루인의 시야에서 우리가 사라질 때쯤· 분홍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가 루인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루인 왜 그러고 있어?”
간신히 정신을 차린 루인은 떨떠름하게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유리아·”
***
식당에 앉은 아가씨와 나·
행복한 공기가 흘렀다·
상에 가득히 깔린 반찬들·
임금님 수라상도 부럽지 않을 반찬의 향연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오···!”
“침 떨어집니다· 아가씨·”
“내 꺼니까 침 발라놓는 거야·”
휴지로 아가씨의 턱에서 흐르는 침을 닦아냈다· 아무리 입으로 들어갈 음식이라 해도 귀족이 칠칠찮게 이러는 건 여러모로 곤란했다·
식탁에는 반찬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눈으로 대충 세어도 30가지는 넘어 보이는데 이 정도로 많이 시킨 기억이 없었다·
주문이 잘못 들어온 게 아닐까 싶어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고 점원의 귀에 얼굴을 가까이했다·
“저기·”
“네 손님·”
“저희가 시킨 메뉴는 스테이크 세트인데 주문이 잘 못 된 것 같아서요·”
“아~ 괜찮아요· 사장님께서 직접 주신 식사권을 가지고 오셨으니까· 이 정도는 해드려야죠·”
“사장님이라뇨· 저는 말릭 씨에게 받은 건데·”
“맞아요· 말릭님”
“네?”
“저희 사장님이십니다·”
나는 두 손을 모았다·
어딘가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을 말릭을 생각하며 기도를 드렸다·
또 보고 싶다고·
빚도 갚아주고 귀중한 식사권을 양도해준 그가 오늘따라 너무 보고 싶었다·
우린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서걱· 육즙이 흘러나오는 스테이크·
“와··· 아가씨· 육즙 보세·· 이미 드시고 계시는구나·”
입에 한가득 고기를 넣는 아가씨는 요란한 소리를 냈다·
“오오오!”
심봉사가 눈을 떴다고 착각할 정도로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나를 향하고 있었다·
“맛있어···!”
기분이 좋았다·
이 맛에 이 고생하지·
우걱우걱 턱이 빠지도록 고기를 씹는 아가씨·
아가씨는 잠깐 멈칫하더니 스테이크를 새끼손가락보다 작게 쓸고서는 내게 내밀었다·
“아·”
“저 주시는 겁니까?”
끄덕·
“그럼 좀 크게 쓸어주시지· 너무 작은 거 아닙니까?”
찌릿· 무언의 협박을 하는 아가씨의 눈빛에 입을 벌렸다·
확실히·
너무 맛있었다·
소설에서 표현한 그대로 입안에서 육즙이 살아 숨 쉬고 송아지가 뛰어노는 듯한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와우·”
“맛있지?”
“네 정말 맛있네요·”
“히히 많이 먹어· 내가 사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우린 식탁을 모조리 비워냈다·
***
“아이 배부르다·”
빵빵해진 배를 어루만지며 후식을 먹고 있는 우리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입가에 기름을 묻히고 꺼억· 트림하는 아가씨· 전혀 귀족처럼 안 보였다·
슬슬 말할 시간인가·
저녁도 찾아왔고·
분위기도 좋으니까·
오늘의 메인 메뉴를 대접할 시간이 찾아왔다·
드디어 빚을 다 갚았다고 이제 쫓겨날 걱정하지 않고 지낼 수 있다고 말할 시간이다·
크흠·
목청을 한 번 다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려는 찰나·
“크흡! 리카르도·”
“네?”
“나 할 말 있어·”
식사를 마친 뒤 내 눈치를 보던 아가씨가 먼저 입을 여셨다·
아가씨는 주변을 휙 둘러봤다· 혹시나 누가 보면 어쩌나 싶어서·
특실이라 주변에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공간이지만 아가씨는 제법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는 모양인지· 계속해서 주변을 살폈다·
“응· 아무도 없네·”
고개를 끄덕이는 아가씨·
상당히 귀여웠다·
홀짝· 차를 마시고·
아가씨는 가슴 사이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기 시작했다·
“아니! 뭐 하시는 겁니까?”
“응? 주머니 뒤지는데?”
“거기가 왜 주머니입니까!”
손가락을 펼치고 가린 눈·
여러모로 잘 보였다·
아가씨의 몸을 훔쳐보는 것이 잘못된 일이지만 신사의 도리를 펼치지 않는 것이 더 악한 일이었다·
가슴 사이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신문지·
평생 가보로 소장하고 싶었다·
아가씨는 가슴을 당당하게 펴고 말했다·
“여기 주머니가 제일 커·”
“아니···”
듣고 보니 맞는 말이네·
아가씨의 가슴은 항상 옳으니까·
나는 정답이 될 수 없었다·
탁· 식탁에 신문을 펼치는 아가씨·
가슴 주머니에서 나온 따끈따끈한 신문· 나는 다시 한 번 손수건으로 코를 막았다·
“왜 그래?”
“아니 콧물이 나가지고요·”
“몸 잘 챙겨· 고기 먹었는데 건강해야지·”
나를 걱정한 아가씨는 기사 한 줄을 가리키고 해맑게 말했다·
“있잖아 나 일하려고·”
“네?”
“여기 봐봐”
[인형 눈 붙이기 알바·]
-개당 동화 1개
“어때?”
허락을 구하는 듯 나를 바라보는 아가씨· 기특하긴 했지만 마음이 썩 좋지 않았다·
무슨 마음이라고 해야 할까·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힌 자식이 컴퓨터를 사고 싶다고 알바를 승낙받는 기분이라고 해야할까·
묘하게 서운하면서·
성장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왜?”
아가씨는 다시 나를 올려다봤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허락을 구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장하다고 말하고 싶은데·
내가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아가씨는 계속해서 말했다·
나를 설득이라도 하려는 듯 얼마나 이게 좋은 일이냐며 신문에 적힌 알바에 대해 설명을 이어갔다·
“내가 곰곰이 생각해봤거든 지금 우리가 많이 힘들잖아· 나도 가만히만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알아봤거든·”
“···”
“어때? 괜찮지 않아?”
“그게···”
“저택도 팔아볼까 생각을 해봤는데·”
아가씨는 어색하게 웃었다·
“내가 살았던 저택이라 가격이 많이 떨어져 있더라고· 악녀가 살았던 저택이라나 뭐라나·”
“그런 건 언제 알아보셨습니까?”
“부동산에 편지 써봤지·”
아가씨가 기특하면서
마음이 아팠다·
조금 더 잘해드릴걸·
걱정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는데·
씁쓸한 마음에 디저트를 입에 욱여넣었다·
“아가씨· 괜찮습니다·”
“왜? 나도 일할 수 있어·”
“압니다· 그래도 아가씨가 일하시는 건 안 됩니다·”
“왜에!”
팔을 굽혀 익숙한 알통을 보여주는 아가씨· 메추리 알보다 작은 이두박근이 두 눈에 들어왔다·
저런 연약한 팔로 인형 눈을 어떻게 붙인다고 10개 정도 붙이고 나면 골골거릴 게 분명한데·
참·
미워할 수가 없다·
“정말 대견하고 자랑스러운데· 이제 우리가 아주 힘들지 않아서요”
“어?”
“그 빚 다 갚았습니다· 이 말 하려고 오늘 식당에 온 거였거든요·”
아가씨는 포크를 떨어뜨리고 내게 소리쳤다·
“너 내가···· 위험한 일 하지 말라고 했잖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입술을 꽉 깨물고 볼을 빵빵하게 부풀려서 혼내는 모습·
그리고 눈가는 촉촉하게 적셔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아가씨는 나를 혼내기 시작했다·
-그러면 안 돼!
-위험한 일이지!
-띠발! 돈 많이 준다고 따라가면 안 된다니까!
아가씨의 잔소리를 듣는 나는 생각했다·
이런 잔소리도 나쁘지 않다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reader님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고란이님 3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재미있다니··· 압도적인 감사가 나옵니다···! 더더욱 열심히 쓰는 요정이 되겠습니다· 항상 퇴근 조기 수업 종료의 요정이 함께하길 빌겠습니다
김민진_978 5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일상 파트를 재미있게 봐주시다니 정말 기분이 좋네요· 저도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 일상 파트랍니다· 간간히 추가하면서 독자님의 미소가 끊이지 않을 달달한 에피소드를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난너의노예님 5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후원 감사합니다! 열심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독자님께서 주신 후원금을 차곡차곡 모아 다음 일러를 제작할 때 요기나게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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