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8
늦은 새벽·
리카르도의 등에 업혀 방에 돌아온 올리비아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베개를 높게 베봐도·
창문 쪽으로 몸을 돌려봐도·
베개에 이마를 박고 엎드려도·
잠은 안 오고 눈은 멀뚱멀뚱하게 떠 있었다·
올리비아는 베개에 턱을 대고 백수처럼 중얼거렸다·
“피곤해···· 근데 안 졸려·”
아까 리카르도의 방에서 봤던 흉터가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렸다· 흉측하게 일그러진 피부와 검게 변한 팔· 잊고 싶다고 해서 쉽게 잊힐 장면은 아니었다·
‘엄청 징그러웠지·’
자꾸만 머릿속에서 리카르도의 아련한 미소가 떠올라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자고로 수면이란 몸과 마음이 평안한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양질의 숙면을 할 수 있을 텐데·
계속 이런 꿀꿀한 기분이라면 잠은커녕 오늘 아침 해가 뜰 때까지 뜬눈으로 밤을 새우게 생겼다·
올리비아는 한숨을 쉬었다·
침대 옆 협탁에 올려둔 조명 하나만 덩그러니 켜놓고 울상을 짓는 올리비아는 작게 중얼거렸다·
“3일 동안은 기분이 좋았는데····”
지금은 꿀꿀하네·
*
3일 전·
올리비아는 달력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졌다·
[☆9월 21일☆]
*바보 집사 생일!
*생일 선물 생각해두기!
*서프라이즈 해주기!
매년 자기가 태어난 날을 까먹는 바보 집사의 생일 파티가 기대돼서· 사람들을 부르는 파티가 아닌 둘이서 즐기는 파티지만 다리를 다친 이후로 처음 챙겨주는 집사의 생일이라 설레는 올리비아였다·
리카르도는 1년에 한 번뿐인 생일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생일이요? 에이~ 그런 걸 귀찮게 왜 챙깁니까· 그냥 미역국 한 그릇 먹고 끝내면 되지·
-미역국?
-풀 때기로 만든 수프입니다·
-맛없을 것 같아·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생일이 끝나기 직전에 ‘아 맞다· 오늘 내 생일이었지?’ 그러고는 혼자 주방으로 들어가서 미역국을 먹고 끝냈으니까·
올해도 역시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정작 챙겨야 할 본인의 생일은 안 챙기고 내 생일에 영혼을 불태우는 집사 놈에게 생일이라는 날이 얼마나 기대되고 재미있는 날인지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올리비아는 서프라이즈를 준비했다·
책에서 읽었다·
[아버님 이러시면 안 돼요!]라는 철학책에서·
세상의 진리와 혜안이 담겨있는 리카르도의 애독서· 인생을 살면서 도움이 되는 내용이 가득하다고 리카르도가 그랬다·
같이 보자고 하니까 책의 절반을 검은색 펜으로 색칠하고 건네줬지만 안에 들어있는 내용은 진짜 중의 진짜였다·
불륜과 치정 싸움·
뺨 덜 아프게 때리는 법·
그리고 꼬리치는 여우를 떨어뜨리는 법까지·
인생에 도움이 되는 내용이 가득한 리카르도의 애독서·
그중 134페이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드는 법에 대해서 자세하게 나와 있었으니·
-아버님은 내 옷장에 숨어계셨다·
뒷 내용은 리카르도가 검정 펜으로 칠하는 바람에 알 수 없었지만 책을 많이 읽는 지식인으로서 다음 내용은 대충 짐작할 알 수 있었다·
며느리는 시아버지의 깜짝 서프라이즈를 엄청 좋아했을 거라고· 시아버지가 등장할 때마다 며느리의 얼굴은 붉어졌으니까·
여기서 영감을 받아서 리카르도의 깜짝 파티를 준비해봤다·
3일 동안 엄청 고생했다·
티를 내고 싶어서·
9월 21일이 무슨 날인 줄 아냐고 묻고 싶었고 리카르도가 준비한 선물을 마음에 들어 할지 떠보고 싶은 것도 겨우 참았다·
대뜸 이거 좋아해? 라고 물어보면 눈치챌 게 뻔하니까·
하녀에게 심부름시킨 선물을 받았을 때 입가에서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다리를 치료할 수 없다던 유리아의 말은 잊어버리고 진심을 다해 리카르도의 생일을 준비했다·
생일은 빠르게 찾아왔다·
리카르도가 검을 연습하러 간 사이 하녀가 끌어주는 트레이에 몸을 실었다·
깃털 같은 몸무게를 못 견디지 못한 트레이가 찌그러지긴 했지만 싸구려라서 그런 거니까· 집사도 용서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집사의 방은 생각 이상으로 초라했다·
유행이 지난 드레스를 보관하던 창고를 개조해서 방으로 쓰는 리카르도· 보온이 되지도 않았고 방음이 전혀 되지 않은 열악한 환경이었다·
인테리어 용품도 없고·
사치품도 없는 단순한 방·
그저 내 목소리를 듣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방에 울적함을 느꼈다·
책상에 펼쳐진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손때가 가득히 묻는 의학서적·
그 옆에 빼곡하게 글씨가 적힌 노트가 있었는데·
[신경학에 관하여·
*한번 끊어진 신경은 재생되기가 어렵다· 특히나 중추신경계는··· ]
이것도 아니네·
다른 서적을 찾아봐야겠다·
[재활에 관하여·
*재활은 기적이다· 꾸준히 하면 언젠가는 기적을 바랄 수 있는···]
일주일마다 해볼까·
아가씨가 힘들지 않을 정도로만·
읽기 힘든 글씨로 빼곡하게 정리된 두꺼운 노트가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올리비아는 포장한 선물을 꼬깃하게 끌어안았다·
공부와 담을 쌓은 집사가· 아카데미에서 책만 펴면 책상에 이마를 박던 리카르도가 이렇게 좁은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좀처럼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더 좋은 선물을 준비해줄 걸 그랬나·
시장에서 파는 목도리 장갑 말고 귀족 영식들이 자주 가는 양장점에서 넥타이를 준비할 걸 그랬나···· 물론 그 조그만 넥타이 하나를 사려면 저금통에 모아둔 금화로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자꾸만 아쉬움이 남아서 손에 든 선물을 꼬깃하게 꾸기는 올리비아였다·
시간은 지나 하녀가 퇴근하고 리카르도가 방으로 돌아올 시간·
올리비아는 옷장 속에서 숨을 참았다·
끼익· 열리는 문소리와 함께 땀에 젖은 리카르도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하···· 힘드네·’
내뱉는 한숨과 함께 허리에 찬 검을 의자 옆에 세워놓고 거침없이 단추를 푸는 리카르도·
자신이 이 방에 있는 줄도 모르고 맨살을 드러내는 리카르도의 모습에 올리비아는 주먹을 꽉 쥐었다·
-···남사스러워·
뭉클했던 감정은 잠시 잊어버리고 깜짝 파티에 집중하는 올리비아는 손으로 입을 막았다·
-내가 있는 줄 모르고 있어·
바보 같은 리카르도·
옷장에서 짜잔! 등장하면 깜짝 놀라겠지·
‘빨리 놀리고 싶다· 빨리· 빨리 놀리고 싶어·’
리카르도는 천천히 옷을 벗었다· 땀에 젖은 셔츠의 앞섬을 풀어헤치며 살벌하게 갈라진 복근을 보여주는 리카르도· 꿀꺽· 저절로 침이 삼켜졌다·
올리비아의 얼굴은 뜨거웠다· 어디를 봐야 할지 모르겠고 손으로 눈을 가렸지만 손가락은 활짝 펴져 있었다·
‘으···!’
바지까지 벗으면 곤란한데·
코피가 터질 것 같단 말이야·
터질 것처럼 얼굴이 붉어진 올리비아는 긴장했다·
‘바지를 벗을 것 같으면 바로 나가는 거야·’
손가락을 펼치고 집사의 몸을 훔쳐보는 올리비아였다·
리카르도는 셔츠 소매의 단추를 풀었다· 그리고 땀에 젖은 셔츠를 벗기 시작했다·
꿀꺽· 침을 삼켰다·
이건 훔쳐보는 게 아니라 깜짝 파티니까 리카르도도 이해해 줄 거라는 마음으로 눈에 힘을 주고 집중하는 올리비아는·
천천히 드러나는 리카르도의 하얀 붕대를 보고 말을 잃었다·
‘어라?’
붕대가 있었다·
옷 안에 몸을 칭칭 감은 붕대가·
여기가 전쟁터도 아니고·
몸 절반을 하얀색 붕대로 감은 리카르도가 눈앞에 서 있었다·
‘뭐지?’
순간 불안이 엄습해왔다·
뭔가 잘못됐다고 느꼈으니까·
몸의 절반을 감은 붕대가 이상했고·
분명 나한테 말한 부분은 팔이었는데 왜 저렇게 붕대를 넓게 감고 있는지 이상했으니까·
‘문신이야? 아닌데 리카르도가 문신은 팔에만 했었다고 했는데·’
‘별거 아니겠지· 그냥 문신을 가리려고 붕대를 감은 거야·’
애써 부정했다·
붕대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사실은 알고 있는데도 스스로는 진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저번에 푸른 창을 본 뒤로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분명 머릿속으로 준비가 다 됐다고 생각했는데·
리카르도가 휴가를 가는 동안 물어보고 이야기할 계획을 세워봤는데·
‘다친 거 아니라고 리카르도가 분명 말했단 말이야·’
마음은 아직 준비가 안 된 것 같았다·
손을 달달 떨면서 리카르도를 봤다· 몸에 감은 붕대를 풀어내는 리카르도를·
거울을 보며 붕대를 풀어내는 리카르도의 숨겨진 상처가 눈앞에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자·
뚝· 볼을 타고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아···아니야!”
[리카르도가 숨기는 비밀을 보기· 1/1]
‘아니라고···! 리카르도가 분명· 분명· 그랬단 말이야!’
의미 없는 투정을 부렸다·
이럴 수가 없다고 이럴 수는 없다고 저 썩어들어가는 오른팔은 자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이라고 부정하고 또 부정했다·
하지만 눈앞의 선명하게 보이는 푸른 창이··· 빌어먹을 푸른 창이 도망치는 자신을 잡아냈다·
‘말도 안 되잖아·’
유리아가 말했던 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어라? 흑마법이 폭주해서 다친 상처라고 하지 않았어요?
-맞아·
-근데 왜 이렇게 깨끗하지···? 이건 말이 안 되는데?
-말이 안 된다고?
-대부분 흑마법에 실패하면요· 그 자리에서 마나 회로가 타서 즉사하거나 살이 천천히 괴사하면서 몸을 갉아 먹거든요 근데 올리비아는 외적으로도 내적으로 괴사된 부위 없이 깨끗해요·
신기하다는 눈으로 자신을 보던 유리아가 했던 말이 순간적으로 기억났다·
-기적이에요· 기적·
-다리가 썩었어야 정상이에요·
-신성력이 안 통하는 걸 보니까 흑마법 때문에 다친 건 맞는데···
가슴부터 시작해서 화상 자국처럼 일그러진 흉터 자국· 그리고 검게 변한 오른팔·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3초의 시간 동안 수십 가지의 생각이 들었고 입술은 고장 난 것처럼 달달 떨렸다·
리카르도가 나무껍질이라고 말한 것이 저거였구나·
나무껍질을 닮았다고 하는 게·
저 팔을 말하는 거구나·
검게 갈라진 저 상처가 껍질이라고 한 거지?
올리바아는 몸을 떨었다·
차라리 몰랐다면 좋았을 텐데·
차라리 그냥 아무것도 모르고 뻔뻔하게 있었을 때가 좋았는데·
정말 나쁜 생각이지만 올리비아는 리카르도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제발 이 옷장의 문이 안 열렸으면 했다·
도망이라도 가고 싶었으니까·
움직이지 않는 다리가 이렇게 원망스러운 적이 없었었다·
집사의 손은 점점 다가왔다·
올리비아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열지 마·’
‘제발 열지 마·’
‘제발···· 나 아직 마음의 준비가····’
하지만 시간은 여린 마음을 기다려주지 않았고 당황한 표정의 집사와 눈이 맞아버렸다·
“아·· 아가씨?”
죄는 내가 지었는데 죄지은 것처럼 나를 바라보는 리카르도·
당황한 리카르도의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온 말이 내 심장을 무너져 내리게 했다·
“아···· 그게 넘어져서 그런 겁니다·”
그때 생각했다·
‘진짜 쓰레기구나· 나·’
***
아무도 없는 방안에서 올리비아는 공허한 눈으로 눈앞의 푸른 창을 봤다·
[Q· 그가 숨기는 비밀이 완료되었습니다]
13년간 모신 주인이 쓰러진 날·
리카르도는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아무도 그 날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단· 한 명
그녀의 집사 만은 그 날의 진실을 알고 있습니다·
리카르도는 그 날 일은 평생 숨기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넘어가려고 했던 그 날의 비밀·
(!) 그날의 비밀을 파헤치세요·
1· 리카르도가 숨기는 비밀을 보기· (1/1)
2· 리카르도가 숨기는 비밀을 만지기· (1/1)
〈29번째 외전〉
[‘그 남자의 비밀’을 열람할 수 있습니다·]
[열람하시겠습니까?]
올리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열람할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reader님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퇴고가 덜 됐습니닷···!
죄송합니다 빠르게 해보겠습니다!
후원 감사 인사는 다음 회차에 쓰도록 하겠습니다!
추신)
사실 오늘 연참을 준비해보려고 아침 일찍부터 준비를 해봤는데 크흠··· 죄송합니닷!
마음대로 안 풀리네요!
그래도 건강을 다시 되찼았으니! 달려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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