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9
원작에서 몬스터 요리를 직접 하는 묘사가 없었던 터라 르미앙이 첫 대면식에서 몬스터 요리를 선보이며 ‘직접 준비했다’고 했던 말이 겉치레라 생각했었다·
그리 말하면 우승에 혈안이 된 최종 후보들에게 구토가 이는 괴식을 독려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실제로도 효과가 있었고·
한데 방금 먹은 붉은 롱거의 뒷다리구이는 분명 대면식에서 한입 먹고 놓아야 했던 그것과 똑같은 맛이었고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직접 준비했다는 것이 진실이었음을·
대공성의 셰프가 몬스터 요리의 대가라 여겨 한번 영입해볼까 했던 것이 어리석었음을·
[다들 맛있게 먹어줘서 고마워요·]
그렇게 순식간에 요리를 먹어치우자 르미앙이 종이에 그리 적어 인사를 전했다·
인사를 전해야 하는 이는 우리인데 말이다·
허겁지겁 먹느라 체통을 지키지 못 했을 입 주변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인사를 전했다·
“대공녀님의 솜씨가 이토록 훌륭하실지 몰랐습니다· 당장 시중에 팔기만 해도 시장가를 휩쓸 맛입니다·”
아리엘 역시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시작한 식사를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끝내고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제껏 먹어본 몬스터 요리 중에 단연 최고에요···! 거대한 벽이 느껴질 정도로!”
거대한 벽·
아리엘의 입장에선 그리 느껴지기도 할 터다·
수개월 간 연습하고 고뇌하고 있는 노력파 요리사에게 이 절대적인 맛은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질 터·
혹여 제 노력을 부정하는 맛에 실의를 느끼면 어떡하나 싶었지만 다행히 아리엘은 환한 미소에 동경을 담고 있었다·
“····”
레이첼 역시 흡족스러운 맛이었던 듯 접시를 깨끗이 비웠고 렌들러 영감께서도 탄복스런 얼굴로 르미앙에게 박수를 보내었다·
[다들 입맛에 맞으시다니 다행이에요· 저를 위해 해주신 것들을 조금이나마 갚고 싶은데··· 함께 하는 동안만이라도 요리를 해드려도 될까요?]
르미앙의 말에 우리의 시선이 일제히 아리엘에게로 향했다·
한끼 식사만으로 맛은 보증되고도 남았다·
아니·
주관적으로 보자면 북부령 서부를 돌며 먹은 몬스터 요리 중 으뜸가는 맛이었고 그토록 찾아 해매던 맛이었다·
언제까지 함께 하게 될지 앞으로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지만 함께 하는 동안만큼은 충분히 맛보고 싶은 솜씨임은 자명했다·
일제히 시선이 한곳으로 향한 걸로 보아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했지만 구인난을 겪고 있는 몬스터 요리사로 인해 식도락 원정대의 임시 요리사로 노력하고 있는 아리엘의 생각이 중요했던 까닭이다·
아리엘이 괜찮다며 제 역할을 고수하겠다면 조금은 아쉽겠지만 전적으로 존중해줄 생각이었다·
요리하며 느낀다던 기쁨을 방해하고 싶진 않았으니까·
다행히(?)·
“저야 좋죠! 그렇잖아도 집필 진도가 느려 걱정되고 있었거든요· 대공녀님께서 요리를 맡아주시는 동안 집필에 전념해봐야겠어요!”
아리엘이 손뼉을 치며 기꺼이 받아들였고 그렇게 우린 잠시나마 미식을 책임져줄 훌륭한 몬스터 요리사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
르미앙이 요리사 역할을 맡은지 사흘이 지났다·
힘들지 않냐는 걱정에 이렇게나마 보답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뻐 힘든지 모르겠다는 르미앙이었고 사흘간 몸을 움직이며 끼니도 제대로 챙긴 덕인지 창백했던 얼굴에 혈색이 돌아오고 앙상히 말랐던 몸도 살이 조금씩 붙고 있었다·
이따금씩 지나간 아픈 기억들이 떠오른 건지 침울한 얼굴로 넋을 놓을 때가 있었고 악몽을 꾸는 건지 나오지 않는 말로 무언갈 웅얼대기도 했지만 재회 했을 당시를 떠올려본다면 빠르게 회복하고 있는 르미앙이었다·
의도한 것도 아니고 바랐던 것도 아니지만 나의 결정들로 인해 망가져가다 못해 메말라 죽어가던 여주인공을 보는 건 마음 아픈 일이었기에 르미앙의 회복을 도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쁜 일이었다·
그렇기에·
데론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주는 것 또한 마다하지 않을 일이었다·
루겐 마을에 체류한지 일주일이 되어가고 있다·
그동안 르미앙은 아무런 말없이 그저 우리를 위해 몬스터 요리를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집으로 돌아가겠단 말도 무언갈 해야 한다는 말도 없이 말이다·
그것이 뜻하는 바를 알 듯 했기에 이제는 물어야 했다·
루겐 마을을 떠날 때가 되었으니까·
만약 추격이 있다면 한곳에 오래 머무르는 건 지양해야 했고 이미 예상보다 오래 머무른 터라 혹한의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비교적 온화한 동쪽으로 진입하려면 움직여야 할 때였다·
하여 일주일째가 되던 날 르미앙에게 물었었다·
“대공녀님·”
[?]
“내일 아침경에 에리스 후작령으로 출발하고자 합니다·”
[그래··?]
“대공녀님께선 어떡하실 생각이십니까?”
[···]
펜을 쥔 손이 종이 위에서 어정쩡히 멈춘다·
무어라 전할 말을 잃은 채 나를 바라보는 르미앙·
그러다 이내 한마디 답을 적어 보여주었다·
[모르겠어··]
그 대답에 미소를 지었다·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이리라 생각했다·
그만큼 그녀가 처한 상황과 생각이 복잡하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었고·
단지 내겐 최고의 대답이었기에 사근한 미소를 지어보인 것이다·
어차피 르미앙을 이곳에 두고 출발할 생각은 없었다·
삶의 목적지도 생의 목표도 잃어버린 여주인공을 멋대로 살려놓고 이대로 떠나버리는 것은 도와주지 않느니만 못 한 일일 테니까·
그렇기에 오히려 동행을 거절하면 어쩌나 라는 걱정이 들었었고 르미앙의 답은 그 걱정을 종식시켜주는 것이었다·
“그럼 잘 됐군요·”
르미앙이 다소 놀란 얼굴을 하며 글을 적어보였다·
[뭐··가?]
“모르시는 걸 알게 될 때까지 저희와 함께 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이미 일행들과 상의는 끝난 상태였다·
의견은 만장일치·
설득을 할 필요도 길게 이야기할 필요도 없이 논의는 끝났었다·
데론이란 위협을 알면서도 약자를 모른 채 한다는 건 인간됨을 저버리는 것이니까·
옅게 반색한 르미앙이 이내 먹구름이 드리우듯한 우중충한 낯빛을 했다·
[그치만··· 이미 갚을 수 없는 빚을 졌는걸·· 나 같은 거 하나 때문에 너희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
힘들 거라 해서 도의를 저버릴 만큼 물렁하게 살지 않았다·
지옥 불구덩이에 빠진듯 힘겨워도 져야 할 책임을 지며 버텨낸 전생이었고 딱딱한 바위에 몸을 부딪히며 살아온 생이었다·
복잡히 꼬인 것을 풀 여유가 없어 단단히 굳어버린 것을 깨부술 힘이 없어 그리 억울히 살아야 했지만 여유와 힘을 갖춘 지금의 내겐 데론이란 위협 같은 건 전생의 악적들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더군다나 지금은 제약이랄 게 없다·
혼약대전이 진행 중도 아니거니와 로건 대공이란 절대강자의 의중을 살필 필요도 없었으니까·
그런 내게 르미앙의 걱정은 되레 반가워 할 것이었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걱정말라는 듯 말해주었다·
“빚을 지신 적 없지만 정녕 빚을 갚으셔야겠다면 딱히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듯 하군요·”
[응··?]
“대공녀님께서 그러시지 않으셨습니까·”
[내가·· 뭘··?]
“함께 하는 동안만이라도 요리를 대접하고 싶으시다고 말입니다·”
‘아·’
그 외마디 탄성은 차마 글로 적지 못 한 르미앙이 입을 벌려 묵음으로 토해냈고 그렇게 우리의 식도락 원정대엔 한 명의 일행이 합류하게 된다·
함께 하는 동안·
그 시간이 언제 끝나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
다음날 아침·
각자의 짐을 정리한 우린 렌들러 영감이 빌려둔 수레에 짐을 실었다·
크지는 않았지만 짐을 실어도 사람 한 명 타기엔 충분한 수레였고 흑색 천막도 세워져있어 무언갈 숨기기에도 용이한 수레였다·
그것의 운송을 책임질 당나귀 한마리가 제자리에서 발굽을 긁고 있다·
르미앙의 회복 속도가 빠르다 할지라도 험로를 걸어야 하는 것은 아직 무리였다·
혹시 있을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서라도 검문이 있는 큰 마을이나 도시를 경유하려 해도 르미앙을 숨길 수 있는 것이 필요해 수레를 빌린 참이었다·
“수레에 오르시면 됩니다·”
[고마워요·]
수레에 오른 르미앙이 허리춤에 꿰어둔 종이 뭉치에서 그것을 찾아 내보였다·
총 스무장에 달하는 뭉치로 간단한 인삿말과 자주 쓰는 말을 미리 적어 엮어둔 것이라 했다·
말을 적는 동안 불필요하게 타인의 시간을 뺏는 듯해 만든 것이라 하는데 그 덕에 서로 소통도 빠르고 원활해져 한결 편하기는 했다·
다만 필체의 경중을 나눌 수가 없어 전부 ‘중’으로 통일한 터라 다소 딱딱해진 감은 있었다·
“자리가 불편하거나 도움이 필요하시거든 두부종을 흔들어주십시오·”
[네·]
[걱정마세요·]
[괜찮아요·]
연거푸 3장의 종이를 꺼내 의사를 전한 르미앙이 자리를 잡은 것을 확인하자 렌들러 영감이 고삐를 잡았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고삐를 앞으로 끌자 당나귀가 수레를 끌며 나아가기 시작한다·
우리의 목적지는 에리스 후작령이지만 수레까지 빌린 이상 높은 산맥을 넘어갈 수 없었기에 동쪽 초입의 에리스 후작령으로 가기 위해선 윈터펠 대공성이 있는 대공령을 거쳐갈 수밖에 없었다·
북부령 중 가장 큰 땅덩어리를 자랑하는 데다 대공성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있는 남문을 통해 조용히 거쳐간다면 문제될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왜인지 모르게 조용히 거쳐가지 못 하리란 생각이 드는 것은 혼자 삭혀야 할 쓸모 없는 기우라 여겨야 했다·
“진작 수레를 빌릴걸! 짐을 안 짊어매니까 발걸음이 날아갈 거 같은데? 안 그래? 레이첼?”
“저는 호위를 위해 딱히 짐이랄 게 없어서·”
“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많이 늦어서 면목이 없슴닷··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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