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0
다인은 하수연이 읽고 있는 책을 슥 들여다보았다· 컴퓨터 캡쳐화면이 페이지 곳곳에 난잡하게 들어가 있는 책· 제목은 [원숭이도 할 수 있는 유튜브 구독자 100만명]·
“이런거 왜 봄? 유튜브 하려고?”
“응·”
다인이 보기에는 이런 멍청한 책을 보는 것은 유튜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유튜브를 하려면 영상을 찍어야지 책을 보고 앉아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원래 뭐든지 시작하려면 기초적인 책부터 봐야 하는 거야·”
“야 그런 쌉소리는 틀니들도 안 하겠다· 유튜브로 보면 되는데 뭐하러 돈 주고 책을 사봐~ 그나마 도서관에서 빌린거네·”
왠지 흠칫하는 수연을 두고 다인은 애들을 불러모았다· 슬쩍슬쩍 다가온 아이들은 수연이 보고 있는 책을 보고 프흐흫 웃었다·
“연수 너무 귀여워진거 아냐? 이런 책을 보고 어떻게 유튜브를 배워·”
“얘 완전 빙구 다 됐네·”
“흐즈므르·”
뺨을 주우욱 잡아당기니 아무런 대응 없이 그저 하지말라는 말만 하는 수연· 그 눈은 여전히 진지하게 문제의 책에 꽂혀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수연이 참 많이 바뀌었다고 다인은 생각했다· 지금 볼을 잡아당기고 있는 채린만 해도 한달쯤 전이었다면 볼에 손이고 뭐고 바로 “야 강채린 미쳤냐?” 라는 소리부터 들었을 것이다·
그 다음에는 [하 미친년때문에 학교 개조진다 ㅡㅡ] 같은 검은화면에 부둥부둥 댓글 달리는 인스타 당하고· 애스크에 익명으로 테러 당하고 선후배나 친구 남자애들 사이에는 야 강채린 몰랐는데 개병신걸레년이래 뭐 이런 소문 나고·
이제는 다르지만·
‘채린이 쟤도 아니까 저러고 있는 거겠지···’
원래의 수연은 그런 애였다· 같이 놀면 재미있긴 했지만 자신들을 진짜 친구로 취급하진 않는 애· 끝없이 급을 나누고 견제하고 자기를 섬기기를 바라던 애·
지금의 수연은 달랐다· 선배들한테도 무관심· 중학교 후배애들한테도 무관심· 다른 반 친구들한테도 무관심· 학교 끝나고는 집에 가고 저녁 약속에는 나오지 않는다·
친하다고 느꼈던 애들이 찾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대응 정도는 해주지만 그걸로 끝· 자신이 직접 가지는 않는다· 미친년 다 됐다고 소문도 났지만 이전이었다면 난리쳤을 일인데 이제는 별 신경도 쓰지 않았다·
“연수 너 인스타 있잖아· 왜 유튜브를 하려고 그래? 거기에 이전처럼 사진 올리면 금방 협찬 붙을텐데· 돈 벌리고·”
“그건 좀·”
당혹한 표정으로 채이나를 바라보는 하수연· 그 시선에 채린과 이나는 뭐야뭐야 하는 눈빛으로 수연을 쳐다보았다·
“왜 조신해지려고?”
“남자라도 생겼음?”
“약간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아니 남자가 생긴 건 아니고···”
히에엑- 하는 표정으로 다인을 쳐다보는 강채린과 채이나· 저런 표정을 지을 법 하긴 했다· 이전에는 ‘은근히 꼴리는 게 중요해·’ 같은 소리를 하며 어떤 사진을 인스타에 올려야 팔로워 수가 늘지 궁리하던 애였는데·
그렇다고 완전 모범생이 된 건 또 아니었지만· 수연은 원래 “선생들한텐 잘 보이는게 이득이라고·” 같은 소리를 하며 수업을 열심히 들었었다· 그런데 요즘은 주요과목 아니면 대놓고 고개를 박고 자거나 노트에 뭔가 이상한 걸 그리곤 했다·
그런 걸 전반적으로 보면···그냥 사람이 바뀐 듯한 느낌·
‘유튜브로 돈을 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명전은 책을 덮었다· 이런저런 기초적인 것들은 대충 이 책으로 파악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 책은 시일이 좀 지난 것· 이런 미디어들은 최신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거 하나에만 의존할 순 없다·
‘저 아이들에게 물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겠지·’
저 애들이 해줄 수 있는 조언은 일반적인 여고생 수준의 조언이 전부일 것이다· 그런 이야기라면 들으나마나였다· 애시당초 그가 하지도 않을 행동들인데 조언을 들어봐야 무엇 하는가· 해 줬는데도 따르지 않으면 상대의 기분만 상할 뿐이다·
하지만···대략적인 방향성 정도는 잡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유튜브를 한다 치자· 그럼 어떤 식으로 구독자를 모아야 할까?”
“그 책에는 안 나와?”
“‘외부 커뮤니티에 내 채널 홍보하기’ ‘외국어 번역 기능 쓰기’ ‘댓글 잘 달기’ 이런 것 밖에 없어서·”
“근데 그걸 알면 우리도 유튜브를 했겠지·”
당연히 그렇겠지 하며 명전은 한숨을 쉬었다· 그런 수연의 모습을 보며 다인은 머리를 긁다가 입을 열었다·
“유튜브든 인스타든 수연이 너 같은 애들이 쓸 수 있는 치트키가 있지·”
“뭔데?”
“예를 들면 이런 거···”
다인은 자신의 핸드폰을 꺼낸 다음 영상 하나를 보여주었다· 뭐시기 뭐시기 Vlog· 전교 1등 어쩌고 저쩌고· 자퇴생 어쩌고 저쩌고· 방학 일상 어쩌고 저쩌고· 제목만 보면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을 법한 그런 영상들·
“와꾸 이쁜 애들은 그냥 얼굴 빡 박아놓으면 그걸로 끝이야· 그 다음 대충 주절주절하기만 해도 이제 외국인들이나 남자들 어린애들이 와서 와 너무이뻐요 궁시렁궁시렁···선택받은 애들만이 쓸 수 있는 치트키지·”
아니면···멍한 얼굴의 수연에게 다인은 다른 영상 하나를 보여주었다· 여자가 피아노를 치는 영상· 피아노 실력도 좋지만 사실 영상의 포인트는···
“이렇게 가슴을 까는 거지·”
그 영상을 보고 얼굴이 점점 붉어지는 수연· 게다가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을 보니 머리가 깨지기 이전과는 확실히 달랐다·
“이런 걸 나보고 하라고?”
“하라는 건 아니고· 이전에 니가 인스타에 하던 것처럼 아무튼 남자든 여자든 이쁘고 야한게 최고라고· 너 같이 축복받은 애들은 그냥 그 외모를 활용을 해야 돼·”
다인의 말에 끄덕이는 수현과 채린·
“이전에는 잘 써 놓고 왜 안하는거야?”
“솔직히 이런 존꼴인 몸으로 그런 거 안 하면 그게 불법임·”
한마디씩 덧붙이는 아이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명전은 이 애들에게 괜히 물어봤다는 생각만 들었다·
* * *
“다녀왔습니다·”
“어서와· 학교는 어땠어?”
“글쎄요···”
집에 오니 왠지 와 있는 ‘엄마’· 우선 인사를 하고 대충 짐을 풀어놓는다· 오늘 출근 안 했던가? 아침에 밥 같이 먹고 출근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오늘 회사 창립기념일이라 빨리 왔어· 어제 말해주지 않았니?”
그런 생각을 하며 빤히 쳐다보고 있자 섭섭하다는 투로 말하는 이혜인 씨· 그런 말을 했던가? 명전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튼 뭐 그게 중요한게 아니니까·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명전은 기타를 치러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그를 붙잡는 ‘엄마’의 목소리·
“딸 오늘 쇼핑 나가자·”
“네?”
“엄마 오늘 일찍 퇴근한 김에 사주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 응?”
“이 시간에 기타를 쳤으면 이미 연습이 끝났을텐데···”
궁시렁대는 수연의 말에 혜인은 작게 웃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발걸음은 계속 그녀를 따라오고 있다는 게 혜인에게는 너무도 사랑스러운 부분이었다·
초등학교 시절이었을까 중학교 초반이었을까· 그 시절에는 둘이서 자주 쇼핑을 나왔었지· 사고 싶은 옷도 사고 먹고 싶은 것도 사고· 그렇게 자주 같이 다녔는데·
어느샌가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뭐 어떻게든 회복했네·’
요즘에는 놀러다니는 건 흥미가 떨어졌는지 방에 박혀서 기타만 만지고 있긴 했지만· 밖에 뭐 사러 나가자고 하면 “엄마 혼자 가!” 같은 고함을 지르거나 아니면 아예 집에 없거나 하던 때 보다는 나았다·
어쨌든 나오긴 하고 나온 다음에도 말로만 궁시렁대지 따라오고 있지 않은가? 혜인은 몇년 전 화장실 간다고 해 놓고 도망가버렸던 수연을 떠올렸다· 실종신고까지 할 뻔 했던 것에 비하면 지금은 양반이었기에···혜인은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에 반해 명전은 죽을 맛이었다·
‘쇼핑을 도대체 몇시간이나 하는 거냐?’
쇼핑을 한다기에 한 삼십분 정도면 끝이 날 줄 알았다· 그래서 그냥 뭐 ‘엄마’랑도 어울려줄 겸 왔다· 근데 전체 삼십분은 커녕 한 가게에서 삼십분을 소요해버리는 호쾌한 시간감각에 어처구니가 없어진 명전이었다·
이 옷은 너한테 어울리겠다 한번 입어봐라 이 옷은 나한테 좋은데? 입어봤다 벗었다를 반복하다 한번 더 둘러보고 올게요· 한번이면 좋으련만 세번은 넘게 반복된 상황· 그렇게 시간 투자를 해놓고 결국 산 것은 그의 옷 세벌 정도와 이혜인 씨의 옷 한벌·
‘여자들이 오래 쇼핑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긴 하지만···’
전생에서 잠시 사귀었던 여자친구들도 이렇게 쇼핑이 길지는 않았는데· 남자였던 그를 배려해서 그렇게 해 준 것이었을까? 알 수가 없었다·
“지루하지?”
“···네·”
“으흐흐· 그럴 줄 알았어·”
뚱하게 대답한 명전의 볼을 잡아당기는 ‘엄마’· 명전이 ‘여자들은 왜 이렇게 볼을 잡아당기는 것을 좋아하는가···’ 같은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이혜인 씨가 발을 옮긴 곳은 백화점 내의 전자제품 코너였다·
“수연이가 요즘 기타를 치잖아?”
“네·”
“그래서 엄마가 선물을 해 주려고 했거든· 앰프?? 인가 하는 거· 그런데 집에 있는 것 같더라고? 그래서 음악 하는 애들한테는 어떤 게 좋을지 부서 직원분들한테 물어봤어·”
혜인은 수연을 돌아보지 않고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한 방향을 향해 걸었다·
“그러니까 요즘은 뭐 컴퓨터만 있으면 다 된다고 하더라· 근데 수연이 너는 컴퓨터가 없잖아· 그래서 퇴원 선물로 엄마가 컴퓨터를 사주기로 했지·”
혜인이 집어든 것은 베어문 사과가 그려진 노트북· 200만원이 넘는 음악 및 동영상 작업이 충분히 가능한 하이엔드 기기·
“어때? 이 색깔 괜찮아?”
‘엄마’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자신의 선물이 무조건 통할거라는 믿음에서 나오는 웃음·
그리고 명전은 그 웃음을 보고 안타까운 감정을 느꼈다·
‘이 애는 도대체 어떤 인생을 살았던 건지···’
생전의 명전 또한 그렇게 효자는 아니었다· 오히려 불효자에 가까웠지· 애초에 집안의 가업을 잇지 않고 기타 하나로 돈 벌겠다고 뛰쳐나간 사람이 어떻게 효자가 되겠는가·
하지만 그 또한 일종의 정당방위였다· 아무튼 가업을 이으라고 몽둥이를 드는 아버지한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저 도망친 후 잘 있다고 안부나 전해줄 뿐이었다·
그래도 자식으로써 도리는 했다고 명전은 생각했다· 어느정도 벌이가 안정된 다음은 달에 한번은 찾아뵈었고 여행도 자주 보내주었다· 가시기 전엔 수발을 들어줄 고용인도 보내주었다· 부모의 뜻에 따르지는 않았으나 배 곯지 않고 하고 싶은 일 모두 할 수 있게는 해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떠나버린 부모에 대한 죄책감이 생기곤 했다· 나이를 이렇게까지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부모가 나를 애틋하게 생각했으니 그렇게까지 하려고 했겠지···같은 느낌으로·
하지만 이 애는 어떤가·
어떤 사정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무슨 사정이 있긴 하겠지· 사춘기 시절이니 감정이 변덕스럽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남편도 잃고 자식을 돌볼 시간도 별로 없는 어머니가 이렇게까지 굴어야 할 정도로···그렇게 몰아붙일 필요가 있었을까? 그렇게까지 자신이 중요했을까?
죽은 ‘하수연’에게 물어볼 수는 없다· 결국 남겨진 것은 그 자신이니까· 그 말인 즉슨 그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렸다는 거겠지·
갑자기 침묵한 수연을 보고 혜인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 애가 왜 이러는 걸까? 자신에게 잘 대해주지 말라는 걸까? 갑자기 엄마 노릇 하지 말라고? 아니면 다른 문제가? 혹시 아이의 심기를 거스른 부분이 있었을까?
당황스럽던 그녀의 마음을 진정시킨 것은 수연의 움직임 하나였다·
망설임이 다분한 기색으로 주저주저하며 그녀에게 안겨오는 수연·
“어···그 음···고 고맙···감사해요·”
그리고 이어지는 수연의 말에 혜인은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느꼈다· 어떤 심정의 변화가 있었을지는 모른다· 물건을 사줬다는 이유로 갑자기 고마워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계산적인 이유로 고마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혜인에게는 그런 것 쯤은 전혀 신경쓰이지 않았다· 그런 것이 무엇 중요하겠는가· 그녀의 딸 그녀의 아이가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그래·”
혜인은 자신도 손을 내밀어 아이를 안았다· 살짝 떨려오는 아이의 몸은 그녀가 기억하던 것보다 훨씬 더 컸다·
‘언제 이렇게 자라버린 건지···’
아이의 성장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 전에 안아봤다는 것일까· 슬픈 일이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예전의 일은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현재가 중요하지·
“그···”
“응?”
그리고 서로 끌어안은 상태에서 갑자기 입을 여는 수연·
“기 기왕 사 주시는 김에 좀 더 사주시면 안··· 안 될까요? 살게 많아가지고···”
“말만 해· 우리 딸 엄마 몰라? 돈 많은 거· 여기 있는 거 다 사도 돼· 걱정하지 마·”
그 정도야 뭐 딸이 원하는 거라면 뭐든지 들어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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