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2
화창한 오후·
옷을 두껍게 입은 아가씨와 나는 오랜만에 저택에 나와 수도의 번화가를 거닐었다·
“리카르도 애비 선물은 뭐로 사가면 좋을까?”
“애비가 아니라 가주님입니다·”
“그러니까· 애비·”
아가씨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다르바브에 대한 호칭에 못을 박아버렸다·
고개를 끄덕이며 다르바브에게 줄 선물을 생각하는 아가씨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히히··”
나중에 아가씨께서 아이를 낳으신다면 ‘애미’라고 부르겠지· 자식에게 화를 내고 있는 아가씨의 모습이 선했다·
-애미· 밥 줘·
-이이익! 애미가 아니라 엄마!
-그러니까 애미·
-나가!
괜찮을지도···?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미래에 나는 작은 웃음을 짓고 아가씨의 볼을 꼬집었다·
“으에에엑! 왜에!”
“그냥요· 엄마가 될 아가씨의 미래를 생각해봤습니다·”
페x리 1호기에 앉아계시는 아가씨는 맹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고서 나를 바라봤다·
“예쁘겠지?”
“네· 아가씨를 닮아서 무척 아름다울 것 같습니다· 물론 성격은 개차반이겠지만요·”
“이이익! 내 딸을 욕하지 마!”
상상 속에 존재하는 딸을 지키려는 아가씨· 모성애에 눈을 뜬 아가씨였다· 주먹을 들고 씩씩거리는 아가씨의 모습을 보며 좋은 엄마가 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 나였다·
시답지 않은 장난을 치며 히히덕거리던 우리는 오늘 말릭이 새로 오픈한 숲의 친구 떡볶이점을 가는 중이었다· 겸사겸사 가주님의 생신 때 드릴 선물을 사기 위해 나오기도 했었지·
원래 계획이라면 진작에 말릭을 만나고 인사를 해야 했었지만 다르바브를 수도에서 만나는 바람에 지체된 계획이었다·
언제 찾아간다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찾아간다는 편지를 말릭에게 보내긴 했으니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요식업의 대부와 함께하는 사업이 긴장은 되었지만 워낙에 사업 수완이 좋은 말릭이었기에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았다· 설령 내가 걱정을 하더라도 달라지는 건 없었고·
내가 한 것은 떡볶이에 대한 레시피를 준 것이 전부니까 뭐라고 할 자격이 없기도 했었다·
아가씨와 나는 떡볶이를 무료로 얻어먹을 생각을 가지고 편지에 적혀있는 주소를 향해 나아갔다·
“리카르도는 애비한테 뭐 선물해줄 거야?”
휠체어에 앉은 아가씨는 추운 바람에 옷을 싸매며 물었다·
요즘 따라 부쩍 추워진 날씨에 코를 훌쩍거리며 오들오들 떨고 계시는 아가씨·
나는 아가씨의 털옷에 단추를 잠가주며 말했다·
“음··· 고민 중입니다만 장갑이나 목도리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장갑? 목도리?”
“네· 무난한 선물이라고 생각해서요· 아가씨는요?”
“음···”
사실은 다른 선물을 준비해두었지만 일부로 고르지 않은 척 하는 나는 아가씨의 의사를 물었다·
“그러게···”
아가씨는 번화가에 줄지어 있는 상가를 둘러보며 말끝을 흐렸다·
사실 오래전부터 나는 다르바브의 생일 선물을 준비해놨었다·
이번 생일에 인사를 드리려고도 했었고 지금까지 쌓인 미움을 조금은 씻을 수 있을까 싶어서·
조금 버거운 선물을 오래전부터 준비해왔었다·
마력을 늘려주는 물약·
나는 다르바브의 생일에 이것을 선물할 예정이었다· 이교도에 갈 기연 중 하나인 ‘현자의 물약’은 마법사인 다르바브에게 최고의 선물이 될 테니까·
대마법사의 마력을 가지고 있는 다르바브· 그 한계를 뛰어넘게 해주는 물약이 바로 지난번 하멜 던전에서 털어온 기연 중 하나였었으니까·
마법사에게 마력이란 소금과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선물을 받을 다르바브의 입장에서는 수백만 골드보다 의미 있는 선물이 될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가씨에게 가장 허접한 선물을 이야기했다· 솔직하게 말했다면 아가씨께서 기죽으실 게 분명했으니까·
나 대신 아가씨께서 다르바브에게 물약을 선물하는 방법도 생각해봤지만 다르바브는 내가 고른 선물보다는 아가씨께서 직접 고른 선물을 기대하고 있을 거란 생각에 마음속으로 묻어둔 계획이었다·
“음···”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하는 아가씨·
지금까지 가주님께 다양한 선물을 해온 아가씨로서는 어떤 선물이 가장 좋을지 쉽게 고를 수 없었다·
데스문트의 지원을 받던 시절에는 보석이나 정장· 나아가 다이아몬드 광산을 선물하기도 했던 아가씨지만 지금은 자금도 부족하고 어떤 선물을 해도 과거만큼의 대단한 선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근심이 쌓여가는 아가씨·
“하고 싶은 선물이 있는데· 돈이 없어·”
나는 아가씨에게 도움이 되고자 작게 중얼거렸다·
“저한테 빌리십쇼·”
“무이자로 빌려줄 거야?”
“아니요· 연이자 3%”
“···속물·”
“이 정도면 매우 합리적인 제안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나처럼 예쁘고 아름다운 주인에게 이자를 받을 생각을 하는 리카르도가 나쁜 거야·”
“자기 객관화가 확실하군요· 그럼 1%로 하겠습니다· 저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좋아!”
아가씨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페x리 1호기의 바퀴를 굴렸다·
10분은 걸었을까·
페x리 1호기의 바퀴를 굴리던 아가씨는 어느 양장점을 보고 움직임을 멈춰 섰다·
[로얄 부티크]
예전에 아가씨께서 자주 가시던 의복점· 드레스 한 벌에 저택 하나 정도의 가격을 넘어가던 의복점에 아가씨는 멈춰서 유리창 너머에 보이는 넥타이핀을 보고 침을 삼켰다·
“저거···”
내 눈치를 보고 작게 중얼거리는 아가씨·
“저거 애비랑 잘 어울릴 것 같은데·”
황금색의 넥타이핀은 아가씨의 말대로 다르바브와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과하지 않을 정도로 다이아몬드가 테두리에 세공이 되어있고 황금색 배경과 투명한 다이아몬드가 어울리는 넥타이핀·
잘나갔던 귀족이라서 그런지 안목이 뛰어난 아가씨였다·
나는 슬쩍 아가씨의 눈치를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저거로 할까요?”
“비싸 보여·”
“에이~ 저 조그만 넥타이핀이 얼마나 한다고 그럽니까·”
“···그치?”
아가씨는 희망찬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그에 화답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휠체어의 손잡이를 잡았다·
“날씨도 추우니까 빨리 사서 갑시다·”
오후 2시·
추운 날씨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빨리 고르는 게 우리에게 좋을 것 같았다·
나는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휠체어를 밀었다·
“갑시다·”
“응···!”
아가씨는 해맑은 미소로 수줍게 웃었다·
*
“네에?”
로얄 부티크 안·
나는 놀란 목소리로 직원에게 말했다· 공공장소에서 이런 추태를 보이는 것이 상당히 곤란한 짓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손가락만 한 넥타이핀 하나가 저택의 수리비용보다 비싸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으니까·
“하하···”
점원은 당황한 눈으로 나를 보며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이런 일이 자주 있는 모양인지 다른 상품을 소개해주는 점원·
“이번에 나온 신상이라서 가격이 조금 나갑니다· 이것 말고 여기 행거치프도 선물로 많이 사 가시는데 어떠신가요? 최고급 면으로 만들어서 촉감도 좋고 접힐 때 각도 예쁘게 나온답니다·”
지갑을 사정을 배려해 다른 상품을 소개해주는 것에 감사를 느꼈지만 아가씨의 시무룩한 표정에서 나는 망설였다·
“으··· 그··”
아가씨는 진열장에 전시된 넥타이핀을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애비랑 잘 어울릴 것 같았는데·”
자신이 고른 선물을 사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서 아쉬움을 느끼는 아가씨· 나는 아가씨의 눈치를 슬쩍 보고는 점원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혹시 할인 같은 건 안 되나요?”
점원은 싱긋 웃으며 내게 답했다·
“이것도 할인된 가격이라서요·”
할인된 가격이 30만 골드라니·
이건 세상이 우리를 부정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어떻게든 돈으로 우리를 시험하려는 모양인데·
괘씸한 마음에 나는 어딘가에서 배꼽을 잡고 웃고 있을 신에게 부모님의 안부를 물으며 한숨을 뱉었다·
“아가씨·”
“응···”
“잠시만 기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응?”
나는 결의에 찬 눈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통장에 얼마가 남아있는지를 생각하며 그리고 끌어올 수 있는 대출의 한도를 생각하며 굳은 표정으로 말하는 내 모습에 아가씨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내게 물었다·
“아니야· 다른 거 사자·”
“아니요· 저는 이걸 사야겠습니다·”
“너무 비싸···”
“오랜만에 가주님께 드리는 선물이지 않습니까· 기도 세우고 그래야죠·”
주인의 얼굴은 곧 집사의 얼굴이다·
아쉬워하는 아가씨의 모습을 볼 수 없기에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은행을 바라보며 말했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아··아니야··! 나도 그럼 같이 가···!”
“추우신데 여기 계세요·”
은행에서 대출하는 모습을 아가씨께 보여드리고 싶지 않은 나는 점원에게 다른 사람에게 팔지 말라는 당부를 하며 밖을 향해 달렸다·
돈·
한동안 꺼내지 않으려고 했던 기술인데·
나는 은행 옆에 작게 반짝이는 카지노를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아버님들 죄송합니다·’
빈 지갑이 될 도박중독자들의 미래에 고개를 숙이며 털어먹을 준비를 했다·
*
리카르도가 떠난 가게·
홀로 남은 올리비아는 가게 구석에 앉아 뜨거운 홍차를 마시고 있었다·
“앗··· 뜨거·”
아버지에게 어울리는 선물을 사고 싶은데 상황이 따라주지 못하는 게 서글픈 올리비아는 우울한 표정으로 찻잔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돈···”
돈도 없는데 왜 이런 사치를 부리는 걸까· 스스로가 생각해도 철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올리비아였지만 이번만큼은 아버지에게 그럴싸한 선물을 사주고 싶다는 욕심이 드는 올리비아였다·
2년 전에 맞췄던 정복을 지금도 입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에 쓰라린 울상을 짓는 올리비아였다·
자신 때문에 가문이 흔들렸고·
가문이 가난해진 것에 대한 죄책감이 저택에 있는 날이 지날수록 더욱 크게 와닿고 있었다·
저택을 빼곡하게 매우던 사용인의 수도 줄었고 매년 새로운 정복을 맞췄던 아버지의 옷도 그렇고·
올리비아는 씁쓸함에 쓰디쓴 홍차를 마셨다·
“윽·· 써···”
밖에는 바람이 불어오고·
리카르도는 돌아오지 않고·
외롭다는 기분이 문뜩 들었을 때·
-딸랑·
가게의 문이 열리며 새로운 손님이 들어오는 게 올리비아의 눈에 들어왔다·
“꺄르륵! 이번에 나온 신상 봤어? 엄청 예쁘던데·”
“맞아 맞아· 예전에 올리비아 꼬셔서 몇 개 얻었는데 지금은 공짜로 얻을 수도 없고· 아 아쉽다!
“뭐래~ 너 올리비아 퇴학당했을 때 좋다고 샴페인 따고 그랬었으면서·”
“그때는 그때고!”
젊은 여학생 무리가 가게에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아카데미의 교복을 입고 들어오는 여학생들· 올리비아가 아카데미를 다녔던 시절 옆에 붙어 다니며 아부를 떨던 학생들이었다·
올리비아는 그들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
“리카르도··· 언제 와·”
그들에게 들키지 않게 고개를 숙이고 몸을 숨기는 올리비아는 오지 않는 리카르도를 생각하며 작아지기 시작했다·
10분 정도가 지났을까·
가게 안을 둘러보던 여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뚝 하고 끊겼을 때·
올리비아는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갔나···?”
이제 눈치를 안 봐도 된다는 생각에 고개를 드는 순간·
“올리비아 맞네?”
살집이 있는 여학생이 올리비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안 죽고 잘 살아있었네?”
재미있는 장난감을 봤다는 표정으로 비웃음을 짓는 여학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을 때 올리비아의 눈은 크게 떨렸다·
“오랜만이다· 우리·”
악의적인 말이 올리비아에게 향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잘 지냈어? 죽었다고 했었는데· 잘 살아있네?”
“아니야· 쟤 다리 병신이잖아·”
자신의 다리를 보고 중얼거리는 여학생·
올리비아는 고개를 숙였다·
“맞다· 우리도 가방 좀 사줘라·”
“푸하핫· 뭐래· 쟤가 돈이 어디 있다고· 쟤 가문에서 파문당했다고 하잖아·”
“···”
“푸하하핫 진짜야 올리비아?”
아카데미에서 눈도 못 마주치던 여학생들이 자신을 놀리는 것에 올리비아는 그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
“하아····”
깊은 한숨을 뱉었다·
고개를 천천히 드는 올리비아·
올리비아는 주위를 살피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했다· 리카르도도 점원도 자리를 피해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올리비아는 작게 중얼거렸다·
‘리카르도가 화내지 말라고 했었는데····’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더욱 커질 때쯤·
올리비아의 입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평소같이 맹한 목소리가 아닌· 지독하게 차가운 얼음 같은 목소리가 올리비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닥쳐· x발 년들아·”
올리비아는 악녀였다·
“죽여버리기 전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reader님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항상 감사합니다!
추신)
정말 급한 일이 생기는 바람에!
퇴고가 어설펐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 요정···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닷!
[후원 감사]
나헤마님 2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브론즈 펜슬을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닷!
실버 펜슬 노리실거냐는 질문···! 이 요정 달려보겠습니다!
항상 과분한 사랑을 주셔서 감사하며 독자님들이 없었다면은 절대 할 수 없는 일이 었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독자님에게 추운 날씨에 오들오들 떨고 있을 비극을 생각하며 뜨거운 마음의 요정! 아메리카노의 요정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kimdoyunniming님 5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올리비아의 가족은 정말 착하답니다· 하지만···
남들에게는 철혈과 같은 존재랍니다!
그에 반에 한나의 가족은···
오늘도 찾아와 주셔서 정말 갑사합니다!
독자님에게 겨울이면 무조건 생각날 수밖에 없는 음식! 따뜻한 호떡의 요정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하늘연달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아닛! 매번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요정··· 보낼 요정의 수가 적어지고 있지만 세상에는 대단한 요정이 많기 때문에 재고가 넘쳐나는 요정 나라랍니닷! 항상 찾아와주셔서 감사하며 발전하는 요정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독자님에게 추운 겨운 피부가 건조해지는 건조의 님프를 대적하기 위한 최강의 요정! 젖은 수건의 요정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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