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4
-빼꼼·
침대에 엎드린 올리비아는 곰탕이를 품에 안고 창밖을 힐끔 바라봤다·
도둑을 잡으러 간 리카르도·
도둑임에도 떳떳하게 대문 앞에 서 있는 키 큰 남자·
-가세요·
-···
-가시라고요!
두 사람 사이에서 흐르는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심각한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2층에 있는 올리비아의 귀에는 고함밖에 들리지 않았다·
주먹을 꽉 쥐고 도둑에게 소리치는 리카르도는 한숨을 푹 쉬며 화를 내고 있었고 도둑은 가만히 서서 리카르도를 보고 있었다·
‘재미있어 보여····’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자신을 끼워주지 않아서 서운한 올리비아는 품에서 꿈틀거리는 곰탕이를 꼭 껴안으며 중얼거렸다·
‘나도 껴줘···’
리카르도는 도둑에게 나가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도둑 가만히 서서 묵묵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밀고 버티기를 반복하는 두사람·
재미있는 일을 훔쳐 보고만 있어야 하는 올리비아는 몸이 근질거렸다·
‘이익··· 안 보여···’
올리비아는 빼꼼히 창밖에 얼굴을 내밀었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갈색 머리카락·
검은색 정복을 고집하고·
황금빛 손잡이를 가진 검·
사교계에서 활동할 때 많이 봤던 인상착의였다·
황제 옆에 붙어 다니는 사람인 것 같은데···
누구지···
올리비아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모르겠어···’
리카르도와 남자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처음 보는 남자는 굳은 표정으로 리카르도를 보고 있었고 리카르도는 헛웃음을 뱉으며 머리를 쓸고 있었다·
-저 보고 그 짓을 하라는 겁니까?
-···
-그게 아버지가 된 사람으로 할 짓입니까?
-네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야·
-···하·
고개를 저으며 깊은 한숨을 뱉는 리카르도·
익숙한 표정이었다·
아카데미에서 미하일을 좋아한다고 했을 때 말이 안 통했던 자신에게 저런 표정을 지었으니까·
제발 그러지 말라고·
-왜·· 제 말을 안 들으시는 겁니까····
-왜 말리는 건데· 나도 좋아할 수 있잖아!
-아가씨께서 상처받으실까봐· 이러는 겁니다·
-닥쳐· 닥쳐···· 너도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아· 응원도 안 해줄 거면서···
-아가씨··· 제발· 이번 만큼은 제 말을 들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닥치라고!
한숨을 푹 뱉으면서 머리를 쓸어올리는 건 리카르도가 화났을 때 자주하던 습관이었으니까·
못된 말은 못 하겠고·
답답함에 화는 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리카르도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분풀이가 저 습관이었다·
아카데미에서 리카르도를 자주 화나게 했던 올리비아는 리카르도의 습관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야기가 잘 풀리지 않나 보다·
리카르도는 남자를 노려보고 있고·
남자는 리카르도를 향해서 살벌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까·
두 사람에게서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는 올리비아는 주먹을 쥐었다·
‘아··안 되는데·’
리카르도는 팔이 아프단 말이야·
아직까지 리카르도가 걱정되는 올리비아였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스릉···
두 사람은 검을 뽑았다·
올리비아는 창밖을 보고 소리쳤다·
“곰탕아 물···물어!”
-고옴···
곰탕이는 올리비아의 품에 깊게 숨어버렸다·
“이이익··”
자기 목숨은 아까운 곰탕이었다·
***
눈앞에 거대한 산이 보인다·
히스타니아 로웬·
제국에서 가장 강한 남자가 내 눈앞에 서 있었다·
[히스타니아 로웬 Lv· 100]
[직업 : 황실 기사단장]
[호감도 : -61]
[좋아하는 대화 주제 : 히스타니아의 명예/재능있는 검사/자식에 대한 칭찬/자식들의 안전]
[싫어하는 대화 주제 : 무능한 아버지/재능 없는 검사/자신에 대한 평가/건방진 사람/일방적인 무시]
서 있는 것만으로 강한 위압감이 느껴지는 히스타니아 로웬· 도저히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로웬은 어색하게 서 있는 나를 향해 말했다·
“오랜만이군·”
중후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수많은 사선을 넘은 검사의 목소리·
긴장감에 손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음에도 그에게 풍겨 나오는 기세에 눌려버리는 나였다·
‘왜 온 거지·’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로웬에게 말했다·
“잡상인은 안 받습니다·”
일종의 생존 본능이었다·
그동안 저택에 수없이 찾아온 잡상인들과 빈집으로 착각해 노숙하려던 거지들을 쫓아낸 집사의 경험이 담긴 정수·
위기가 생겼을 때 효율적으로 받아치는 것이 집사의 덕목이기에 나는 집에서 쫓겨난 것 같은 로웬의 얼굴을 똑바로 보고 말했다·
“전기장판 게르마늄 팔지 대출 안 받을 거니까· 돌아가세요·”
나는 필사적으로 눈앞의 남자를 모른척했다·
아는 척을 했다가는 행복한 백수 생활에 차질이 생길 것 같으니까·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는 강자가 눈앞에 있다고 하더라도 놀고먹기를 바라는 내 백수 생활에 지장을 주는 생명체는 곰탕이보다 못한 존재로 취급해야 했었다·
이것이 빙의자의 생존 본능이니까·
로웬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제국의 기사 단장이 고작 말 한마디에 당황하는 진귀한 광경이었지만 나는 피어오르는 웃음을 참으며 다시 확고하게 말했다·
“가세요·”
“내가 누군지 모르나?”
“이번 겨울은 춥게 지낼 거니까 그냥 가시라고요·”
“···”
단호박 같은 말에 로웬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부여잡았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제발 가라·’
‘제발 가라·’
‘집으로 돌아가서 발이나 닦고 있어라·’
세상이 얼마나 흉흉한데 이런 누추한 곳에 왔을까· 그냥 돌아가세요· 라는 마음으로 나는 로웬에게 말했지만 로웬은 한숨을 푹 쉬면서 내게 말했다·
“잡상인으로 취급받는 건 처음이군·”
이런 취급이 재미있는 로웬이었다·
원작에서 로웬은 자기소개라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얼굴이 명함이자 자신의 검이 제국의 상징이었으니까·
자신을 모르는 건 이야기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판단하는 고고한 기사였다·
소설에서 로웬이 유리아와 처음 만났을 때·
-이분은 누구세요?
-나는 히스타니아···
-아무리 봐도 잡상인 같은데·
-···
잡상인이라고 유리아에게 무시당했던 로웬은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났던 묘사가 있었다· 나중에 미하일이 자신의 스승이라고 소개해줘서 오해를 풀 수 있었지만 로웬은 자신의 명성을 무시하는 것에 약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이름·
히스타니아라는 영향력·
제국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히스타니아 로웬의 명성은 대단했기에 이런 자신감이 생길 수 있는 거겠지·
‘나를 모른다면 공부해와라·’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원작의 지식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있는 거고 로웬이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는 거다·
로웬은 한숨을 깊게 뱉었다·
“나는 히스타니아 로웬이다·”
아무래도 내 작전이 통하지 않은 모양이다·
“제국의 기사단장이자· 제국의 검이라고 불리는 사내지·”
“···”
“너에게 할 말이 있어서 찾아왔다·”
로웬은 나를 보며 말했다·
반드시 들어야 할 답이라도 있는 것처럼 확고한 얼굴로 말하는데 빠져나갈 곳이 없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정중하게 숙이고 예의를 갖췄다·
“데스문트 올리비아 공녀님의 집사· 리카르도입니다·”
천천히 허리를 숙이고 인사하는 나는 로웬의 얼굴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제국의 검을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아까의 무례를 용서해줄 수 있겠습니까?”
어설픈 예의를 로웬에게 보여줬다·
연락을 안 하고 온 너의 잘못이 크다는 의미를 담아서· 나는 말했다·
“연락하고 와주셨으면 이런 추태를 보여드리지 않았을 텐데· 죄송합니다·”
“···됐다·”
로웬은 손을 저으며 내 잘못을 용서해줬다·
나는 로웬을 저택으로 인도하기 위해 정중히 말했다· ‘누추한 곳이지만 들어오시라고·’ 로웬은 가볍게 손을 저으며 거절했다· ‘용건만 말하고 갈 거니까· 괜찮다’라고 집에 들어오는 것을 거부했다·
다행이었다·
청소하지 않아서 저택이 개판이었으니까· 게다가 아가씨께서 로웬을 본다면 ‘대가리에 검밖에 없는 머저리’라고 할 것이 분명하기에 아가씨의 목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현명한 선택을 내려준 로웬에게 마음속으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터벅·
로웬은 나를 훑어봤다·
신은 신발부터·
허리춤에 맨 검과·
붉은 머리카락까지·
꼼꼼히 훑어보고는 내게 말했다·
“히스타니아 한나라고 알고 있나·”
“네 최근에 사귄 친구입니다·”
“친구···”
“네·”
로웬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본론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말릭에게 너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용감하고 재능이 있는 검사라고 그러더군·”
“과찬이십니다·”
고마운 물주님이다·
그런 아부를 떨어주고·
반갑지 않은 사람의 입에서 나온 칭찬이지만 나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무려 제국의 검에게 받은 칭찬이니까·
지난번에 말릭이 저택에 찾아왔을 때 한 가지 부탁을 내게 했었다·
-이봐 리카르도·
-네·
-한 가지 부탁을 해도 될까··?
아버지와 한나가 화해하는 것을 도와달라는 부탁·
자신도 내 도움 덕분에 화해할 수 있었으니까 내 도움이 있다면 한나도 아버지에게 마음을 열지 않겠냐는 마음으로 말릭이 조심스럽게 부탁을 했었지만·
-싫습니다·
나는 말릭의 부탁을 단호하게 거절했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남의 가정사에 외부인이 끼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무관심 때문에 한나가 죽는 미래를 알고 있기에 더더욱 그 일에 끼고 싶지 않았고·
평생을 괴롭혀왔던 아버지에게 마음을 열라는 잔인한 말을 나는 하고 싶지 않았다·
까놓고 말해서 내가 한나에게 아버지와 잘 해보라고 말한다고 해서 한나가 그대로 할 것 같지도 않았으니까·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건 한나의 의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말릭의 부탁을 거절했었다·
남의 가정사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으니까·
세상에서 가장 피해야 될 일이 남의 가정사에 끼어드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차갑게 식은 눈빛으로 로웬의 입에서 나올 말을 기다렸다·
“한 가지 부탁이 있어서 왔다·”
“한나에게 검을 쥐여준 너라면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한나의 손에서 검을 놓게 하는 방법을·· 아니 한나가 검을 놓게 만들어줘라·”
나는 주먹을 쥐었다·
“그게 아버지가 할 소리입니까·”
“주제가 넘구나·”
“제가 고아라서 주제 파악을 못 합니다·”
로웬의 몸에서 푸른 오러가 폭발적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의 강렬한 오러·
나는 그와 반대로 옅은 오러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이길 수는 없지만 목덜미를 물어뜯을 수 있도록 영악하게 움직이려고· 손끝에 오러를 모았다·
곰이라도 벌침을 쏘이면 아파하니까·
로웬이 검을 뽑자·
나 역시도 검을 뽑았다·
서로의 오러가 검 끝에 모이자·
2층에서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다·
“경비대! 놀고먹고 하는 세금 도둑들아! 여기 도둑 들었어!!!”
아가씨는 곰탕이를 번쩍 들고 얼굴을 숨기고 있었다·
“싸···싸우지마!”
아가씨는 눈을 질끈 감고 떨고 있었다·
어지간히 내가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푸핫··! 네 알겠습니다·”
나는 작은 웃음을 짓고 검을 넣었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로웬을 향해 말했다·
“가세요· 아무래도 기사 단장님께서는 한나씨랑 친해지기는 틀린 것 같습니다·”
등 뒤에서 로웬의 ‘건방진 놈’이라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나는 가볍게 무시하고 저택으로 올라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reader님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항상 감사합니다!
추신)
양심 고백 하겠습니다·
이 요정 이번 화가 맛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본래는 로웬과 리카르도가 치열하게 싸우는 것을 목표로 했지만·
공녀님 앞에서 차마 싸울 수 없어서···
발전하는 요정이 되겠습니닷!
[후원 감사]
하늘연달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항상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밖에 비가 오고 있군요··· 이 수정요정 감성요정이 되어버렸습니다·
독자님에게 비가 오는 날에 가방에 우산이 있는 우산의 요정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비공개로 100코인 후언 감사합니다!
히에엣!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스로리가 루즈해지지 않을까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요정입니다·
폭발적인 느낌을 쓰고 싶지만 쉽지만은 안네요·
이 요정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독자님에게는 첫눈이 내리기 날 아름다운 사람 혹은 함께 있고 있는 사람과 함께 볼 수 있는 명장면의 요정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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