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7
오늘도 평화로운 저택의 마당
아가씨는 긴장된 눈으로 마당에 주차된 페x리 1호를 보고 있었다·
생일이 지나고 1주일 뒤·
보호 마법의 성능에 대한 검증을 끝낸 뒤 아가씨의 시승식이 거행되는 역사적인 시간이 찾아왔다·
집사의 등 오너에서·
페x리 오너가 된 아가씨·
난폭운전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도 아가씨의 눈에서 초보운전자의 긴장감을 엿볼 수 있었다·
“음···”
빠르게 변화하는 제국의 유행을 반영해 검은색에서 빨간색으로 디자인이 수정된 페x리 1호를 보고 있는 아가씨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오··· 오···옴마야···”
매끈한 바디·
붉은색으로 도색된 고급스러운 컬러와 최고급 메모리폼으로 만들어진 의자가 인상적인 휠체어·
발판이나 등받이 손잡이에 복잡한 버튼이 달려 있긴 했지만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어간 덕분인지 난잡하게 보이지 않는 휠체어였다·
나는 아가씨를 공주님 안기로 들어 올려 페x리 1호기에 조심스럽게 아가씨를 앉혔다·
푹신하게 느껴지는 쿠션감에 눈을 동그랗게 뜨는 아가씨·
“오···”
감탄이 멈추지 않는 아가씨였다·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쿠션을 느꼈고 등받이에 등을 내리치며 견고함을 테스트하는 아가씨는 엄지손가락을 척하고 올렸다·
“합격···!”
만족스러워하는 아가씨의 미소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머리에 헬멧을 씌워줬다·
“좋습니까?”
“웅”
“다행입니다·”
“그럼 주의사항에 대해 몇 가지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제 말씀드렸는데 기억 못 하실 것 같으니까요·”
“웅· 다 까먹었어·”
역시나 예상을 피해가지 않는 아가씨였다·
나는 손가락 세 개를 펴고 설명을 시작했다·
“하나· 술 먹고 운전금지·”
“응”
“둘· 사람 치는 것 금지·”
“화나게 하는 사람은?”
“음··· 그건 허락하도록 할까요?”
“응”
아가씨의 합리적인 제안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나는 아가씨의 허리에 안전벨트를 채우며 말했다·
“과속은 금지입니다· 특히나 레버 옆에 불꽃 그림이 보이시죠?”
아가씨는 팔걸이 쪽을 힐끔 바라봤다·
“이거?”
불꽃 모양이 그려진 버튼을 보고 머리에 물음표를 띄우는 아가씨·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호기심 어린 아가씨의 눈빛에 긍정의 답을 해줬다·
“네 그거요· 그거는···”
“에잇!”
-꾸우우욱·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가씨는 버튼을 눌렀다· 잘했냐는 표정으로 나를 보는 아가씨·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어··· 그거 누르면 안 되는데·”
‘부릉’하고 떨리는 페x리 1호기에 잘못됐음을 느끼는 아가씨는 당황한 눈으로 나를 봤다·
“누르면 안 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눌렀는데····”
“어··· 음··· 화이팅?”
나는 황소 같은 울음소리를 내는 페x리 1호기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보호 마법은 확실하게 되어있으니까 아무 데나 박아도 괜찮겠지· 라는 믿음을 가지고 당황한 아가씨를 향해 작별의 인사를 건넸다·
“조심 운전하세요·”
-부아아아앙!!!
“히잇···”
아가씨는 멀리 날아갔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악!!!”
마당을 달리는 아가씨의 휠체어·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해···!”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드디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페x리 1호기의 웅장한 자태에 눈물을 훔치며 나는 아가씨의 뒤를 쫓아갔다·
“끼야야야야야악!!! 흐엣··· 흐에에엣!”
아가씨의 환호성을 들으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이제·· 다른 에피소드가 슬슬 시작할 텐데·’
아카데미 2학년의 끝자락· 본격적으로 이교도와 부딪칠 유리아를 생각하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뭐 알아서 하겠지·’
처참하게 밟힐 에피소드니까·
미하일에게 패배를·
유리아에게 충격을·
루인에게 무력함을 주는 에피소드·
이번 에피소드를 통해 그들이 성장하기를 바라며 나는 아가씨의 뒤를 쫓아갔다·
“어떻습니다! 페x리 1호기가!”
“끼야야야야야야약!!!!”
“좋아하셔서 다행입니다·”
“흐잇··· 호에에에에엣!!!”
좋아하셔서 다행이다·
*
수도 지하의 던전·
세 명의 인영이 습기 가득한 던전 바닥을 밟으며 지하로 내려가고 있었다·
“어두우니까 조심해· 유리아·”
“응 고마워·”
“미하일 너도 조심하던지·”
“···그래”
분홍색 머리카락을 가진 유리아·
오러를 깨우친 미하일·
그리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걷는 루인이 어두운 던전의 지하를 내려가고 있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은 루인은 구시렁대며 혼잣말을 했다· 짜증 나는 일이 있는 모양인지 화를 내는 루인의 혼잣말은 제법 크게 던전을 울렸다·
“마법 학부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왜 황실에 떠벌리는 건지···”
“시끄러워 루인· 학생회장님도 생각이 있으니까 그러신 거겠지·”
“그니까 그게 마음에 안 든다고· 검밖에 모르는 멍청아·”
티격태격하며 싸우는 미하일과 루인·
상성이 맞지 않은 두 사람 사이에 선 유리아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싸움을 말렸다·
“다들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야지·”
“뭐라고 했냐·”
“왜 한 대 치겠다?”
사이가 좋지 않은 둘이었다·
*
일의 시작은 학생회 회의에서 비롯됐다·
오늘 오전 학생회장 샤르티아는 학생회 임원들을 모아놓고 아카데미에 돌고 있는 소문에 대해서 말을 꺼냈다·
-다들 소문 들었지? 지하 던전에서 마법 학부 2학년이 실종됐다는 거·
-거짓말 아니에요? 공부하기 싫어서 땡땡이친 것 같은데·
-하아··· 나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마지막에 던전 안으로 들어가는 걸 봤다는 목격자가 나와서···
다크서클이 짓게 내려온 샤르티아는 임원들을 향해 말했다·
-거의 확정인 것 같거든· 그놈 기숙사 방에서 이상한 것도 나왔고·· 아니다· 일단은 이상한 소문 새어나가지 않게 입단속 잘하고 있어· 저번 일 때문에 아카데미 분위기도 안 좋으니까·
-특히 루인 너·
-왜요·
-지난번처럼 마법 학부 학생이라고 찾아다니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황실에서 수색대 파견해준다고 했으니까·
샤르티아는 루인에게 당부했었다·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가만히 있으라고·
하지만 같은 마법 학부의 학생이자 마탑 출신의 친우에 실종 소식에 루인은 가만히 있을 위인이 아녔다·
회의가 끝나고 루인은 유리아를 찾아갔다· 자신과 같이 ‘한스’를 찾으러 가지 않겠냐고·
1학년 때부터 ‘한스’와 친구였던 유리아 또한 자신과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해서 건넨 제안·
-유리아· 나 한스 찾으러 갈 건데 같이 갈래?
-학생회장님이 가만히 있으라고 하셨잖아·
-수색대가 언제 올 줄 알고· 그리고 유리아도 알잖아 한스 그놈이 수업을 땡땡이 칠 놈이 아니라는 거· 분명 던전에서 미발견 지역을 발견해서 그런 거 같거든·
-그치만···
-가자·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사라진 마법 학부의 2학년 ‘한스’
루인과 같은 마탑의 출신이며·
소심한 성격으로 친구가 별로 없던 2학년생도였다·
어릴 적부터 친구였던 루인이 데리고 다니며 유리아와 안면을 튼 사이였기에 유리아 또한 루인의 제안해 따르기로 했었다·
유리아는 오지랖이 넓으며·
실력에 자신 있었으니까·
동기인 리카르도에 비하면 형편없는 실력이지만 아카데미의 황금기라 불리는 자신들은 어지간한 수색대보다 뛰어나단 것을 유리아는 알고 있었다·
그렇게 편성된 실종자 수색대·
마법 학부의 수석 루인·
치료 학부의 영재 유리아·
그리고 유리아가 걱정되어 따라온 미하일까지·
아카데미의 황금기를 이끄는 파티가 결성되게 되었다·
*
-저벅·
눅눅한 지하로 내려가는 유리아의 신발에는 끈적한 진흙이 달라붙었다·
‘후우··· 괜찮아 1년도 더 지난 일이잖아·’
믿었던 친구들에게 낙오가 됐던 끔찍한 추억이 있던 장소· 던전의 지하로 내려가는 유리아는 긴장감에 주먹을 쥐었다 폈다가를 반복했다·
‘괜찮아···’
1년이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그날의 공포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유리아였다·
-애들아···?
-어디 간 거야···?
홀로 던전에 낙오된 기억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자 유리아는 어깨를 떨며 나쁜 생각을 지워냈다·
“추워?”
옆에 서 있는 루인은 어깨를 떠는 유리아를 보며 말했다· 자신의 옷을 벗어주려는 루인· 유리아는 고개를 저으며 루인의 손길을 거절했다·
“아니야 조금 쌀쌀한데 버틸 만해·”
“그래? 추우면 말해· 파이어볼 만들어 줄 테니까·”
“응 그럴게·”
다시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기세 좋게 던전에 내려왔지만 아무런 정보를 듣지 못했으니까·
막막한 걸음으로 던전을 내려가던 중·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루인은 입을 열었다·
“아 맞다· 저번 주에 그놈 만났다?”
“그놈?”
“리카르도 말이야·”
-움찔·
루인의 갑작스러운 말에 유리아와 미하일은 어깨를 움찔거렸다· 최근 그에게 도움을 받았고 쓴소리를 들었던 남자의 이름을 말했으니까·
함부로 말하기 어려운 이름이었다·
동시에 거북하기도 했고·
분명 도움을 준 사람이지만·
동시에 자신을 괴롭힌 사람의 이름을 끔찍한 기억이 남아있는 장소에서 듣는 건 그리 기분이 좋지 않았다·
유리아의 차가운 표정을 보지 못한 루인은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을 주절거렸다·
“마탑 일 때문에 하멜에 갔었거든· 아카데미로 돌아오는 길에 괜찮은 팔찌를 하나 봐서 사려고 했는데· 거기에 그놈이 있더라고·”
루인은 하멜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리카르도에게 험한 말을 들었고 가게 주인과 리카르도가 안면이 있던 사이라서 사지 못했다고·
선물하려고 했는 데 해주지 못해서 아쉽다는 말을 루인은 투덜거리며 이야기를 했다·
“다시는 거기 안 가· 마법 학부에 소문 다 낼 거야·”
유치한 장난을 꾸미는 루인이었다·
한참을 떠들 던 중·
“하아···하아···”
깊은 곳에 내려갈수록 창백하게 변하는 유리아의 안색에 루인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유리아 왜 그래!?”
“그냥 속이 안 좋아서·”
던전 안에서 친구에게 심한 말을 들었던 유리아·
-처음부터 재수 없었어·
-평민 주제에 왜 이렇게 까부는 거야·
-친구? 누가 네 친구야·
나쁜 기억에 속이 울렁거리고 있었다·
상처 주는 말을 뱉고 사라진 친구들·
그리고 홀로 남은 자신·
갑자기 몰려드는 몬스터를 피해 지하까지 도망친 것을 기억하지만 이다음의 일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유리아였다·
이후 리카르도의 손에 구해졌다는 말을 들었지만 아무런 기억이 남아있지 않았다·
또 ‘너’라는 원망과 모든 게 리카르도가 꾸민 일이라는 원망을 했던 과거의 기억이 조금씩 유리아의 머리를 스쳤다·
-적당히 좀 하세요! 나는 나는··· 당신을 믿었는데··
-당신은 다를 줄 알았는데···!
-꺼져··· 다시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요·
생각하기 싫은 과거였다·
화가 났고 무서웠으니까·
어두운 던전에 홀로 남은 그 순간이 생각나서 속이 비릿해지는 유리아였다·
창백해진 유리아의 얼굴을 보자 루인은 이를 까득 깨물었다·
“리카르도 이 개새끼····”
중얼거리는 루인은 힘겨워하는 유리아를 걱정하며 돌아가자는 말을 했지만 유리아는 고개를 저으며 심층을 향해 걸어갔다·
“···괜찮아· 속이 안 좋은 것뿐이니까· 별일 아니야·”
“하아···”
리카르도가 더욱 싫어지는 루인이었다·
세 사람은 더 깊은 지하를 향해 내려갔다· 중간중간 언데드 나이트나 구울 같은 몬스터들이 나타났지만 유리아의 간단한 손짓 한 번에 사라지는 몬스터들에 큰 위험은 없이 지나갈 수 있었다·
“하아···하아··”
미하일은 유리아의 안색을 보더니 걱정스러운 말을 뱉었다·
“괜찮아?”
“어·· 응· 조금 힘드네·”
“안 되겠다· 돌아가자·”
미하일은 옆에 있는 루인을 흘겨보며 말했다· 상태가 안 좋으니 조금은 포기하자는 눈빛으로·
루인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실종자를 찾는 것도 좋지만 유리아의 건강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주머니에 넣어놨던 손을 빼고 유리아를 부축하기 시작했다·
유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괜찮아· 그냥 조금 답답한 거니까··· 걷다 보면 괜찮아 질 거야·”
“그래도···”
유리아는 오싹한 기분을 떨쳐내며 힘차게 앞으로 나아갔다·
“괜찮다니까·”
“힘들면 말해·”
“응·”
안 좋은 기억이 자꾸만 흐릿하게 떠오르는 유리아·
유리아는 붕붕 고개를 저으며 상념을 떨쳐내기를 애썼다·
“빨리 찾자· 한스도 지금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그때였다·
-끄아아아아악!!!
가까운 곳에서 남자의 비명이 들려온 것이·
유리아는 고개를 돌렸다·
어두컴컴한 길이 이어지는 복도의 끝을 봤다·
횃불이 밝히고 있던 던전의 복도와 다르게 빛 한점 들어오지 않는 던전의 벽면에 뚫린 구멍이 유리아의 눈에 들어왔다·
남자의 비명이 들린 곳이었다·
유리아는 검은 구멍을 보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왜··· 익숙하지?’
분명 처음 보는 곳 같은데·
이상하게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한번 와 본 것처럼 말이다·
낙오된 그 날 이후 찾아오지 않은 던전이었지만 수많은 과제를 해봐서 유리아는 대략적인 던전의 지리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구멍은 처음 보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훈련을 위해 수없이 던전을 찾아왔던 미하일 루인도 이 던전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었을 거다·
눈앞에 어두운 구멍은 처음 보는 것이라고·
그치만 유리아는 묘하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와본 적이 있는 것 같은·
순간 ‘팟’하고 흐릿한 기억이 유리아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뛰어요·
-···
-뛰라고요·
붉은 머리 남자의 인영이 스치는 순간·
“이런 곳이 있었나?”
미하일의 의문이 복잡했던 정신을 깨워줬다·
“뭐야? 너도 몰라?”
“어· 나도 처음 보는 곳인데·”
“와·· 씨·”
루인은 검은 공간을 보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미발견 지역이라며 괜찮은 아티팩트가 있을 거라고 설레발 치는 루인·
동시에 세 사람은 직감하고 있었다·
이곳에 한스가 있을 거라고·
본능적인 직감과 함께 느껴지는 확신에 루인의 얼굴에 화색이 돋기 시작했다·
“가자·”
침을 꿀꺽 삼킨 루인은 검은 공간을 보고 말했다·
“여기 말고 다른 곳도 없잖아·”
긴장되긴 했지만 남자의 비명을 지나칠 수 없는 세 사람은 검은 구멍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유리아를 부축한 미하일은 말했다·
“유리아 갈 수 있겠어?”
유리아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푸른 창이 눈앞에 나타났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reader님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항상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회차는 휴재입니닷!
수면 이슈로 인해 후원 감사 멘트를 다음 회차에 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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