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03
“안녕하세요! Mystica 김승재입니다!”
활기차게 올라온 밴드의 리더· 꽤나 얌전하게 입었던 이전과는 다른 화려한 배색과 나풀나풀하게 날리는 복장·
물론 Mystica의 멤버들이 그 시절의 Led Zeppelin마냥 찰랑찰랑하고 복슬거리는 장발을 가진 미남들은 아니다· 그 탓에 관객들 중 일부가 “아 뭐야 극혐···” 이라고 중얼거리긴 했지만 아무튼 화장 기술이 발달해서 그런지 어떻게든 봐 줄 수는 있는 비주얼이 탄생했다·
“저희가 이번 공연에서 보여드리고자 하는 것은···1970년대 초기의 헤비 메탈입니다· 하드 록에서 헤비 메탈로 넘어가던 그 시기의· 위대한 메탈의 시조에게 보내는 일종의 찬사와도 같은···그런 느낌의 곡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승재의 말에 관객들 중 일부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온다· 정통 헤비 메탈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서일까·
“그럼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들어주세요 Thunderbird!!”
곡명이 외쳐짐과 동시에 거친 베이스 리프로 시작되는 곡· 망치로 내려치는 듯한 베이스 사운드가 공연장의 바닥을 후려치며 관객들의 열기를 끌어올린다·
지친 몸 이끌고 집에 돌아와
한숨을 쉬면서 세상을 탓해도
매일 저녁 나에게 활력을 주는 건
저 방 구석 매일 나를 기다려주는 너
직선적이고 강력한 드럼과 하이햇· 과할 정도는 아니지만 곡을 충분히 리드해나가는 기타 리프와 속주·
그리고 곡을 이끌어가는 메인 악기는 대놓고 곡명으로 묘사되듯이 베이스다· 더 후(The who)의 존 엔트위슬을 연상시키는 무지막지할 정도의 베이스·
“썬더버드 나의 벗!”
초고음역대까지는 아니지만 단단한 보컬이 무대를 지배한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는 듯 보여도 실제로는 과할 것 없이 들어간 악기들· 보컬과 악기들의 조화가 맞물려 관객들은 점점 흥분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 * *
“감사합니다!!”
‘적이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네·’
열광하는 관객들 사이에서 아윤은 그렇게 생각했다· 한국 음악 시장 내에서 선호도가 명백히 낮다고밖에 할 수 없는 헤비 메탈· 그리고 헤비 메탈로 인디 시장을 헤쳐나간 저력은 쉽게 얕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분명 저 사람들은 코피가 터져가며 이번 무대를 준비했을 것이다· 명백히 그런 흔적들도 보였다· 피곤에 절어 내려온 다크서클· 관중석에서 봐도 떨리는 게 보이는 손 등·
“와···무대 정말 좋았는데요· 이런 무대를 보여주신 Mystica 여러분들에게 다시 한번 박수 부탁드립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 처음 저들이 등장했을 때와는 영 딴판인 진심이 담긴 박수·
“얘들이 1등이라고?”
“다행이다· 이 팀 안 만나서·”
“다음 애들은 탈락 아냐? 거의 자동 같은데·”
아윤의 주위에서 그렇게 중얼거리는 사람들· 그녀는 코웃음을 치고 싶었지만 잘 되지는 않았다· 그룹 사운드의 팬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퍼포먼스였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공연이었기에·
‘제발 얘들아···!’
그러므로 그녀는 단지 기도할 수 밖에 없었다· 무대 위로 올라오는 그녀의 아이돌 그룹 사운드를 보면서·
‘옷이···뭐지?’
평소에 입고 다니던 일상복도 공연 때 가끔 입던 아이돌 컨셉의 의상도 아니었다· 흡사 작업복···자세히 보니 점프수트였다· 위아래가 결합된 작업현장에서 주로 입는 그런 옷· 이런저런 마크가 그러져 있고 조금은 어레인지된 그런 형태·
뭘 하려는 걸까·
무대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Mystica가 내려간 뒤· 살짝 엄숙해진 분위기 속에서 악기를 내려놓으며 준비를 하고 있는 그룹 사운드· 평소와 다른 점은 그다지 없다· 키보드를 맡은 현아 쪽 장비가 상당히 많아진 것을 제외하면·
이윽고 준비가 끝나고는 어둠이 내려앉는다· 불빛 하나 없는 무대· 어둠 속에서 마이크를 통해 흘러나온 차분한 목소리·
“안녕하세요· 저희는 그룹 사운드입니다·”
작고 나지막하지만 자신감이 있는 목소리· 그 울림은 아윤에게 안심감을 주었다·
“그럼 공연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벌써?’
이전의 밴드 Mystica가 일련의 설명 후에 공연에 들어갔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
관객들이 웅성일 틈도 생각할 겨를도 없다· 깜깜한 세트장 내에 안개 끼듯 펼쳐지는 아트모스피어와 아날로그 신디사이저를 통해 날아오는 웅- 하는 저음과 피아노 건반음은 사람들을 강제적으로 몽환적인 상태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짧게 끊어치는 피아노의 소리가 점점 익숙해질 때 쯤에 본격적으로 멜로디가 들어오면서···무대가 은은하게 밝아져갔다·
까마득히 흐린 날
버스 밖 안개 너머로
아지랑이 치듯 보여오는
새벽 빛 바다
가지런하게 베이스를 어루만지며 마이크로 노래를 부르는 이서· 그 옆에는 의자에 앉은 채 무릎을 끌어당기고 자기 몸만한 클래식 기타를 치는 수연이 있다· 경쾌한 듯 혹은 자포자기한 듯한 단조의 클래식 기타·
흐릿한 시간 속에도
잃어가는 감각 중에도
찬란한 수평선은 항상
저 멀리서 빛나고 있네
꺾여버린 사람의 일상을 이야기하고 있는 노래· 어느 사람들이나 겪는 일들· 쳇바퀴 돌듯 돌아가는 인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
폭풍처럼 몰아치던 앞선 무대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사람들 중 누군가는 눈을 감고 음악을 음미하고 누군가는 발을 까딱이며 멜로디를 즐겼다·
이후 이어지는 클래식 기타 솔로는 사람들의 감정을 뒤흔든다· 나지막한 연주로 묘사된 격렬하지만 서정한 멜로디는 사람들로 하여금 찬사를 바치게 만들었다·
“이런 음악도 좋네·”
“이거도 락인가?”
“영 다른 밴드 같아·”
조용하게 이어지는 기타의 연주 속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그러나 사람들은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어느새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것을·
조금씩 올라가는 배경 신스음의 음정· 고조되어가는 분위기· 사람들은 마치 천천히 끓어오르는 물 속의 개구리와 같이 어느새 저 멀리서 밀려오는 파도를 목도한다·
저 안개 너머 새벽의 바다가 머물던
고요하디 고요한 움직임 없는 그 곳은
이제 흐르고 있어 바다도 수평선도
모두가 흘러내려 저 담벼락 아래로
분노를 반쯤 억누른듯한 이서의 보컬· 그리고 그를 메우듯이 들어오는 3명의 합창·
우리는 언제부터
없던 것을 있다고
아득한 절망을
스스로 합리화했는지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수연의 보컬이다· 끝모를 정도로 올라가며 분노를 표현하는 그녀의 목소리· 언젠간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이상향이 거짓으로 밝혀진 것에 대한 분노와 박탈감·
마치 본인이 겪어보기라도 한 듯한 감정선에 의해 관객들은 점점 밴드의 의도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조되어가는 음악의 하이라이트를 기다리며 조금씩 기대감을 높여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기다리던 것은 그야말로 ‘강렬한’ 일렉기타 솔로였다·
“일어서라 가난한 자들이여!”
이서의 고함소리와 함께 일렉기타의 솔로가 시작되었다· 키이잉-! 소리를 내며 기타의 극한까지 치솟는 고음· 몰아치는 벤딩과 아밍 비브라토는 음을 한치도 가만히 있지 않게 만들었다·
마치 폭풍우가 치는 한밤중의 부두와 같이 끝없이 음에 의해 침식된 관객들은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관중석에서 일어나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공연을 보았기에 지금 이 분노는 눈 앞의 공연에서 주입받은 것을 알면서도···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 감정을 자신의 것이라고 믿어버렸다·
그러므로 그들은 분노한다· 희망을 빼앗아간 자들에게· 있지 않았던 것을 제시한 사람들에게· 그리고 그 감정을 행동으로 표현한다· 일정하게 울리는 드럼의 박자를 발구름 삼아 곡이 끝날 때 까지·
* * *
MC가 관객들을 원상태로 돌리느라 애를 먹는 사이 명전은 기타를 잠시 점검했다· 감정에 의존한 즉흥적인 연주를 펼친 탓에 기타의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공연 잘 봤습니다·”
“아 네·”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 명전은 고개를 돌려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Mystica의 리더이자 보컬 김승재·
“그쪽 분들도 잘하시던데요·”
“아 그런가요? 흐허헣···감사합니다· 영광이네요·”
승재는 잠시 말을 끊고 상대를 바라보았다· 하수연· 올해 고등학교 2학년· 기타를 배운지는 1년이 약간 안 되었다는 여자아이· 밴드의 기타리스트 정재혁의 말에 의하면 서명전 기타리스트의 제자·
그야말로 천재라는 말이 어울리는 아이·
쉽지 않은 승부일 것이라고 생각은 했다· 그래도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베이스 하수결이 [Thunderbird]를 써왔을때는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만큼 좋은 곡이었기 때문에· 공연을 마친 다음에는 더욱 더 그러했다· 상대도 잘 하지만 이만큼 좋은 퍼포먼스를 보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서·
하지만 그 생각이 깨진 것은 1절의 솔로 이후부터였다· 평가를 위해 냉정함을 유지해야만 하는 멘토들과 심사위원들조차도 감정을 가라앉히기 힘들게 만들고· 당장 대결 상대인 자신조차 격동하게 만드는 공연·
‘이 아이는 도대체 어디까지 뻗어나갈까·’
“솔직히 여러분들 뽑았을 때 자신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었을 것 같은데···이렇게 결과가 되고 나니 후회가 되긴 하네요·”
승재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승부가 아직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솔직히 자신들이 이기는 것이 이상할 정도라고 생각되었기에· 그 말에 명전은 잠시 머리칼을 꼬며 말을 골랐다· 평소처럼 “후회할 짓은 하지 말았어야죠·” 같은 소리를 하긴 좀 그런 대목이라서·
“음악에는 승패가 없다고는 하지만 어찌되었든 저희는 오디션을 하고 있으니까···승부라는 게 존재할 수 밖에 없죠·”
집계가 완료된 듯 저 멀리에서 스태프가 MC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잠시 수연을 바라보더니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는 MC·
“하지만 우리네 인생은 길잖아요· 어찌되었든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게 되겠죠·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좋은 음악 하시고 계시기를 기원합니다·”
왠지 묘하게 연륜이 느껴지는 ‘하수연’의 말투·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승재는 정말 나이라는 것은 무의미하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렇게 어린 아이인데도 이렇게 어른스러운 생각이라니 정말 본받을만 하지 않은가···
* * *
[인베이전 2024]의 촬영일이라고 해서 인터넷이 특별히 시끄러워질 이유는 없다· 왜냐하면 인베이전 2024는 결국 녹화방송이고 사전에 결과를 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방청객들은 내용을 사전 발설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쓴다· 서약서와 녹화방송의 조합은 인베이전 2024의 결과가 스포일러되지 않게 하는데 큰 힘을 발휘했다·
그러나 오늘은 좀 달랐다·
당일날 발표된 1:1 대결의 포맷· 그리고 1위와 2위의 대결이라는 흥미진진한 떡밥· 이는 커뮤니티 상주자들로 하여금 ‘도대체 지금 대결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거지?’ 같은 궁금증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런 커뮤니티에 던져진 첫 번째 인기글은 그 떡밥을 더 가속시켰다·
[Mystica 공연 미쳤음]
지금 사람들 다 난리남
70년대 헤비메탈이라고 해서 다들 미친 늙은이들 취급했는데 방청객들 다 뛰고 점프하고 어떤 사람들은 슬램질도 함 lol
오디션 방송의 방청객들을 슬램을 하게 만들었다니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지만 속속들이 들어오는 관객들의 증언은 Mystica가 Group sound를 쓰러트렸다고 생각하기에 충분했다·
[드디어 그룹사운드 애들 털리는거임?]
잘됐노 lol
[얼굴빨 거품그룹 이제 안봐도 되나보네]
결국 경연 결과보면 3라만 뽀록이지 1라 2라는 그냥 하위권이었는데
피디 천편이랑 그놈의 얼굴때문에 계속 최종보스 편집 lol 어처구니없었음
Mystica의 공연이 끝난 후의 짧은 시간· 경연의 결과를 바로 알 수 없는 사람들은 그 동안 Group Sound를 무수히 씹어대었다· 마치 부모의 원수라도 만난 것 마냥·
그 분위기가 반전된 것은 그룹 사운드의 공연 직캠 영상이 올라온 직후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정규연재시간은 못 지켰습니다만 어찌되었든 1화 연재는 해냈습니다 ㅠㅠ···
휴재기간 내에 더 올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노력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