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
작은 두통과 함께 올리비아의 눈이 감겼다·
[열람이 시작되기 10분 전입니다·]
질끈 감았던 눈을 살며시 떴다·
익숙한 천장이 자신을 맞이했다·
“하····”
김빠진 웃음이 새어 나왔다·
자신이 진짜 미친 건가 해서·
침대 위에 아기자기하게 놓여있는 인형 보통의 귀족 영애처럼 분홍색 커튼으로 방안을 꾸민 아주 익숙한 방·
과거 자신의 방이었다·
그대로였다·
천장에 가득 붙인 미하일의 사진도·
곰 인형 머리에 미하일 사진을 붙인 애착 인형도 1년 전 그대로였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목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진짜잖아?”
손을 조심스럽게 뻗어 옆에 있는 곰 인형을 들어봤다·
리카르도가 버렸던 자신의 애착 인형· 부드럽고 쿰쿰한 냄새가 그대로 느껴졌다·
현실감 있게 느껴지는 환상에 자신의 정신병이 중증이라고 생각했다· 무의미한 헛웃음이 흘러나왔지만 마음 한편에는 묘한 설렘을 숨길 수 없었다·
곧 자신이 보게 될 미래가 기대돼서·
정신병이면 어때·
이미 미친년인데·
침대에 누워있는 올리비아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다리를 봤다·
매끈한 다리· 무릎에는 리카르도가 붙여준 곰돌이 반창고가 귀엽게 있었다· 올리비아는 발가락 끝에 살짝 힘을 줘봤다·
‘움직여볼까?’
문득 두려웠다·
지난 1년 동안 스스로 움직여보지 못한 하반신· 내 몸인데 내 것이 같지 않았던 기억이 겹치면서· 눈이 질끈 감겼다·
‘움직인다···! 움직인다고!’
하지만 걱정은 기우였다· 질끈 감은 눈이 무색할 만큼 올리비아의 발가락은 잘 움직였다·
꼼지락거리는 하얀 발가락·
울리비아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스스로 올곧게 섰다·
‘···!’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오랜만에 바닥을 지지하는 감각· 올리비아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히힛···’
바보 같은 웃음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이 순간만큼은 자신이 미쳐서 좋았다· 오랜만에 걸을 수 있다는 것을 잠깐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미친년이라고 욕해도 좋으니까·
묘한 충족감이 전신을 채우자·
올리비아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앞으로 자신이 보게 될 것은 악몽이 아니라는 것을· 지금 이렇게 기쁜데 집사가 방해하지 않았던 과거의 자신은 어땠을까·
너무 달아서 정신을 못 차리겠지?
‘봐 나는 틀리지 않았다니까·’
-째깍째깍·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소리가 조용한 방안을 채운다·
올리비아는 고개를 돌려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11 : 59분·
올리비아는 이 날짜와 시간이 익숙했다·
‘아마 12시 정각이었지?’
자신이 흑마법을 사용하는 날·
방안에 들어온 시간이다·
사실 올리비아는 그날의 기억이 온전하지 않았다·
방에 들어온 것까지 기억하는데·
나머지가 생각나지 않았다·
뭔가 따끔했고 너무 아팠다는 기억 정도· 그러고 정신을 잃었으니까·
확실히 기억하는 건 12시에 방에 들어왔다는 것· 그리고 리카르도가 들어와서 자신의 흑마법을 방해했다는 정도· 그것 말고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너무 흥분했던 탓인 걸까·
아니면 흑마법을 실패한 후유증 탓인 걸까·
‘왜 그랬는지· 지금 보면 알겠지·’
시간은 흘러 12시 정각을 가리켰다·
[열람을 시작합니다·]
푸른 글씨가 나온 뒤·
익숙한 목소리가 방문 너머로 들려왔다·
-이것만 있으면 돼·
잔뜩 상기된 목소리·
장난감을 사주겠다는 부모의 약속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행복에 잠긴 목소리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지금보다 저 때가 더 예쁘네·’
푸석한 하얀 머리카락인 지금과 달리 검은색 머리카락에 싱그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20살의 자신· 자신감에 가득 찬 미소와 기품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저런 때가 있었지·
지나간 회상을 아쉬운 눈으로 추억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방바닥에 누워 암시장에서 구한 흑마법서를 따라 몸과 바닥에 마법진을 새기는 자신의 모습· 천방지축하고 웃음이 끊이지 않는 과거 자신의 모습에 전염이 되는 것 같았다·
보기 좋았다·
보고 있는 내내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딱 1시간 동안 말이지·
마법진을 그린 지 1시간이 지난 시점·
올리비아는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좋아하는 사람의 피하고 내 피를 섞고····
-거의 다 됐다· 이제 다 끝났어·
-흐흐흥····
‘내가 저런 표정을 짓고 있었나?’
섬뜩했다·
광기에 집어삼킨 눈으로 마법진을 그리는 자신의 모습이· 꼭 광신도와 같았으니까·
‘내가 저랬다고?’
부정하고 싶었다·
자신은 저런 못난 얼굴을 가지지도 않았고 집착과 거리가 먼 사람이니까·
그냥 남들처럼 누군가를 짝사랑하는 소녀라고 생각했는데·
스스로가 보는 자신은 너무 기괴했다·
그런데도 자신이 아니라고 부인할 수 없는 이유는·
-미하일· 미하일· 넌 내 것이니까 이해해 줄 거지?
입에서 나오는 익숙한 이름 때문이었다·
새벽 4시 30분·
방안은 어둠에 잠겨있었다·
등으로 방을 밝히고 완성된 마법진을 보는 과거의 나·
여기까지가 올리비아가 기억하는 그 날 전부였다·
미하일을 생각하면서 마력을 흘러 넣었고 끔찍한 고통을 느꼈다는 것· 그리고 리카르도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장면이 자신이 기억하는 전부·
올리비아는 두 손을 꼭 쥐었다·
과정이 어찌 됐든 자신이 그날에 했던 일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시간이 왔으니까·
‘어쨌든 결과만 좋으면 되니까·’
자신이 바라는 그림을·
빌어먹을 집사가 방해하는 그림이 아니라· 잠깐의 고통이 끝나고·
흑마법이 무사히 이루어져 미하일과 행복한 미래를 그리는 그림을·
서로 데이트를 하고 껴안기도 하면서 서로의 이름을 따뜻하게 불러주는 장면· 올리비아는 그 장면을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래· 결과만 좋으면 되잖아·’
올리비아는 주먹을 꽉 쥐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마법진 가운데에 선 자신이 보였다·
-좋아 완벽해·
흐르는 마력·
마법진은 빠르게 과거 자신의 마력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키킥···· 키기기긱·
섬찟한 소리가 들려왔다·
바닥이 갈라지는 소리·
바닥에 그린 마법진은 검게 빛나기 시작했고 몸에 새겼던 술식은 핏줄을 타고 붉게 물들어갔다·
‘어···어어어어?’
순간 그녀는 직감했다·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뭐야? 이거 왜 이래?
과거의 자신도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은 모양·
눈이 동그래지고 생각지 못한 일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에 올리비아는 소리쳤다·
올리비아는 소리쳤다·
“정신 차려 병신아· 뭐 하는 거야!”
자신의 목소리가 닿을 턱이 없는 지금·
올리비아는 관찰할 수밖에 없었다·
-뭐야 왜 이래? 이럴 리가 없는데? 마법서에서 분명 분홍색 빛이 빛날 거라고 했는데?
빠르게 페이지를 넘기는 자신·
그녀는 사람의 마음을 세뇌하는 법이 담긴 마법서의 페이지를 찾아 빠르게 읽었다·
-틀린 게 한 건 없어· 없었다고· 분명 완벽하게 했는데···· 미하일의 피하고 내 피· 둘 다 준비했단 말이야!
점점 빨라지는 목소리·
자신만만하던 표정은 당혹에 물 들은 지 오래였다·
-마법진도 완벽하게 잘 그렸다고···!
-연무장에서 미하일이 흘린 피도 가지고 왔고! 뭐가 잘못된 건데!
-촤악···촤악·
빠르게 넘어가는 책장·
-촤악···
-촤악···!
환상 속 올리비아는 맨 뒷장을 펴고 난 뒤 목소리가 점차 작아져 갔다·
-어라?
뒤에 서서 마법서를 같이 읽던 올리비아도 그 문구를 읽자· 숨을 멈췄다·
-아니지?
(호감의 방향이 조금이라도 일치해야만 마법이 발동한다·)
-설마 미하일이 나한테 그럴 리 없잖아· 나 올리비아야 사교계의 꽃·
뱉는 말과 다르게 고개는 점차 숙여졌다·
작아지는 올리비아의 목소리·
끝내 과거의 자신은 흑마법서에 얼굴을 묻었다· 이럴 리가 없다면서 손에 핏기가 사라질 정도로 주먹을 꽉 쥐고·
-끄흡··· 아니야 아니라고!
처절하게 울고 있었다·
-이럴 리가 없잖아· 이럴 리가 없다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올리비아는 당황스러웠다·
그냥· 이 모든 게 이상했다·
자신의 마법은 실패했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마법의 발동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단 것까지·
그냥· 이 모든 게 믿기지 않았다·
‘내가 저랬다고?’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
머릿속에 온통 ‘아니야·’라는 부정이 가득했다·
점차 검은 마력이 과거의 자신을 덮기 시작했다· 하얀 피부가 검게 변하고 코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흑마법 실패의 전조였다·
-꺄아아아아아악!
귓가를 찌르는 절규·
그날의 끔찍한 고통을 기억하는 올리비아의 팔에 닭살이 돋았다·
‘그만둬·’
올리바아는 서둘러 몸을 움직였다·
과거의 자신을 마법진에서 잡아떼려고· 다급히 손을 뻗었다·
하지만 올리비아의 손은 닿을 수 없었다·
[관찰자의 시점입니다· 대상에게 간섭하실 수 없습니다·]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무의미하게 손이 몸을 통과하고 말았다·
“일어나 병신아· 일어나라고! 거기서 나와! 뒤지고 싶어서 환장했어?!”
올리비아의 바람과 다르게·
과거의 자신은 그 자리에 멈춰있었다·
-아니야· 내 마법이 틀릴 리 없어· 분명 성공했을 거라니까?
-내 마법은 완벽해·
-완벽하다니까? 아카데미 수석인 내가 실수할 리가 없잖아·
과거의 자신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발동 시간이 부족해서 그런 걸 거야· 조금만 더 버티면 발동할 거니까·
올리비아는 무서웠다·
불나방 같은 자신이 너무나 무서웠다·
“제발 좀· 나오라고·”
흑마법에 살점이 썩어들어감에도 미련하게 버티는 자신이 너무 끔찍하고 무서웠다·
올리비아는 귀를 막고 눈을 감았다·
*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쉰 목소리가 손가락으로 틀어막은 귀를 열었다·
-꺄아아아아악!!! 아파·· 아파요·· 아프다고···!
힘없이 망가지는 자신·
너무 아파 보였다·
너무 아파 보여서 보고 있는 자신이 아플 지경이었다·
올리비아는 매이는 가슴을 치며 말했다·
“누가 좀 도와줘·”
들릴 리 없다·
과거의 자신은 이 흑마법에 온전히 집중하고 싶어서 방 밖에서 사일런스 마법을 걸었으니까·
과거 자신은 쉬어버린 목으로 외쳤다·
-꺄아아아아악·· 아파·· 아파··! 엄마·· 엄마!
“누가 좀 살려주라고 너무 아파하잖아···”
과거의 자신은 머리채를 쥐어뜯으며 울고 있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보고 있는 자신이 다 아플 지경이었다·
“아니지· 이건 아니잖아·”
썩어들어가고 있는 살점·
뿌옇게 타들어 가는 피부·
자신은 더 이상 저 참상을 지켜볼 자신이 없었다·
무슨 생각으로 흑마법이 성공할 거라고 믿었던 걸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지 그녀는 알 수가 없었다·
지금은 단지 누군가가 자신을 도와줬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했다·
올리비아는 소리쳤다·
“누구 없어? 너무 아파하잖아! 아파서 죽을 것 같다고 하잖아! 아무나 와서 쟤 좀 도와주라고·”
과거의 자신 또한 마찬가지였다·
-살려줘! 살려주세요!
바닥을 긁으며 소리치는 모습·
불쌍하기 그지없었다·
살이 태우는 연기가 방안을 가득 메워갔다·
올리비아는 소매로 코를 막았다·
“콜록· 콜록····”
-살려주세요···!
꺼져가는 신음소리·
과거의 자신은 끝까지 이렇게 말했다·
-미하일·· 도와줘···
-미하일 나 좀 살려줘· 내가 다 잘못했으니까 나 좀 제발 살려줘·
올리비아는 반사적으로 과거의 자신을 욕했다·
“정신 차리라고 미친년아──!”
그럼에도 계속해서 찾는 자신·
-미하일 도와줘·
그렇게 마지막 숨을 뱉으려고 할 때쯤·
과거의 올리비아는 익숙한 이름을 말했다·
-리카르도· 살려줘·
[시점이 이동됩니다·]
다시 익숙한 천장이었다·
시간이 조금 지났는지 깔끔하게 정리된 방과· 벽에 가득 붙여놨던 미하일 사진은 사라졌었다·
반쯤 정신이 나가 있는 올리비아는 힘들게 고개를 들었다·
침대 위에 액자 하나가 있었다·
올리비아는 허탈하게 웃었다·
“리카르도 말이 진짜였네·”
밝게 웃고 있는 익숙한 얼굴
자신이었다·
죽었나 보다·
그 미친년이·
리카르도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행복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죽어버렸다·
‘···’
침대에는 한 명의 남자가 앉아서 액자에 묻은 먼지를 닦아주고 있었다·
초라하게 놓인 국화꽃 한 송이를 놓고서·
올리비아는 저 뒷모습이 익숙했다·
매일 천하다고 놀렸던 붉은 색 머리카락과 자신보다 하얀 피부를 가진 남자·
그녀의 집사였다·
리카르도는 팔이 드러나는 하얀 셔츠를 입고 있었다· 고개를 숙여 최대한 자신의 표정을 안 보여주려고 했다·
그는 작게 말했다·
“하지 말라는 짓을 왜 합니까·”
목소리에 물기가 있었다·
“제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십니까?”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울음을 꾹 참는 어린아이처럼·
톡 건들면 울어버릴 것 같았다·
올리비아는 입을 꾹 닫고 리카르도의 뒤에 서 있었다·
리카르도는 밤이 샐 때까지·
침상을 지키고 있었다·
[열람이 중지됩니다·]
***
이마가 차가웠다·
“뭐하십니까· 아가씨·”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물수건을 대고 있는 붉은 머리카락의 집사·
과거의 자신이 꿈에서 그토록 찾았던 남자는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악몽을 꾸셨습니까?”
“···”
“사람 무안하게 아무 말도 안 하십니까?”
“꿈?”
“네· 하루 종일 주무시던데요?”
손등으로 이마에 손을 대며 열을 재주고 있었다·
올리비아는 다리에 힘을 줬다·
미동도 없는 다리·
현실로 돌아왔다·
안도감이 들었다·
정신병이었던 현실이었든 최악의 꿈을 꿨으니까·
다시는 꾸고 싶지 않은 악몽이었다·
올리비아는 리카르도를 훑어봤다·
언제나 그렇듯 긴 팔과 긴바지를 입은 리카르도· 그는 언제나 그렇듯 자신을 향해 자상한 웃음을 지어주고 있었다·
“배고프십니까?”
“닥쳐·”
그녀의 집사·
리카르도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reader님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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