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
“아리엘 영애와 말씀이십니까?”
겔우드가 의아한 시선으로 그리 되물었다·
아니 정확히는 최종 후보 4인방이 간택된 이후부터 의문스런 상황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었다·
대공가의 사람이 되기엔 평판이 좋지 않은 4인방이었고 아이러니하게도 모두 같은 해에 왕립 아카데미를 수석으로 졸업한 공통점이 있는 이들이었다·
르미앙 대공녀는 타고난 관찰력을 기반으로 늘 옳은 결정을 내리는 이였다·
그런 그녀의 결정력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웠던 겔우드·
하지만 대공녀의 결정은 일개 보좌관이 간섭할 수 없는 영역이었고 부디 최악들 중에서 차악을 잘 솎아내길 바랄 수밖에 였었다·
그러다 들려온 최종 후보의 기권 선언·
모시는 아가씨의 이해할 수 없는 결정에 이어 그 결정에 간택된 이의 이해할 수 없는 결정까지·
의문이 의문을 낳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엘든 공자에게 감시자를 붙여주세요·”
또 다른 의문이 시작됐었다·
엘든은 기권 선언을 한 포기자이다·
참가 규율서에 기권에 대한 조항이 전무했기에 그것을 강제할 방법도 제지할 방법도 없었다·
무엇보다 기권 선언을 반려할 이유도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참전 의지가 사라진 이를 구태여 자리에 앉힐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대공녀가 기권 선언한 이를 붙잡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고 게다가 그런 기권자에게 ‘감시자’를 붙여 일거수일투족을 미행하라는 대공녀는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었다·
혹시나 싶어 아카데미 재학 시절의 에린시아 벨로크에게 모종의 사건이 있었는지 조사해 봤지만 의문을 해결할 건덕지를 건지지 못 했었다·
다른 세 명의 후보들에 대해선 어떠한 질문도 하지 않으며 오직 엘든에 관해서만 질문과 관심을 비추는 대공녀·
혹여 기권 선언이 작금의 상황을 유도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일까 싶었지만 엘든의 눈은 진실됐었고 이후의 행보도 강력한 기권을 피력하고 있었다·
혼약대전에 관심을 일절 끈 것처럼 보이고 있으니까·
배포된 공식 일정을 훌륭히 수행하기 위한 어떤 대비도 하지 않고 있었으며 그저 도서관에 틀어박혀 히죽거리거나 도시로 나아가 평민들의 음식을 먹는 기행을 보이고 있었다·
대공전하께도 아뢰어 보았으나 별다른 답을 듣지 못 했었다·
그저 모든 결정권을 르미앙 대공녀에게 위임한다는 답만 들었을 뿐·
기권자에게 이다지도 집착하는 이유가 무얼까·
제게 관심을 끊은 이에게 외려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것은 무얼 뜻하는 걸까·
하물며 기권자를 우승자로 만든다 한들 그 기권자가 최종 평가전이 시작되기 전에 기권 선언을 했다는 이유로 트로피를 내려놓는다면 그것을 강제할 법적 근거도 규율도 없었다·
평가전 진행 중에 기권한 것도 아닌 시작 전에 기권한 것이니 말이다·
물론 트로피를 놓는다면 대공전하의 눈총을 살 수 있고 혼약대전이란 북부령 축제의 성대한 마무리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트집을 잡을 수도 경질을 할 수도 혼약을 감행할 수도 없는 노릇인 것이다·
제아무리 대공가문이라 할지라도 싫다는 이에게 강제 결혼을 명할 수 없었으며 대외적인 조롱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것만큼은 피해야 했다·
최소한 최종 후보가 남아있는 마당엔 말이다·
단 하나도 해결되지 않은 채 자꾸만 쌓여가는 의문들·
결국 직접 물을 수밖에 없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기권선언자인 엘든 공자를 감시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혹여 제가 무언가를 놓친 것은 아닌가 싶어 그렇습니다·”
겔우드의 물음에 르미앙이 되물었다·
“보좌관께서는 엘든 공자의 기권을 어떻게 보시나요?”
혼약대전 총 책임자·
통찰의 귀재·
그라면 엘든의 기행에 대해 무언가 포착하지 않았을까 싶어 물은 르미앙이었다·
“뭐··· 참가 규율서의 허점을 이용한 전략이라면 보기 좋게 성공했다 여기겠지만 딱히 전략처럼 보이지는 않더군요·”
“진심인 것 같다···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네· 아직까지는 그렇습니다·”
“그럼 그가 보이고 있는 변화에 대해서는요?”
흐음·
겔우드가 침음을 삼키며 시간을 두었다·
분명한 변화 이상한 변화·
그것은 통찰의 귀재조차도 정의하기 힘든 것이었다·
“모르겠습니다· 기권을 전략으로 사용하기 위한 준비 작업인 듯 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기엔 그 변화마저 ‘진심’인 듯 보여서 정의하기가 힘들군요·”
기권도 진심·
변화도 진심·
수석 졸업을 어떻게 했을지 모를 엘든 라펠리온이 유일하게 학을 떼던 것이 책이다·
한데 그것을 읽으며 웃고 슬퍼하며 감동하는 그의 얼굴은 실로 진실되어 보였었다·
특히나 아리엘 영애와 마주앉아 나누는 토론은 꽤나 진지하고 열띠었고 말이다·
감시자의 보고가 당최 믿기지 않아 직접 염탐했던 엘든의 얼굴은 그러했던 것이다·
물론 이제 와 새로운 재미에 눈을 떴다 생각할 수 있지만 그리 두루뭉술히 결론내리기엔 무언가 석연찮았다·
“그렇죠?”
르미앙이 예상했다는 듯 그리 물었다·
“네? 무엇이 말씀이십니까?”
“지금 저희는 엘든 공자에 대해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고 있어요· 감시자를 붙였음에도 의도 의중 이유 진실 전부 말이죠·”
“···그렇긴 하지만 구태여 알아낼 필요가 있습니까? 환심을 위한 전략이었다면 그것에 휘말리지 않으면 그만이고 진심이라면 고이 보내주면 되는 일이지 않습니까?”
“아뇨· 단 한 명의 기권자도 용납할 수 없어요·”
르미앙이 단호히 답했다·
다소 노기가 서린 목소리였고 겔우드는 그 속에 집착의 이유가 서려있음을 가늠할 수 있었다·
분노·
기권자에 대한 분노는 비뚫어진 애증 또는 들끓는 애환을 담고 있는 듯했다·
둘 사이에 어떤 악연이 얽혀있으며 대공녀께선 어떤 과거에 얽매여 있는 걸까·
겔우드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하오나··· 기권한 이에게 참전을 강제한다 한들 상황이 변하리란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만····”
그의 우려에 르미앙이 모처럼 미소를 지어보였다·
물러서지 않는 탐구가의 집념을 담은 미소였다·
“강제할 생각없어요·”
“네?”
“독려와 회유로써 의지를 불태우게끔 만들 거니까요·”
“그게 무슨···?”
어쩌면 [사랑]이란 실마리로 난공불락의 철옹성 같던 난제에 돌파구를 찾을 수 있으리라·
그 끝에 성벽을 무너뜨려 감춰둔 것을 탈환하리라·
풀 수 없는 문제는 없는 법이니까·
회심의 미소를 지은 르미앙이 쪽지 하나를 겔우드에게 건네었다·
“엘든 공자에게 전해주세요·”
“이게··· 무엇이옵니까?”
내일 있을 평가전 [술래잡기]의 비밀이 담겨있는 것으로써 그를 향한 편애적인 응원과 독려 그리고 거부하지 못 할 유혹을 담아낸 것이었다·
**
타닥~ 타닷~
“흐으흥흥~”
신난 발걸음·
경쾌한 스탭·
흥얼거리는 콧노래·
모든 정황이 평소와 다름을 느낀 호위기사가 아리엘의 뒤에서 물었다·
도서관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호위기사였다·
“기분 좋은 일이 있으십니까?”
“아?”
“오늘따라 신나보이셔서 말입니다·”
늘 도서관 마감시간을 찍고 나서야 귀가를 하던 아리엘은 기력이 없었다·
화사한 얼굴도 축 쳐져있었고 발걸음도 무거웠다·
그것이 굶주림으로 인한 허기진 독서로 인한 체력 부족임을 알지만 오늘따라 유독 신난 모습은 호위기사의 의문을 부르기에 충분했었다·
우뚝·
걸음을 멈춘 아리엘이 몸을 돌리고선 검지로 자신을 가르켰다·
“나? 내가? 신나 보여?”
···물어 무엇하리·
호위기사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리엘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흐응· 그래? 늘 똑같은 거 같은데?”
“마음은 늘 신나셨으나 체력 저하로 인해 몸만 처지셨던 모양이군요·”
“그런가?”
아무래도 밥심이 체력 저하를 막아주었던 모양이다·
늦은 점심이었지만 그레이트 홀에서 먹었던 식사는 정말 훌륭했었으니까·
물론 백작가 영애인 그녀에겐 늘 먹던 평범한 식사였지만 식사를 하며 주고 받은 독서담 덕에 훌륭하게 느껴졌는지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더 이상 꼬르륵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됐으며 허기진 배 때문에 흐트러지던 집중력도 마감시간까지 굳건했으며 그 덕에 계획했던 독서량을 넘겨버렸다·
식사로 시간을 허비했음에도 전날 대비 소폭 상승해버린 독서량·
아이러니한 일이었지만 무엇이 되었든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는 아리엘이었다·
독서량이 늘어났다는 건 정해둔 계획을 빠르게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것이며 자신의 독서 여행 때문에 이 혹한의 땅에 발이 묶인 이들에게 서둘러 남쪽의 따스한 온기를 선사해 줄 수 있음을 뜻했으니까·
‘엘든은 훈련 잘 했으려나?’
문득 엘든을 떠올리는 아리엘·
말벗이 되어주고 식사벗이 되어준 엘든 덕분에 독서 시간의 질이 올라간 건 부정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렇기에 엘든을 떠올리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레이첼과 함께 훈련장으로 향하던 엘든의 뒷모습을 보며 무언가 아쉬웠던 기억이 떠오르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게다가 그의 호위기사는 동경의 대상이었고 숱한 여심을 흔들었던 위대한 주인공이었다·
엘든을 만난 것도 기쁘지만 소설 속 주인공을 실제로 만난 것은 독서광에게 너무도 큰 기쁨인 것이었다·
‘내일은 평가전이 있어서 안 된다 했으니까 모레엔 마감시간 찍고 훈련하는 거 구경해볼까?’
그래·
그게 좋겠어·
궁금하잖아?
자색의 여기사가 검을 휘두르는 모습이 얼마나 멋질지 말이야·
그걸 1열에서 직관할 수 있는 기회인데 빠질 수 없지· 그리고 직관한 후에 시녀들에게 얼마나 멋진지 얘기해 주어야겠어·
다들 놀라 자빠지겠지?
그리 다짐한 아리엘이 다시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금세 숙소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리고 곧장 숙소로 들어가 목욕을 마치고선 야참을 들려했다·
누군가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공녀님?”
“응?”
“손님이 찾아오셨는데요?”
“이 시간에? 나한테? 누구야?”
누구지?
이 야심한 시각에 찾아올 이가 없는데·
북부령에 아는 사람도 없었고 말이다·
“후드를 깊게 눌러 쓰셔서 보지는 못 했는데 왕립 아카데미 동급생이시라고 하던데요?”
아하·
“엘든인가?”
탁·
이제 막 야참을 뜨려던 수저를 놓은 아리엘이 반가운 얼굴을 한 채 밤손님을 마중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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