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26
“잘 아는 분이 아니라는 건···”
“뭐 말 그대로 제가 잘 아는 사람은 아니라는 거죠·”
명전은 그 말에 머릿속으로 물음표를 띄웠다· 잘 아는 사람이 아닌데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가· 이 양반도 가끔 어처구니 없는 소리를 한단 말이지 하고 그가 생각하는 사이 준홍이 말을 이었다·
“그래도 아예 모르는 사이는 아니니까· 충분히 출연을 타진할 수 있는 그런 정도인 거죠·”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 정도입니까?”
“그럴 만 하긴 하죠·”
준홍은 그렇게 말하고는 명함 하나를 건네주었다· 명전은 그 명함을 받아들고 확실히 그럴 만 하다고 생각했다· 음악계 외에는 그다지 인맥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는 명전조차도 그 이름을 들어본 사람의 명함이었으니까·
“정태영 피디면···그 분이지요? 그 전에 방송국에서 뭐 유명한 프로그램 만드셨던 분·”
“네· 요즘은 유튜브 하신다고 하던데· 아주 면식이 있는 건 아닌데 그래도 몇번 뵈긴 했어요·”
정태영· 명전도 몇번 봤을 정도로 유명한 프로그램 몇개를 제작하고 이제는 유튜브 생태계로 넘어가 유튜브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는 사람· 자극적이기보다는 편안한 컨텐츠로 유명한 사람이고 요즘에는 인터뷰 류의 컨텐츠를 제작하고 있어서···그런 류의 컨텐츠를 찾고 있는 명전에게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근데 제가 선생님 소개만 가지고 이 분의 방송에 출연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은데요· 게다가 제가 그렇게 화제성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 말이죠·”
“현실적으로 보면 그렇긴 하죠·”
준홍은 그렇게 말하며 ‘수연’을 바라보았다· 이쁜 얼굴 엄청난 실력· 분명 ‘한국 락’ 씬의 슈퍼스타가 될 재능· 준홍 자신 뿐만 아니고 테일러드의 김철연이라던지· 원로 연주인인 채호근 교수라던지· 그 외 기타 수많은 사람들이 인정한 원석 그 자체인 아이·
만약 저런 재능이 예를 들어 아이돌 업계라던가 일반 가수 업계에서 나타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바로 난리가 나고 무슨 천재 소녀니 어쩌고니 찾아 모시라고 호들갑을 떨었을 것이다· 거기까지 안 가더라도 본인이 흔히 말하는 이지리스닝 곡을 하면서 통기타 치며 노래부르는 음악만 했어도 그거 비슷하게 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연은 그러지 않았다· 영광의 길이 자신의 앞에 자리함에도 불구하고 정통 블루스와 블루스 락 그리고 여고생 밴드를 고집하며 계속해서 걸어나가는 행보를 보였다· 그야말로 한국 락 씬의 축복이 아닐 수 없지만···본인에게는 마이너스만 되는 일일 터·
‘당장 가수로 데뷔했으면 정태영 피디 유튜브에 나갔을지도 모르지···’
무게감이 없어서 좀 다를지도 모르지만· 준홍은 그렇게 생각하며 ‘수연’의 말을 들었다·
“뭐 소개해주신다고 하면 감사히 받긴 하겠습니다만···”
“그런가요? 그럼 제가 전화나 한번 해보겠습니다·”
준홍은 잠시 명함을 쳐다보고는 다시 전화번호를 입력하고는 이를 악물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전에 몇번 방송에 나온(음악 관련 엑스트라 정도로 나왔다) 이후로 근처 술자리에서 한번 본 게 전부인 사람인데· 이 양반이 나를 기억은 하고 있으려나·
하지만 준홍은 ‘수연’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도저히 외면해넘길 수가 없었다· 자신이 진짜 정태영 피디랑 통화도 하고 프로그램을 따줄 수 있다고 믿는 저 눈빛을 보라· 누가 저런 눈빛을 보고도 “사실 그냥 해본 말이에요·” 라고 하겠는가 말이다· 제안을 거절당하거나 통화를 거절당할 것을 알면서도 걸 수 밖에 없는 운명인 것을·
뚜르르르- 하며 걸리는 연결음· 만년과도 같은 1분· 왠지 모르게 받지 않음에 감사하며 준홍은 “아 안받네요-”를 말하려고 했다· 그러는 사이 갑자기 들려오는 “여보세요?” 소리·
“아 아 아! 안 안녕하세요· 피디님! 저 기억하십니까? 그때 오마이하우스때 출연했었던 기타 임준홍입니다· 1년 전쯤 같이 술자리에서도 뵈었는데· 기억나세요?”
“아 음···안녕하세요· 음···아 아아아! 네 기억나죠·”
기억난다고? 준홍은 두번째 내적 비명을 질렀다· 그걸 기억을 어떻게 하는 거야· 꼼짝없이 청탁 전화를 하게 생겼네·
“어 음···이렇게 전화를 드리게 된건 다름이 아니구요· 그 유튜브 채널 하시는 거···아니 그것보다· 요즘 막 뜨는 영상 보셨어요? [다에요 여고생]· 그게 제가 아는 학생인데 이쪽에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제가 태영피디님 안다고 하니까 그쪽에 출연할 수 없냐고·” 날조에 눈을 부릅뜨는 명전의 눈빛을 회피하며 준홍은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혹시 혹시 아시는지···다에요 여고생···”
“아 알죠! 마침 그것 때문에 한번 그쪽에 연락을 해볼까 했어요·”
“네?”
엥?
* * *
명전이 보기에도 어처구니 없는 단계로 진행된 섭외· 잠시 바꿔달라는 이야기에 받은 정태영 피디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었다·
1· 메인 채널은 아니고 서브 채널·
2· 다른 사람들과 같이 하는 컨텐츠·
3· 음악 관련일 것임·
4· 화제성을 위해 캐릭터성을 강화시킬 수도 있음·
5· 공식적인 제안은 아니니 감안할 것·
그 제안을 받아든 뒤 명전은 얼떨떨해하는 준홍을 남겨두고 집으로 향했다· 다른 건 별 문제가 안 되는 부분이었지만···
‘4번은 좀 그렇지 않나·’
명전이 유튜브에 출연하겠다고 생각을 한 계기가 무엇인가· 이놈의 ‘다에요 여고생’ 이미지를 없애버리기 위해서다· 무슨 어디서 한대 맞고 뇌가 좀 이상해지기라도 한 것 같은 그런 말투를 쓰는 여고생이라는 미칠듯한 음해를 없애버리기 위해서 명전은 달갑지도 않은 유튜브 출연을 결심했다· 하지만 이번에 받은 제안은 정 반대인 상황·
‘화제성을 위해 캐릭터성을 강화시킬 수도 있음? 화제성을 위해 캐릭터성을 강화시키겠음이겠지·’
딱 봐도 그럴 것으로 보였고 명전이 피디라도 그렇게 할 것이 분명했다· (명전 본인이 극도로 혐오하는 것을 제외하면) 도대체 누가 ‘꾸며낸 컨셉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다에요 같은 어미를 구사하는 미소녀 천재 기타리스트’라는 캐릭터를 죽여버릴 것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절하기에는 너무도 좋은 기회라는 것이 문제였다· 도대체 누가 서브채널이라고 한들 ‘정태영 피디’의 출연제안을 거부할 것인가· 총이라도 맞지 않고서야 거부할 이유가 없었지만 문제는 명전은 총을 한 열발은 맞은 사람이다· 그렇기에 고민이 될 수 밖에 없었다·
* * *
“그래서 그 이야기를 나랑 하겠다고?”
“지금 여유가 되는 게 너 밖에 없네·”
서하는 뻔뻔하게 커피를 들이키는 수연을 보며 생각했다·
‘얘 엄마가 사업가니까 그런 쪽으로 훨씬 잘 생각할 것 같은데?’
당연한 추측이었다· 명전이 혜인에게 상담하면 “무조건 나가야지! 그런 기회를 왜 놓치려고 그래? 엄마가 대신 전화해줄까?” 같은 소리를 들을까봐 도망가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본인은 결론을 내린 게 있을 거 아냐· 그런데 그게 찜찜하니까 이야기를 해보잔 거고·”
“그렇긴 하지···나는 일단 안 나가고 싶어·”
“왜?”
“당연히 ‘다에요’ 같은 멍청한 말투 같은 건 쓰고 싶지 않으니까·”
일리 있는 이야기라고 서하는 생각했다· 누가 천만원을 줘도 하지 않을 짓이 아닌가· 일억···정도 주면 하겠지만·
“그럼 정한 대로 하면 되잖아· 왜 갈등을 하는 건데?”
“글쎄···”
수연은 커피를 한번 더 홀짝 들이켰다· 서하는 그 이유를 왠지 알 것 같았다· 놓치기에는 너무나도 좋은 기회라는 거겠지· 자기만 좀 쪽팔리면 되는 일인데· 그게 싫다고 기회를 뻥뻥 걷어차고 있는 꼴 아닌가·
서하 본인이 만약 저런 상황에 처했다면 친구들에게 아무 말 없이 그냥 거절해버렸을 것이다· 홍보고 자시고 내가 하기 싫은데 그 일을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수연은 확실히 리더답게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거절하면 될 일인데 그냥 거절하지 않고 떠안고 있다는 점 부터가 승낙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냥 본인이 그걸 부정하고 싶어서 저러고 있는 것일 뿐· 그렇다면 서하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다·
등을 밀어주는 것·
“내가 답을 내려 줄게·”
“어떤 답?”
“그냥 해·”
그러자 돌아오는 날카로운 수연의 눈빛· 하지만 서하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이서도 코스프레 하고 베이스 연주 하면서 그룹 사운드 홍보하고 있잖아· 너는 그냥 나가서 사실 ‘다에요’ 정도만 하면 되는데 뭐가 힘들다는 거야?”
“실제로 겪어보면 다르다니까·”
“다르긴 하겠지· 하지만 쪽팔리는 건 순간이고 우리 밴드가 얻는 홍보효과는 계속될 걸·”
그 말에 잠시 고민을 하는 듯한 수연· 서하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 누가 그랬잖아·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순간이라고· 그렇다니까· 몇년 지나면 사람들은 네가 ‘다에요 여고생’ 같은 이상한 칭호를 가졌던 사람인지도 모를걸· 그냥 미소녀 천재 기타리스트 한명 있구나~ 하면서 생각할 거라니까· 그런 거에 너무 신경쓰면 안 돼·”
“그런가···”
점점 참가 쪽으로 기울어가는 듯한 수연의 심리· 서하는 그런 수연을 보며 태연하게 생각했다· 천년이 지나도 ‘다에요 여고생’ 같은 칭호는 절대 없어지지 않을 거라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시간도 너무 늦었고 분량도 빈약하네요 ㅠㅠ
한 5천자를 갈아엎다보니 이 시간이 되어버렸습니다· 내일 출근도 해야 되고 여러모로 한계라 이 상태에서 올릴 수 밖에 없네요·
오탈자는 추후 맞춤법 검사기 돌려 정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