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06
그 글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커뮤니티에 업로드되었다· 어찌나 예고가 없었는지 처음에는 허언증 걸린 놈들의 헛소리겠거니 해서 묻혀버릴 정도였다·
[하수연 학교폭력 피해자로 지목받은 학생들입니다· 수연이는 그런 아이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나왔던 폭로와는 정 반대되는 제목· 글의 내용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직도 날짜가 기억납니다·
2022년 X월 X일에 있던 일입니다·
그날 2교시 쯤 저는 교실 뒤쪽에서 잠을 자다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에 잠에서 깨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수연이와 일진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잠을 더 자고 싶었지만 주위가 너무 시끄러워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무심코 그 아이들을 째려봤을 때 수연이가 저를 보고는 “뭘 야려 씨발· 좆같냐?” 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때 저는 살짝 화가 난 상태에서 “좀 조용히 좀 해 줘·” 라는 말을 했고 수연이는 “아오 씹찐따년 좆같이도 구네” 라는 말을 하며 저에게 다가와 “왜 다이라도 까게?” 라고 말한 후 책상을 몇번 내려쳤습니다·
그에 저는 겁이 나서 움츠러들었고 수연이는 “야 이 좆찐따 쫄은거봐 lol” 라고 한 뒤 자기들끼리 다시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로 한 며칠동안 저를 괴롭히던 수연이와 아이들은 이내 흥미를 잃고 저를 괴롭히기를 그만두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일은 작년 말까지 저에게 상처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많은 아이들에게 ‘찐따’로 찍혀 무시당했고 친구도 몇명 이외에는 만들지 못했으니까요·
이것은 실제 저와 수연이 사이에 있던 일입니다· 부인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 이후로 수연이는 사고 전까지 저를 볼 때마다 비웃고 다녔습니다· 저는 자괴감을 느꼈구요·
하지만 작년 말 수연이가 킥보드 사고를 당한 후 언제부터인가 수연이가 사과를 하고 다닌다는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수연이는 저에게 사과를 하러 왔습니다·
“그때 당시의 내가 저질렀던 일들은 너에게 매우 상처가 되는 일들이었던 것 같아· 그래서 사과를 하고 싶어·”
저는 그날 저희 집에 찾아온 수연이에게 물을 부어버렸습니다· 홧김이기도 했고 물을 맞으면 성질 그대로 나오겠지 싶어서요· 하지만 수연이는 가만히 있다가 자리를 떠났고 그 뒤로 몇번 사과를 하고 싶다며 찾아왔습니다·
비슷한 일이 반복되었고 그 때마다 수연이는 저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 자리를 떴습니다· 그 날도 마찬가지였는데 저는 그날 수연이에게 “니가 그렇게 나에게 미안하다면 반성문 대자보로 써서 학교 대문 앞에 붙여· 그러면 들어라도 줄게·” 라고 말했습니다·
다음 날 수연이는 제 말 그대로 했습니다· 저는 매우 놀랐고 다른 아이들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수연이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 것은 그 때부터였습니다·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고요·
그 이후로 수연이는 저에게 진심으로 대해주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수연이 일로 인해 친구가 없었고 자존감도 많이 떨어진 상태였는데 수연이는 친구가 없던 저에게 말을 걸어주고 친구를 만들어주었고 친구가 되어주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학교 생활을 아주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 끝난다면 그냥 개과천선한 아이의 미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수연이는 킥보드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했고 식물인간 상태에서 깨어난 후 기억을 많이 잃어버렸다고 했습니다· 사람도 성격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저에게 했던 일 같은 것은 어렴풋이 기억만 나는 상황이었던 거죠·
하지만 수연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에게 사과를 했고 자존심을 굽혀가며 대자보도 붙였습니다· 저 뿐만이 아닙니다· 다른 아이들에게 했던 일도 전부 사죄하고 사과했습니다·
통상적으로는 억울한 감정이 들기 마련입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일인데 왜 사과를 해야 하는가 할 법 합니다· 하지만 수연이는 사과를 했습니다· 나중에 물어보니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더라도 내가 저지른 일이라면 그 댓가를 치뤄야 한다·” 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냥 그게 옳기 때문에 했다는 겁니다·
사고를 당하기 전의 수연이가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사고를 당한 뒤의 수연이는 한승고등학교에서 제일 착한 아이 중 한명일 겁니다·
한승고 졸업생이라고 밝힌 그 선배분이 글을 쓰는 것에 저희 피해자들은 동의한 적이 없습니다· 만난 적 조차 없습니다· 그런데 왜 자기 멋대로 수연이가 학교폭력 가해자이니 퇴출되어야 한다느니 이야기를 하는 걸까요?
저희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희는 수연이가 더 빛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더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들의 일을 마음대로 자기 ‘폭로’에 이용하지 말아주세요·
수연이는 그런 아이가 아닙니다·]
조짐 자체는 있었다· 폭로글이 올라왔을 당시에 달렸던 몇개의 댓글· [저 한승고 1학년인데 lol 수연 언니가 무슨 lol 어처구니없네요] [수연이 개과천선했음] [이거 쓴거 누구인지 알 것 같은데 존나 한심하다 lol] 같은 내용·
하지만 그런 댓글들은 대부분 언플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묻혀버렸다· 그리고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사람들은 그냥 언플이었겠거니 싶었다·
그러는 사이에 갑자기 이 글이 업로드된 것이다· 글은 무수한 반향을 일으키며 인터넷을 혼돈 그 자체로 몰아넣었다·
백명이 있으면 백명이 의견을 제시했고 천명이 있으면 천명이 의견을 제시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갈리며 인터넷은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곳으로 변모했다·
[언플 씹조지네 lol]
[개과천선했다는데 문제 없는 거 아님?]
[실제로 했던 일이라는데 그럼 결국 학폭범이라는 거 아니야?]
[잘못했던 사람은 평생 대가리 처박고 살아야되냐? 그딴게 어딨음?]
[ㅅㅂlol 그냥 방송으로 뜨고 싶어서 사과한 척 하는거지 그걸 믿노]
[피해자들이 별 문제 없다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지]
본디 인터넷이라는 것은 싸울 상대가 있으면 있을수록 더 불타오르기 마련이다· 하수연과 그룹 사운드를 패는데 10의 힘이 쓰였다면 ‘하수연의 학교폭력’에 대한 논쟁에는 100의 힘이 쓰였다·
커뮤니티의 인기글 중 1~20% 정도의 지분을 차지하던 그룹 사운드 사건은 50%를 훌쩍 넘겨버리기 시작했고 나무위키에서는 사건에 몰입한 사람들이 밤을 새가면서 뭐가 옳고 그르니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 *
“그만· 잠시 쉬었다 하자·”
명전의 말에 연주를 멈추는 아이들·
“잡념만 좀 줄이고 집중 좀 하고· 페이스 자체는 문제 없으니까 이대로만 가면 될 거야·”
연습의 페이스는 명전의 계획에 맞춰져 있었다· 사건의 여파가 미치지 않을까 했던 아이들의 심리상태는 의외로 괜찮았다·
이서는 습관적으로 핸드폰에 손을 가져가다 멈추었다· 명전은 그런 이서를 보고 쓰게 웃으며 생각했다· 저런 것만 빼면 말이지·
“그냥 확인해· 뭐 문제 될 거 없잖아·”
사건이 터진 후 아이들은 그의 눈치를 봤다· 처음에는 ‘하수연’이 그 정도의 아이였을 줄 몰랐다는 시선이었으나 중반 즈음에 ‘하수연’에게 가해지는 욕이 정도를 넘자 자살하는 거 아니냐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지금은 그렇게까지 사과를 했다니 정말 대단하다는 시선으로 그를 봤고·
“도대체 이 일이 언제 끝나려는지 모르겠네요···”
“글쎄· 그래도 오래 가지는 않을 것 같은데·”
현아의 중얼거림에 명전은 천장을 바라보며 답했다· 사건이 터진 이후로 현아는 조금 더 명전과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어 이거 웃기다· 수연 너 이거 봤어?”
“뭔데?”
서하가 보여준 영상은 짧은 클립 같은 것이었다· 조회수 백만 정도· 핸드폰에는 왠지 모르게 수연과···다인 패거리로 추정되는 아이들이 나오고 있었다·
수연을 은근슬쩍 치대고 괴롭히며 “하지마·” 라고 말하는 수연에게 “흐즈므~” “흐즈므르그~” 같은 소리를 하며 계속해서 수연을 괴롭히는 영상·
“이런 건 또 언제 찍은 건지···”
명전은 한숨을 내쉬며 댓글을 눌러보았다·
[이런 애가 어떻게 학폭을 한다는 거임?]
[아 귀여워 lol]
[그냥 아찐같은데···]
[수연아 힘내 ㅠㅠㅠㅠ 이상한 사람들 이야기는 듣지마!!]
다수의 추천을 받은 댓글들은 대부분 ‘하수연’을 응원하는 내용이었다· 몇몇개의 댓글은 [이거 학폭범 걔 영상 아닌가요?] 라거나 [컨셉샷 오지네 lol] 같은 내용이었지만 이미 몇명이 붙어서 싸움박질을 하고 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데?”
“음···뭐·”
갑자기 던져진 이서의 질문· 명전은 잠시 말을 골랐다·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일단 계획대로는 되어가고 있어· 이렇게 사건이 커질 거라고 생각은 안 하긴 했는데···아무튼 뭐 문제될 건 없지·”
그렇게 대답하던 명전은 느껴지는 핸드폰의 진동에 말을 멈추었다· 들어본 핸드폰에 뜬 전화번호는 모르는 것이었지만 왠지 기억 속에 남아있는 듯 하기도 했다·
“여보세요·”
결국 명전은 받는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돌아온 목소리는 뭔가 익숙한 느낌이었다·
“오~ 받네· 의외네? 전화를 다 받고·”
“누구시죠?”
“···모르는 척 하는 건가? 아~ 기억 잃었느니 뭐니 이상한 소리 하고 있긴 했지·”
뜬금없는 이야기에 명전은 끊을까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상대는 이내 자신의 이름과 용건을 말해주었다·
“나 성주희야· 알지? 그 글 누가 쓴 건지· 우리 어디서 만날까?”
* * *
“왜 만나자고 하셨을까요·”
“존댓말 쓰는거 닭살돋네· 왜 안 어울리게 그래? 아···여기까지도 기억 잃은 컨셉이야? 그냥 컨셉에 미쳤네·”
서울 근방의 모 카페· 아무도 없는 구석에서 명전은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눌러쓴 채로 주희를 만났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했고 장소도 명전 본인이 지정한 곳이지만···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르니까·
“용건만 말하시죠· 핸드폰은 녹음 하지 말고 올려놓으시구요· 저희가 그렇게 살가운 사이가 아니잖아요?”
“깐깐하네· 그때도 그러지 그랬어?”
주희는 투덜대며 핸드폰을 올려놓았다· 녹음의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명전은 자신 또한 핸드폰을 올려놓았다· 물론 초소형 녹음기는 주머니에 넣어놓은 채로·
그러나 주희는 말을 하는 대신 노트를 하나 꺼냈다· 예민한 이야기는 필담으로 하겠다는 말인 듯 했다·
‘철두철미하네· 이런 인간이 왜 다른 사람들 돈을 뜯고 그랬던 거지?’
명전은 그렇게 생각하며 주희를 바라보았다· 연신 그를 비웃는 얼굴·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자 5천만원 줘]
“···예?”
어처구니 없는 요구에 명전은 되물었다· 주희는 큭큭 웃어대더니 다시 연필을 놀렸다·
[5천만원 주면 증언 번복 해 줄게 사실 거짓말이었다고 하고 내 망상이었다고 해 줄게 저쪽에서는 돈을 안 줬거든 근데 내가 너한테는 원한이 있어서 공짜로 해 준거야 근데 너한테는 돈을 받아야겠어 부자잖아]
명전은 입을 다물고 주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런 동기였던 건가· 이때까지 가만히 있던 사람이 갑자기 만나자고 한 이유가 있을 법 했는데···납득이 가는 이유였다·
‘그런데 저쪽···인가·’
그 단어는 분명 뭔가를 암시하고 있었다· 이 일을 계획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필담으로 하는 것도 그쪽의 아이디어일까· 하지만 명전은 고개를 흔들어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그런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명전은 주희가 꺼내든 노트의 한쪽 페이지를 찢고는 자신도 펜을 꺼냈다·
[5천만원 금액은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깎아달라고? 부자인데 왜 그래 못 깎아줘 그냥 5천만원 다 내]
[제가 왜 그걸 줄 거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는데요· 그냥 마음대로 하시죠·]
그는 슬쩍 주희의 표정을 쳐다보았다· 살짝 붉어지고 굳어지는 얼굴· 연필을 놀리는 손도 빨라졌다·
[니네 친구 애들 막 꼬셔가지고 증언 반박해서 잘 될 거라고 생각하나본데 돈 안주면 후회하게 될걸]
[한번 해보세요· 누가 후회하는가·]
[뒤통수 한번 맞아볼래? 제대로 아프게 맞을텐데 맞기 싫으면 돈 내는 게 좋을 거야 아 5천만원으로 안되겠다 7천만원으로 올릴게]
서늘하게 쳐다보는 주희의 눈· 그녀의 손에서 펼쳐지는 행간에서는 무엇인가가 암시되고 있었다· 5천만원을 넘어 7천만원을 부를 수 있게 하는 뭔가가·
하지만 명전은 그게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그렇기에 명전은 이렇게 쓸 수 있었다·
[니 좆대로 해봐 씨발아]
그는 펜을 내려놓고 중지를 주희에게 보여주었다· 주희의 얼굴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붉어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연참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무리에요·
일하는 것 보다 더 힘든 것 같아요·
아무튼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