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0
피부를 덮었던 검은 반점이 리카르도의 손을 타고 옮겨가기 시작했다·
팔과 등·
다리와 어깨·
가슴과 복부까지·
느린 속도로 검은 반점이 리카르도의 몸에 번져갈수록 자신의 몸에 남아있는 검은 반점은 옅어져 갔다·
‘···이거야?’
그 모습을 보는 나는 홀린 듯이 중얼거렸다·
‘이게 네가 숨기는 비밀이야···?’
호흡이 가빠졌다·
설마 했던 일이 눈앞에 일어나고 있으니까· 안 좋은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손이 떨렸다·
어떤 악몽을 꾸더라도 지금보다 무섭지 않을 것 같았다· 저번에 내가 죽었던 그 악몽을 보더라도· 이것보다 무섭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리카르도···· 너 뭐해?’
리카르도는 품에 나를 꼭 끌어안고 폭주하는 마력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어깨를 달달 떨면서 이를 악물고 오염된 마력을 흡수했다·
흑마법은 매개체 하나만 있다면 강력한 효과를 내는 편리한 마법이다·
이능적인 힘이나·
마법으로 할 수 없는 것·
그리고 강력한 공격 수단까지·
수식과 연산 그리고 마력을 필요로 하는 마법과 다르게 흑마법은 그저 매개체만 있으면 강력한 효과를 냈다·
그것이 흑마법의 존재 목적이니까·
강력한 마력 혹은 제물만 있다면 압도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흑마법·
저 때의 나는 마력을 담보로 흑마법을 발동시켰다·
비틀어진 성격만 아니었다면 데스문트 가문의 차기 가주로 선발될 정도의 방대한 마력을 고작 한 명의 마음을 얻기 위해 흑마법의 매개체로 사용했다·
그런 방대한 마력이 흑마법에 의해 오염되고 폭주한다면 몸 안에 폭탄이 터지는 듯한 고통이 만들어지겠지·
펑· 하고 몸 안을 뜨겁게 달굴 거고·
팡· 하고 몸 안쪽부터 끔찍한 작열통과 함께 화상이 시작될 거다· 그리고 괴사가 된 피부는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되고·
끝내· 죽게 되겠지·
바보가 아니라면 리카르도가 하는 짓을 모를 수가 없다· 아니 모르면 안 됐다·
고인 피를 빼주는 동방의 부항이라는 문물처럼 리카르도는 흑마법의 후유증을 모조리 흡수하고 있으니까·
믿기지 않는 상황에 나는 리카르도를 보며 말했다·
‘뭐 하는 거야···?’
그만두라는 마음으로 리카르도의 어깨를 잡아봤지만 푸른 창이 손을 막아 세웠다·
[관찰자의 시점입니다· 대상에게 간섭할 수 없습니다·]
닿을 수가 없다·
‘막지마····’
눈치 없는 푸른 창에 투정을 부렸지만 언제나 그랬듯 간섭할 수 없다는 말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
‘막지 말라고····’
나는 저 바보가 하는 짓을 막을 수가 없다·
그저 옆에서 보고만 있어야 했다·
리카르도가 눈물을 흘리며 고통을 참아내도 내 심장은 미칠 듯이 뛰어도· 그저 나는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찢어진 마음이 덧나는 것 같다· 리카르도의 상처를 보고 헐어버린 마음에 커다란 상처가 난 것 같았다·
나는 리카르도에게 소리쳤다·
‘뭐 하는 짓이냐니까?’
리카르도에게 내 목소리가 닿을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으니까·
목소리가 떨리고
다리에 힘이 풀리고·
숨이 떨려왔다·
검게 변하는 리카르도의 팔과 창백하게 변하는 리카르도의 안색이 두렵게 다가왔다·
품에 안긴 과거의 나는 리카르도의 어깨의 얼굴을 묻었다·
-미하일·
-···
-미하일···· 몸이 너무 뜨거운데·
-죄송합니다· 그게···· 너무 급하게 뛰어오는 바람에···
‘내가 뭐라고 그러는 건데····’
해준 게 하나도 없는데·
매번 화만 낼 줄 아는 내가 뭐가 예쁘다고 저러는 건데· 나였다면···· 내가 너였다면 저러지 않았을 건데·
만약에 리카르도가 나처럼 흑마법을 사용하고 바닥에 쓰러져서 있다면···· 나는 너처럼 할 수 있을까· 아니겠지· 못하겠지·
하염없이 눈물만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제바알···!’
그만둬·
흑마법의 잔재라고 믿고 싶었다·
손에 묻은 초콜릿처럼 직접적인 원인이 내가 아니었으면 했다· 나의 잘못이 있더라도 조그마한 부스러기 같은 민폐를 끼쳤으면 하는 했다·
그것만으로 그쳤다면 조금은 고개를 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근데·
이거는 진짜·
-하아·· 하아··
도망칠 방법이 없잖아·
다리에 힘이 풀렸다·
숨을 헐떡이는 리카르도 앞에서 나는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오열을 했다·
볼 수 없다·
보기 싫었다·
리카르도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죽어가는 자신을 봐서 아니까· 잠깐이지만 그 고통을 겪어봤고 그 끔찍한 고통 때문에 몸이 이렇게 됐으니까·
볼 수가 없었다
살이 타들어 가는 고통·
끔찍한 작열통과 함께 마력 회로가 망가지고 온몸이 갈기갈기 찢길 듯한 통증이 지금 리카르도에게 쉼 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나는 너무나 잘 알았다·
‘하지 말라고 바보야···!’
쪼그려 앉아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흐어어엉···· 흐아아아앙···’
리카르도는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내고 있다· 어깨에 얼굴을 파묻은 과거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걸 쉬지 않고 있다·
-많이 아프세요?
-응· 많이 아파· 근데 지금은 조금밖에 안 아파·
-다행입니다· 정말로·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쉼 없이 떨어지는 눈물과 흐르는 콧물을 소매로 닦아내고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었다·
봐야 했다·
지금 두 눈으로 기억해야 돌아가서 사과할 수 있을 테니까· 심장이 터질 것 같고 흐르는 눈물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는 진실을 마주해야 했다·
그래야 용서를 빌 수 있고 어디가 아픈지 알 수 있을 테니까·
리카르도는 보여주지 않을 거다·
내가 울며불며 사정해도 바보처럼 웃으면서 상처를 숨기고 있을 테니까·
나는 이를 악물고 쪼그려 앉은 다리를 움직였다·
가까이서 봐야 해·
그래야 알 수 있어·
다시 한번 리카르도의 앞에 도착했을 때· 호흡을 깊게 마셨다· 하나도 놓치지 않고 눈에 담아두자고·
돌아가서 리카르도에게 잘못했다고 빌고 앞으로 잘하자는 마음을 먹고 훌쩍이는 콧물을 킁 하고 들어 마셨다·
‘할 수 있어·’
처참하게 망가진 자신을 봤고·
리카르도의 아픈 모습도 봤으니까· 더는 놀라지 않을 거라고· 굳게 다짐했다·
하지만· 곧이어 이어지는 모습에 나는 필름이 끊긴 것처럼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콜록··
‘어···?’
피가 흘렀다·
리카르도의 입에서·
작은 기침에 봇물 터지듯 터지는 선혈이 리카르도의 턱을 타고 흘렀다·
리카르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본인도 이렇게 될지 몰랐는지 어깨를 들썩이며 기침을 계속했다·
-쿨럭·· 쿨럭···
이성을 잡을 수 없었다·
-아··· 큰일났네·
리카르도는 손으로 입을 막았다· 고통스러운지 손을 떨면서 기침을 했다·
-쿨럭··· 쿨럭·· 아흑·· 아· 하아··하아··
-미하일 아파?
-아니·· 쿨럭·· 아닙니다· 아무것도·
품에 안겨있는 과거의 내가 고개를 돌리려고 하자 리카르도는 오른손으로 뒤통수를 눌러 얼굴을 어깨에 묻게 했다· 뒤를 돌아보지 못하게 한 손으로 뒤통수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입을 막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지금의 나는 뒤통수를 누르고 있는 리카르도의 팔을 필사적으로 잡았다·
손이 튕겨 나가더라도·
유령처럼 몸을 통과하더라도·
미친 여자처럼 리카르도의 팔을 떼어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놔아···!”
[관찰자의 시점입니다· 대상에게 간섭할 수 없습니다·]
“놓으라고!”
[관찰자의 시점입니다· 대상에게 간섭할 수 없습니다·]
“미친놈아 놔··· 놔·· 놔아··· 제발 좀···!”
[관찰자의 시점입니다· 대상에게 간섭할 수 없습니다·]
“놔아··· 제바아알···!”
시간이 지날수록 리카르도의 안색은 창백하게 변해갔다·
사시나무처럼 온몸을 떨고·
눈에 초점을 잃어갔다·
저 손만 뗀다면·
리카르도의 품에 안겨 미하일의 이름을 부르는 미친년에게 손을 뗀다면 저렇게 고통스러워하지 않아도 되는데·
뭐가 예쁘다고·
욕만 하고 고집 센 내가 뭐가 좋다고···· 저러고 있는 건지·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답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 말라고 바보야···!”
썩어가고 있다·
오른손이 생기를 잃어가며 검게 물들어가고 있다·
퍼지는 검은 반점은 온몸에 생채기를 남기며 살을 뜨겁게 달궜고 리카르도의 마력 회로는 꼬여버린 실타래처럼 엉망이 되어 있었다·
망가지는 리카르도의 모습·
그리 좋은 모습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너무 초라했고 멍청하게만 느껴졌다·
나는 리카르도를 끌어안고 울었다· 미친 듯이 울었고 또 울었다·
“하지마·· 하지마···!”
리카르도는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듣지 못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거 좀 많이 아프네요·
-많이 아팠겠습니다·
-정말로··· 제가 와서 다행입니다·
정말로 답이 나오지 않았다·
머리가 새하얗게 어떻게 된 것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바보같이 눈물만 흐르고 있다·
숨 쉬는 게 괴로운지 손을 달달 떠는 리카르도를 볼 때마다 과거에 자신이 했던 일들이 생각났다·
-너 냄새 나·
-냄새 말입니까?
-어 지독해· 썩은 내 나는데·
다리가 망가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했던 말들이 비수가 되어 돌아온다·
-꺼져·
-잘 씻겠습니다·
-더러워 평민·
그날 이후로 어지러울 정도로 라일락 향수를 뿌리고 다니던 리카르도의 모습이 생각이 났다·
올리비아는 그 모습을 보며 주먹을 쥐었다·
‘아····”
그래서 그런 거구나·
진하게 뿌렸던 향수도·
매번 입고 다니던 긴 셔츠도·
갑자기 손목을 잡고 방에서 나가는 이유도·
다 나 때문이었구나·
바닥에 무릎을 꿇고 바닥에 이마를 박았다·
허리를 굽혀 미칠 것 같은 심장을 쥐어뜯었다·
“하윽··· 흐아아아· 흐아··· 아파·· 아파··· 가슴이 너무 아파···”
이게 뭐야·
이게 뭐냐고···
이렇게 아픈 줄은 몰랐는데·
“너무 아프잖아···”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미안해···”
내가 너무 못나서 미안해·
“이렇게 될 줄 몰랐는데····”
네가 이렇게 아플 줄 몰랐는데·
“제가 정말로 미안해···”
가슴을 잡고 울던 중· 리카르도의 목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낮고 고요한 목소리·
작은 의문을 담은 독백이 고요히 들려왔다·
-살 수 있겠지·
자신에게 하는 말이 아닌·
미련하게 못난 주인에게 하는 말·
나는 그저 가만히 울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
피다·
온몸이 피에 젖어 있다·
과거의 나는 리카르도의 품에 안겨 고른 숨을 내쉬며 자고 있었고 리카르도는 고개를 숙이고 잠든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잠옷에 피가 뚝뚝 떨어졌다·
온몸이 피에 젖었고·
얼굴은 피로에 쩔어있었다·
사막같이 입술을 갈라져 있었고·
오른손은 뼈를 드러내며 붉은 피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나는 말했다·
“아픈 거 못 참는다면서····”
서럽게 울면서 말했다·
“아픈 거 못 참는다고 했잖아·”
새근새근 자고 있는 자신을 쓰다듬으면서 조금의 비명도 지르지 않은 리카르도가 너무 원망스러웠다·
핏줄이 터질 것 같이 부풀어도·
검은 마력이 온몸을 뒤덮어도·
마력에 대한 반작용으로 몸에 화상을 입어도 묵묵하게 참으며 괜찮다고 속삭이는 저 집사가·
너무나도 미웠다·
“이러면 나는 어떡하라고·”
리카르도는 자고 있는 자신의 볼을 톡 건들고 작은 웃음을 지었다·
-살아있어 줘서 다행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기나긴 악몽은 끝이 났다·
[열람이 종료됩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reader님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후원 감사인사는 다음 회차에 쓰도록 하겠습니다!
잦은 휴재 죄송합니다·
추신)
연중은 죽어도 안 할 겁니다·
울면서라도 써야죠!
추가로 올리비아 옷장 일러스트가 제작이 시작되었습니다!
초안이 나오면 공지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닷!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