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0
오늘도 평화로운 저택·
늦잠을 잔 나는 복도 구석에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가씨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다시는 연애를 하지 않겠습니다·]
휠체어에 앉은 아가씨는 요상한 글자가 적혀있는 나무 팻말을 목에 걸고 있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은 광경에 나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아가씨를 향해 물었다·
“뭐하고 계십니까?”
“벌 받고 있어·”
“벌이요?”
“웅· 오빠가 오늘 하루 종일 손 들고 있으라고 했어·”
차기 가주의 명으로 벌을 받고 계시는 아가씨· 역시 데스문트 가문의 장남이라서 그런지 행위 없는 용서를 허락하지 않는 잔인한 사람이었다·
손을 부르르 떠는 아가씨를 보며 나는 말했다·
“상당히 무서운 벌이군요·”
“웅· 그래서 몰래 손 내리면서 쉬고 있었어·”
“도련님에게 일러도 됩니까?”
“안돼·”
아가씨와 나는 어색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지금이라도 당장 카일의 방에 달려갈 것 같은 눈을 뜨고 있는 나와 이르면 권고사직을 시켜버릴 거라는 아가씨의 싸늘한 시선·
불길한 감정이 서로의 눈빛에서 느껴지자· 아가씨는 한숨을 푹 쉬며 패배를 인정했다·
“리카르도가 이르면 나 팔 떨어져·”
“제가 주워서 붙여드리겠습니다·”
“리카르도는 손재주가 없어서 오른손하고 왼손을 거꾸로 붙일지도 몰라·”
“그럼 아쉽게 된 거 아니겠습니까·”
“놀리지 마!”
올라가는 입꼬리를 겨우 숨기며 놀리는 내게 아가씨는 눈을 부라리며 불만을 표출했다·
“안 도와줄 거면 가!”
“저는 잘못을 한 게 없습니다만?”
“오빠가 리카르도도 벌 받을 거라고 했어·”
“···”
나는 불안한 눈으로 굳게 닫혀있는 복도 끝의 카일의 방을 흘겼다·
“정말요?”
“아니· 지어낸 말이야·”
괘씸한 아가씨의 장난에 나는 아가씨의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
“왜 때려!”
“그냥요·”
“이이익!!!”
주먹을 불끈 쥐고 손을 붕붕 휘두르는 아가씨·
요상한 팻말을 목에 걸고 위협하는 아가씨의 모습은 전혀 무섭지 않았다·
마치 키우던 강아지가 방 안에 있는 휴지를 물어뜯고 혼나는 것처럼 팻말을 걸고 앉아있는 아가씨의 모습은 무섭다는 생각보다 귀엽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시무룩하게 손을 들고 있는 아가씨·
나는 그런 아가씨의 손목을 살짝 잡아주며 조금의 요행을 부리게 해줬다·
파르르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들고 있던 아가씨의 표정이 작은 손길에 편안하게 바뀌었다·
“많이 힘드세요?”
“웅· 아까 전부터 어깨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어·”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습니까?”
아가씨는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3분·”
“에잇·”
나는 아가씨의 손을 세차게 놓아버렸다·
“그 정도 하고 힘들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왜에!!! 힘든 걸 어떡하냐고!”
“10분은 참으세요·”
“이이익! 싫어!”
아가씨는 투정을 부리며 손을 잡아달라고 아양을 떨었다· 내가 손을 잡아주면 덜 힘들다고 오늘 하루종일 이러고 있자고 괘씸한 도발을 하는 아가씨·
당장에라도 하고 싶은 요망한 제안이었지만 카일에게 들키면 나도 혼날 게 분명했었기에 매혹적인 제안을 눈물을 무릅쓰고 참아냈다·
“그래서· 이야기는 잘하셨습니까?”
나는 아가씨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이야기는 잘 끝냈냐고·
한 번의 대화로 풀릴 일은 아니겠지만 이렇게 귀여운 모습으로 벌을 받는 걸 보면 제법 훌륭하게 이야기를 끝냈다고 생각했다·
복도에 사용인이 다니지 않는 것을 보니 카일이 복도를 걷는 것을 통제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가씨는 나의 질문에 고개를 숙이며 수줍은 목소리로 답했다·
“몰라··· 오빠가 내일까지 화나 있을 거라고 했으니까· 잘 모르겠어·”
“그런다는 사람이 이런 벌을 주시는 겁니까·”
“···엄청 혼내는 거 아니야?”
순진한 얼굴로 묻는 아가씨의 이마에 나는 딱밤을 때리며 미소를 지었다·
“푸핫··· 저도 모르겠습니다·”
아가씨는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우며 내게 무슨 의미냐고 물었지만 나는 입을 꾹 닫고 알아서 생각하라는 답을 남겼다·
정말이지 솔직하지 못한 카일이었다·
아가씨와 시답지 않은 대화를 이어가던 중·
-또각···또각··
4층의 계단에서 구두 굽이 바닥을 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맑은 구두 굽의 소리가 천천히 우리가 있는 3층에 가까워지자 나는 옷 매무새를 정리하고 걸어오는 사람의 모습을 빼꼼히 흘겨봤다·
오늘도 짙은 남색의 정복을 입고·
수려하게 올린 머리를 하고 있는 중년의 모습이 천천히 보이자 나는 고개를 숙여 그에게 예의를 갖췄다·
“좋은 아침입니다· 가주님·”
“그래· 좋은 아침이다· 리카르도·”
말끔한 모습으로 차려입은 다르바브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냈다·
우리가 있는 복도 앞에 선 다르바브는 아가씨를 내려다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재미있는 걸 하고 있구나· 올리비아·”
아가씨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다르바브를 향해 말했다·
“애비· 좋은 아침·”
“그래· 올리비아는 잘 잤나·”
“아니·”
“그렇군·”
다르바브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가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푹신하게 느껴지는 아가씨의 머릿결을 한참을 쓰다듬던 다르바브·
아가씨는 그런 다르바브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애비· 구하러 왔어?”
“아니·”
“···”
아가씨는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였다·
“카일의 고집은 내가 꺾을 수 없어서 말이지·”
“괜찮아·”
숙연한 감정이 저택의 복도를 감싸고 있었다·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을까 나는 다르바브의 손에 들려있는 나무 팻말에 의문을 가지며 물었다·
“가주님· 손에 든 그것은 뭡니까?”
“아··· 이거?”
어깨를 으쓱이는 다르바브·
다르바브는 익숙한 듯이 아가씨의 옆에 서고는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로산나에게 받은 사랑의 메시지다·”
그리고는 익숙하게 손에 든 팻말들 들고 목에 거는 다르바브·
아가씨는 다르바브를 보며 말했다·
“애비· 뭐해?”
“보면 모르나·”
[아침에 고성방가를 하지 않겠습니다·]
“벌 받으러 왔다·”
로산나에게 한 소리 들은 다르바브는 한숨을 내쉬며 팻말을 목에 걸고 익숙하게 두 손을 들었다·
다르바브는 나를 보며 물었다·
“너도 혼나러 왔나?”
“아닙니다·”
“부럽군·”
진심으로 부럽다고 말하는 가주님·
당황한 내게 다르바브는 한 치의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잠깐 시간이 남으면 로산나에게 언제까지 손을 들고 있어야 하는지 묻고 와줄 수 있나·”
무뚝뚝한 표정으로 참신한 말을 뱉는 다르바브의 모습에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어느 때보다 진지한 다르바브의 표정에서 나는 입 밖으로 새어 나올 것 같은 웃음을 겨우 참아냈다·
가주를 이렇게 막 대하는 집안이라니 다른 집이라면 상상을 할 수 없었지만 이곳 데스문트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일이니까·
나는 그의 모습을 존경하며 로산나가 있는 주방을 향해 내려갔다·
“다녀오겠습니다·”
“늦게 다녀와도 괜찮을 것 같군·”
다르바브는 아가씨를 흘기며 입을 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로산나는 다르바브에게 그런 일을 시킨 적이 없다고 했었다· 그저 딸과 함께 있고 싶은 아버지의 작은 핑계였다·
정말이지·
“좋은 사람이야·”
나는 미소를 지으며 저택의 밤을 맞이했다·
***
늦은 밤이 찾아왔다·
다르바브와 로산나는 깊은 잠에 빠지고 아가씨의 코 고는 소리가 살벌하게 들리는 야심한 시각·
잠이 오지 않는 나는 맑은 공기를 쐬기 위해 저택의 정원으로 산책을 나섰다·
거대한 공원·
역대 가주들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로산나가 가꾸는 장미밭이 있는 저택의 정원을 걸으며 나는 추억에 잠겼다·
“여기도 오랜만이네·”
-오늘부터 네가 살 집이야· 훔치고 싶은 거 있으면 허락 맡고 훔쳐· 알았찌·
-도망가고 싶습니다·
-안돼· 내가 주워왔잖아·
-오늘부터 유기견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이이익!
처음 나를 주워왔던 아가씨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탱글탱글한 볼살을 가지고 고양이 같은 얼굴을 하고 계시던 아가씨의 어릴 적 모습이 머릿속을 스치듯 지나갔다·
그때는 이렇게 될 줄 몰랐었는데 말이지·
차가운 겨울의 공기가 가슴을 시큰하게 지나가자 입가에서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아가씨와 처음 만났을 때도 이런 날씨였을 텐데·
빈민가의 고아와 주먹다짐으로 시작해서 목숨을 구해질지 누가 알았을까· 빙의자인 나로서 악녀와의 관계가 이렇게 깊어질 줄은 생각도 못 했으니까·
가장 만나기 싫었고·
엮이기 싫었던 악녀와의 관계가 이렇게 길게 이어질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한참을 걷고 조금 쌀쌀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카르도·”
강인한 남자의 목소리·
이 저택에서 단둘이 만나면 가장 어색할 것 같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검은색 머리카락과 청색의 눈동자를 가진 남자·
“도련님·”
데스문트 카일·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나를 부르고 있었다· 철없던 예전 모습은 사라지고 이제 데스문트의 차기 가주라는 이름이 어울릴 법한 남자로 자란 카일·
많이 싸웠고·
올리비아와 함께 유년 시절을 보낸 나의 벗이었다·
카일은 손을 저으며 격식을 차리는 걸 거부했다· 언제부터 그런 걸 따졌냐며 질색을 하는 카일은 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고는 내게 내밀었다·
“한 대 피우겠나·”
반가운 제안이었지만 나는 손을 저으며 카일의 권유를 거절했다· 아가씨는 담배 냄새를 싫어해서 말이지·
“다음에 피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예의를 갖췄다·
“그런가·”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지야·”
어색했다·
카일과 단둘이 있는 것은·
아가씨의 흑마법 일이 있고 나서 더 그랬지·
카일은 담배에 불을 붙이며 한숨을 뱉었다· 하얀 담배 연기가 정원의 하늘 위로 올라가며 적막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래···”
한 번 더 연기를 뱉고 카일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언제까지 숨길 생각이지·”
카일은 올곧은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검을 쓰는 평민· 빈민가 시절에 너와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카일은 미하일을 증오했다·
“왜··· 그에 대해서 비밀로 하는 거지·”
죽이고 싶을 만큼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reader님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항상 감사합니다!
추신)
내일은 휴재입니닷!
[후원 감사]
비공개로 4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엣··? 에에에엣!? 이 요정 눈을 비비고 깜짝 놀랐습니닷!
어떤 말로 감사를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으나 이 요정 초심을 찾는 요정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요즘 루즈하다고 생각을 하는데 말이죠! 독자님들 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잘 모르겠습니닷!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독자님에게 비가 오는 겨울 추워지면 피겨 스케이팅 선수가 될지도 모르는 위험한 순간을 극복할 수 있는 아이젠의 요정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kimdoyunniming님 2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자주 찾아오시는 독자님!
이 요정 항상 감사의 마음으로 고개를 숙이고 절을 합니닷!
요즘 다시 감기가 유행하기 시작하는데 건강 조심하시길 바라겠습니닷!
독자님에게 추운 겨울에 뜨거운 온기가 필요할 때 나타나는 포장마차의 요정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늘연달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매번 찾아오시다니··· 이 요정 감사의 마음으로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습니다·
매번 말씀드리지만 찾아오시는 것 만으로도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사를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부담을 드리는 게 아닐까 싶네요···!
독자님에게 사랑과 정의가 넘쳐나는 대정령의 요정! 연말의 첫사랑의 요정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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