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2
리카르도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다·
“눈 감았어요?”
확인을 구하는 말에 유리아의 심장은 크게 뛰었다·
나긋한 목소리·
귓가를 타고 들려오는 조용한 미성에 유리아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유리아 씨? 눈 감으셨나요·”
재차 확인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호기심 많은 자신을 아는지 리카르도는 몇 번이나 확인했고 자신은 답하지 않았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으니까·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죽었을 거란 사실에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두근· 두근·
그리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고·
죽을 뻔한 위협을 겪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리카르도를 다시 봐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다는 거다·
리카르도는 다시 말했다·
차분한 목소리로·
어려풋이 목소리에 걱정이 담겨있다는 걸 느낀 유라아는 마음이 흔들렸다·
“감으셔야 해요· 보기 좀 흉한 거라서·”
***
상황이 좋지 않다·
뒤에 지킬 사람이 있고·
깝치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불나방이 옆에 있으니까· 전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다·
묵직하게 내려치는 대검을 받아내는 나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루인을 바라봤다·
-중얼중얼·
“루인·”
“왜·”
나는 루인을 불렀다·
옆에서 중얼거리며 대규모 마법을 준비하는 루인· 고난이도 술식을 읊고 있었지만 덜덜 떨고 있는 손으로 술식을 전개하는 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뒤지기 싫으면 어설픈 술식 그만둬요·”
쓸모없다는 말에 루인은 발끈했다·
“뭐?”
크기를 헤아릴 수 없는 상대를 앞에 두고 쓸모를 따지는 게 화가 나겠지· 나도 안다·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거·
하지만 지금 루인은 약할 뿐만 아니라 겁을 먹은 상태니까· 사소한 욕심은 잠시 내려놔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죽을 테니까·
눈앞의 남자가 뿜어내는 살기는 압도적이다·
패도적인 위압감과
대검에 묻어있는 피·
그리고 검은 오러까지·
보는 것 만으로 피부가 따끔거렸으니까·
게다가 남자는 세간에서 미친놈이라 불리는 이교도였고·
믿지 않으면 죽인다는 사고방식으로 수많은 인명피해를 몰고 다니는 광신도 집단·
검은 사제복·
검은 성경·
소문으로만 듣던 이교도를 처음 보는 루인은 감정 조절을 못 해 본래 힘을 내기 어려울테고·
심각한 표정으로 마법을 구사하던 루인은 아무렇지 않게 남자의 검을 걷어내는 나를 봤다·
“크흐흐··· 이걸 받아내는 건가? 젊은 검사?”
“제가 좀 다재다능해서·”
“푸하하···!”
내가 할 수 있으니까 본인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루인·
도전적인 눈빛을 보내는 루인에게 상냥히 말했다·
“루인 제 말 들어요· 유리아 씨가 떨어진 팔은 못 붙여주잖아요·”
루인은 나를 이해할 수 없을 거다·
루인은 나처럼 강하지 않으니까·
“닥치고 있어 리카르도·”
그래서 루인은 내 행동이 객기로 보이는 거고 아카데미에서 퇴학당한 네가 뭔데 이래라저래라하는 거냐고· 생각하고 있겠지·
기껏 해봤자 아카데미 동기일 뿐인데 말이야·
루인은 나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비공식 자리에서 미하일을 초살 냈다는 것도 오러라는 게 얼마나 위험한 건지도· 마법사인 그의 머리로는 상상할 수 없을 테니까·
기껏 해봤자 한나 혹은 미하일과 동급으로 착각하는 루인은 내게 말했다·
“깝죽거리지 마· 내가 너랑 얼마나 차이가 난다고·”
나는 그런 루인에게 말했다·
“아· 그럼 알아서 하세요·”
루인은 마법을 완성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강한 마법·
‘익스플로전’
성공적으로 마법이 완성된 것을 알리는 뜨거운 바람이 머리카락을 쓸자 미소를 지었다·
“잘 봐라· 옛날의 내가 아니라···”
루인의 손에 붉은 불길이 올라오는 순간· 쾅· 굉음과 함께 피에 젖은 대검이 루인의 팔을 베어내기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루인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대검이 팔에 닿는 순간까지·
“봐요· 죽는다니까요·”
나는 있는 힘껏 루인의 복부를 찼다·
콰직· 소리와 함께 나무에 박힌 루인은 고개를 축 내렸다·
강한 충격에 정신을 잃은 모양이다·
하여간 도움이 안 되는 놈이다·
“유리아 씨 눈 잘 감고 계세요·”
“지금부터 보기 안 좋은 거니까·”
서걱· 소리와 함께 유리아의 눈앞에는 붉은 선혈이 피어올랐다·
***
휴가를 쓰니까·
별의별 일이 다 생긴다·
온 세상이 나를 억까하는 건가·
기연을 털어먹는 빙의자가 괘씸한 모양인지 좀처럼 사건이 끊이지가 않자 머리가 지끈거렸다·
주인공 몰래 던전을 털려고 했는데 가는 길에 주인공을 만나지 않나·
던전을 다 털고 내려왔는데 이교도에게 죽을 뻔한 여주인공을 만나지 않나·
아무리 사건을 몰고 다니는 주인공이라해도 조금은 쉬면서 몰고 다닐 것이지·
항상 사건이 끊이지 않는 유리아가 여러모로 귀찮았다· 그래도 어쩌겠냐 봤는데 그냥 지나칠 수 없잖아·
게다가· 눈앞에 이 남자가 이번에 만난 가장 큰 기연일지도 모르니까·
나는 눈앞에 남자를 봤다·
피로 칠갑한 남자·
[발락 Lv· 71]
[직업 : 절망의 대주교]
[호감도 : -50]
[좋아하는 대화 주제 : 딸/건강/강자와의 대결/대검술/검은 무조건 큰 거]
[싫어하는 대화 주제 : 딸의 질병/귀족/이쑤시개 같은 검/살인]
발락은 소설에 등장하는 악역 중 하나다·
악역이라고 하기에는 사연이 있고 그렇다고 악역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나쁜 짓을 많이 하고 다닌 인물·
우리같은 존재다·
발락은 딸의 질병을 위해 이교도에 소속되어 있으니까·
과거 S급 모험가였던 발락에겐 딸이 한 명 있다·
죽은 아내가 남긴 유일한 딸이·
의사도 포기하라고 하고 교황청에서도 포기하라고 권하는 아픈 딸이 발락의 유일한 보물이었다·
발락은 의사에게 수십 번의 사기를 당했고 기도하면 낫는다는 여신교의 말에 무릎을 꿇고 빌어봤지만 아무런 진척도 없었다·
모험가로 모은 돈이 바닥이 날 무렵·
어느 날 거리에서 믿기만 하면 불치병이 낫는다는 종교의 연설을 듣게 되면서 발락의 타락은 시작됐다·
처음에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검을 휘두르기를 꺼렸지만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호전되는 딸의 병세에 발락의 양심의 무게는 점차 가벼워졌다·
딸은 그런 발락을 말렸지만·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을 포기한 발락은 묵묵히 검을 들었지·
소설 후반에 딸이 죽으면서 이교도가 거짓말 했다는 걸 알게 되지만 이미 주인공 무리에게 패배한 뒤였다·
소설 속 비운의 악역·
그가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발락이다·
다행히 아직은 소설 초반이라 큰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다·
지금도 유리아에게 겁만 주고 쫓아내려 했겠지·
지금 시점에서 발락은 양심과 딸· 이 두 갈래 길에서 방황하고 있을 시기니까·
언젠가 만나고 싶었는데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되니까· 조금은 반가웠다·
나는 발락을 내려봤다·
바닥에 대검을 꽂고 후들거리는 팔로 나를 노려보는데 매서운 눈빛이 관통하자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발락은 나를 보고 말했다·
“그대는 괴물인가?”
“에이· 설마요·”
“하하··· 그게 아니면 말이 안 되는데·”
발락은 진심을 담아 내게 말했다· 자신도 손에 꼽히는 괴물인데 나만큼은 따라올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제 몸을 보세요· 저도 걸레짝이잖아요·”
“비교할 걸 비교해라·”
나 역시 발락과 마찬가지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떨리는 오른팔은 발락의 대검에 크게 베여있었고 팔에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발락도 마찬가지·
온몸에 자잘한 상흔과 함께 피로 칠갑이 되어있었고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거친 숨을 쉬고 있었다·
수 백번의 공방을 치른 끝에 승리를 차지한 나는 겸손을 담아 말했다·
“제가 괴물이긴 합니다·”
“흐흐··· 미쳤군· 미쳤어· 그 나이에 오러를 쓰고·”
발락은 무겁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들거리는 대검을 들고 천천히 내게로 걸어오는데 나는 고개를 젓고 그에게 말했다·
“그만하죠·”
“왜지·”
“뒤에 더 있잖아요·”
나는 발락의 뒤를 봤다·
우거진 수풀 사이로 보이는 수많은 인영들· 아마 던전을 탐사하기 위해 이곳에 찾아온 이교도겠지·
정예로 선발된 인원들일 거다·
소설에서 이교도는 제일 먼저 던전을 털고 떠났다· 그 후에 남은 잔당과 싸우면서 루인이 각성했고·
발락은 저 뒤에 있는 인영들과 던전을 털기 위해 이곳에 온 거겠지·
나는 발락을 봤다·
호승심 넘치는 눈으로 나를 보는 발락·
여기서 발락을 죽인다면 확실히 소설 후반이 편해지긴 하겠지만 유리아와 루인의 안전을 책임지면서 상대할 수 없다고 확신했다·
여기서 전투는 접고 서로 갈 길을 가자는 마음으로 나는 말했다·
“저희도 그냥 갈 테니까 그쪽도 그만 가던 길 가세요·”
“왜지· 지금 싸우면 충분히 내 목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그의 말에 손사래를 쳤다·
어딜 그런 거짓말을·
미하일의 팔 한쪽이라도 어떻게든 가져가려고 했던 양반이랑 싸우면 나 역시 몸 성히 돌아가지 못 할 것 같은데·
그리고 발락은 피를 흘리면 흘릴 수록 더 폭발적인 힘을 내는 괴물·
지금의 약한 모습 또한 연기일 수도 있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긴 하지· 재미있는 싸움이었는데 아쉽게 됐어·”
멋쩍게 웃는 발락·
그냥 떠나기 아쉬우니까· 나는 품에서 종이와 펜을 꺼냈다· 쓱· 빠르게 종이에 무언갈 적고 발락에게 내밀었다·
“받으세요·”
“이게 뭐지·”
“제 싸인이요·”
작게 웃은 발락은 내가 쓴 종이를 품에 넣었다·
“사람 없는 곳에서 확인하세요· 구하기 어려운 거니까·”
작게 웃는 발락을 뒤로하고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진 유리아를 등에 업었다·
“가겠습니다· 저 잊지마세요·”
우린 그렇게 헤어졌다·
***
내려가는 길·
유리아는 말이 없었다·
아무 말 없이 내 등에 업혀 산에서 내려가는데 어색해서 죽을 것 같았다·
유리아는 내게 물었다·
“이번 일도 당신이 꾸민 거예요?”
“설마요·”
말없이 내려가는 우리·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침묵을 지키는 유리아는 내게 말했다·
“그런데요· 리카르도 씨는 매번 그러세요?”
“뭐가요?”
“매번 위험할 때 나타나서 구해주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돌아가고· 왜 그러는 거냐고요·”
“음···· 그러게요·”
소설에서 위험한 부분만 나와 있어서 그렇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유리아가 이겨낼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옆에서 지켜봤다고 하면 스토커 취급을 받을 것 같아서 말하기 껄끄러웠다·
아 스토커가 맞나·
생각해보니까 맞는 것 같은데·
여러모로 미안해졌다·
유리아는 다시 내게 말했다·
“있잖아요· 리카르도·”
“네·”
“그럴 때마다 착각하는 거 알아요?”
“뭐가요?”
유리아는 고개를 푹 숙였다·
“진짜 고자인가·”
작게 중얼거리는 유리아였다·
***
저택이 보였다·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자태를 자랑하는 저택·
등에서 졸던 유리아는 내게 말했다·
“어··· 여기는 왜?”
“밥 먹고 가셔야죠·”
“네?”
나는 바닥에 질질 끌고 온 루인을 힐끗 보며 말했다·
‘이놈이 기절을 안 했으면 그냥 버리고 왔을 텐데·’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루인·
여관에 버려두기에는 하멜에 있는 여관의 치안이 그리 좋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유리아를 저택으로 데리고 온 나였다·
저택 앞에 선 나는 창문을 봤다·
-빼꼼·
2층에 보이는 사람의 인영·
빼곰 거리는데 해가 져서 우리가 잘 안 보이는 모양인지 아가씨는 연신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나는 루인을 바닥에 버려놓고 손을 흔들었다·
“아가씨!”
이제야 내가 온 것을 깨달을 아가씨·
“오오오오옷!! 리카르도!”
그리고·
등 뒤에서 내려온 유리아를 보자·
“흐엣···?”
이불을 뒤집어쓴 올리비아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reader님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세레세크님 5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허어어억···· 허어어억!!!??? 500코인이라닛·
이런 어마무시한 후원을····
요정은 감당할 수 없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달달하고 티키타카를 재밌게 봐주시다니 너무 감사합니다!
앞으로 완결까지 쭉 달려가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힘을 내서 더욱 열심히 써 보도록 하겠습니닷!
다시 한번 5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후후다스님 25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아니··· 이러시면 요정 발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250코인 후원이라닛!!! 정말이지 압도적인 감사!
원래라면 연참의 요정을 불러와야겠지만·
아쉽게도 연참의 요정은 집을 나가버려서 언제 올지 모르겠습니다·
재미있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25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열심히 완결까지 달려가보겠습니다!
많은 사랑을 주셔서 감사합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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