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13
아키하바라·
과거에는 전자제품을 주로 파는 곳이었으나 현재는 오타쿠의 성지가 되어버린 장소· 일종의 메카처럼 오타쿠라면 한번쯤은 와 봐야 한다는 그런 인식이 박힌 곳·
그 장소에 4인(+1인)은 발을 디뎠다· 숨막힐 정도로 많은 인파들이 오가는 아키하바라 역· 수많은 직장인들과 일반인들과 오타쿠들과 기타등등이 뒤엉켜 자연의 열기 뿐만 아니라 인간의 열기까지 만들어내고 있는 곳·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하필이면 여름· 하필이면 슬 해가 중천에 뜰 오전· 출퇴근시간의 지옥철 정도는 아니지만 한창때의 홍대 명동에 비하면 훨씬 더 많은 인파· 그들은 일본의 열기를 정통으로 맞으며 어떻게든 역에서 기어나왔다·
“죽겠다· 너무 더운데?”
“쪄 죽을 것 같아·”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두 명 이서와 서하· 아닌 것 같아 보여도 혜인 또한 미간에 주름이 그려져 있었다· 일행 중 그나마 움직이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은 ‘정신을 가라앉히면 겨울이 곧 여름이요 여름이 곧 겨울이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정신적 노인네인 명전과 ‘영혼의 고향’에 돌아왔다는 기쁨이 더 큰 현아 뿐·
“자 자! 빨리 움직이죠! 우린 시간이 없어요· 돌아볼 곳이 많으니까!”
평소와는 정 반대인 모습을 보며 명전은 도대체 얼마나 기쁜 것인가 하고 생각을 했다· 뭐 생각만 하고 있던 곳에 왔다는 기쁨이 있긴 하겠지만···
“흠···그정돈가·”
“네?”
“아니 아무것도 아냐·”
명전은 그렇게 얼버무리고는 아키하바라를 걸어가며 거리 곳곳을 쳐다보았다·
도로를 통제한 채로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 일본인보다는 서양인 중국인이 더 많아보이는 풍경· 그런 것을 제외하면 그냥 평범한 거리 같아 보였지만 간판 등에 붙어 있는 것이 일반적인 광고가 아니라 애니메이션 캐릭터니 게임 광고니 하는 것이 좀 달라 보였다·
‘옛날에는 만화영화니 뭐니 하는 것들이 참 정부가 때려잡는 대상이었는데···이렇게까지 커진 걸 보면 뭔가 좀 오묘하네· 아니 그건 그냥 한국 정부 한정이었나?’
그가 어릴 시절에도 알음알음 일본 만화니 그런 것들이 밀수입으로 들어온 적이 있었다· 옛날에는 그런 것들이 다 한국에서 그리니 만들었니 그런 줄 알았는데·
이런저런 곳을 구경하다 더위에 지친 일행들의 읍소에 들어온 곳은···다름 아닌 ‘메이드 카페’ 였다· 간 곳은 가장 대표적이고 메이저하기로 유명한···곳곳에 지점이 있는 메이드 카페·
‘생각해보니까 이 사람들이 이런 걸 보고 좋아하긴 할까? 되려 싫어하는 게 아닐까?’
일단 일행들을 데려오기는 했으나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 현아였다· 학교 축제 당시 오타쿠 곡을 공연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좋아해주는 것을 보고 어느정도 그런 자격지심이 고쳐진 그녀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뼛속 깊이 박힌 감정이라는 것은 쉽게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몇분이신가요?”
“5명이에요·”
“한국인분들이신가요?”
“하 하이·”
활기찬 메이드들의 인사를 받아가며 도달한 테이블은 꽤 컸다· 그리고 내밀어지는 한국어 메뉴판· 하지만 현아는 그것보다는 우선 일행의 안색부터 슬쩍 살펴보았다· 이 곳에 온 것을 마음에 들지 않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해서·
“신기한 곳이네· 관광 특화 카페 같은건가?”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다행히도 일행들의 모습은 꽤나 괜찮아 보였다· 처음 보는 메이드 카페의 광경에 사진을 찍어대는 이서와 메뉴를 주의 깊게 고르고 있는 서하· 그리고 이 카페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수연 모녀·
현아는 마음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메뉴판을 바라보았다·
입장료 770엔· 정식 코스 3080엔· 디저트 코스 2860엔· 드링크 코스 2310엔· 풀 코스 3960엔· 음식점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비싼 가격·
처음에는 괜찮았으나 가격을 보자마자 수연은 “세상에 이런 사기꾼들이 있나· 가격이 왜 이래?”를 외치며 나가자고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수연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언제 이런 것들을 즐겨보겠냐며 메이드들이 권유하는 것들을 마구 시키기 시작했다·
“아가씨 라이브 옵션은 어떠신가요?”
“뭐라는 거야?”
“그 라이브 보는 건 어떠냐고 물어보는데요· 주문을 하면 저기 앞에서 춤 추면서 라이브를 해주나봐요· 1320엔·”
“그런 것도 돈을 받아먹는거냐고·”
투덜거리는 수연의 말을 무시한 채로 “그럼 그것도 부탁합니다·” 라고 말하는 혜인· 그리하여 풀코스 5개 라이브 주문까지 합쳐 15만원이 넘는 지출을 하게 된 그들·
“이 테이블의 아가씨분들께서 풀 코스를 주문해주셨습니다!”
풀코스 주문을 하자 마치 가로수길 애플 스토어마냥 핸드벨을 울리며 외치는 메이드들·
현아는 당혹감과 부끄러움에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멈추지 않고 사람을 부끄러움에 질식시키려는 의도인지 모를 정도의 칭찬을 퍼붓는 메이드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쳐다보는 다른 손님들· 서하는 순식간에 화장실로 도망쳐버리고 수연은 현실을 외면하며 필사적으로 창문 바깥을 쳐다보는 가운데···이서와 혜인은 싱글벙글 웃으며 마치 퍼레이드라도 하는 듯 다른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오무라이스에 그림을 그려주는 서비스·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가버린 두 사람(서하와 수연)을 제외한 채로 나머지 3명은 메이드에 맞춰 활기차게 구호를 외쳤다·
“おいしくな~れ 萌え萌えきゅん!”
(오이시쿠나레 모에모에 큥!)
‘이게 말로만 듣던 본토?’
현아가 생각하건데 한국의 메이드 카페 서비스나 일본의 메이드 카페 서비스나 뭔가 확연히 드러나는 차이점은 없었다·
오히려 일정 측면에서는 한국이 더 나은 점도 있었다· 예를 들어 메이드가 엄청 바빠보여서 스몰톡 같은 것은 전혀 못한다던가· 그 외에도 음료에 그림을 그려주지 않는다던가· 좀 추가 메뉴나 가챠 같은 것을 권유한다던가· 그런 점에서 보면 한국이 나은 점도 있었다·
‘하지만 뭔가 본질적인 부분에서 다른 것 같은 느낌이···!’
설명하지 못할 부분이지만 아무튼 현아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메이드 카페가 뭐가 그렇게 본질적이고 뭐고가 중요하겠냐만은·
“여기는 이런 거 즐기는 곳인가?”
메이드 카페의 전통과도 같은 이런 저런 일들이 끝나자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듯한 수연이 그렇게 물었다· 그 질문에 현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메뉴판을 가리켰다·
“여기 보듯이 기념품···기념촬영· 이건 체키라고 하는데 메이드···랑 사진을 찍는 거에요· 그리고 아까 라이브 주문했는데 그거도 좀 있다가 시작할 것 같구요···”
“메이드랑 사진은 왜 찍는데?”
“어···그냥? 기념으로요···?”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수연의 표정· 하긴 그럴 만 하다고 현아는 생각했다· 지금 주변 테이블이나 메이드들의 몸짓 반응을 보면···수연이 메이드와 기념 촬영을 하는 게 아니라 메이드들이 수연과 기념 촬영을 하고 싶어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단지 수연이 ‘나는 이 모든 게 다 마음에 안 든다’ 라는 느낌으로 앉아있기 때문에 근처에 오지 못할 뿐이었다·
“어질어질하네·”
“어디 아프니?”
“아니 그런 말은 아니고요···”
유행어를 내뱉었다 수연이 어머님의 걱정을 산 서하· 잠시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카페 전체의 불이 확 꺼진다·
“뭐야?”
“아 이거···라이브 하나봐요·”
“라이브?”
“아까 주문한 거요· 저 사람들이 이제 저기서 공연할 것 같은데···”
현아는 아까 나눠준 형광봉을 들어보였다· 손에 들고 꺾으니 응원봉처럼 빛을 내며 밝아지는 모습· 그 모습을 본 옆의 메이드는 그걸 흔들면서 응원하는 거라며 웃으면서 몸짓으로 가르쳐주었다·
“모두들 뮤직 스타트! 라고 외쳐주세요~! 그럼 세-노~!”
“뮤직 스타트!”
가게 저 편의 남자 손님들이 내는 우렁찬 소리· 그 소리와 함께 가게 안 조그맣게 세팅된 작은 무대에서 메이드들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열심히 귀여운 목소리를 내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
“왜 내가 내 돈을 내고 내 스스로 괴로워하고 있어야 하는 거지?”
다들 열심히 응원하는 와중에 서하가 무심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말에 잠시 테이블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 * *
“일본은 여름에 오면 안 되는 나라인 것 같아· 이거 뭐 더워서 살 수가 없네·”
이서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현아의 아키하바라 일주로 모두가 다 땀에 젖어버린 탓에 한번 호텔에서 샤워를 하고 나왔음에도 불구하고···더위의 불쾌함은 여전했다·
“덥다 덥다 타령할 수록 더 더운 거야· 그런 생각 자체를 안 해야 안 더워져·”
“말도 안되는 소리 그만하고·”
명전은 삶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을 이서에게 해 주었으나 이서는 영 받아들이는 눈치가 아니었다· 뭐 살아보면 알 것이다· 한 20년 정도 더 살아보면 “아 그때 수연이가 한 말이 맞았구나” 같은 생각이 들겠지·
“여기가 너희가 말했던 시모키타자와니?”
“네·”
명전은 혜인의 물음에 대답했다· 시모키타자와· 한국에는 홍대가 있듯이 도쿄에는 시모키타자와가 있다· 라이브 하우스가 득시글거리는 일명 ‘문화와 예술의 성지’·
이 곳은 명전이 오자고 한 곳이었다· 하필 뭔 애니메이션에 나온 곳이라 “성지순례 하자는 거야?” 같은 무슨 이상한 질문을 현아에게 듣긴 했지만···전혀 그런 마음은 없었고 그저 밴드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을 뿐이었다·
그들이 가야 할 길을·
“세계에서 가장 큰 음악시장이 어디일까?”
“미국이지·”
서하의 대답· 명전은 살짝 웃고는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럼 두 번째로 큰 시장은?”
“어···영국 같은 데인가요?”
“아니 일본이야·”
현아의 답변에 서하가 정정을 해 준다· 그 말이 맞았다· 세계에서 2번째로 큰 음악시장은 바로 일본이다·
“그리고 일본은 그 음악시장 규모를 바탕으로 자생적인 음악 씬을 키우고 있지· 오늘 여기 오자고 한 것도 다 그 때문이야·”
명전은 계속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홍대 씬의 밴드들이 실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는 아니야· 일본에서 충분히 통할만한 밴드도 많지· 예를 들어 인베이전 2024에 출전했던 밴드들이라던가· 우리랑 상대했던 Mystica 같은 밴드는 일본에서도 꽤 찾아보기 힘든 실력의 밴드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대 씬은 쇠퇴하고 있다· 이유는 단 하나다· 음악 시장의 규모가 작다는 것· 그로 인해 한국 음악 시장은 락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발달해버렸다·
“오늘 여기 와보자고 한 건 그 이유야· 우리는 한국에서 꽤나 성적을 올리고 있지· 하지만 우리가 좀 더 성장하고 수익을 올리고 뭔가를 더 하기 위해서는···필연적으로 한국 시장을 넘어 외국으로 뻗어나가야 하겠지· 그럼 당연하게도 첫 번째 대상은 옆나라 일본이 될 것이 뻔하고·
그렇다면 일본의 락은 어떨까? 그냥 음반으로 듣는 것 말고· 실제의 공연은 어떨까? 나는 너희들과 그걸 한번 체험해보고 싶었어· 그래서 오늘 여기에 오게 된 거고·”
명전은 말을 끝맺으며 어느 라이브하우스 앞에 섰다· 그가 딱히 특정한 라이브하우스를 고른 것은 아니다· 조금 있다가 공연을 할 것 같은 그리고 매진이 되지 않아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라이브하우스를 골랐을 뿐이다· 그야말로 ‘아무데나’ 골랐다는 것이다·
“그럼 한번 일본 밴드들이 어떤지 한번 들어 보자·”
명전은 그렇게 말하며 라이브 하우스의 계단을 내려갔다· 그들도 많이 느껴왔던 공연 전의 미약한 긴장감이 입구에서부터 느껴지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저는 메이드 카페를 한번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
2023-11-15 23:30
일본어 부분을 전부 한국어 번역으로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