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3
3주의 시간이 흘렀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3주라는 시간이 어색해진 우리 사이를 빠르게 바꿔놓았다·
아무말 없이 어색한 한 주를 보냈고·
다른 한 주는 서먹한 인사말을 건냈고·
마지막 한 주는 서로의 얼굴을 맞대고 진지한 이야기를 했었다·
끔찍한 일을 겪게 해서 미안하다는 사과와 함께 고맙다는 인사· 그리고 팔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를 할수록 아가씨의 눈물은 많아졌지만 어색해진 우리 사이는 회복되기 시작했다·
팔을 보고 울고·
어색한 미소를 보고 울고·
밤에 뜬 별을 보고도 울었다·
갱년기가 온 아저씨처럼 감수성이 늘어난 아가씨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차츰 미소를 되찼았다·
그날 아가씨는 말했다·
욕도 줄이고 반찬 투정도 줄이겠다고·
그리고 정말 미안했다고·
우린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진솔한 사과를 했다·
아가씨는 다시 한 번 내 팔과 대면했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붕대를 풀며 내 손을 보셨는데·
아직까지 충격에 젖은 아가씨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다·
-···내가 이렇게 만든거야?
-내가···
한참을 다물고 계시다가 고개를 끄덕인 아가씨는 손으로 얼굴을 싸매고 울으셨다·
아가씨는 점차 돌아오셨다·
당돌하고 먹을 것을 좋아하는 악녀 올리비아로·
과거처럼 나쁘게 변한 건 아니고·
-리카르도 뭐 먹고 싶어?
메뉴를 고를 선택을 주는 관대한 악녀로 돌아왔다·
아직까지 내 얼굴만 보면 울컥한 표정을 지으시고 간지러워서 팔을 긁으면 놀란 눈으로 ‘아··아파?’라고 중얼거리시긴 했지만 3주전 아가씨를 볼 때와 지금은 많이 달라져있었다·
풀이 죽어있는 아가씨가 아니라 당돌한 아가씨·
나는 이게 더 좋았다·
죄책감에 방 안에서 박혀있는 것보다 조금은 뻔뻔해도 할 말 다 하고 원하는 걸 말하는 아가씨가 나는 좋았다·
숨 막히는 분위기가 될까 두려워서 그동안 손의 흉터를 숨긴 이유도 있었으니까 이런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
한적한 아가씨의 방·
침대에 앉은 아가씨는 눈살을 찌푸리고 한 곳을 향해 집중하고 계셨다·
수술실 의사처럼 매서운 눈으로 한 손에는 면봉과 다른 한 손에는 연고를 들고 집중하는 아가씨·
어른들의 말이 떠올랐다·
그 정도로 공부했으면 서울대를 가겠다던 어른들의 말이· 아가씨께서 지금처럼 공부에 집중했다면 학년 수석은 가볍게 차지하지 않았을까·
마법 학부에서 실기로는 1등·
필기로는 꼴등을 차지하신 아가씨니까·
아가씨는 면봉에 연고를 짜며 딸꾹질을 했다·
“히끕·”
입술을 꾹 깨물고 집중하는 아가씨는 손을 달달 떨면서 내게 말했다·
“아프면 말해·”
“아···”
“···히익!”
닿지도 않았는데 아프다고 하자 아가씨는 어깨를 움찔 떨었다· 나는 그런 아가씨를 보며 웃었다·
“닿지도 않았습니다·”
“그···그래?”
“후우·”
긴 한숨을 뱉고 아가씨는 소매를 걷은 오른손에 집중했다·
툭 건들면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상처에 집중하고 있는 아가씨· 놀리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았다·
나는 움찍거리는 입가를 가리고 반짝이는 오른손을 봤다·
검은 흉터 대신 하얀 연고 밖에 보이지 않는 오른손· 과도한 걱정에 웃음이 나왔다·
“아가씨·”
“···조용히 해· 집중하고 있으니까·”
“이렇게 많이 바르면 오늘 저녁인 스테이크에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움찔· 음식에 관련된 말에 손을 멈춘 아가씨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희망회로를 돌렸다·
“고기도 다친 거니까 연고를 바르면 더 커질 수 있을 거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십쇼·”
“···아니야?”
“네·”
아가씨는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그러면 조금 맛없게 먹지·’라고 중얼거렸다·
아가씨는 내 팔에 연고를 가득하게 바르고 있었다·
바른 곳에 또 바르고·
멀쩡한 곳에도 또 바르고·
내 눈에는 더 이상 바를 곳이 없어 보이는데 아가씨의 눈에는 아직도 부족한가 보다·
거품 목욕을 하는 것도 아니고 끈적하게 바르는 연고는 어느새 두 통이 넘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이 정도는 부족한 건지 아가씨는 주섬주섬 구급상자에서 포장지도 안 뜯은 연고를 꺼내고 있고·
아가씨는 중얼거렸다·
“아프면··· 안 돼·”
“안 아픕니다·”
“그래도···”
아가씨는 다치지 않은 곳에 연고를 바르며 말했다·
“아프면 안 돼·”
내 말을 귀담아듣지 않은 아가씨였다·
상처를 툭툭 건들면서 내 반응을 살피고 간지러워서 움찔 떨면 울상을 짓고· ‘아··아프면 안 되는데?’라고 혼잣말하는 아가씨·
흑마법에 괴사한 피부에 연고를 바르는 건 의미 없는 짓이었지만 아가씨의 정성이 담긴 손길이 좋아서 팔을 내미는 나였다·
그때가 생각난다· 아가씨에게 제대로 상처를 보여준 다음 날이 말이다·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말하시는데 심장이 떨려서 죽는 줄 알았다·
-벗어·
-네?
순간 불경한 생각이 들어 내적갈등이 왔었던 그 날 아가씨는 눈을 질끈 감고 내게 말했다·
-팔 볼 거야· 옷 벗어줘·
-팔 말입니까?
팔을 어색하게 뒤로 숨겼지만 이미 모든 걸 깨달아버린 아가씨의 고집은 꺾을 수 없었다· 보여주지 않으면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서 침울하게 ‘나는 나쁜년이야···!’이럴 것 같은데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소매를 걷어 주자 아가씨는 그렁그렁하게 맺힌 눈물을 닦으며 씩씩하게 말했다·
-약 바를 거야·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아가씨·
나는 마지못해서 아가씨에게 손을 보여줬고 그 자리에서 아가씨를 울면서 연고를 바르기 시작했다·
-끄흡·· 흡···
-왜 또 웁니까·
-징그러워··· 그리고 너무 아파 보여···
그 뒤로부터 아가씨에게 손을 보여주는 건 일상이 되어버렸다·
초콜릿을 사 올 때 가슴 주머니에서 금화를 꺼내 연고를 사 오라고 말씀하시는데 물론 따뜻하게 데워진 금화는 내 서랍에 잘 보관되어 있다·
깊은 사연이 담긴 금화를 남한테 주는 건 아까우니까· 절대로 변태 같은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됐다·”
붕대를 감은 아가씨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힛···!”
자랑스럽다는 듯이 어깨를 펴고 붕대에 감긴 손을 보는 아가씨· 나는 아가씨의 영혼이 담긴 역작을 보고 떨떠름한 미소를 지었다·
“이게 뭡니까·”
“치료·”
“치료라고 하기에는 너무 두껍게 감은 거 아닙니까? 하녀님이 보시면 팔이 부러졌냐고 할 것 같은데요·”
엉성하게 감은 붕대는 깁스처럼 두껍게 감겨있었다· 팔로 못을 박으라고 해도 가능할 정도로 붕대로 덧칠을 해놓은 아가씨·
“히히···”
스스로가 대견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어서 불평을 못 하겠다·
아가씨는 펜을 들어 붕대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뭐하십니까?”
“마법의 주문·”
“마법의 주문이라고 하기에는 그림이 너무 절망적인데요·”
“···조용히 해· 집중하고 있으니까·”
쓱쓱 붕대에 그림을 그리는 아가씨·
오크 한 마리 고블린 한 마리·
[빨리 나아라·]라는 수려한 글씨로 덕담을 남겨주시는데 좀처럼 몬스터 가족 사진이 적응이 가지 않았다·
나는 흉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오크를 보며 말했다·
“이게 혹시 접니까·”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아가씨·
“웅·”
“···”
딱밤을 때리고 싶었다·
나는 그 옆에 심상치 않은 가슴을 가진 고블린을 가리켰다· 아가씨의 비상금이 담긴 주머니를 생각나게 만드는 선정적인 디자인의 고블린·
손가락을 가리키자 아가씨의 입꼬리는 올라갔다·
“이건 아가씨 입니까?”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가씨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봤다· 자신의 미술의 혼을 태운 역작에 대한 평가를 남겨달라는 우수에 찬 눈으로·
“어때?”
나는 고개를 창문 쪽으로 돌렸다·
“왜 답이 없어·”
“···”
“너무 잘 그려서 놀란 거야?”
절망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에게 헛된 희망을 가지게 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이번 기회로 예술에 재능이 있다고 착각해서 화가라도 된다고 한다면 어떡하냐· 절망적인 재능을 칭찬해줄 정도로 내 칭찬은 가볍지 않았다·
아가씨는 나를 지그시 봤다·
입술을 삐쭉 내밀고는 무언의 협박을 하는 아가씨의 매서운 눈빛에 나는 발음을 흐리며 말했다·
“자···잘 그렸네요·”
“그치?”
“네· 고블린하고···”
‘아··· 실수했다·’
아가씨는 눈살을 찌푸렸다·
“고블린 아닌데····”
실망한 아가씨는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런 아가씨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줬다·
“아가씨께서 예술에 큰 뜻을 두시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아가씨는 볼펜을 던졌다·
***
따뜻한 햇볕이 눈에 들어온다·
오늘도 화창한 저택의 마당·
아가씨는 오랜만에 밖에 나와서 의자에 앉았다·
검술 연습을 하다가 아프면 어떡하냐고 의무병을 자처하며 귀하신 몸을 행차해주셨다·
나는 아가씨 앞에서 검을 격하게 휘둘러봤다· 이왕 보여주는 거 화려한 검술을 보여주는 게 좋다고 생각했으니까·
훙훙·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저택의 마당·
검에 오러를 흘러 넣으며 허공에 잔상을 남기는 검술을 보여주자· 아가씨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박수를 쳤다·
“오···!”
나는 로판 속 주인공처럼 땀을 닦으며 인위적인 숨소리를 냈다·
“후우··· 어떻습니까?”
감흥 없는 눈으로 나를 보는 아가씨· 검술 대신에 내 오른팔에 집중하고 있었다·
박수를 치는 소리를 들었을 때 좋아하실 거라 생각했는데 아가씨는 감흥이 없는 눈으로 그저 손뼉만 치고 있었다·
아가씨는 내게 말했다·
“메테오 같은 거 안 나와?”
“네·”
“삐슝하는 레이저는?”
“불가능합니다·”
“멋없어·”
아가씨는 남자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지루한 눈을 뜨고서는 배를 통통 두드리는 아가씨·
“저기 산 같은 거 가르고 하늘도 가르고 그런 건 못해?”
“소드마스터도 그런 건 못합니다·”
아가씨는 나를 지그시 봤다·
“리카르도는 못해?”
“아니·· 그게··”
소드마스터도 못하는 검술을 경지를 보여달라니· 여러모로 자존심을 건드는 아가씨의 도발에 스위치가 눌렸다·
아가씨는 ‘에이 멋없어·’ 라는 말을 한 번 더 남기시고는 의자에 눕듯이 허리를 기대 한량의 모습을 보여줬다·
“배고파·”
자존심을 건드는 아가씨·
안 되겠다·
기절하는 한이 있더라도 아가씨에게 ‘오···! 멋져’ 라는 소리를 들어야겠다· 이 상태로 끝이 난다면 아가씨의 기억에 나는 식칼을 잘 쓰는 집사로 남게 될 게 분명할 터·
나는 오러를 끌어올렸다·
[한계돌파(L)가 오러의 한계를 시험합니다·]
태양처럼 붉은빛으로 빛나는 검을 보자 아가씨는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냈다·
“보이십니까·”
“오···”
흥미로운 반응을 보여주는 아가씨· 조금 더 오러를 검에 끌어모으려고 하던 찰나·
“오···”
“오···”
익숙한 남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밝은 갈색 머리를 가진 두 명의 남녀·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었다·
나는 검은 내려놓고 입구에 서서 가만히 나를 지켜보는 두 명의 남녀를 보고 말했다·
“한나 씨?”
히스타니아 남매가 사이좋게 저택의 입구에서 서 있었다·
붕대로 감은 검과 선물을 한 보따리 들고서 한나는 나를 보며 방긋 미소를 지었다·
“저예요· 집사님·”
오랜만에 보는 손님이었다·
“배고파서 왔어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reader님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후원 감사 인사는 다음 회차에 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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