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2
-투둑·
붉은 선혈이 바닥에 떨어진다·
분명히 느껴졌어야 할 복부의 고통은 질끈 감은 눈 사이로 흩어지고 터질 것 같은 억울함은 밤바람에 흩날려 사라졌다·
미하일은 무겁게 내려앉은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붉은 머리카락·
검은 집사복·
눈앞을 전부 가리는 넓은 어깨·
그만의 독특한 향수 냄새가 미하일의 코끝을 간지럽히며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걱정했습니다·”
짧게 울리는 리카르도의 낮은 음성이 안위를 물었다· 아무런 말도 묻지 않은 채 그저 묵묵하게 내질러진 칼날을 잡은 리카르도는 바위처럼 올곧이 서 있었다·
미하일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퀘스트가 완료되었다는 소식에 반응할 틈 없이 맨손으로 칼날은 붙잡은 리카르도를 보며 물었다·
“어떻게···”
“어떻게는요· 비밀 소녀 씨가 도와달라고 텔레파시를 보내서 왔죠·”
리카르도는 당황한 미하일을 뒤로하고 눈앞의 남자를 보며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와도 할 이야기는 남아있지 않습니까·”
“···”
“밤새도록 떠들어도 모자랄 것 같은데요·”
서늘하게 들려오는 리카르도의 목소리는 융의 웃음을 자아냈다· 굴곡이 없는 음성임에도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으니까·
한 음절 한 음절 입 밖으로 내뱉을 때마다 살결을 송곳으로 내지르는 듯한 리카르도의 음성에 융은 고개를 저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 푸하하! 하아··· 이거 완전 날을 잘못 잡았는데 호위기사가 있을 줄은 몰랐어·”
“저는 오늘 날을 잘 잡았다고 생각하는데요·”
“하아···”
융은 진득한 웃음을 끊으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날카롭게 벼려진 융의 시선과 리카르도의 시선이 허공에 맞닿아 떨어졌다·
“오늘은 그냥 인사차 들른 거야· 나를 잊지 않았나 싶어서· 워낙에 저 친구가 유명인이잖아· 그러니까 이런 사람도 있었다 그런 거지·”
“그쪽은 인사를 칼부림으로 합니까?”
“흐흐흐··· 그것도 그렇지·”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는 리카르도의 차가운 목소리에 미하일의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
융은 어색하게 웃으며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저 꼬마를 백치로 만들려고 했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아빠 아빠 거리다가 확···!”
“악취미를 가지고 있네요· 죽여버리고 싶게·”
“···아 그냥 지금 확 만들어버릴까·”
융은 리카르도의 등 뒤에 숨어 있는 미하일을 서늘하게 바라보며 아쉬운 미소를 지었다· 할 수만 있다면 정말로 하고 싶다는 듯이 협박을 내뱉는 융의 말에 리카르도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할 수는 있으시고요?”
“···”
뻗어오는 붉은 오러는 융의 숨통을 찾아 옥죄기 시작했다· 열린 저승문처럼 음습하게 뻗어가는 붉은 오러에도 융은 쉽게 물러설 생각이 없는지 손에 쥔 단검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방심은 누구나 하는 법이야· 나도 그렇고 너도·”
“···”
“이 아저씨가 나름 솜씨가 좋거든·”
리카르도는 어색하게 웃으며 단검을 잡았던 손을 놓아줬다·
“장난입니다·”
충분히 죽일 수 있고·
그의 흑마법을 무력화시킬 수 있지만····
[제약이 걸려있습니다·]
└미하일의 심리가 매우 불안정합니다·
└’융’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제약이 흔들리게 됩니다·
└’융’을 당신이 죽이게 된다면 ‘미하일’의 각성은 미뤄집니다·
신이 그걸 바라지 않으니까·
미하일과 만나게 했으면서 왜 이리 오락가락인 건지 리카르도는 어딘가에서 보고 있을 신에게 불경한 말을 몇 마디 던져주고는 마른 입술을 침으로 적시고 있는 융을 향해 뻗었던 오러를 거뒀다·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네요·”
“···죽을 뻔했네·”
“마음 바뀌기 전에 가시죠·”
“그래야지····”
융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며 죽일 듯이 노려보는 미하일에게 작별을 건넸다·
“꼬마야 다음에 또 보자·”
리카르도도 융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다음에 만나면 곱게 보내지 않겠습니다·”
“나도 너는 다시 만나기 싫어·”
그 말을 끝으로 융은 사라졌다·
*
적막이 감도는 골목길·
미하일은 고개를 숙이고 피가 흐르는 리카르도의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게 당연한데 쉽사리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리카르도는 묵묵히 손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있었다· 자켓의 안주머니에서 꺼낸 손수건으로 손바닥을 누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미하일에게로 천천히 걸어오며 말했다·
“괜찮나요?”
“···”
“다치지는 않으셨나요?”
“···”
미하일은 속에서 새어 나오는 의문을 밤공기와 함께 삼켰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으니까·
왜 자신을 도와줬냐는 의문을 시작으로 괜찮냐는 말까지 속에서 새어 나오는 물음을 가슴속으로 숨기려 해봤지만 한 가지 의문에 말문이 막히고 다시 한번 마른 숨을 삼키었다·
‘왜·’
왜 이렇게 하는 거냐고·
리카르도는 나와 어떤 관계도 없을 텐데· 초면인 사람과 다를 게 없는데 ‘왜’ 이런 짓을 하는 거냐고· 미하일은 차오르는 의문을 삼키며 주먹을 쥐었다·
‘이건 네가 아니잖아·’
초면에 민폐를 부린 여자가 지금의 리카르도가 보는 ‘나’인데·
깊은 관계도 친구도 아닌 ‘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사람이 눈앞에 있는 ‘나’일 텐데·
왜 나서는 하는 거냐고·
눈 한번 질끈 감고 뒤를 돌면 될 일인데 그럼 아무도 알지 못하고 원망할 사람도 없을 덴데·
그런데·
‘왜 도와주는 거냐고·’
내가 기억하는 리카르도라면·
손해를 보지 않고 이득을 취하려는 리카르도라면· 아카데미에서 망나니 같은 모습만 보여줬던 리카르도라면· 매정하게 대하고 무시하는 게 당연한데·
왜····
‘영웅이 되려는 건데·’
미하일은 속에 품은 의문을 그대로 뱉었다· 답을 듣지 못하면 해결할 수 없었으니까·
“왜····”
지금까지 품어왔던 수많은 의심이 작은 고동과 함께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왜 절 구해준 거예요····”
“···아·”
“손해를 보지 않는 사람이라면서 왜 절 구해주는 거냐고요·”
리카르도가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다른 학생들이 리카르도를 싫어하고 미워했으니까· 눈앞에 그려진 모습을 보고 판단했던 미하일은 주먹을 쥐고 그 오해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원래 그런 사람 아니잖아요·”
“···”
“모르는 사람 도와주고 괜찮냐고 물어봐 주는 사람 아니었잖아요·”
“···”
“근데 왜 착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건데요?”
“왜요··· 왜···?”
리카르도는 헛웃음을 뱉으며 미하일을 향해 말했다·
“예쁘니까요·”
“···”
“제가 원래 남녀차별이 심하긴 합니다·”
미하일은 주먹을 쥐고 반문을 뱉었다·
“뭐가 예쁜데요·”
“···”
“칙칙하고 꾸미지도 못하는데 뭐가 예쁘다는 건데요·”
“···”
“하나도 안 예뻐요· 저도 거울 보면 알아요· 아무 매력 없고 못생긴 거·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잖아요· 칙칙하고 사납고 남정네 같다고요·”
미하일은 두 주먹을 쥐고 리카르도에게 소리쳤다·
“거짓말하지 말아요·”
리카르도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쩌겠습니까· 제 눈은 예쁘다고 하는데요·”
미하일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리카르도에게 말했다· 정말 이상한 사람이라고·
“망나니 맞아요?”
“···”
“아카데미에서 날뛰었던 그 망나니 맞냐고요· 이건 너무 다른 사람 같잖아요·”
리카르도는 또 작게 미소를 지으며 미하일에게 말했다·
“제가 철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
“그 당시에 저는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제가 나쁘면 다른 사람들이 더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리카르도는 미하일 앞에 쪼그려 앉아 신발 끈이 풀린 미하일의 운동화에 매듭을 지어주면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맞기도 했고요·”
미하일은 두 눈을 꾹 감고 리카르도에게 말했다·
“저는 아직 당신이 싫어요·”
“제자가 스승에게 하는 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건방진데요·”
“그래도 저는 당신이 싫어요·”
“···”
미하일은 두 주먹을 꽉 쥐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리카르도를 향해 말했다·
하아···
“미사·”
“네···?”
“제 이름이요·”
“···”
미사라고 해요·
리카르도는 작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 예쁘네요·”
*
돌아온 기숙사·
미하일은 침대에 누워 지친 눈을 가렸다· 생각이 복잡하고 몸이 피곤했으니까· 눈부시게 빛나는 달과 인사하는 걸 피했다·
많은 생각이 든다·
왜 자신의 이름을 알려줬는지·
‘미사’라는 이름은 그에게 말했는지·
감정적인 자신의 선택에 복잡한 생각이 드는 미하일은 깊은 한숨을 뱉었다·
“하아···”
-걱정했습니다·
싫어한다면서 왜 그렇게 말을 하는 건데· 그 말이 진심인 건 또 뭐고·
손으로 눈을 가린 미하일은 오늘 느꼈던 감정을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모르겠어·”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
착한 사람·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아카데미에서 보여줬던 모습과 너무나 달랐던 리카르도의 모습에 미하일은 얼굴을 쓸어내리며 깊은 한숨을 뱉었다·
어느 쪽이 본 모습인지 모르겠으니까· 확실한 건 리카르도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는 거겠지·
최악에서 조금 덜 최악인 정도로·
미하일은 리카르도에 대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에 주먹으로 침대를 내려쳤다·
“짜증나·”
복잡한 생각과 의문이 거듭되어 잠이 안 오는 시간이 계속될 때쯤·
-띵·
‘띵’하고 울리는 서늘한 인사가 지친 미하일의 귓가에 손을 흔들고 있었다·
[퀘스트 보상을 받으시겠습니까·]
미하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 응답했다·
그리고·
바래왔던 진실을 들을 수 있었다·
[외전· 본래의 모습으로·]
만약 당신이·
당신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
한 사람의 책임으로 끝나는 그 날·
당신은 견딜 수 없었습니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reader님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항상 감사합니다!
추신)
아직··· 미하일은 때가 아닙니닷!
아쉬움이 많겠지만···!
다음을 기약해봅니닷!
[후원 감사]
Rseok님! 11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첫 후원을 이 요정에게····!
이 요정 독자님의 처음을 가져간 것에 큰 영관을 느끼고 있습니닷!
최근 감기로 고생한 요정··!
지금도 상태가 매룡하긴 하지만··!
독자님의 사랑으로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첫 후원을 요정에게 선물해주신 독자님에게 행복과 즐거움을 가득 담은 행복의 요정···! 첫 데이트의 요정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앗! 참고로 요정은 요정이라서 데이트란 걸 모릅니닷!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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