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01
“일단 지적할 게 있는데···British steel은 1980년에 나온 음반이야· Living after midnight은 70년대 노래로 치기는 좀 그렇다고· 71~80으로 칠 수도 있겠지만 뭐·”
“음 그렇긴 하네·”
머쓱해 하는 서하· 명전은 고개를 돌려 다른 아이들을 보았다·
이전까지도 물론 진심을 다하긴 했지만···모든 일에 있어 진심을 다한다 할지라도 그 진심의 퍼센트라는 게 있지 않은가· 사자는 토끼를 잡을 때 전력을 다한다고 하지만 물소를 사냥할 때의 전력과 토끼를 사냥할때의 전력이 과연 같을 것인가·
하지만 명전은 이번에 확실히 꽤나 공을 들여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후 라운드에서 미션이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왠지 그런 미션들이 까다롭다 할지라도 지금 이번 라운드보다 ‘실력적인 부분에서’ 까다로울 것 같진 않았기에·
“이번에는 좀 진지하게 접근해보자· 자작곡을 만들어야 되는 부분이기도 하니까· 연습 각오 좀 하고· 학교에 조퇴 좀 시켜달라고 이야기도 해 놓고· 나도 수업 내내 곡 쓸테니까···”
“너 엄마가 옆에 있는데 그런 말 해도 되는 거니? 수업을 안 듣겠다고?”
“아니 그 말이 아니라요·”
비장하게 말한 명전의 말을 잡아채는 혜인· 친구들이 깔깔 웃어대는 사이 명전은 머쓱하게 변명을 했다· 그런 게 아닌 걸 알면서 왜 이러는가···사람 부끄럽게·
* * *
승재는 화면에 띄워진 영상을 바라보았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기타를 치고 있는 여자아이· 하지만 그 손에서 새어나오는 소리는 걷는 사람을 멈추게 할 정도다·
“이게 맨 처음 버스킹 할 때라고 했던가?”
“응·”
“장난 아니네· 주제 보고 우리가 유리할 줄 알았는데· White room 한 것도 나는 맨 처음에 성민이 니가 하자고 한 줄 알았어·”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은 ‘하수연’의 첫 번째 버스킹· Layla와 Voodoo child를 노상 버스킹에서 연주한 영상· 처음 맞춰보는 것이 분명할 드럼과 베이스인데다가 수많은 박자 실수와 연주의 어긋남 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을 기타 연주 하나만으로 다 커버해버리는 실력· 오히려 박자를 주도해야 할 드럼이 기타의 박자에 따라오고 베이스 또한 마찬가지로 눈치를 보는 형국·
“그쪽이 먼저 이야기를 했다니까요· 자기 유튜브 채널명이 이거일 정도로 좋아하는 노래라고· 나는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다는게 리얼 소름돋음·”
“다행인 건 다른 애들은 뭐 그런 건 아닌 것 같다는 건데· 근데 애들 성장속도 보면 그게 문제가 아닐 것 같은데? 나 진짜 이번에 서하 드럼 치는 거 보고 존나 놀랐다·”
승재는 서하의 예전 실력을 떠올렸다· 과거 라이브 클럽에서 공연할 때 가끔씩 찾아와 “저는 호랑···유서하라고 하는 사람인데요· 여러분들의 팬이고 드럼을 치고 있는데···” 라고 이야기하며 자신들의 팬임을 어필했던 드러머·
흔치 않은 여고생 팬에 드러머이기까지 해서 성민이 가끔 실력을 봐 주었고···승재도 그걸 본 적이 있었다· 기본기도 테크닉도 나잇대에 비해 확실히 괜찮았던 아이·
그러나 문제는 그 나잇대 음악하는 애들이 다 그러듯이 기본기를 경시하는 성향이 컸다는 것이다· 게다가 성민과도 실력이 많이 차이가 나고 해서 “나중에 드럼 빈 자리 있으면 그때 오디션 한번 봐·” 하고 말았는데·
“그렇다니까요· 도대체 얼마나 굴렸는지 모르겠어요· 기본기가 거의 뭐···밥 먹고 기본기 연습만 했나 싶을 정도던데·”
“드럼 뿐만 아니고 베이스나 키보드도 둘 다 잘 쳐요· 그냥 전반적으로 멤버들 실력이 우리랑 비등하다고 봐야 될 것 같고· 기타는 좀 재혁이한테 안된 말이지만 그쪽 애가 훨씬 잘 치고·”
“야 웬만하면 내가 그래도 내가 잘 친다고 하겠는데 걔한테는 안 되겠더라· 무슨 미친 애가 나타났어·”
베이스 하수결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기타 정재혁·
“내가 저 나이때는 취미밴드한다고 깝싸고 학교 축제 올라가서 뚱땅거리는거만으로도 와 개잘한다 소리 들었는데· 쟤는 뭐 뭐라더라? 그 서명전 기타리스트 추모공연 가가지고 단독으로 라이브도 했다고 하던데요·”
“걔가 왜 서명전 기타리스트 추모공연을 가는데? 무슨 관련이 있어서·”
“몰랐어요? 걔 그분 제자래요· 마지막 제자· 기타도 그분 유품이잖아요· 들고 다니는 이펙터들도 그분 거 수집해서 쓰고 있고·”
잠시 시끄러워지는 방· 승재는 아무튼 멤버들을 진정시킨 다음 다른 연주 영상을 쳐다보았다· EP 발매 당시 노상에서 했던 버스킹 공연이라던가 유튜브에 올린 영상이라던가 하는 것들·
“진짜 빡세게 준비해야 할 것 같은데요·”
“그러게· 빡셀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이정도일줄은 몰랐는데·”
승재가 그룹 사운드를 선택한 것은···녹화중에 밝힌 바대로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결국 언젠가 부딪힌다면 빠른 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승에서 이기는 게 임팩트가 더 크겠지만 결승에서 지는 것 보다는 진행 과정 중에 지는게 더 낫지 않은가·
하지만 다시 한번 더 자세히 그룹 사운드를 조사해보니 차라리 결승에서 만날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만난다고 장담은 못 하지만·
“그래도! 충분히 자신있는 승부야· 아니 이것보다 더 조건이 좋을 순 없어! 저쪽도 풀파워로 오긴 하겠지만 우리는 홈그라운드니까· 지금부터 작곡 들어갈테니까 전화하지 마라· 진짜 급한 거면 작업실로 찾아오고· 알겠지?”
밴드의 대답과 함께 승재는 책상을 박차고 일어섰다· 더이상 노닥거릴 때가 아니었기에·
* * *
Muzaku의 기타 정재훈· 그룹 사운드를 음해하기 위해 녹화 무대에서 기타 줄을 끊어먹었던 사람·
그도 아무런 생각 없이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다· 나름의 생각이 있었고 할 말도 있었다· 부추김도 있었지만 호승심도 있었다· 단지 세상이 그의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을 뿐·
자신과 같이 싸워주겠다던 Muzaku의 밴드원들은 다 “그렇게 대놓고 티나게 하랬냐?” 라는 말을 하며 자신을 밴드에서 내쫒았다· 그리고 그들 Muzaku를 부추기던 밴드 Velvet Monochrome은 아무런 말도 없이 침묵하며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다·
“다 개새끼들이야·”
한순간의 치기로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고 재훈은 생각했다· 물론 인생은 길고 밴드에서 쫒겨났다고 해서 딱히 망하는 건 아니지만 현재 재훈의 시야로는 앞날이 보이지 않았다·
전혀 모르는 사람의 이름으로 카카오톡이 온 것은 바로 그 때였다·
“앉으세요·”
자신을 부른 것은 이전에 오디션에서 탈락했던 밴드 ‘울림 스톤즈’의 리더· 이름이 뭐라고 했던가· 성은 재훈 자신과 똑같았던 것 같은데·
“정우진입니다·”
“아 네 정재훈입니다·”
악수를 나눈 후 잠시간 침묵이 흐른다· 재훈은 [오디션 관련 건으로 한번 뵙고 싶습니다·] 같은 카톡을 보고 나오긴 했지만 이 사람이 자신을 왜 불렀나 싶었다· 관련도 없잖아·
“이번에 자진사퇴 하신 거· 그룹 사운드 관련이죠?”
“···네? 어떻게···”
대답 대신 우진은 커피를 홀짝이고는 다시 자신의 할 말만 했다·
“저도 그룹 사운드에 안 좋은 기억이 있어서요· 괜찮으시다면 관련해서 같이 뭔가 하지 않으시겠어요·”
“어···”
재훈은 고민했다· 사실 그가 그룹 사운드를 미워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PD를 엿먹이고 싶었을 뿐이고 그 수단으로 그룹 사운드가 선택되었을 뿐· 밉다고 하면 자신을 그렇게 부추겨놓고 일을 저지르니 내쫒아버린 Muzaku의 밴드원들이 더 미웠다·
하지만 그룹 사운드를 엿먹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어차피 더 떨어질 곳도 없는 판인데·
“제가 특정될 수 있는 일이면 안 합니다·”
“그런 일은 아니구요· 그냥 증언만 해 주시면 되거든요· 드릴 수 있는 건 없긴 하지만···”
그렇게 말하고 자조적으로 웃는 우진은 흡사 재훈 자신을 닮은 듯 했다· 남은 것이 없는 두 사람· 재훈은 힘 없이 웃고는 우진의 말을 들을 준비를 했다·
단지 자신들보다 잘 나가는 여고생 집단이 고까워서 이상한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현실· 그러나 아무튼 본인들은 인생의 말로에서 발버둥을 친다고 생각했다· 원래 인생은 자기합리화의 연속인 법이니까·
* * *
“1970년대라···잘 모르겠네·”
방송 스케쥴을 핑계로 조퇴를 한 후 카페에 모인 4인방·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시켜놓고 받아와 한 모금 마시자마자 이서가 그렇게 털어놓았다·
“그게 당연한 거 아닐까요···우리가 1970년대를 살아본 적도 없으니까요···”
“1970년대를 사는 게 아니라 1970년대의 음악을 이야기하는 거니까· 굳이 살아볼 필요는 없지·”
영 답답한지 이상한 소리나 하는 아이들· 명전은 그냥 달달한 커피나 마시고 있었다· 어차피 1970년대에 대해서 아는 것은 명전 본인밖에 없다· 나머지는 피상적으로 알 뿐이겠지· 그나마도 메탈을 좀 파본 서하 정도나 알 것이고 나머지 둘은 전혀 그런 쪽에 대해서 모를 것이다·
“1970년대에 태어났으면 몇 살이야?”
“지금 50대 정도 되지 않았을까요?”
“와 완전 늙은이네· 근데 1970년대에 음악을 들었으면 최소한 그 때 10대였다는 거잖아· 거의 뭐 70살? 60살? 헉· 슈퍼 씹틀니·”
별 생각 없이 내뱉은 것 같은 이서의 말· 하지만 명전은 왠지 모르게 화가 났다·
‘씹틀니라고 할 것 까진 없지 않나?’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던 명전이었다· 하지만 인터넷을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요즘 애들이 어떤 느낌으로 비속어를 쓰는지 감이 왔다· 아무튼 나이 먹었으면 그냥 비하의 대상이라는 것 아닌가·
명전은 자기 자신이 그렇게 늙게 산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인터넷을 보면 그리 생각하는 것 자체가 늙은이의 증거라고 하지만 아무튼 나이라는 건 결국 정신의 문제 아닌가?
육체가 늙어도 정신 연령이 젊다면 그것은 젊은 것이지 늙은 게 아니란 말이다· 게다가 지금은 육체까지 젊은데· 물론 이전과는 좀 다른 성별이긴 하지만···
“수연이 너는 1970년대 음악 들어본 거 있어?”
“많지· 너희들도 공연 좀 하지 않았나? 내가 몇번 시켰던 것 같은데···그 ‘The man who sold the world’· 주현 곡에서 세션 섰던 그 곡부터 1970년 곡이잖아·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도 1978년이고·”
“몇개 없는 거 같은데·”
그런가· 명전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은근히 많이 시킨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면 몇개 없었네· 예전부터 좀 채찍질을 시키고 선행학습을 시킬 걸 하며 명전은 입을 열었다·
“뭐 지금이라도 들어보면 되긴 하지· 그런데 1970년대라는 게 워낙 스펙트럼이 크다 보니까· 어떤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갈리긴 해·”
락의 역사는 워낙 다채로워서 이야기할 것이 너무도 많다· 그 중에서 1970년대 초반이라 하면 하드록의 약진 프록과 글램 펑크의 시작···블루스와 사이케델릭의 집권기가 끝난 후 현대 록의 장르 중 대부분이 그 시절에 탄생했다·
락으로 한정하지 않으면? 더 뻗어나갈 여지가 많다· 속되게 말해서 그냥 아무거나 골라잡고 1970년대라고 우겨도 레퍼런스를 찾을 수 있을 정도니까·
하지만 명전은 그 중에서도 사이케델릭과 프로그레시브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그가 선호하고 주로 듣는 노래 쪽·
‘영감을 떠올리는 게 문제지만···’
“1970년대를 사는 사람들은 어땠을까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가운데 현아가 질문을 던졌다· 1970년대를 사는 사람들은 어땠을까· 글쎄···
“그 시절이 살기 좋았다는 사람도 있잖아· 우리 할머니도 맨날 옛날이 좋았다~ 뭐 그러던데· 그때는 사람간에 정도 있고 우애도 있고 아무튼 뭐···”
“별로 안 좋았지· 뭐가 좋았겠어· 그 시절에 뭐 전기가 제대로 들어오길 하나· TV가 있었나· 그때는 TV도 흑백이었어· 70년대 후반에나 컬러가 됐지·”
명전은 옛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꽤나 잘 살았던 집안의 아이(애초에 잘 사는 집이 아니었다면 기타 같은 걸 사 줄 수 있을리가 없다) 였으니 컬러 TV가 있는 건 당연했지만· 남들의 집에 가 보면 흑백TV만 있어도 부자요 없는 데가 많았다·
그 뿐인가· 그때 당시 동네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푸세식이었던 화장실도 많았다고 했다· 당장 친구네 집 놀러가봐도 화장실이 밖에 있는 경우가 대다수였고· 아파트 같은 건 뭐 엄두도 못 내고· 기생충에 소독에 뭐···
“작년에 빈대 이야기 많았잖아· 예전에는 빈대가 일상이었어· 막 ddt 뿌려가며 빈대 잡고· 그래도 남한테 옮아오고· 그땐 냉장고도 많이 없었지· 학교 가면 막 애들이 사람 때리고 난리치고 삥뜯고 그러는 게 일상이고· 전혀 살기 좋았던 시절은 아니야·”
명전은 그렇게 옛날을 추억했다· Good old day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명전은 예나 지금이나 현재가 과거보다 항상 낫다고 생각했다·
예전이 뭐가 좋은가? 그때 인터넷이 되길 했나 유튜브가 있길 했나? 당장 음악만 봐도 그 시절에는 아버지 바짓자락 붙잡아가며 웃돈을 억소리나게 주고 외국 음반을 업어왔어야 했다· 악보도 없어서 귀로 따고도 녹음을 못 해서 긴가민가해야 했고·
“수연이 너 근데 되게 그 시절 살아본 사람처럼 말한다·”
“뭐?”
명전의 한탄에 가까운 중얼거림· 그 이야기를 들은 이서는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내뱉었다· 당황한 명전과 맞장구치는 서하·
“너무 생생한데· 혹시 빙의라도 한 거 아냐? 병원 들어갔을 때 뭐 그 시절 사람이 빙의라도 했다던가·”
“하 하···하하···”
“호랑 소설을 너무 많이 본 것 같아·”
명전의 정곡을 찌르는 서하의 농담· 그 농담에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웃는 사이 현아가 한심하다는 듯 서하를 보며 말했다·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는 서하·
“내가 살아본 게 아니라 예전 뭐···그런 것들을 보면 그렇다는 거지·”
“뭔가 수상한데···”
전혀 수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지만 이서는 왠지 당황하는 ‘하수연’의 모습이 웃겨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에 좀 더 삐질삐질대며 왠지 모르게 눈동자가 흔들리는 ‘하수연’·
그렇게 잠시간 시간을 보내다 명전은 영감이 하나 떠올랐다· 찬란한 추억을 노래하는 건 쉽다· 힘들었던 시간에 대한 찬사도 좋다· 얼핏 신선한 듯 보여도 실은 매우 쉬운 길이다·
‘하지만 그 시절에 짓눌려갔던 사람들에 대한 노래도 할 수 있지 않은가·’
스러져간 사람들의 노래·
이런 주제로 누가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가· 결국 ‘틀니’인 명전 자신밖에 할 사람이 없을 듯 했다· 물론 남들이 보기에는 십대 여자애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가당찮을 수도 있지만···어찌되었든 그랬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비공개 님 10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