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4
첫눈이 내린 다음 날·
창밖에는 폭설이 내리기 시작했다·
하루에 사이에 내린 눈은 거리를 하얗게 뒤덮었고 화려한 단풍이 가득했던 산맥은 빙수처럼 하얗게 변해가고 있었다·
“누우우우운!!”
창문을 열고 눈은 만져보기 위해 손을 내미는 아가씨·
이불로 몸을 꽁꽁 싸매고 낑낑거리는 아가씨는 감기 걸린다는 집사의 말을 무시하고 눈과 접촉을 시도하고 있었다·
“리카르도 밖에 눈이 엄청 내려·”
아가씨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한번 내 눈치를 쓱 보더니 창틀에 쌓인 눈을 손가락으로 찍어 입으로 가져대는 아가씨·
“으에에에··· 맛없어·”
자연이 준 선물이 맛없다고 투정을 부리는 아가씨였다·
“먹으면 지지입니다·”
“알아·”
“근데 왜 먹습니까·”
“맛있게 생겼잖아·”
확실히 납득이 가는 이유였다· 나는 아가씨의 합리적인 이유에 고개를 끄덕이고 창밖에 내리는 눈을 봤다·
함박눈이 내리는 하멜·
어제 봤던 첫눈은 아름다웠는데 오늘은 왜 재앙처럼 보이는 걸까· 훈련소 때 봤었던 첫눈처럼 처음은 아름다웠지만 다음 날은 재앙으로 보였던 것처럼 제설할 생각에 암울해지는 집사였다·
‘언제 다 치우지·’
귀찮은 집사였다·
아가씨는 창문을 활짝 열고 겨울을 만끽하고 계셨다· 바람에 흩날리는 눈을 손으로 만지기도 하고 손안에서 녹아내리는 눈을 지그시 보며 말썽꾸러기 같은 미소를 지으시는 아가씨·
“오···”
-휘이이잉!
“으···”
차가운 바람이 크게 불자 아가씨의 얼굴에 눈바람이 들이닥쳤다·
“히엣· 차가워···”
차가운 눈을 한가득 뒤집어쓴 아가씨는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엣췽! 으으 추워·”
눈에 대한 호감도가 실시간으로 떨어지는 아가씨였다· 나는 열린 창문을 닫으며 아가씨에게 잔소리를 시전했다·
“감기 걸리니까 창문 열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바람이 나를 싫어해·”
“아가씨가 너무 예뻐서 그러는 겁니다·
“웅···”
이불을 꼭 끌어안는 아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하기 덧없이 싫은 날이다·
이불 속 누워서 빈둥거리고 싶었지만 빈곤한 지갑이 눈치 없게 집사의 등을 떠밀고 있었다·
어제 돈을 많이 쓰기도 했었고·
아가씨의 생일도 다가오고 있으니까·
어깨를 짓누르는 귀찮음을 간신히 이겨낸 나는 의자에 걸어뒀던 코트를 집어 들었다·
검은색 울로 만들어진 코트· 3년 전 아가씨께서 생일 선물로 사줬던 나름에 추억이 담긴 코트였다·
내가 가진 옷 중에서 가장 비싸기도 했고·
코트를 팔목에 걸친 모습에 아가씨는 머리에 물음표를 띄우셨다·
“어디가?”
“보물찾기하러 갑니다·”
“보물찾기? 나도 할래·”
“밖에서 하는 건데요?”
“···”
보물찾기라는 흥미로운 일에 설렜던 아가씨는 살벌한 바람이 부는 밖을 보자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나가면 얼어 죽어·”
보물찾기를 깔끔하게 포기하는 아가씨였다· 아가씨는 창밖을 보며 말했다· 밖에 나가면 춥다고 집에서 자신과 함께 백수의 길을 걷자고 제안하는 아가씨·
“집 나가면 개고생이랬어·”
끌리는 제안이긴 했지만 동굴에 숨어있는 보물이 도망갈 수 있기에 아쉬운 마음으로 아가씨의 제안을 거절했다·
“꼭 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내일부터 열정적인 백수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나 백수 아니야· 집 지키는 경비원이야·”
2년째 결근하지 않고 열정을 다하는 직장을 무시하는 내게 화가 난 아가씨였다·
아가씨는 따뜻한 곰탕이를 내밀며 말했다·
“이거라도 가져가 따뜻할 거야·”
-곰?
반려견에서 손난로가 된 곰탕이·
곰탕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아가씨의 손을 핥았다·
“으엣·· 간지러·”
-고오오옴·
“가만히 있어· 리카르도가 가져가야 하니까·”
-고오오옴···
아가씨와 마찬가지로 나가는 걸 싫어하는 곰탕이었다·
“푸핫···· 괜찮습니다· 금방 끝날 일이라서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아가씨의 품에 곰탕이를 돌려보내고 허리춤에 검은색 도신이 반짝이는 티르빙을 찼다·
방을 나서기 전·
나는 고개를 돌려 곰탕이를 끌어안고 있는 아가씨를 바라봤다·
“드시고 싶은 거 있으십니까?”
“음··· 따뜻한 거·”
“그럼 녹차로 사 오겠습니다·”
“그거는 사람이 먹는 게 아니야·”
아가씨를 놀리는 게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다·
아가씨는 손을 흔들고 계셨다· 맛있는 것을 사 오라며 청년 집사를 응원하는 아가씨·
비어있는 아가씨의 하얀 손목이 유독 눈에 띄었다·
‘꼭 선물해야겠네··’
사주지 못하면 미련이 남을 것 같았다·
문고리를 꼭 쥐며 소설에 언급됐던 기연을 생각한 나는 손을 흔들고 있는 아가씨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다녀오겠습니다·”
“응· 집 잘 지키고 있을게·”
“네”
끼익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고 곧이어 눈바람을 맞으며 걸어가는 내 모습이 창문 밖에 보이고 있었다·
-휘이이이잉
머리에 눈이 쌓여가는 내 모습·
“히에에엑!!! 리카르도가 눈사람 된다!!”
아가씨의 경악한 목소리에 미소를 지으며 나는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다·
목적지는 탈옥의 귀재가 있는 곳·
소설에서 탈옥에 성공하면 하멜의 산맥에 있는 아지트에 숨는다는 언급이 있었기에·
나는 마음속으로 그가 탈옥에 성공하기를 빌고 있었다·
‘있으려나·’
이제 슬슬 탈옥할 때가 됐는데·
오랜만에 곤충이 보고 싶은 나였다·
***
어두컴컴한 동굴 안·
죄수복을 입고 있는 한 명의 남자가 추위에 몸을 벌벌 떨며 무릎을 끌어안고 있었다·
남자의 이름은 ‘파스칼’
수많은 모험가를 학살한 악인이었다·
“으아아··· 추워···”
앙상한 몸을 떨며 모닥불을 붙이기 위해 돌을 내려치는 파스칼의 모습은 구석기 시대의 유인원을 보는 것 같았다·
탈옥하면서 넝마가 된 옷·
감옥에서 있으면서 자르지 못한 머리카락은 떡이져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있었다·
딱···
부싯돌을 내려치는 소리가 동굴 안에 벙벙하게 울렸다·
“그 꼬맹이 자식만 아니었으면 이런 수모를 겪지 않아도 됐는데·”
하멜의 산에서 예술에 집중하고 있던 자신을 방해한 붉은 머리의 검사·
파스칼은 그가 원망스러웠다·
자신의 예술을 무시했던 꼬맹이가·
그리고 이제 거울을 볼 수 없게 만든 꼬맹이가 파스칼은 치가 떨리도록 싫었다·
그날 이후 파스칼은 거울을 볼 수 없었다·
-사마귀·
-곤충박람회·
-와우··· 어떻게 사람 얼굴이 그렇게 생겼습니까···?
거울을 보면 사마귀가 생각나서·
바퀴벌레도 무서워하는 자신이 곤충을 닮았다는 소리가 충격적이었지만 가장 두려운 것은 거울을 볼 때마다 닮았다고 인정하는 자신이 두려운 파스칼이었다·
동굴의 웅덩이에 비친 얼굴이 보이자· 파스칼은 고개를 저으며 강한 부정을 했다·
“아니야· 나는 잘생겼어· 못생긴 건 그놈이지· 내가 아니야·”
파스칼은 복수를 다짐하며 부싯돌을 내려쳤다·
두고 보자· 언젠가 복수할 거라는 다짐으로 열심히 부싯돌을 내려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죽일 거야·”
처참하게·
“복수할 거야·”
그놈 때문에 당했던 수모를 배로 돌려주겠다고 마음속으로 온갖 저주를 퍼붓는 파스칼·
끓어오르는 감정이 정점을 찍었을 때 ‘팟’하는 소리와 함께 마른 가지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따뜻한 열기가 손에 느껴지자 파스칼은 허겁지겁 준비한 땔감을 불씨에 넣기 시작했다·
“···봐 나도 할 수 있다고·”
기분이 좋아지는 파스칼이었다·
“훌쩍··”
파스칼의 눈에서 작은 눈물이 새어 나왔다· 주책맞게 눈물을 흘리는 파스칼은 뭉클한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그래···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면 되는 거야·”
자신에게 흑마법이 있으니까·
사람을 조종할 수 있는 흑마법·
이교도라는 집단에서 스카우트가 올 정도로 강력한 흑마법이었다·
처음 제의가 왔을 때 자유로운 예술을 위해서 거절했지만 지금은 찬물 더운물 가릴 처지가 아녔다·
이교도에 들어가 피의 복수를 하자고 다짐한 순간·
-저벅·
동굴의 끝자락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파스칼은 재빨리 단검을 손에 쥐었다·
‘칫···· 추격자인가 흔적은 꼼꼼하게 지웠는데·’
추격자가 따라붙지 못하도록 최대한 흔적을 지우면서 도망갔는데 제법 실력이 있는 추격자가 따라붙었다고 생각한 파스칼은 침을 꿀꺽 삼켰다·
모험가일 수도 있고·
추격자일 수도 있지만·
아마 후자에 가깝겠지·
어쩌면 잘된 일일지도 모르겠다·
바닥난 어둠의 마력을 보충할 기회일 지도 모르니까·
흑마법에 사용되는 어둠의 마력은 사람마다 보충하는 법이 달랐다·
누군가는 감정을 소비하는 것으로·
누군가는 기억을 대가로·
유명한 제국의 흑마법사는 신체 부위를 대가로 흑마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제약이 되는 부분이 많은 건 사실이었다·
대신 효과는 그만큼 폭발적이었지·
자신의 방법은 살인이었다·
가장 보편화 되어있고 흔한 어둠의 마력의 보충방식·
찾아온 위험이 기회라고 생각하는 파스칼은 아련한 눈으로 불이 붙은 모닥불을 바라봤다·
‘꺼야겠지···?’
고생으로 얻은 모닥불을 떠나보내기 싫은 파스칼이지만 가까워지는 발소리에 결정을 내려야 했다·
“젠장···!”
파스칼은 눈을 질끈 감고 신발을 신지 않은 발바닥으로 모닥불을 꺼뜨렸다·
작열감이 발바닥에 후끈하게 달아오르자 신음이 나올 것 같았지만·
‘참자···참아···’
입을 막고 예술의 정신으로 버티는 파스칼이었다·
-저벅···저벅··
-여기 있을 것 같은데·
침입자의 목소리가 동굴의 벽을 타고 울려왔다·
젊은 남성의 목소리·
20대 정도 되는 것 같은데·
잘하면 이길 수 있겠어·
기습만큼은 자신 있으니까·
감옥에서 놀고먹고만 한 것이 아닌 파스칼은 아끼고 아꼈던 어둠의 마력을 단검에 불어넣기 시작했다·
검은색으로 일렁이는 단검·
-쓰으으읍··· 여기 있을 것 같은데·
중얼거리는 남자의 목소리가 가까워지자 파스칼은 굽혔던 다리를 단번에 펴며 검은 그림자를 향해 몸을 던졌다·
‘됐다·’
적이 예측하지 못할 완벽한 타이밍에 파스칼은 기습했다·
파스칼은 소름이 돋았다·
너무나 완벽한 기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상황이 따라줬고 자신의 간절함이 빛을 발하며 완벽한 기습에 성공했다는 생각에 파스칼은 희열을 느끼며 특유의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키키킬··· 불행하게 됐습···”
파스칼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절망에 빠진 눈을 보고 싶어서·
피를 토하며 공포에 젖은 눈을 보여달라고 파스칼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그리고 파스칼의 얼굴은 공포로 젖어갔다·
“어···라?”
붉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남자·
탈옥에 성공하면 가장 만나고 싶었지만 지금은 가장 만나기 싫은 남자가 혼신의 일격을 담은 단검을 무표정하게 잡고 있었다·
고작 두 손가락으로·
남자는 옷이 긁히지 않았나 확인한 뒤 안도의 한숨을 뱉으며 말했다·
“이야~ 오랜만입니다!”
자신을 감옥으로 보냈던 남자는 밝은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번데기가 됐을 줄 알았는데 잘 살아계셨군요?”
파스칼은 남자를 보며 소리쳤다·
“아니···!!!!”
“왜 나만 가지고 그러는 건데!!!”
남자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곤충박람회를 가기에는 돈이 아까워서···”
파스칼은 몸을 던졌다·
남아있는 모든 어둠의 마력을 써서라도 도망가겠다고 심장에 느껴지는 통증을 이겨내며 리카르도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지만·
“당랑권···!”
비아냥거리는 놈의 모습에 파스칼은 눈물을 머금고 말았다·
‘x발’
복수고 뭐고 앞으로 이놈이랑 엮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파스칼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reader님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항상 감사합니다!
수면 이슈로 퇴고가 덜 됐습니다·
맛이 있을 지·· 모르겠습니닷!
죄송합니닷!
후원 감사 멘트는 다음 회차에 쓰도록 하겠습니다!
추신)
본래 이번 회차···
리카르도가 선물을 사주지 못해 자책하는 어두운 회차가 되었을 예정이지만!
틀어버렸습니다! 에잇!
참고로 파스칼이 아가씨에게 복수하는 전개 따위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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