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9
루인은 한스를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다·
탑주의 손에 입양되어 마탑에 적응하지 못했던 자신에게 손을 내민 유일한 친구였고·
-이름이 뭐야·
-네가 알아서 어쩌게·
-나는 한스야· 성은 없어!
-누가 자기소개하랬냐·
-···엄청 예민하네· 그래도 괜찮아! 이제부터 친해지면 되니까·
-뭐래·
더러운 성깔을 받아주는 얼마 안 되는 친구였으니까·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마탑에서 동고동락하던 친우였다· 고아인 점도 비슷했고 살아온 환경도 비슷했던 친구· 마법을 좋아하는 것 또한 같았던 둘이었기에 친하게 지냈었지·
늘지 않는 마법 실력 때문에 직계 제자에서 떨어진 한스였지만 아카데미에 와서 이야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푸는 친구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한스가 실종되기 하루 전 한스는 술병 하나를 들고 루인의 방을 찾아왔었다· 평소 술을 좋아하지도 않던 한스의 등장에 의아한 루인이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루인··· 나 마법을 그만둘까 봐·
-뭐래 병신아· 마법 접으면 뭐 먹고 살려고·
-그냥···· 너랑 다른 친구들이랑 비교당할 때마다 이 길이 나의 길이 아닌가 싶고 아무리 노력해봤자 하급반을 탈출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지랄 말고 하던 거나 열심히 해라· 아카데미만 졸업하면 괜찮은 가문에 취업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할배가 좋은 곳에 꽂아주지 않겠냐?
-···그런가·
-너도 나처럼 최선을 다해봐· 나도 놀기만 한 건 아니니까·
-···최선을 다하라고?
-어· 아득바득 노력을 해보라고·
-목숨을 걸어서라도?
-병신· 당연한 거 아니냐·
속에 있는 마음을 털어놓은 한스는 그날 개운한 표정으로 루인의 방을 나갔었다·
-루인 네가 그러라고 했다·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떠난 한스·
그때까지 루인은 일이 이렇게 커질 거로 생각하지 못했다·
조금도 말이다·
*
마법진은 붉은빛을 내기 시작했다·
마법진 위에 쌓여있던 시체들은 검은 액체로 변하며 시전을 위한 양분으로 변하였고 마법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마력은 시전자인 한스의 몸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끔찍한 악의로 이루어진 어둠의 마력을 막기 위해 유리아는 신성력을 쏟아내며 억제해 봤지만 어설픈 유리아의 신성력은 정교하게 만들어진 마법을 막지 못하고 있었다·
마법의 이름은 ‘변태(變態)’
마법사라는 허물을 벗고 흑마법사로 다시 태어나는 마법으로 100년 전 제국을 공포로 물들였던 ‘칼립스’라는 흑마법사가 고안해낸 마법이었다·
사람의 영혼이 많이 모일수록 능력 강도는 달라지고 시전자의 욕망에 따라 능력의 종류가 결정되는 사악한 마법·
1년 전 어느 날·
던전에서 훈련을 하던 중 한스가 발견한 마법이었다·
-쿠구구구구구구····
웅장한 소리와 함께 대지를 울리는 마법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의 비명이 울리기 시작했다·
피부를 찌르는 듯한 악의가 세 사람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자 미하일은 루인에게 소리쳤다·
“루인!”
“···”
“뭐 하는 거야! 빨리 돌아와!”
미하일의 말은 루인에게 들리지 않았다
모든 게 거짓말 같았다·
개미 한 마리도 못 죽이던 자신의 친우가 살인이라는 무서운 일을 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으니까·
제단 한가운데 서서 광기 어린 미소를 짓고 있는 친우의 모습이 믿기지 않았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한스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흑마법을 각성하는 한스는 광소를 짓고 있었다· 끓어오르는 힘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한스·
“쉽게 강해질 방법이 있는데 왜 돌고 돌았던 거지? 수식이나 연산 같은 귀찮은 걸 공부할 필요가 없었는데· 말이야·”
루인은 이를 악물고 한스에게 물었다·
“한스 한 가지만 물어볼게·”
“응?”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네가 죽인 거야?”
한스는 조금의 고민도 없이 답했다·
“응· 어차피 사람을 죽이려고 배우는 마법인데 어때서?”
루인의 붉은 구체가 터질 듯한 열기를 내며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셀 수도 없는 많은 불꽃의 구체를 한스는 신기한 듯이 보고 있었다·
“또 성장한 거야? 어디까지 강해지려고·”
“성장한 게 아니라 노력한 거야·”
“그치 노력··· 나도 많이 해봐서 알거든·”
한스는 ‘딱’하는 소리와 함께 손가락을 튕겼다·
손가락을 튕김과 동시에 검은 파장이 바닥을 향해 퍼졌고 루인이 만들어낸 구체는 ‘푸시식’소리를 내며 사라지기 시작했다·
루인의 눈동자는 크게 떨렸다·
한스는 당황한 루인을 향해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자신이 겪어보고 깨달은 철학을 말하듯· 덤덤하게 한스는 말을 이어갔다·
“루인· 재능의 영역과 노력의 영역은 완전 다르더라· 하루 종일 도서관에 틀어박혀 있어도 재능은 따라갈 수 없더라고·”
“안 그래 루인? 아···· 너는 다르려나 마법처럼 쉬운 게 없다고 했으니까· 너는 다르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한스는 루인을 올곧게 보고 있었다·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루인의 코앞까지 다가온 한스· 작은 키 때문에 루인을 올려다보고 있었지만 압도적인 마법을 보여준 한스는 작게 보이지가 않았다·
루인의 앞에 선 한스는 말했다·
“예전부터 진로에 대해 고민해봤어·”
“직계 제자직을 박탈당하고 나서부터인가···? 아무튼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졌었거든· 이 길이 나의 길이 아닌가 싶었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마법은 재밌었다? 내 손으로 마법을 시전하고 탑주님한테 칭찬을 받으면 기분이 엄청 좋았었거든· 근데 그것도 너 때문에 끝나버렸지 뭐야·”
한스는 무덤덤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억울해하지도 않고 불만을 가지지도 않은 해탈에 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접으려고 했었어·”
한스의 목소리에 감정이 담기기 시작했다·
“발전할 기미가 안 보이는데 계속하는 건 멍청한 일이잖아· 그래서 루인 너한테 물어보려고 했었거든·”
“···”
“마법을 접을까· 하고·”
한스의 검은 눈동자는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근데 루인 네가 그랬잖아· 최선을 다해본 적 있냐고· 그래서 나는 최선을 다했지·”
“너의 조언 덕분에 성공했어 루인·”
한스의 눈은 광기로 물들기 시작했다·
“봐 루인·”
어둠의 마력을 손끝에 담고 루인에게 보여줬다·
자신도 너처럼 재능을 가질 수 있다고 마력이 부족해 허덕이는 머저리가 아니라 재능이 있는 영재가 될 수 있다고 루인의 눈을 올곧이 보며 말했다·
루인은 다시 한번 마법을 준비했다· 소중한 친우를 막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
두 주먹을 꽉 쥐고 말했다·
“그래도 너는 선을 넘었어·”
“선?”
다시 한번 붉은 구체를 생성하는 순간· 한스는 손을 저으며 루인의 마법을 상쇄했다·
“누가 정해주는 선인데· 여신이 정해주기라도 했나? 어차피 너도 저기 있는 미하일도 사람을 죽이려고 마법을 배운 거 아니야·”
“아니야· 우린 사람을 지키려고···”
“환상 속에 살고 있지 마· 머저리야·”
한숨을 푹 쉰 한스는 루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처음이라서 힘 조절이 어려우니까· 조심해·”
“뭐?!”
스릉 소리와 함께 한스의 등 뒤에서 수 갈래의 검은 사슬이 나왔다· 칠흑 같은 검은 사슬은 허공에 둥실 떠 있었고 한스의 손짓에 총알처럼 튀어 나가기 시작했다·
“잡아·”
한스의 명령과 함께 빠르게 뻗어 나가는 사슬· 루인은 몸을 돌려 피하려고 했지만 수 갈래로 뻗어 나온 검은 사슬은 루인의 다리를 감은지 오래였다·
촤르륵· 팽팽하게 당겨지는 소리와 함께 루인의 몸은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이렇게 쉬운데· 왜 그동안 고민을 했던 걸까·”
주머니에 손을 넣은 한스는 바닥에 넘어진 루인을 향해 걸어갔다·
언제나 루인이 그랬던 것처럼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거만하게 걸어가는 한스·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루인이었지만 다리를 감은 사슬은 이미 손과 발 모두를 팽팽하게 감고 있었기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검은 사슬은 음산한 기운을 내뿜기 시작했다·
촤륵 소리와 함께 강하게 감길수록 몸에 담긴 마력은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고 사슬은 더욱 억세게 조여왔다·
“한스 정신차려···!”
“멀쩡한 사람을 왜 정신병자로 만들어·”
한스는 루인의 머리를 발로 밟았다·
“마법사가 근접전을 하려는 것 자체가 정신병자 아니야?”
“한스···!”
“가만히 있어 봐· 처음이라서 힘 조절이 서툴다니까·”
“정신 차리라고!”
사슬을 타고 몸에서 빠져나가는 마력·
검은 사슬은 루인의 마력을 흡수하며 더욱 강하게 루인을 조이기 시작했다·
한스는 허리를 숙였다·
루인의 머리에 손을 가져다 데고 중얼거리는 한스의 손길에 어둠의 마력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는 거였나·”
‘[강탈(强奪)]’
검은 마력이 루인을 덮치는 것과 동시에 빠르게 퍼지는 한스의 어둠의 마력· 루인의 몸을 집어삼키는 한스의 흑마법은 탐욕과 관련된 능력이었다·
사람들의 재능이 부러웠고·
자신이 가지지 못했던 경지를 빼앗고 싶었던 한스의 욕망이 투영된 능력·
‘강탈(强奪)’
대상의 고유 능력을 빼앗는 능력이었다· 상대에 능력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가지고 있다면 강탈할 수 있는 능력·
한스는 루인의 고유 능력인 ‘화염 문자’를 빼앗기 위해 루인의 머리에 손을 얹고 있었다·
엄습하는 불길함에 루인은 몸을 떨었다·
“으아아악!!! 놔아!”
“흠·· 조금 어려운데·”
“놓으라고!”
“가만히 좀 있어 봐· 이상한 걸 훔치면 너도 좀 그렇잖아· 너도 내 기분을 느껴봐야 알 거 아니야·”
한스의 마법은 루인이 마력 회로를 헤집으며 고유 마법인 ‘불의 문자’를 찾아냈다· 천천히 뻗어가는 어둠의 마력이 루인의 마법을 훔치려고 하는 순간·
“그만!”
번쩍이는 칼날과 함께 미하일의 검이 번뜩거렸다·
빠른 순간에 루인을 옥죄고 있던 사슬을 잘라낸 미하일은 숨을 헐떡거리는 루인을 등 뒤로 숨기고 한스를 향해 검을 들었다·
한스는 손을 흔들었다·
“미하일이네·”
수많은 검은 사슬이 미하일에게 향했지만 미하일은 침착하게 검을 휘두르며 사슬을 베어내기 시작했다·
한스는 미하일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쓰읍··· 미하일의 능력도 탐나는데 말이야· 어떤 재능을 가졌는지 몰라서 함부로 건들 수가 없네·”
“닥쳐·”
“왜· 부러워하는 것도 죄야?”
“닥치라고···”
한스는 자신의 팔에 쇠사슬을 감았다· 거대한 손의 형상으로 뭉쳐진 사슬·
한스는 밝은 웃음을 지으며 휘둘렀다·
“일단 한 명·”
쩌엉 소리와 함께 나가떨어지는 미하일의 모습을 보며 한스는 중얼거렸다·
“쓰읍·· 방해하지 말라니까·”
한스는 다시 쓰러져 있는 루인을 향해 걸어갔다· 다시 한번 ‘강탈’을 루인에게 시전하려는 순간·
“한스!”
울먹이는 유리아의 목소리가 한스를 불러세웠다·
한스는 고개를 들고 유리아를 봤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올곧은 눈을 뜨고 있는 유리아와 눈이 마주친 한스·
익숙한 눈동자였다·
언제나 희망이 담겨 있고·
루인이라는 재능의 벽에 절망할 때 할 수 있다며 위로를 해준 여자·
인간관계가 좁은 한스에게 얼마 되지 않은 친구이자 좋은 사람으로 기억된 존재였다·
올곧은 눈을 뜨고 있는 유리아는 한스를 향해 소리쳤다·
“너는 이런 사람 아니잖아·”
“···”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있는 유리아·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모습에 한스는 묘한 죄책감을 느꼈다·
“우리 같이 도서관에서 책도 읽고 과제도 하고 그랬잖아· 응? 힘들어서 그러는 거야? 우리가 도와줄게· 우리랑 같이 다니면 한스도 성장할 수 있을 거야·”
“···”
표정이 무거워지는 한스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 늦었어 유리아·”
“아니야 한스!”
유리아는 두 주먹을 꼭 쥐고 진심을 전달했다·
싸우기 싫다고·
우린 좋은 친구니까 방법을 찾아보자고 따뜻한 말을 하는 유리아는 진심을 전했다·
“우리 친구잖아·”
“···그렇지· 친구지·”
“다시 일어설 수 있어· 힘든 일이 있으면 내가 도와줄 테니까·”
유리아의 말을 들은 한스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근데 유리아·”
“응···?”
한스의 표정은 차갑게 식었다·
“네가 뭘 해줄 수 있는데·”
“어?”
“아무것도 해줄 수 없으면서 뭘 도와준다는 거야· 지금까지 해준 것도 없으면서·”
유리아의 표정은 당황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한스는 그런 유리아를 보며 냉정하게 말했다·
“유리아 여기 오면서 기억나는 거 없었어?”
“어···?”
“분명 생각나는 게 있을 텐데?”
유리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한스에게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한스는 웃기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던전에서 버려졌을 때 기억나는 거 없냐고”
“뭐?”
“있잖아· 유리아· 너 던전에서 버려졌을 때 여기로 도망쳤었어·”
한스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유리아에게 말했다·
“네 덕분에 이곳을 찾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는데 아무튼·”
“어?”
“이곳에 아주 오래된 괴물이 살고 있었거든· 100년이 넘는 괴물이 말이야·”
유리아의 얼굴에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한스는 ‘하’하고 웃으며 말했다·
“네가 어떻게 살았을 것 같아?”
순간· 유리아의 눈앞에 푸른 창이 나타났다·
-퀘스트를 실패했습니다·
‘어···?’
〈42번째 외전〉 ‘자격이 없는 사람’을 즉시 열람합니다·
유리아의 시간이 멈추기 시작했다·
[열람을 시작합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reader님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항상 감사합니다!
추신)
이번 파트의 끝이 보입니다!
어땠을 지 모르겠군요···!
아가씨가 보고 싶습니닷!
감사합니다!
[후원 감사]
하늘연달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오늘도··· 찾아와주셨다니··· 이 요정 감사의 춤을 춥니다·
한동안 어두웠던 분위기 어땠을지 모르겠군요!
독자님에게 사랑이 가득한 마음이 넘쳐나는 행운을 요정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나헤마님 1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히스타니아 파트를 재미있게 봐주셨다니···!
이 요정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유리아 파트는 이제 맛보기라고 생각하는 요정입니다·
꺼내볼 피폐가 더 있다고 생각해서····
감사합니다!
독자님에게 피곤이 썩 물러나는 요정···! 에너지 드링크의 요정을 보내겠습니다!
kimdoyunniming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오늘 날씨가 정말 춥습니다!
옷잘 챙겨 입길 바라겠습니다!
독자님에게 후끈후끈한 열기가 가득한 요정! 이불 밖은 위험해 요정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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