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4
시험을 치르기 위해 던전으로 내려가는 길·
2인 1조로 팀을 짠 유리아와 미하일은 어두운 던전을 마법으로 밝히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사방에 이끼가 가득했고 전투의 흔적이 남아있는 벽면·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던전 곳곳에 안전 요원을 배치했다고 교수님이 말씀하셨지만 던전이라는 곳이 주는 무게감은 쉽게 떨쳐낼 수 없었다·
유리아는 오싹한 기분에 어깨를 감싸 안으며 깊은 심층을 향해 나아갔다·
이번 시험은 기존과 다르게 실전을 중점으로 진행됐다·
사전에 나눠준 구슬 모양의 아티펙트에 오크의 귀 같은 몬스터의 부속물을 넣어주면 점수가 올라가는 방식으로 다수의 몬스터와 높은 등급의 몬스터를 잡아야 고득점을 얻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누구나 잡을 수 있는 스켈레톤 같은 하급 몬스터는 많은 학생이 몰리기도 했고 적은 점수를 주는 바람에 미하일과 나는 난이도가 있는 몬스터를 토벌하기 위해 더 깊은 던전으로 들어가는 중이다·
유리아는 손에 든 아티펙트를 미하일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아티펙트는 잘 챙겼어?”
“응· 주머니에 잘 넣어놨어·”
미하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구슬처럼 동그란 아티펙트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채점하는 역할과 동시에 안전 요원을 호출하는 비상 연락망이었으니까·
소중히 보관해야 했다·
학년 수석을 목표로 하는 미하일과 유리아는 더 깊은 던전을 향해 내려가고 있었다·
심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가던 중·
옆에 있던 미하일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유리아·”
“응?”
미하일은 잠깐 머뭇거렸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한참을 고민하고 입을 여는 미하일·
일주일 동안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는데· 그거와 관련된 일이려나···
미하일이 무슨 말을 할지 살짝 걱정됐다·
미하일은 앞을 밝히는 ‘라이트’ 마법을 더욱 강하게 밝히며 말했다·
“사실 나 일주일 전에 리카르도를 만났어·”
“어?”
멈칫·
미하일의 입에서 익숙한 이름이 나왔다·
평소에 절대로 말하지 않던 이름을·
아카데미에서도 함부로 부르지 않았던 이름을 미하일이 직접 말하고 있었다·
놀란 마음에 미하일을 봤지만 미하일의 표정은 큰 변화가 없었다· 그저 묵묵하게 계단을 내려가면서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미하일의 모습에 유리아는 다시 한번 물어봤다·
“리카르도를 만났다고?”
미하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새벽에 산책하다가 만났거든·”
“산책하다가 만났다고?”
“어 골목에서 빈민가에 사는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더라·”
“골목···?”
골목이라는 말에 유리아는 자리에서 멈춰 섰다·
뚝· 천장에서 습기가 모인 물방울이 얼굴에 떨어졌지만 놀라지 않는 유리아였다·
유리아는 생각에 잠겼다·
‘골목이라고 했지?’
골목·
부랑아한테 끌려갈 뻔한 그곳을 말하는 거겠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리카르도가 골목에 간 이유가 혹시 나 때문이 아닐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유리아는 바보같이 심장이 두근거렸다·
‘왜 이러지?’
유리아는 심장이 있는 가슴을 손으로 꼭 쥐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던전이 이상하게 덥게 느껴졌다·
‘아니겠지?’
미하일은 깊은 한숨으로 유리아의 상념을 깨웠다·
“여전하더라 그놈은·”
질색하는 미하일·
리카르도를 싫어하는 게 여기까지 느껴졌다·
“미친개처럼 포악하고 잔인한 게 예전 그대로더라·”
“···그래?”
미하일의 말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에이··· 설마’라는 착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분명 리카르도를 싫어하는데·
이상하게 리카르도를 생각하면 얼굴이 붉어졌다·
만나면 불같이 화내고 싫은 말을 할 게 분명한데 말이지· 바보처럼 생각나고 그때의 일이 생각나서 미칠 것 같았다·
산속에서 리카르도가 구해줬을 때가·
-눈 감아요·
골목길에서 도움을 받았을 때가·
-숨 쉬지마 공기가 탁해지잖아·
그때가 자꾸만 머릿속에서 아른거렸다·
아직도 싫어하는데·
이유 없이 괴롭히고·
일어나는 사고마다 옆에 있고·
심지어 옷장에 가둬두면서 괴롭혔던 사람인데 자꾸만 생각이 난다·
미하일은 그런 유리아의 모습을 힐끔 보고 말했다·
“유리아· 얼굴이 빨개 어디 아파?”
“아···· 아니! 괜찮아·”
유리아는 손으로 부채질하며 얼굴의 열을 식혔다·
‘미쳤나 봐···’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리카르도라는 어색한 이름이 대화 주제가 되었으니까· 서로가 어색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미하일은 내게 말했다·
“유리아는 리카르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이상한 질문을 하는 미하일이었다·
“나?”
당황해서 미하일을 봤지만 올곧은 미하일의 눈은 자리에 서서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고민도 안 하고 미하일에게 말했다·
찝찝하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리카르도가 싫었으니까· 고마운 사람이지만 아카데미에서 당했던 일은 앙금이 되어 가슴속에 깊게 남아있었다·
믿었던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으니까·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미하일에게 말했다·
“엄청나게 싫어해· 세상에서 제일·”
“다행이다·”
미하일의 굳었던 표정을 풀어졌다·
*
우린 더 깊은 던전을 향해 걸어갔다·
스켈레톤과 구울·
언데드 같은 몬스터를 만났지만 상성이 좋았던 탓에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점수를 매기는 아티펙트는 ‘삐릭’ 소리를 내며 올라가기 시작했다· 순위권을 차지할 정도로 고득점을 쌓았지만 아직까지 많이 부족했다·
루인과 황태자 팀이 막강했으니까·
1등을 한 팀이 아카데미에서 밥을 사기로 내기했기에 승부욕이 불타는 유리아였다·
심층으로 내려갈수록 피부에 닿는 공기는 무거웠다· 차가웠고 묵직했다·
곳곳에 몬스터의 ‘그르렁’거리는 울음소리가 귓가에 들려왔고 심층에 갈수록 전투의 흔적이 벽면에 크게 남아있었다·
깊게 파인 벽면·
갈색으로 굳어버린 핏자국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유리아는 섬뜩한 기분에 어깨를 감싸 안았다· 안전을 책임져주는 아티펙트가 있다고 해도 무서운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점수는 많이 쌓이니까···!
이대로만 가면 1등·
아카데미에서 장학금을 탈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오랜만에 두둑해질 통장을 생각하며 기분이 좋아지려는 찰나·
“살려주세요···!”
던전 구석에서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하일과 유리아는 몬스터를 잡는 것을 멈추고 소리가 난 곳을 바라봤다·
같은 마음이었다· 가보자고·
우린 고민도 하지 않고 가려고 했지만 얼마 전에 리카르도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오지랖 부리지 마세요·
유리아는 잡념에 고개를 저었다·
리카르도가 하는 말을 기억해봤자 뭐하냐고 매번 거짓말만 하던 남자인데 그런 충고를 기억해봤자 상처받는 건 자신이란 걸 알지만 그럼에도 발은 자리에 멈춰서 움직이지 않았다·
불안했다· 뭔가 있을 것 같아서·
리카르도가 흘러가듯 말했던 경고는 대부분 무서운 일과 연관이 있었으니까·
“가보자·”
미하일은 주저하는 내게 말했다·
“···”
“유리아?”
“어···어!”
유리아는 상념을 떨쳐내고 소리가 난 방향을 향해 나아갔다 두 골목을 지났을까···· 더 깊은 심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옆에 익숙한 옷을 입고 있는 남자가 쓰러져있었다·
검은색 긴 코트에·
하얀색 셔츠를 입은 남자·
남자는 바닥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었다·
바닥에는 치열했던 전투의 흔적이 가득했고 크고 작은 자상과 함께 가슴에는 손바닥만 한 단검이 꽂혀있었다·
“어···?”
어디서 많이 본 옷이었다·
하멜 산맥에서 루인과 과제를 했을 때 봤던 남자의 옷·
이교도의 사제복이었다·
유리아는 손을 떨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마음은 빨리 구해주라고 하는데·
본능은 거절하고 있었다·
이 남자를 치료해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심장을 미친 듯이 뛰게 했다·
바닥에 쓰러져있는 남자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뱉으며 재촉했다·
“살려주세요··· 숨이 잘 안 쉬어져요··”
남자는 가슴에 꽂힌 단검을 잡으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뱉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발악하는 남자의 모습에서 만감이 교차했다·
살려야 한다는 생각과 살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몸을 굳게 만들었다·
멍청하게 서서 고민을 하던 내게 미하일은 내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유리아! 정신 차려!”
“어? 어어···”
“뭐 하고 있는 거야! 얼른 치료 마법을!”
-오지랖 부리지 마세요·
계속해서 그때의 말이 아른거린다·
평소라면 고민도 안 하고 치료를 했을 텐데 오늘따라 리카르도가 했던 생생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유리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지만··· 이교도잖아·”
미하일은 다급한 목소리로 답했다·
“이교도라도 살려야 할 거 아니야!”
가만히 서서 아무것도 못 하는 나의 모습에 미하일은 하는 수 없다는 듯이 남자의 어깨를 부축하고 포션을 뿌리기 시작했다·
아카데미에서 한 명당 2개씩 준 치료 포션·
비싼 값을 자랑하는 포션이기에 응급처치로 부족함이 없는 물약이었다
미하일은 남자를 부축했다·
시험을 포기하고 위층으로 가려는 모양·
어깨를 들쳐메고 일어나려는 순간·
섬뜩한 목소리가 미하일의 귓가에 들려왔다·
“그래요· 살리셔야죠·”
-푸욱·
남자는 자신의 가슴에 꽂혀있던 단검을 미하일의 복부에 꽂았다· 푹·· 한번· 두 번· 세 번·
컥· 소리와 함께 떨리는 미하일의 눈동자·
남자는 미하일의 주머니에 있던 포션을 빼앗아 가슴의 상처에 뿌렸다·
상처가 아문다·
찢어졌던 상처가 포션으로 인해 빠르게 아물어가고 있었다·
후우 긴 숨을 뱉고 허리를 펴는 남자는 기괴한 웃음을 지으며 피를 토하고 있는 미하일에게 말했다·
“키야~ 진짜 죽는 줄 알았는데· 이걸 사네? 정말 고맙습니다· 성도님들···!”
지익·· 미하일은 다리를 끌며 복부에 꽂힌 단검을 잡고 뒷걸음질을 쳤다· 피하려고 했지만 깊게 찔려버린 단검에 그만 무릎을 꿇어버리는 미하일·
유리아는 쓰러진 미하일에게 달려갔다·
“미하일!!”
미하일은 유리아에게 말했다·
“도망쳐 유리아···”
유리아는 치유 마법을 미하일의 복부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밝은 녹색의 빛이 미하일의 몸을 집어삼키자 안정적인 숨을 내쉬는 미하일·
안도의 한숨이 나왔지만·
“치유사네·”
등 뒤에 서 있던 남자는 손을 뻗기 시작했다·
피에 젖은 손이 눈 앞을 가리기 시작했다· 집어삼키는 공포에 남자의 손이 거인의 손처럼 거대해 보였고 진득하게 흐르는 피가 얼굴에 뚝 떨어졌다·
“아···아····!”
유리아는 겁에 질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남자가 자신을 잡을 때까지 아무 말도 못 하고 바보처럼 서 있었다·
“그만둬!”
미하일은 소리를 질렀다·
검을 뽑아 이교도에게 휘두르는 미하일·
보기 좋게 내질렀지만 둔탁한 소리가 들리자 털썩· 고개를 숙이는 미하일이었다·
“잘됐네· 치유사 한 명 정도는 필요했었는데 잘 됐어·”
남자는 자신을 보고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싫다고는 하지 말자· 예쁜 손가락을 자르긴 싫다고·”
섬뜩한 말을 뱉으며 깊은 던전 속으로 끌고 가는 이교도·
나는 떨리는 손으로 품에 숨겨준 아티펙트를 깨뜨렸다·
기사단을 호출하는 구슬을·
하지만
“꺄악!”
심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는 숨을 헐떡이는 기사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었다· 도망치라고 말하는 기사의 발아래에는 탈출용 스크롤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찢어져 있었다·
유리아의 몸은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막막했다·
탈출할 방법도·
끔찍한 일을 겪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에 눈이 깜깜해졌다·
“놔!!”
유리아는 버둥거렸다·
“놔아아아!!”
거칠게 끌고 가는 남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몸부림을 쳐봤지만 남자는 손을 번쩍 들어 유리아를 위협했다·
“안 닥쳐?”
후웅·
남자의 손이 유리아를 내리치려는 순간··
“야이··· 답 없는 놈들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층의 던전에서 들리면 안 되는 목소리가 기다렸다는 듯이 울리고 있었다·
“너희 때문에···!”
남자는 울고 있었다·
꿈을 이루지 못한 어린아이처럼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어둠에 숨어버린 우리에게 말하고 있었다·
“아가씨랑 목욕을 못 했잖아···”
화륵· 붉은 아지랑이 기운이 퍼지자 남자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
리카르도였다·
리카르도는 우리를 보고 말했다·
“보상만 아니면 안 왔는데··· 씨팔··”
*
[유리아를 구출하세요·]
보상 : 흑마법 내성 Lv· 4 재활의 손길 [B]
거절할 수 없는 퀘스트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reader님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퇴고가 덜되서 덜 익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추신)
사실 이번 파트를 7편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말이죠!
개같이 줄여버렸습니다!
헤헷!
[후원 감사]
돼지쉐에끼님! 100코인 감사합니다!
앞으로 재미이이이게 써달라는 말씀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봐주셔서 너무 감사하네요·
앞으로 성장하고 꽁냥거리는 수정요정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독자님에게 꿀잠의 요정을 보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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