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2
괜찮습니다·
이 말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가슴을 후벼팠다· 그 어떤 것보다 아프고 뾰족한 송곳이 가슴을 찌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미소를 짓고 손을 꼭 잡고 있는 리카르도의 모습이 너무나 미웠다·
너는 내가 안 밉냐고 아무 상관이 없는 네가 그런 끔찍한 고통을 겪었는데 너는 내가 원망스럽지 않냐는 물음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나는 이를 악물고 리카르도에게 말했다·
“뭐가···· 괜찮은 건데·”
원망을 담은 물음이었다·
괜찮지 않은 게 분명한데 왜 괜찮은 척을 하는지에 대한 물음·
나는 리카르도의 손을 꽉 쥐었다·
손이 떨릴 정도로· 거짓말하는 리카르도에게 화가 나고 미웠으니까· 내가 진심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했다·
“뭐가 괜찮다는 거냐고·”
환멸도 원망도 아닌 미안하단 감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리카르도· 무슨 말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
차라리 지금에라도 욕을 해줬으면·
나쁜 년이라고·
너 때문에 내 몸이 망가졌다고·
묵묵하게 입을 다물지 말고 나한테 욕이라도 해줬으면 했다· 그러면 나도 편할 것 같았다·
괜찮다라니·
머릿속에서 리카르도의 말이 메아리처럼 울렸다·
나는 리카르도에게 물었다· 솔직한 대답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아무리 착한 너라도 항상 내 옆을 지켜주는 너라도 내가 밉지 않냐는 마음을 담아서·
한편으로 리카르도의 입에서 매정한 말이 나오지 않기를 바랬다· 나는 겁이 많은 겁쟁이니까·
목소리가 떨렸다·
무섭게 말하고 싶은데·
장난치지 말라고 혼내고 싶은데 바보같이 목소리가 떨렸다·
“괜찮은 게 아니잖아· 괜찮을 리가 없잖아···!”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사실 너도 내가 밉다고 생각할 거란 착각을·
지울 수 없는 흉터를 가지게 한 것도 모자라서 끔찍한 고통을 겪게 했는데 정작 돌아오는 것은 미하일을 찾는 미친년이 전부인데·
나라면 미워죽을 것 같은데·
집사고 친구고 뭐든 간에 그냥 다 버리고 도망쳤을 텐데· 너는 왜 그러지 않았냐고·
속에서 수많은 생각과 울분이 쏟아져 나왔지만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겁쟁이의 투정뿐이었다·
“거짓말하지마·”
“거짓말이 아닙니다·”
이불 위에 눈물을 떨어져 내렸다·
끝까지 내게 싫을 말을 안 하려는 집사 때문에 또다시 눈물이 흘렀다·
충분히 울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남은 눈물이 많이 남아있나보다·
나는 우는 얼굴을 숨기고 말했다·
“아팠잖아·”
“···”
“죽을 만큼 아팠잖아·”
“괜찮습···”
“뭐가·· 뭐가! 괜찮은데!!!”
나는 리카르도의 손을 신경질적으로 떼어냈다·
“죽을 수도 있었어! 알아? 너 죽을 수도 있었다고····!”
리카르도는 고개를 숙였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고개를 숙이고 침대 위에서 주먹을 쥐었다· 폈다가를 반복하는 리카르도· 그의 웅크린 어깨가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불에 얼굴을 파묻었다·
눈을 비비고 울컥거리는 마음을 추스르려 해도 떨리는 어깨는 좀처럼 울음을 멎게 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죽을 수도 있었다고····”
“···”
리카르도는 숨을 깊게 뱉었다·
하아··하는 숨소리에 작은 떨림이 느껴졌다·
한 번 더 긴 숨을 뱉어 호흡을 가다듬고 이불에 얼굴을 파묻은 내게 리카르도는 나지막이 말했다·
“알고 있었습니다·”
리카르도의 덤덤한 목소리가 차갑게 심장을 굳혔다· 숨을 덜컥 멎은 것 같았다· 리카르도의 입에서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들었으니까·
‘왜····’라는 반문이 나오기도 전에 리카르도는 말을 이어갔다·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최선··· 부정하기 싫지만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를 살리지 않는 선택 또한 있었을 텐데···
최선이라는 말에 말문이 막혔다·
리카르도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말하고 싶지 않았던 걸 억지로 말하는 것처럼 작은 떨림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아가씨· 저는 말이죠·”
하·· 리카르도 간 한숨이 들려온다·
신경질적으로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는 리카르도는 나와 마찬가지로 손에 얼굴을 파묻고 이야기를 건넸다·
“아가씨가 정말 소중합니다·”
“나는 네가 안 소중해? 나도···!”
“압니다· 아가씨가 저를 소중하게 여겨주시는 거· 그래서 빈민가 부랑아인 저를 집사로 사용하셨죠·”
리카르도의 말에 나는 반문을 뱉었다· 너무도 당당한 그의 변론은 목숨을 걸 정도로 대단한 일은 아니니까·
내가 미하일처럼 세상을 구할 용사도 아니고 유리아처럼 모든 이의 사랑을 받는 여자도 아닌데 고작 성질 더러운 악녀 따위에게 목숨을 걸 이유는 어디에도 없으니까·
그저 나는 호기심에 리카르도를 주웠고 리카르도는 운이 좋은 것뿐인데· 고작 그런 것 따위로 목숨을 걸었다고 한다면 나는 믿지 못했다·
내 기분을 위한 거짓말로 느껴졌으니까·
그래서 나는 직설적으로 말했다·
“고작 그런 것 때문에 목숨을 걸어? 미친 거야? 네가 성녀나 용사처럼 뭐라도 된 것 같았어?”
“고작 그런 게 아닙니다·”
리카르도는 싫은 표정을 지으며 앞머리를 들어 올렸다· 팔의 흉터를 보여줄 때보다 더 싫은 표정으로·
이마에 작게 패인 흉터를 내게 보여줬다·
세월이 흘러 옅어졌지만 깊게 패인 자국은 흉터라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리카르도는 숨을 깊게 쉬고 말을 이었다·
“저에게만큼은 고작이 아닙니다·”
저 흉터에 대해서 자세히는 알지 못했다· 빗속에서 죽어가던 꼬마를 주워온 것뿐이니까·
내게 저 흉터는 큰 의미로 다가오지 못했다·
나는 리카르도를 보며 말했다·
“그건···· 네가 운이 좋았던 것뿐이야·”
리카르도는 단호하게 말했다·
“때로는 그 운이 사람을 바꿔놓기도 합니다·”
리카르도는 이마를 가렸다·
“고작 그런 거라고 하기에는 제 인생을 크게 바꿔놓아서요· 빈민촌에서 구걸하고 꼬맹이들 삥이나 뜯고 다녔는데·”
“너도 꼬마였어·”
“저는 특별한 꼬마였으니까 논외죠·”
한숨을 깊게 들이마신 리카르도는 말했다·
“저는 집사입니다· 13년 동안 아가씨를 보필해온 집사· 아가씨가 어떤 걸 좋아하시는지· 어떤 걸 싫어하시는지 잘 알고 있는 집사죠·”
“그깟 집사가 뭐라고·”
리카르도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깟 집사라뇨· 나름 제 직업에 긍지를 갖고 있는데·”
되지도 않는 말이었다·
집사라는 직업이 뭐라고· 그저 임명패 한 장 덩그러니 던져주고 검은 집사복 하나 입힌 게 다인데 다른 귀족들처럼 저택도 재산도 사회적 지휘도 주지 못하는 몰락한 영애의 집사가 뭐라고·
리카르도의 말은 그저 허울 좋은 변명에 불과했다·
나는 리카르도의 진심을 알고 싶었다·
나를 원망하는 속마음을·
그래서 삐뚤어지게 말했다· 고슴도치가 의도치 않게 가시를 새우듯이 나도 반사적으로 가시를 새웠다·
“차라리 욕을 해·”
“···”
“차라리 내가 싫다고 내 눈치가 보인다고 욕을 하라고··· 불쌍하면 불쌍하다고 말을 하라고·”
괜한 자존심을 부렸다·
이것 말고는 다른 해답이 나오지 않았으니까·
연민이라는 감정이 아니라면 저런 행동을 하는 것 자체가 나는 납득을 할 수 없었다·
리카르도는 나를 봤다·
이불에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차가운 말을 뱉는 나를·
“아가씨· 그런 얼굴로 욕하라고 하면 전혀 설득력 없다는 거 아십니까?”
“콧물을 질질 흘리면서 욕하라고 하면 세상에 어느 누가 욕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말했다·
장난치지 말라고·
이번에는 조금 무서운 표정으로 리카르도를 노려봤지만 리카르도 또한 장난이 아니라는 답을 했다·
하· 한숨을 뱉는 리카르도· 별이 빛나는 창문을 한 번 바라보고 그다음에 내 얼굴을 바라봤다·
울고 싶지 않은데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을 떨어뜨리는 내 얼굴을·
“아가씨께서 저를 아끼신다고 하셨죠· 저는 아가씨보다 조금 더 아가씨를 아끼고 있습니다· 아주 조금 더요·”
“그게 뭐야····”
“13년이란 세월이 생각보다 강렬하더군요· 첫 만남 때는 미친년이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미운 정이 생기더라고요·”
리카르도는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욕하라고 하셨죠?”
내 귓가에 작게 비속어를 속삭였다·
“바보·”
그리고 개운하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이 정도면 풀리는 일입니다· 불만 있으시면 나중에 반찬 투정하지 말고 밥이나 잘 먹어주시죠·”
하지마· 그런 말·
이번에도 이렇게 넘어가면 안 됐다·
확실하게 매듭을 지고 가야 했다·
나는 리카르도에게 말했다·
“너는 내가 안 미워?”
리카르도는 조금의 고민을 했다·
“반찬 투정할 때 빼고는 밉지 않습니다· 파프리카만 접시에 따로 빼놓는 것만 아니면·”
“아니···· 그런 거 말고·”
속으로 생각했던 말을 했다·
리카르도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미워하지 않을까 싫어하지 않을까 고민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의 일을 말하려는 내 입술이 겁을 먹어서 움직이지 않았지만 지금이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지금이 아니면 저 바보 집사에게 묻는 것조차 못할 겁쟁이가 나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나는 떨리는 마음을 말했다·
“나 때문에··· 네가 그런 일을 겪었는데 안 미워?”
담백하게 답하는 리카르도·
“하나도 밉지 않습니다· 제가 선택한 일이니까요·”
눈물이 흘러나왔다·
더는 흐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한참 동안을 울어서 이제 더는 나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리카르도의 아무렇지 않다는 말에 눈물이 흘렀다·
“다··· 내 잘못이잖아· 내가 미하일만 안 좋아했다면 너도 그렇게 당할 일은 없었잖아·”
감정이 요동친다·
“내가···! 바보같이 흑마법만 안 썼으면 너도 행복하게 살 수 있었잖아· 아카데미도 다니고 집사가 아니라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었잖아·”
나 때문에 벌어진 일 때문에 망쳐버린 집사의 인생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고작 나라는 사람 때문에 생긴 모든 일이· 누구를 탓할 수 없고 핑계를 댈 수 없는 일이 전부 내 책임이니까·
죄책감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내가···!”
목소리가 떨린다·
울컥함에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내가·· 정말로 미안한데···”
리카르도의 팔을 잡고 나는 얼굴을 묻었다·
내가 잡는 것만으로도 아프면 어떡하지· 너무 세게 잡지는 않았나 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이 팔을 잡지 않으면 흔들리는 마음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미치도록 미안한데··· 네 얼굴만 보면 아파하는 네가 떠 올라서 미칠 것 같은데···”
내가 너라면·
얼굴도 안 보고 원수처럼 살아갈 것 같은데·
“너는 진짜 내가 안 미워?”
이 말에 모든 게 담겨있었다·
리카르도의 인생을 망친 잘못이·
겪지 않아도 됐었던 아픔을 겪게 만들었던 내 잘못이 이 한마디에 담겼다·
“흐읍··· 내가···”
벅차오른 감정 때문에 이제 말하는 것도 한계였다·
“내가··· 진짜로 미안한데··”
나는 리카르도의 팔을 잡고 울었다·
리카르도는 그런 나를 안아주며 짧게 답했다·
“괜찮습니다· 정말로·”
잔잔하게 말하는 리카르도는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걸 어떻게 막겠습니까·”
리카르도는 내 고개를 들고 금붕어처럼 눌렀다· 찌그러뜨린 얼굴을 보고 작은 웃음을 짓는 리카르도·
“이제 이 이야기는 그만합시다·”
역시나 장난을 담아서 말을 끝냈다·
“울면 진짜 못생겼으니까요·”
그날 나는 리카르도의 품에 안겨 밤새도록 울었다·
***
다음날·
리카르도는 펄펄 열이 끓어오르는 내 이마에 물수건을 바꿔주며 말했다·
“판다···”
“웃지마·”
“눈이 주먹만 합니다·”
“이이익··· 웃지 말라고!!”
나는 이마에 있는 물수건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리카르도를 향해 던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reader님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닷··!
추신)
옷장 속 아가씨 일러는 조금 미뤄졌습니닷···!
표지를 제작해주신 작가님께서 그림체가 바뀌셔서 다른 일러스트 작가님을 찾아봐야할 것 같습니닷!
[후원 감사]
Reader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울뻔하셨다니!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Jungseol님 5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연참···! 그것은 심오한 법!
다음에 준비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베른슈타인님 5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아가씨의 옷장 그림을 보고 싶은 마음 제게 전달되었습니다!
새로운 일러스트 작가님을 찾느라 늦어질 것 같습니다ㅠㅠ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HKM813님 2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열심히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독자님께 월요병이 사라지는 요정이 함께하기를!
_992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응애! 독자님에게 금요일이 빨리 찾아오는 요정이 함께하기를!
시작좀님 5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장문의 글로 걱정의 말씀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많이 부족한 요정이지만 재미있게 봐주셨다니 감사할 따름이네요· 과분한 칭찬과 격려의 말씀 감사합니다! 열심히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독자님에게 길가다가 5만원을 줍는 요정이 함께하기를 빌겠습니닷!
언데드성직자님 1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요정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님에게 바오는 날에 가방에 우산이 있는 요정이 함께하기를 빌겠습니닷!
-후원 멘트가 길어질 것 같아서!
나머지 후원 감사 인사는 다음 회차에 이어서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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