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7
2년 전·
나의 가문은 위태로웠다·
평생 몸을 담아왔던·
초대를 넘을 수 있는 가주라는 평을 받으며 키워놨던 나의 가문이·
딸아이의 사랑 때문에 막을 내려버렸다·
-가주님 큰일입니다! 아가씨께서!
-올리비아가 또 싸움이라도 했나? 이겼으면 좋겠군·
-그게 아닙니다· 아가씨께서 흑마법을 사용하셨습니다!
-뭐라고!?
몰락은 단번에 진행됐다·
그동안 황실에 바친 뇌물·
겉으로 보여줬던 봉사와 기부가 무색할 정도로 세간은 우릴 짓밟기 시작했다·
제국 전역으로 퍼져버린 기사·
불매운동을 하는 시민들·
법으로 우리를 누르려는 황실까지·
라이벌이라 불리던 히스타니아 가문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나의 기대는 저지르지 않은 실수로 인해 막을 내려버렸다·
-콰아아앙!!!
끓어오르는 분노로 부서뜨린 책상의 개수는 셀 수가 없었다·
잠잠해졌다 싶으면 아카데미에서 올리비아가 했던 악행들이 수면 위로 올라와 재기의 기회를 밟아버렸고 악의적인 기사들은 가문이 진행하는 사업을 시작도 하지 못한 채 무너뜨렸으니까·
선대부터 계약을 이어오던 ‘금화 상단’도 더 이상의 관계는 어려울 것 같다며 선을 그었을 정도로 나의 가문은 크게 흔들렸었다·
딸이 원망스러웠다·
사랑으로 키운 딸이지만 쌓아놨던 모든 게 물거품으로 사라지는 것을 볼수록 딸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은 날이 갈수록 켜졌다·
남아있는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리면 기분이 나아질까 싶어· 보석과 돈 모든 것을 빼앗아 봤지만 답답한 기분은 풀어지지 않았지·
오히려 더 화가 났고 답답했다·
그래서 딸을 보지 않기로 결심했었다·
아무리 사랑스럽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이지만 딸의 실수 하나 때문에 겪은 피해는 상상을 할 수 없었으니까·
모든 것을 봐주고 이해했지만 이번만큼은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여동생을 끔찍하게 아끼던 아들 또한 그때만큼은 악의적인 말로 욕했으니까·
우린 올리비아와 이별을 하려고 했었다·
-공녀님께서 다시 걸으실 수 없다고 합니다·
-···올리비아의 이야기는 앞으로 꺼내지 마라· 이제 우리 가문의 사람이 아니니까·
다시는 걸을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찾아가지 않았다·
돈이 없어 힘들어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도와주지 않았고·
끝까지 옆에 남아주던 리카르도를 생각해 귀족이라는 이름만을 남겨뒀지만 평민보다 못한 생활을 하게 될 올리비아를 안타깝게 생각하지 않았지·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훈육이며·
무능력한 아버지의 간사한 복수니까·
아들은 다른 나라로 떠나 사업을 일으키기 위해 애썼고 오랜 시간 함께해온 사용인들은 세간에 질타를 못 이겨 사직서를 내고 조용히 떠나버린 텅 빈 저택에서 나는 올리비아를 향한 분노로 보내고 있었다·
차라리 데스문트의 이름을 빼앗을걸· 하는 후회도 여러 번 했었다· 그럼 세간에서 보여지는 시선이 달라졌을 테니까 말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하면서 말이지·
다시 한번 악의적인 기사에 무너져 버린 사업에 혼자서 술을 먹던 어느 밤·
나는 결정을 내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여지만 남겨두는 것보다 확실히 선을 그어야겠다는 다짐을 말이다·
그것이 가정을 위한 일이고·
마음은 아프지만 자신이 내린 결단에 종지부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53번째 외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당신의 딸’을 열람할 수 있습니다·”
나는 단 하나의 과거를 보고 마음을 바꾸게 되었다· 아비로써 볼 수 없는 딸의 처참한 결말을 봐서 말이다·
나는 이를 악물고 버티기로 생각했고 그날 오랜만에 울면서 했던 말이 기억이 났다·
“다행이다· 살아있어 줘서··· 다행이야·”
***
휘황찬란한 식탁 아래·
성대하게 차려지는 음식을 앞에 두고 우리는 눈치를 보고 있었다·
“···히끕··”
눈치와 절연한 아가씨도·
“크흠···”
데스문트의 가주가 되는 다르바브도·
“하하···”
아가씨의 집사인 나도 식탁 앞에서 팔짱을 끼고 날카로운 눈매를 뜨고 있는 여자의 눈치를 보며 마른 침을 삼키고 있었다·
침묵이 맴도는 분위기에서 팔짱을 끼고 있는 여자는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여보·”
“···올리비아 엄마가 부르고 있다·”
“나 안 불렀어· 아빠 불렀어·”
“그럼 리카르도를 불렀나 보군·”
“불륜 따윈 하고 싶지 않습니다· 가주님·”
살길을 갈구하는 다르바브의 요청에도 아가씨와 나는 차가운 무관심으로 답했다·
우리도 살아야 하니까·
데스문트의 안주인·
다르바부의 아내· 데스문트 로산나는 언질도 없이 찾아온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특히 그녀의 남편을 말이다·
“너무 사랑스럽게 보는군·”
“그래요· 사랑스러워서 미칠 것 같아요· 절대 안 볼 거라고 그러면서 데리고 오신 걸 보니까 정말···”
로산나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사랑스러워서요·”
“히끕!”
아가씨는 로산나의 분노를 담은 목소리에 딸꾹질을 하였다· 가슴을 치면서 물을 찾는 아가씨는 떨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리카르도···”
“네?”
“우리 x된 거야?”
둘만의 속삭임에 귀를 쫑긋한 로산나· 로산나는 흉흉한 기세를 풍기며 올리비아에게 소리쳤다·
“올리비아· 엄마가 상스러운 말 쓰지 말라고 했지·”
“···엄마도 쓰잖아·”
“내가 언제·”
“예전에 마탑이 주최한 사교회에서 눈치줬다고··· 귀부인 뺨 때리면서····”
“그건 그 여자가 화나게 했으니까 그랬지!”
“···”
아가씨는 입을 꾹 다물었다·
가문의 주인은 다르바브·
가정의 주인은 로산나·
데스문트 가문의 질서는 명확했다·
아무리 뛰어난 대마법사라도 가정에서만큼은 아내인 로산나의 말을 절대적으로 들었다· 그가 로산나에게 구혼을 할 때도 이런 모습에 반해서 했던 것이기에 다르바브는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다르바브는 타는 목을 축이기 위해 물을 마시며 어색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자·· 다들 그만하고 식사하지· 먼 길을 왔을 텐데· 배고프지 않겠나·”
“배는 무슨· 쟤가 해먹은 게 얼마인데·”
“히익·· 딸꾹·”
시무룩해진 아가씨는 빵을 입에 넣는 것으로 대화를 거절했다·
“올리비아· 빵은 포크로 먹으라고 했지· 손으로 먹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리카르도는 뭐라고 안 했는데·”
“리카르도!”
“죄송합니다·”
나 역시 로산나 부인에게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로산나 부인이 화를 내면 아무도 말릴 수 없었으니까·
예전부터 로산나는 가문의 평화를 수호하는 뻐꾸기 같았다· 아들이 화를 내면 똑같이 화를 내서 화를 잠재우고 다르바브가 사업 때문에 화나는 일이 있으면 내조를 통해 그를 도왔던 가정의 능력자·
나 역시도 수도의 저택에 살 때 로산나의 도움을 많이 받기도 했었지·
평민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으면 직접 나서서 기사단을 팰 정도였으니까·
모험가 출신이라서 그런가 다소 과격한 면이 있었지만 사람다운 면모를 보여주던 자상한 사람이었다·
그것을 의미하듯 지금 로산나의 눈은 아가씨의 앙상한 다리를 향해있었다·
“···”
아무 말없이 아가씨의 다리를 보고 입술을 깨무는 로산나의 눈가는 촉촉하게 젖어가고 있었다·
“흡··· 그래서· 어떡하려고요·”
로산나는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돌려 눈물을 훔쳤다·
다르바브의 권유에서 찾아온 저택·
-다들 밥 안 먹으면 같이 먹지 않겠나·
-애비· 나 안 미워?
-됐다· 밥 먹으면서 이야기 하자꾸나· 리카르도도 안 먹었으면 같이 가지· 오랜만에 밥 한 끼 먹을 시간 정도는 내줄 수 있지 않나·
-물론입니다· 가주님·
기세등등하게 저택으로 입성한 다르바브였지만 최종 관문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는 다르바브는 우리의 힘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
“밥 한 끼 먹는 거 정도인데· 괜찮지 않나· 로산나·”
“어휴···”
로산나의 깊은 한숨이 적막한 식탁을 울렸다·
“카일이 오면 어떡하려고요· 저번처럼 날뛰면 당신이 책임질 거에요?”
“···”
“저번에는 올리비아한테 찾아가서 한마디 하고 오겠다는 앤데· 저택 안에 있는 걸 보면 뭐하고 하겠어요· 잘 지냈냐? 이렇게 하겠냐고요·”
“나도··· 다 생각이·”
“생각이 뭐가 있어요! 지금도 그냥 데리고 온 거면서·”
로산나의 잔소리가 계속될수록 다르바브의 어깨는 내려가고 있었다·
나이에 맞지 않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로산나의 호령은 다르바브의 눈에 아름답게 보이겠지만 그것과 잔소리는 다르니까· 말이지·
눈치를 보는 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수프를 떠먹었다·
“오··· 맛있네요·”
“그렇니? 내가 만들었는데 어때?”
로산나는 화색 하며 내게 말했다·
“맛있지? 저번에 네가 편지로 알려준 레시피로 만들어봤는데· 손님들이 맛있다고 그래서 만들어봤는데·”
“저번에?”
이야기를 들은 다르바브는 귀를 쫑긋 세우고 로산나를 봤다·
“아···”
로산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나와 다르바브를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
“편지를 주고받아서요·”
“언제부터지·”
“2년 정도 됐나요? 당신한테 물어보면 아무것도 안 알려주니까 첩자를 심어뒀죠·”
포크로 빵을 찍어 먹던 아가씨는 배신자를 보는 눈으로 나를 봤다·
“이익···! 리카르도!”
“죄송합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배신자!”
로산나는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동안 편지를 받으면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가씨가 얼마나 성장했는지에 대해 사람이 됐다고 칭찬하는 로산나·
그녀가 우리에게 살갑게 대하는 이유가 바로 2년 동안 이어져 왔던 편지 때문이었다는 걸 나는 알 수 있었다·
가주님의 생신 때 찾아뵙는다는 편지로 언질을 드리기도 했었고·
그녀의 원래 성격이라면 불같이 화를 내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다르바브 또한 올리비아와 같은 눈으로 나를 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배신자·”
“애비 말이 맞아·”
“역시 우리 딸·”
“응”
궁합이 맞는 두 부녀였다·
실컷 떠들고 있는 로산나는 주방에서 잘 익은 스테이크 하나를 가지고 오며 편지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식탁에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여보· 그거 알아요? 올리비아가 돈을 벌려고 했었다는 거?”
“올리비아가?”
“네· 곰 인형에 눈을 붙인다고····”
아가씨는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이이익!!! 말하지마! 창피해!”
“왜~ 엄마는 딸이 자랑스러운데· 원래 내조는 지금부터 해야···”
“이이익!!! 리카르도 혼내줘!”
“죄송합니다·”
“내 집사잖아!”
“불만이 있으시다면 아가씨도 데스문트가의 안주인이 되시죠·”
“이이익!!”
로산나는 싱긋 웃으며 우리를 다정하게 바라봤다· 그리고 따듯한 고기 한 조각을 내 접시에 올려주며 말했다·
“고마워·”
나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
해가 저문 오후·
로산나와 다르바브는 오랜만에 집무실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잔잔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술잔을 기울이는 두 사람의 모습에는 왠지 모를 아련함이 담겨 있었다·
로산나가 테이블 위에 안주가 담긴 쟁반을 조용하게 내려놓자 다르바브는 로산나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애들은?”
“올리비아는 자요· 리카르도는 나중에 잔다고 하네요·”
“흐음···”
다르바브는 씁쓸한 와인을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리카르도는 돌아가도 된다고 하는데 제가 당신 생일까지 자고 가라고 했어요· 잘했죠?”
싱긋 웃는 로산나의 미소에 다르바브 또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군·”
잔잔한 분위기·
오랜만에 모인 가족·
다르바브는 오랜만에 느껴지는 충족감에 미소를 지었다·
로산나는 그런 다르바브에게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왜 데리고 오신 거예요? 다시는 안 보겠다고 하셨으면서·”
“그냥···”
다르바브는 밝게 떠오른 달을 보면서 말했다·
“보고 싶어서·”
로산나는 그런 다르바브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잘하셨어요·”
*
다음 날 아침·
저택은 요란한 두 사람의 소리로 시끌벅적했다·
“히이이익! 공습경보!!!!”
“커허허억···! 제국비상···!!”
“시끄러워요!”
평화로운 아침의 뻐꾸기 소리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reader님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항상 감사합니다!
추신)
퇴고가 잘 안 됐습니다!
오늘 새벽에 갑자기 일이 생겨서··!
급하게 퇴고를 했습니닷!
죄송합니닷!
[후원 감사]
kimdoyunniming님 1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봐주셔서 이 요정 감사의 절을 올립니다!
독자님에게 하늘에 별이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별똥별의 요정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하늘연달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매번 찾아와주셔서 이 요정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독자님에게 항상 행복과 희망! 미래가 보이는 신의 보물! 웃음의 요정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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