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5
어느덧 해가 저물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우선 식사부터 할 요량으로 별채로 향했다·
결국 맛보지 못 한 와이번 지느러미 구이가 눈앞에 아른거려와 허기를 독촉해대고 있었다·
쫄깃한 식감에 육향이 구수하다던데·
기회가 되면 꼭 먹어봐야겠다·
그나저나·
‘그 요리들은 전부 누가 한 걸까나·’
하나 같이 훌륭한 풍미를 자랑하는 것이 대공성의 주방장들 중 몬스터 요리의 대가(大家)가 있는 모양이다·
초빙하면 좋겠지만 대공성에서 받는 막대할 보수를 맞춰줄 수 있을지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산지직송 식도락 여행에 참여시킬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우선은 겔우드 경과의 통첩이 끝나고 나면 북부령 도심의 식당에서 찾아봐야겠지·
몬스터 요리를 하는 식당이 많았으니까·
모험과 낭만을 꿈꾸는 요리사께서 그것을 선사해줄 귀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부디 그러한 자가 있기를 바라며 별채의 입구에 도착했고····
“에에에에엘드으으으으은–!!”
나를 부르는 격정적인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야 했다·
당연하게도 롤빵머리 영애님의 목소리였다·
1차 대면식에서 터져나온 온갖 환희와 찬미 속에서 유일하게 물음표를 자아냈던 아리엘이었다·
백발의 에린시아를 그 누구보다 한 발 앞서 만났던 그녀였으니까·
아마도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을 터다·
책을 품고 있지 않은 걸로 보아 오늘만큼은 독서도 하지 못 한 듯 보였다·
“아리엘?”
“뭐야? 대체 뭐야? 어떻게 된 거야?”
금발을 휘날리며 부리나케 달려온 아리엘이 묵혀둔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풀지 못 한 물음표가 가득한 얼굴로·
며칠 전 야심한 밤에 만났던 백발의 에린시아가 정말 르미앙 대공녀였던 건지·
왕립 아카데미의 적발의 에린시아 남작영애가 윈터펠 대공가의 막내딸이었던 건지·
대체 무슨 사정이 있어 그런 것인지·
대체 어떤 내막이 숨겨져 있었던 건지·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육하원칙에 의거한 질문이 던져졌고 그것을 풀어주려던 참이었는데····
“어?”
나를 바라보던 아리엘의 시선에 또 다른 의문이 깃들었다·
나의 오른쪽 뺨을 바라본 순간부터 말이다·
그리고·
같지만 다른 의미를 담은 질문이 재차 던져져 왔다·
아리엘이 제 뺨을 검지로 콕 찍었다·
“뭐 뭐야? 이건 어떻게 된 거야?”
그 의문부터 우선적으로 해소해 주어야 할 듯 해 뺨을 슥슥 문지르며 답해주었다·
“한 대 맞았어·”
“뭐? 레이첼 경한테 까불다 결국 한 대 얻어맞은 거야?”
언젠가 그럴 줄 알았다 라는 듯한 아리엘의 표정에 피식 웃으며 답을 해주었다·
“아니· 대공녀님한테 맞았어·”
“뭐어? 왜 왜?”
예상치 못 했을 대답에 아리엘의 적갈색 동공과 붉은빛 입술이 점점 커져갔고 마지막 답변이 전해진 순간 아리엘은 또 다른 의문을 품어야 했다·
“청혼을 거절했거든·”
“···뭐어?!”
놀랄 일이 참으로 많은 롤빵머리 영애님이었다·
**
“그 그러니까 후보들이 있는 자리에서 에린시아 아니· 르미앙 대공녀님이 공개적인 청혼을 했고 너는 그걸 거절하고 따귀를 맞았다는 거네?”
“정답·”
2차 대면식에서 벌어진 일들을 가감 없이 아리엘에게 전했다·
만천하에 진실이 드러났으니 동급생 아리엘에게 구태여 거짓을 말할 은폐를 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사실대로 전해주는 게 옳았다·
변화를 인정하지 못 해 야밤을 틈타 제 3자인 아리엘에게 접근했던 르미앙이다·
마지막으로 전한 인사마저 받아들이지 못 한 그녀가 어떠한 변수를 만들어낼지 모를 노릇·
“그러니 너도 대공녀님에게 접근하지 않는 게 나을 거야·”
“인사하러 가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안 하는 게 낫겠지?”
“응· 적어도 당분간은 피하는 게 나을 거야·”
여주인공의 상태가 좋지 못 했다·
복수심에 사로잡히다 못 해 잡아먹힌 이들의 말로(末路)는 늘 비참한 법이다·
부디 그러지 않기를 빌어보지만 제 3자를 이용할지도 모를 일이니 적어도 혼약대전이 완전한 결말을 맞이하기 전까지는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을 터다·
이미 르미앙은 아리엘을 이용한 전적이 있으니까·
“뭐··· 네 말대로 할게· 근데 상처는 괜찮아?”
새로이 급부상한 의문을 해결한 아리엘이 그리 물으며 걱정스레 내 뺨을 보았다·
아껴둔 연고를 꺼내어 직접 발라주는 따뜻한 손길·
오래 묵힌 궁금증보다 친구의 상처를 더 중히 여기는 따뜻한 질문·
아리엘이나 레이첼이나 원작 엘든 라펠리온의 업보를 생각하면 참으로 과분한 존재들이 아닐까 싶다·
“괜찮아· 이 정도 가지고 뭘·”
“다행이다· 근데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에린시아가 르미앙 대공녀님이었던 거야?”
이후 아리엘에게 모든 것을 설명해 주었다·
물론 원작을 읽은 독자로써 아는 것은 제외한 채로 말이다·
“대박··· 정말이었구나· 그러니까 왕립 아카데미 수석 졸업생들이 최종 후보가 되었던 게 우연이 아니었다는 거네?”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렇지·”
“그럼 넌 이제 기권이 승인된 거야?”
“최종 결정권자가 변경돼서 아직은 아니지만 사실상 승인된 거나 다름없어·”
“그렇구나····”
혼약대전이 성대한 마침표를 찍으려면 아직 일주일의 시간이 남았지만 내겐 종지부가 찍어진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아껴둔 패를 꺼낼 적기가 도래했다는 건 이제 대공성에서의 탈출이 임박했다는 걸 뜻했으니까·
그렇기에·
“식도락 여행 일정이 조금 앞당겨질 거 같은데 괜찮겠어?”
아리엘에게 물었다·
만약 아리엘이 아직 읽지 못 한 책이 많다며 출발을 조금만 미루면 안 되냐 라고 부탁한다면 기다려줄 생각이었다·
많은 도움을 건네준 귀인이자 이세계에서 처음 사귄 벗의 청을 무시할 정도로 각박하게 살고 싶진 않았으니까·
안식과 낭만의 식도락 여행을 위해 아직 준비해야 할 것도 있었고 말이다·
한데 예상과 달리 아리엘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야 좋지!”
“···그래? 근데 아직 읽을 책 많이 남지 않았어?”
“뭐 어때· 책이야 다음에 또 읽으러 오면 되지만 네가 멋지게 몬스터를 잡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지금뿐이잖아?”
“딱히 서두를 생각은 없어· 아직 준비해야 할 것들도 있고· 시간이 필요하다면 기다려줄 수도 있으니까 편히 얘기해도 돼·”
고민도 없이 해맑게 승낙했던 아리엘이 기다려준다는 말에 주춤하는 기색을 보인다·
어차피 지금의 실력으로는 하급 이상의 몬스터에게 고전을 면치 못 할 터다·
마나를 다루는 능력의 개발은 아직 시작도 못 한 상태였고·
준비할 것이 있기에 서두를 필요도 조급해 할 이유도 없었다·
무엇보다 안식과 낭만의 식도락 여행은 여유가 최우선이 되어야 하니까·
잠시 머뭇거리던 아리엘이 이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니면··· 혼약대전이 끝나면 북부령 중심가에서 [몬스터 요리 축제]가 열린다고 하더라고? 저번에 요리사를 찾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어? 요리 경연 대회도 열린다고 하던데 잠시 북부령에 머무르며 축제를 즐기는 건 어때?”
뭐?
잠깐만·
“몬스터 요리 축제가 열린다고?”
내가 흥미를 보이자 아리엘이 다시금 들뜬 기색으로 답했다·
“응! 5일 간 중앙거리에서 행사가 진행된대! 북부령 인근의 내로라하는 요리사들이 모인다고 하니까 어쩌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오호· 이건 구미가 당기는데?”
“히히· 역시 너라면 좋아할 줄 알았어!”
몬스터 전국 요리 지도에 맛집 리뷰책도 모자라 어쩌면 모른 채 지나쳤을지도 모를 몬스터 요리 축제까지·
아리엘을 만난 게 축복이라 여겨도 모자라지 않을까 싶다·
요리사의 초빙도 그렇지만 누렁이에겐 군침 도는 밥그릇의 향연이 아닐 수 없으니까·
“그럼 난 가볼게! 푹 쉬어! 레이첼 경도요~!”
그렇게 또 다시 귀한 도움을 전한 채 멀어져가는 아리엘·
언제쯤이면 이 은혜를 갚을 수 있을지 언제쯤이면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게 보답할 수 있을지 서둘러 그 순간이 다가오길 바라보았다·
**
“흠····”
중앙보좌관의 집무실엔 초저녁부터 시작된 침음과 한숨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책상 위에 놓인 인장을 바라보는 겔우드·
로건 대공의 권한을 임시 대리한다는 무소불위의 막강한 권력을 상징하는 인장이었다·
“어리석었군··· 참으로 어리석었어·”
겔우드가 스스로를 책망했다·
후회막심했다·
그저 ‘아는 사람들 중에 고르는 게 낫지 않을까’해서 왕립 아카데미 동급생 넷을 최종 후보에 올리는 르미앙을 뜯어 말리지 못 한 것을·
묘연한 낌새를 느꼈음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 한 것을·
엘든 공자의 느닷없는 기권과 그에게 집착하는 르미앙을 의심하지 않은 것을·
외려 쪽지를 전하며 응원한 것을·
모든 것이 후회스러웠고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커진 사태가 모두 자신의 책임인 듯 해 마음이 무거웠다·
우연을 가장한 악연·
카일 공자의 졸도와 잠적·
기권자에 대한 비뚤어진 집착·
왕립 아카데미 측의 미적지근한 태도까지·
모든 것이 이 혼약대전이 남편감 찾기가 아닌 복수극이었음을 모든 정황이 이 혼약대전이 시작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졌음을 알림에도 아무런 대처를 해내지 못 한 자신이 참으로 어리석게 느껴졌다·
겔우드가 위태로이 일렁이는 촛불을 보며 와인을 한모금 마셨다·
그리곤 자조적인 씁쓸한 웃음을 한숨과 함께 토해냈다·
“끌끌···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나보군·”
통찰력이 예전 같지가 않다·
판단력도 흐려진 기분·
사소한 문제조차 쉬이 넘기지 않았던 집중력도 옅어진 느낌·
아마도 노쇠한 기력이 모든 감각을 둔하게 만들고 있는 것일 터다·
“대체 어쩌자고 이런 일을 꾸미신 겁니까··· 대공녀님이시여·”
시작부터 어긋난 혼약대전은 파국으로 치닫았다·
그 끝에 우승자가 되어야 할 후보가 3명 밖에 남지 않았다·
그마저도 1명은 기권 선언을 고수하고 있어 우승자가 되기 여의치 않은 상태였다·
로건 대공전하의 귀환 전에 이 파국을 수습하기 위해선 혼약대전의 모든 일정을 재조정함과 동시에 제 3대공녀의 폭주를 막을 방법을 강구해야 할 터·
그리고 그 방법은 꽤나 잔인해야 할지도 모른다·
시작된 균열을 봉합하기 위해선 수단에 제약도 연민도 두면 안되는 법이니까·
자리에서 일어선 겔우드가 창가에 섰다·
르미앙 대공녀가 있을 제 3 외성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저주가 끝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군요·”
배움의 갈증과 아집으로써 향했던 왕립 아카데미·
저주의 위험을 무릅쓰고 해냈던 그 걸음이 어쩌면 저주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한 겔우드가 씁쓸한 미소와 함께 한숨을 내쉰다·
뒤이어·
똑똑·
누군가가 방문을 알렸고 직접 그 문을 열어 방문객을 맞이한 겔우드는 놀라야 했다·
이 혼돈과 파국 속에서 유일하게 미소지을 수 있는 기권자의 방문이었으니까·
“엘든 공자님?”
“시간 괜찮으신지요·”
“···그렇습니다만 어쩐 일이신지···?”
“전해드릴 것이 있어 이리 방문했습니다·”
그의 손엔 자신이 전했던 쪽지와 함께 마나레코드 2개가 들려있었다·
그리고·
그의 얼굴엔 1차 대면식 땐 없었던 긴 상처가 생겨있었다·
그것은 곧·
남은 3명의 후보가 공식적으로 2명이 됨을 알리는 것만 같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겸업을 하다 보니 시간적 여유를 내기가 어렵네요··
금주는 야간근무라 집필 시간이 충분해 토요일까지 1일1연재를 지킬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부득이하게 연재가 불가하면 공지를 남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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