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22
“음방이랑 투어···아니 일단 음방은 세션을 쓸 필요가 없잖아요· 기타 계시니까·”
“아~ 우리 스케쥴 다 잡혔는데 하필 그때 우리 기타가 뭐 사정이 있다 해가지고· 그래서 변경할까 했는데 그건 안 된다고 해서 말이죠· 그래서 세션을 구해야 한단 말이지·”
그런가· 명전은 전화기를 든 채로 머리를 살짝 꼬았다· 음방 세션과 투어 세션이라·
테일러드·
한국 음악 시장에서 락이 종말해버린 이후에도···메이저 시장에서 꿋꿋하게 살아남으며 한국 락의 명줄을 유지시키고 있는 몇 안 되는 밴드· 전연령 가수 선호도 조사를 하면 20위권 안에 들락날락하는 오늘도 노래방에서 그들의 노래가 울려퍼지고 있을 그런···통칭 ‘국민 밴드’·
그리고 최근에는 침묵하고 있는 밴드·
그럴 만 했다· 밴드의 최전성기는 보통 결성 후 5년 안이라고 하지 않는가· 20년 동안 활동하면서 지속적으로 앨범 내온 것만 해도 대단한 거라고 볼 수 있다·
‘앨범 낸지 거의 5~6년 되지 않았나?’
물론 최근 간격은 좀 너무하긴 했지만···그래도 신보를 낸다는 건 뭐 좋은 일이니까· 낙수효과도 좀 받을 수 있을 것이고·
‘서명전’과 작업을 해 본 적은 없지만 음악 현장의 세션 후배들은 테일러드와 작업을 하는 것을 ‘철또 맞았다’ 라고 표현하곤 했다· 정이 많은 김철연의 성격 덕에 철또 한번 맞으면 인맥으로 열리는 세션이 워낙 많았으니까· 지금도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겠지·
“일단 투어 세션은 좀 힘들 것 같네요·”
명전은 짧게 뜸을 들인 후 일단 투어 세션은 거절하기로 했다·
“응? 우리 돈 많이 줄 수 있어요· 같이 돕시다· 든든한 기타 있어주는게 얼마나 좋은데·”
“저 미성년자니까· 투어 도는데 숙소 문제도 있고 학교도 가야되고 여러가지로 문제가 있어요·”
“아 그랬지·”
당초 오디션 프로그램도 예외의 예외···각서도 쓰고 동의서도 쓰고 어쩌고 저쩌고로 피해갔는데· 투어는 대놓고 밤까지 도는 건데 어떻게 하겠는가· 게다가 그런 문제를 회피한다 해도 잠은 어떻게 잘 것이며···어쩌고 저쩌고· 피곤한 문제가 너무 많았다·
“그럼 음방은 나와주는 걸로?”
“그건 그렇게 하시죠· 이메일 알려드릴테니까 스케줄이랑 이것저것 관련사항 해서 좀 보내주세요· 확실한 답변은 제가 그거 확인하고 다시 드리겠습니다·”
“오~ 오케이 오케이· 완전 프로구만· 직업 정신이 투철해· 알았어요· 오늘 안에 저희 회사에서 이메일 갈 겁니다· 조만간 연습실에서 봅시다·”
이메일은 저녁에 왔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매주 금요일 밤에 하는 심야 음악 프로그램에 테일러드가 나갈 건데 그 날 풀로 세션을 뛰어달라· 구곡 신곡 포함해서 4곡 정도 할 것이고 금액은 백만원 주겠다·
‘김지연의 음악편지라·’
이름은 많이 들어보았다· 아니 이름을 많이 들어보는 것을 떠나서 명전이 옛날에 자주 보던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KBS의 금요일 밤 시간대를 십년이 넘게 책임지고 있는 음악 프로그램· 모르는 사람은 있을지 모르겠지만 모르는 뮤지션은 아마 없을 터·
그런 프로그램에 나가게 된다면···홍보효과는 확실하겠지· 물론 명전은 세션일 뿐이니 스포트라이트가 그렇게 많이 오진 않겠지만 어찌되었든 메이저 씬에 발을 들이고 존재감을 알린다는 것 자체가 이득인 셈이다·
[확인했습니다· 연습 일정에는 모두 참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관련해서 혹시 알려주시거나 할 사항 있으시면···]
* * *
“잠시 쉽시다~!”
철연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악기를 내버려두고 연습실 바깥으로 튀어나가버리는 사람들· 딱 봐도 담배 한대 피우러 가는 것이 뻔했기에 명전은 구태여 따라가거나 행선지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남아서 할 일도 있기도 했고·
‘내버려 둔 동안 성장을 많이 했네·’
밴드 [그룹 사운드]의 컨텐츠를 확실히 독립시킴으로서 이제는 완전히 개인 채널이 된 명전의 유튜브 [White Room]·
인베이전 2024에 참가하고 일본 여행을 갔다오는 동안 컨텐츠를 제대로 올리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십만대 초반으로 구독자가 불어 있었다·
‘이러면 이제 실버버튼 신청인가 뭔가 하면 되는 건가?’
올린지 꽤 된 가장 최신 영상을 봐도 [구독자 십만 축하드려요!!] [10만 이벤트 같은 거 하나요??] 같은 댓글들이 달려 있었다· 십만 이벤트라· 명전은 감사의 인사를 올릴까 하다가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좀 더 MZ한 수단을 사용하는 쪽으로·
“으 으흠·”
왠지 모르게 가방 안에 들어가 있는 셀카봉(이서의 것으로 추정된다)에 핸드폰을 꽂고· 그는 최대한 연습실이 노출되지 않게 각도를 조절하며 자신의 얼굴을 찍었다·
“아· 어· 그···최근에 제가 영상을 많이 못 올렸습니다···올렸어요· 다들 아시다시피 오디션 프로도 있고· 그 다음에는 사실 올릴 수 있는 시기가 있긴 했는데 심신이 좀 지···좀 쉬고 싶어서· 그래서 일본 여행을 갔다 왔습···왔거든요·”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서명전’ 씨의 자아를 제어하며 그는 최대한 MZ한 말투로 브이로그를 찍었다· 일본 여행 간 거는 이제 밴드 멤버들이랑 엄마랑 같이 갔고· 브이로그 사진 같은 건 편집해서 올리게 될 것 같아요 같은 이야기들·
짧게 찍으려고 했던 인사는 점점 더 길어졌고 그 사이 테일러드 밴드의 멤버들이 연습실으로 돌아왔다·
“어~ 수연 학생 혹시 뭐 하나요? 지금 우리 들어가도 되는 타이밍인가?”
“아 아· 네· 저 잠시 유튜브용 컨텐츠 좀 찍는 중이라서···아 혹시 연습실 좀 찍어도 될까요? 여러분이 나온다던가···”
“괜찮아요 괜찮아· 완전 신세대인데?”
“완전 신세대가 아니라 실제로 신세대지 임마· 우리 같은 40대 늙은이랑 10대를 어떻게 비교해·”
‘40대가···늙은이?’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이야기가 조금 이어진다· 그러다 철연이 꺼낸 “우리도 유튜브 하거든요· 3만따리지만· 수연 학생은 얼마에요?” 라는 말에 그는 구독자 수를 보여주었다·
“십만?! 와 완전 대선배네·”
“이름 봐· White Room· 이게 역시 수연 학생은 기타 선생님부터 해서 그냥 완전 근본이라는 게 딱 서있다니까· 기타를 못 칠 수가 없어요· 그에 반해서 우리 표선호 이 새끼는 진짜 기타를···”
“내가 뭐·”
십만이면 구독자 수가 높은 것이긴 하지만 그렇게 부러워할 정도 까지 높은 것은 아닌 수치· 하지만 테일러드의 멤버들은 진심으로 수연을 부러워하는 듯 했다·
“유튜브 너무 어려워· 우리 봐· 공연 영상이랑 이런 꿀팁까지 다 뿌려주는데 구독자가 3만밖에 안 돼!”
“맞습니다· 유튜브 너무 어렵긴 하지요· 저도 십만이긴 한데 어떻게 한 건지 잘은 모르겠고···”
베이스 한종현이 꺼낸 말에 촉발된 유튜브 성토대회· MZ 감각이라는 게 너무 어렵다· 젊어보이는 거 힘들다· 태그는 도대체 뭐 어떻게 쓰는 거냐? 이게 세상이라는 게 점점 늙어가다보니 적응하기 쉽지 않다·
그 흐름에 명전 또한 자연스럽게 올라탔다· 그 또한 그렇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강제적으로 적응하고 있긴 했지만 명전의 본모습은 이 쪽이 전혀 아니었다· 마치 안 맞는 옷을 강제로 입은 것 같은 기분· 갑갑하고 적응하기 힘든···
“그런데 수연 학생은 이런 거에 동감하면 안 되지 않나? 전혀 안 맞는 나이잖아· 우리는 늙었고 수연 학생은 젊잖아요· 이제 막 십대인데· 이십대도 아니고·”
“···아 아 네·”
“사십이면 이제 늙었지~ 최신문물 너무 힘들어· 우리도 은퇴할 때가 됐나봐·”
그렇게 말하며 너스레를 떠는 테일러드의 멤버들· 명전은 아하하 웃으면서도 속으로 중얼거렸다· 도대체 뭐가 늙었다는 거냐? 내가 예전에 그 나이였으면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배우고 싶은 거 배우면서 살았을 나이인데···
* * *
김지연의 음악편지·
10년이 넘게 KBS의 금요일 밤 시간대를 지켜오면서 수많은 뮤지션들을 초대했던 정통 음악 프로그램·
요즘은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서 ‘정통 음악’ 이 아닌 ‘아이돌’을 초대한다는 말이 오가는 프로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지연의 음악편지’를 대체할 프로그램이 없었기에···TV의 종말이 다가오는 요즘 시대에도 꿋꿋히 살아남고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선배님! 오랜만이네요·”
“오~ 김지연· 잘 계셨어? 아이고· 살이 완전 쪽 빠지셨네· 다이어트 너무 무리하게 하는 거 아냐? 뺄 살이 어딨다고·”
“아니~ 이거 살 안 빼면 완전 아줌마 된다니까· 남편한테 사랑받을라면 빼야지! 안 그래도 어젯밤에 무겁다고 못하겠다고 막 그러던데·”
“그런 말 하는 거 보면 그냥 지금 아줌마 맞는 거 같은데??”
대기실에서 너스레를 떠는 김철연과 김지연 선배· 그녀는 그런 둘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선배님들 안녕하세요·”
“어~ 어 그래 정화야· 오랜만이다· 너도 컴백 하니?”
“네· 정화 오늘 2부로 나올 거에요· 얘도 오랜만에 활동 재개한다고 해서·”
“어이구· 차트에서 나 밀어내면 안 돼 응? 디바들 음원 파워는 너무 강하다고· 사기야 사기·”
“제가 어떻게 선배님을 밀어내겠어요·”
그렇게 몇분간 덕담을 섞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러다 발길을 돌려 대기실로 가려는 차에 지연이 던진 질문·
“요즘 곡 작업은 잘 되어가?”
“···사실 잘 안되긴 해서요· 뭔가 잘 떠오르지 않아가지고·”
“아니 그럼 이번에 곡은 어떻게 냈어·”
“예전에 써 둔 게 있어서···”
큰일났다는 듯 호들갑을 떨며 반응해주는 철연· 그녀는 걱정섞인 말들에 고개를 숙이며 생각했다·
사실 곡을 아예 못 쓰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곡을 쓰고 있긴 했고· 하지만 뭔가 머릿속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줄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 그녀가 가진 문제였다· 구체적으로는 그녀의 그런 느낌을 ‘필링있게’ 끌어내줄만한 연주자가 없었다·
‘탑급 세션을 다 찾아보긴 했는데···’
분명 기타를 다 잘 치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영 마음에 들지 않는 연주들· 세션비만 엄청 낭비하고 곡은 곡대로 나오지 않고·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그것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도 슬럼프가 온다는 느낌을 받고 있던 그녀였다·
“다 잘 될 거야· 오늘 한번 노래 제대로 부르고! 풀고 가· 알았지?”
자신을 염려해주는 지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정화· 대기실을 나와 걸어가는 와중 그녀는 마주치는 테일러드 멤버들에게 먼저 말을 걸고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어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어떻게 오늘 출연 하시는···?”
“네 맞아요·”
짧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그녀는 뒤에 붙은 이쁘장한 여자애 한명을 슬쩍 바라보았다·
‘스태프인가?’
편견일 수도 있지만 음악이랑은 크게 연관이 없을 것 같은 듯한 분위기· 굳이 엮자면 아이돌 정도? 신입 스태프가 출연자를 안내하는 것이겠거니하며 그녀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자신의 대기실로 향했다· 저런 아이에게 신경을 쓰기에는 그녀의 인생이 너무 바쁘니까·
하지만 그런 생각은 곧 깨어지고 말았다·
“오랜만에 뵙는 분들입니다· 한국 락의 자존심! 국민 밴드! 많은 수식어가 있긴 하지만 뭐 일일히 열거하기는 좀 힘들겠죠? 밴드 ‘테일러드’···나와주세요!”
방송이 시작되고· 김지연의 잡담이 약간 이어지다 관객들의 환호성과 함께 테일러드가 등장한다· 딱히 바뀌지 않은 멤버들· 보컬과 베이스 드럼 키보드···
하지만 다른 얼굴 하나가 보이지 않는다· 항상 늘 웃고 다니는 기타의 익숙한 얼굴·
그 대신 뒤 쪽에서 누군가가 등장한다· 평균적인 키· 약간 버거워보이는 검은색 기타를 메고 뚜방뚜방 등장하는 여자애· 아까 전에 봤었던 스태프로 추정되던 아이·
‘저 애가 왜 저기 있지? 기타는 뭐고? 혹시 테일러드가 새로운 멤버를 영입했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녀만이 아닌 듯 했다· 술렁이는 관객들· 제작 스태프와 테일러드 멤버 그리고 김지연만이 평정을 유지하는 상황·
“자 그럼 거두절미하고 첫 곡 들어볼까요!”
큐 카드를 내뻗으며 외치는 지연· 그녀의 말이 끝난 후 “하나 둘 셋!” 이라는 시작 신호가 작게 들려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비공개 님 1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전작에 후원해주셨지만 일단 여기 인사를 드립니다·
비공개 님 2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이번에도 잊어먹을 뻔 했습니다!!!ㅠ ㅠㅠㅠㅠ
바르나전투 님 38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마작인방은 11월 27일 ~ 30일 내에 한 2편 정도 연재될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는 완결 상태로 돌려놓고 다음 외전을 다 쓸 때까지는 완결 상태로 계속 둘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