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3
오늘도 한적한 아가씨의 방·
화창한 햇살이 창문을 비추는 오후 3시·
평소라면 낮잠을 자고 있을 아가씨는 바선생님의 가정 방문 이후로 낮잠과 이별하고 오랜만에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아가씨는 고양이처럼 주위를 둘러봤다·
반응 맛집으로 소문난 아가씨를 교육하기 위해서 다른 바선생이 방문하지 않을까 싶어서·
이불로 몸을 돌돌 말고 테이블 앞에 앉아있는 아가씨는 작은 움직임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부스럭 소리가 나면 움찔·
사사삭 소리가 나면 이불 속에 머리를 숨기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의 그림자가 보이면 ‘히이익’하고 나를 불렀다·
김밥처럼 이불을 돌돌 말고 있는 아가씨는 바닥에 떨어진 검은 단추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리카르도 저기 봐····”
“네?”
“저거··· 바퀴벌레 아니야?”
나는 허리를 숙여 검은색 단추를 집었다·
“오···”
빼꼼 이불 사이로 얼굴을 내미는 아가씨· 겁먹은 모습에 괜히 장난을 치고 싶었다·
가만히 서서 단추를 바라봤다·
어떻게 놀리면 좋을까· 거짓말을 하지 ·않고 아가씨를 놀릴 방법이 필요했다· 어설픈 장난을 치면 아가씨는 눈치를 챌 테니까·
유심히 관찰하고 머릿속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자 나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숨기고 아가씨에게 말했다·
“조금 큰 게 떨어졌네요·”
“커···?”
“네 어디서 이런 게 떨어졌는지··· 어우···”
고개를 절레 젓고 단추를 쥔 손을 굳게 쥐었다· ‘뿌득!’하는 살벌한 소리가 방안을 울리자· 아가씨는 요상한 소리를 내며 이불을 뒤집어썼다·
“히이이익··· 흐아아!!”
척하고 손을 내밀자 기겁하는 아가씨· 나는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짓고 손을 펴서 부서진 단추 조각을 보여줬다·
“단추가 떨어졌네요·”
아가씨는 나를 노려봤다·
“장난치지마·”
“장난아닌데···”
“거짓말·”
아가씨는 뚱한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살벌한 시선으로 욕하시는 아가씨·
귀여운 모습에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찰나 요즘 따라 눈치가 빨라지신 아가씨는 ‘웃지마’라고 경고한 뒤 내게 말했다·
“앞으로 ‘바’로 시작하는 말은 금지야·”
“바퀴·”
“이익!!!”
아가씨는 테이블에 있는 포크를 던졌다·
*
오늘은 입욕제를 만드는 날·
낮잠을 포기한 아가씨와 함께 오랜만에 창작이라는 걸 해보는 날이었다·
책상 위에는 입욕제를 만들 재료와 두꺼운 책 한 권이 펼쳐져 있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입욕제 만들기!]
자세한 그림과 함께 빼곡한 글씨로 입욕제를 만드는 법이 적힌 책·
미간을 찌푸리고 설명서를 읽는 아가씨와 나는 생각보다 어려운 내용에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어··· 구연산 한 스푼 식용 색소 다섯 스푼?”
“아니야· 한 스푼이야·”
“그렇네요·”
준비한 비커에 조심스럽게 재료를 넣는 아가씨와 나는 화장품을 만드는 연구원처럼 온 집중을 다 하고 있었다·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서 하얀 가운과 보호 고글을 착용하고 느낌을 내고 있는데 어설픈 모습이 초짜와 다름없었다·
책상 위에는 여러 가지 물품이 있었다·
입욕제를 주재료가 될 가루와 비커·
입욕제에 첨가할 향과 굳힐 틀까지·
초보자가 만들기에는 어설프겠지만 바 선생님의 등장으로 인해 상처받은 아가씨의 마음을 달래기로는 부족하지 않을 구성이었다·
시험작으로 완성된 입욕제를 보자 아가씨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과향 입욕제]
“오···!”
생각보다 잘 만든 것 같다·
색깔도 그렇고 동그랗게 모양이 잡힌 것도 그렇고 초보자가 만든 것치고 그럴싸한 작품이 탄생했다·
“완성한 거야?”
“네 일단 책에 나와 있는 대로 만들긴 했는데···”
“호오오!”
아가씨는 새로운 비커를 들고 콧김을 뿜었다· 창작에 대한 욕구가 샘솟는 모양·
나는 작은 웃음을 지으며 아가씨에게 말했다·
“이제 각자 만들어 보죠·”
-끄덕 끄덕·
“처음 만들어 보는 거라서 어설프긴 하겠는데···”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가씨는 이불을 던져버리고 비커에 재료는 넣고 있었다·
손에 집히는 것을 마구잡이로 넣고 히죽 웃는 아가씨는 표정은 연금술에 미친 마도학자를 보는 기분이었다·
“히히히··· 내가 만든 입욕제·”
1시간 뒤·
아가씨의 비커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비커·
뽀글뽀글 거품이 올라오고 있는데 무엇을 만든 건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눈을 비비고 비커를 봤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아가씨는 비커에 온갖 것들을 넣고 계셨다·
보물 주머니에서 초콜릿을 꺼내 퐁당 넣고 흡족한 미소를 지으시고 치약을 쭉 짜서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계시는 아가씨·
독극물을 만드는 마녀 같은 모습에 나는 아가씨에게 물었다·
“독약입니까?”
찌릿· 아가씨는 매서운 눈으로 나를 봤다·
“독약 아니야·”
“누가 봐도 독약인데·”
아가씨는 고개를 젓고 말했다·
“바닐라 인삼 민트초코 입욕제·”
“네···?”
“치약 맛이 나잖아· 그러니까 민트 초코·”
“인삼은 왜 넣었습니까?”
“건강해지잖아·”
이해할 수 없는 창작물을 만들어 내는 아가씨였다· 초콜릿과 치약을 섞은 건 이해할 수 있는데 인삼을 넣은 건 조금··· 아닌가· 오히려 좋은 건가·
뿌듯하게 가슴을 펴고 말하시는 아가씨의 모습이 이상하게 신뢰가 갔다· 녹차로 목욕을 하면 피부가 좋아지는 것처럼 그런 효과를 내지 않을까 싶어서·
다시 생각해 보니 아가씨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역작은 실수로 태어나는 거니까·
아가씨는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비커를 내밀었다·
“이거 리카르도가 써·”
“···그건 좀·”
“왜?”
나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아무리 대단한 발명품이라도 안정성이 검증되어야 하니까· 저걸로 목욕했다가는 건강해지기보다는 피부가 썩을 것 같았다·
아가씨는 아쉬운 눈빛으로 멀어져 버린 입욕제 2호를 떠나보내고 새로운 입욕제를 만들기 시작했다·
나도 만들어야 하는데···
비어있는 비커를 보고 생각에 잠겼다·
예술혼을 불태우는 아가씨를 보느라 아무것도 만들지 못하고 있던 나는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고민했다·
뭘 만들지·
장미 농축액을 넣어서 장미 향 입욕제를 만들어 볼까 아니면 아가씨께서 좋아하는 초콜릿을 넣어서 입욕제를 만들어 볼까·
떠오르는 창작의 욕구에 나는 조그마한 비커에 재료를 쏟아붓고 있었다·
한 가지 재료만 넣기에는 부족한 것 같으니까·
인삼도 넣어보고·
녹용도 넣어보고·
포션도 넣어보고
정신없이 넣다보니 보랏빛이 도는 독극물이 완성되었다·
아가씨는 내가 만든 입욕제를 보고 깊은 한숨을 뱉었다·
“리카르도· 그거 먹으면 죽어·”
“먹는 게 아닙니다·”
“···그래도 죽어·”
솔직한 아가씨였다·
나는 입욕제에 반짝이는 가루를 뿌려주며 미소를 지었다· 이러면 이쁘지 않냐는 회심의 미소를 지어봤지만 입욕제 전문가인 아가씨의 눈에는 똥색이 나오는 민트 초코나 반짝이는 독극물이나 거기서 거기로 보이는 것 같았다·
예전에는 예쁘면 좋아하셨는데····
성장한 아가씨의 모습이 대견하면서 동시에 아쉬웠다·
그럴싸한 입욕제가 만들어지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3시간 정도 걸렸으려나· 완벽히 굳지는 않았지만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완성된 입욕제는 테이블에 길게 놓여져있다·
장미 초콜릿 약제가 들어간 건강 입욕제의 영롱한 자태에 뿌듯한 미소가 지어졌다·
미하일과 만난 이후 기분이 안 좋았었는데 오랜만에 창작이라는 걸 해보니 기분이 풀리는 것 같았다·
“오···!”
아가씨는 테이블에 턱을 기대고 곰곰이 입욕제가 굳는 것을 기다렸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언제 굳냐고 쉬지 않고 물어보는 아가씨의 모습에 나는 작은 웃음이 나왔다·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일주일 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평화롭고 아늑한 시간·
집사라는 업을 선택해서 잘했다는 다소 감성적인 생각이 들자 나는 아가씨에게 작은 미소를 지어주며 말했다·
“아가씨·”
“응?”
“목욕하시겠습니까?”
멈칫·
아가씨는 따뜻하게 굳어가는 입욕제를 만지는 것을 멈추고 나를 봤다· 흥분한 눈으로 나를 보는 아가씨· 당장에라도 옷을 벗어 던질 것만 같았다·
“목욕?”
“네·”
“목욕···?”
아가씨는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할래·”
저택의 목욕탕으로 떠나기 전 아가씨는 내게 손짓했다· 가까이 와보라고 말씀하시는 아가씨·
비밀 이야기를 할 것처럼 야릇하게 속삭이는 아가씨의 모습에 나는 귀를 가까이 가져다 댔다·
얼굴을 가까이하자 아가씨는 내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붉은색 더벅머리를 강아지처럼 쓰다듬으며 미소를 짓는 아가씨·
걱정하지 말라고 내게 말해주는 것 같았지만 ‘뚝’ 하는 따끔한 느낌과 함께 머리카락을 한주먹 뽑아낸 아가씨였다·
어색한 시선이 흘렀다·
이렇게 많이 뽑을 줄 몰랐다는 아가씨와 배신당한 나의 표정이 마주 보고 있었다·
“에···?”
아가씨는 손에 든 머리카락을 어색하게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
“힛!”하면서 밝은 미소를 짓는 아가씨·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왜 남의 머리카락을 뽑으십니까· 아프게···”
“아파?”
아프다는 말에 격하게 반응하는 아가씨의 모습에 나는 재빨리 고개를 젓고 부정을 했다· 아프다는 말도 함부로 하면 안 되겠는데·
아가씨는 붕대를 감은 손에 ‘호’하고 바람을 불어줬다·
“거기가 아픈 게 아닌데요·”
“그냥 하고 싶었어·”
“오····”
오히려 좋았다·
아가씨는 뽑은 머리카락을 새 비커에 넣었다· 그리고 가루를 넣어 입욕제를 만드는 아가씨·
아가씨는 뿌듯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건 리카르도 향 입욕제·”
“···아니·· 하!”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리카르도 향 입욕제라니 쓰기나 할지 모르겠는데· 머리카락 몇 가닥 가지고 입욕제를 만드는 순박한 모습에 나는 아가씨의 머리카락을 똑 하고 뽑아냈다·
3가닥 정도의 긴 머리카락이 손에 잡히자 아가씨는 눈물을 글썽이며 따끔했던 정수리를 손으로 비볐다·
“아파·”
“아프라고 뽑은 겁니다·”
이익· 주먹을 불끈 쥐고 손에 든 막대기를 던지려는 아가씨· 나는 아가씨가 던지는 막대기를 피해내고 리카르도 입욕제라 칭했던 곳에 아가씨의 머리카락을 넣었다·
“이건 아가씨 입욕제·”
“오···!”
아가씨는 비커를 들고 활짝 웃었다·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계속 이랬으면 좋겠는데···
나는 허공을 보고 작게 중얼거렸다·
“하···”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유리아를 구출하세요·]
상황이 나를 따라주지 않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reader님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후원 감사]
데코님 1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항상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님에게 10분을 자도 꿀잠을 잔 것 같은 수면의 요정을 보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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