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4
유서하는 17세 고등학교 2학년이다·
키는 작지만 얼굴은 봐 줄 만한 편· 성격은 좋지 않다고 스스로도 생각하고 있다· 친구는 많지 않고 교우관계 또한 좋지 않다· 학업에 흥미 또한 없다·
그녀의 교우관계는 어릴 적 놀았던 친구들 몇명을 제외하면 대부분 음악계에 몰려 있다· 합주를 하고 밴드를 하고· 어떤 음악이 좋고 나쁘고를 평가하고· 밤을 새며 청춘을 노래하고 현실의 좆같음을 곱씹고·
그리고 유서하는 드러머다·
그녀는 본인을 그렇게 규정했다· 나는 드러머· 나는 음악을 하려고 하는 사람· 그 외에 따로 뭔가 생각해본 것은 없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뭐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일종의 쾌락적인 마인드·
하지만 그녀와 음악을 할만한 사람들은 없다· 맞춰볼만한 수준은 다 이미 밴드를 하고 있거나 별로다· 남은 녀석들은 수준이 다 떨어지거나 별로다· 아무튼 귀가 별로거나 눈이 별로거나 뭔가 마음에 안 든다·
[정현아 : 그르니까님이좀와줘야대]
[호랑 : 내가왜?]
[호랑 : 고등학생 애들 모아서 밴드 해봐야 뭔소용임]
[호랑 : 결국 다 취미따리인거]
[호랑 : 실력도 다 고만고만할거고]
[정현아 : 아니라니까]
[정현아 : 기타진자존나잘헤;;신임]
[정현아 : 완전·미쳣음·]
[정현아 : 링크라도줄까?]
[호랑 : 글케잘하면 프로했겠지]
[호랑 : 아니 애초에 밴드할 마음도 없는 애였다매?]
[호랑 : 애초에 쌩라이브 아니면 그냥 다 보정먹일수있어 그럼 누구나다잘해보이는거임]
[정현아 : 야이씹ㄹ]
[정현아 : 아니제가음악을하는데그걸모르겟냐고요]
[호랑 : 뭔 lol]
[호랑 : 야 가서 피아노나 쳐]
오가는 오픈카톡을 보며 서하는 한숨을 쉬었다·
소꿉친구? 아무튼 어릴때부터 (인터넷)친구긴 한 요즘은 방구석에 처박혀서 만화나 애니 보고 앉아있는 애·
연락은 하고 지냈었는데 최근엔 좀 뜸하더니···갑자기 연락이 와서 하는 말이 이건가·
[정현아 : 아니니가밴드하고싶다면서요]
[호랑 : 그건 옛날 이야기지]
서하는 한숨을 쉬었다· 이 애랑도 이제 슬슬 연을 끊어야 하나· 결국 너도 이익을 따지는 인간관계였다 뭐 그런 건가·
[호랑 : 언제 가면 되는데?]
[정현아 : 오]
[정현아 : 언제시간됨? 우리가맞추게]
[호랑 : 주말은 되는데]
[호랑 : 그 외에는 알바해야돼서]
[호랑 : 일단 일정 보고 말해줌]
[정현아 : 아리가또고자이마수ㅜㅜㅜ]
일단은 맞춰주자· 아무튼 예전부터 친구긴 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이걸로 끝이다· 이 뒤로는 없다· 친구관계에 이득을 따지는 순간 그건 전부 무의미해지는 거다·
시시한 인간관계에 종말을 고하자·
결국 친구라는 건 오랜 시간 교우관계를 가졌느냐 아니냐로 결정되는 게 아닌 거지· 얼마나 마음이 맞냐 얼마나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느냐로 결정되는 거다·
그런 점에서 유서하는 자신을 이해할 수 있을만한 사람이 몇명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만큼 음악을 잘 하고 음악에 대한 마인드가 진지한 사람은 몇명 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만 데려가면 된다· 진정한 이해자들만·
그걸로 족하다·
SNS가 발달한 시대 이제는 중학교 2학년도 안 할 생각을 하며 유서하는 쓰게 웃었다·
* * *
주말·
최이서의 연습실에서는 불가능한 합주를 위해서 홍대 근처의 합주실을 빌렸다· 기본적인 키보드와 드럼이 있어 기타와 베이스만 들고 가면 되는 곳·
문제는 정현아로부터 들은 이야기· 드럼의 상태가 약간 이상하다는 것·
[Seibin (❁ᴗ͈ˬᴗ͈) : 먼가좀이상해요]
[Seibin (❁ᴗ͈ˬᴗ͈) : 그막먼가은근슬쩍부정적인거흘리는그런느낌]
[Seibin (❁ᴗ͈ˬᴗ͈) : 먼지알죠]
[Seibin (❁ᴗ͈ˬᴗ͈) : 안할라고그러나????]
합주곡은 정하긴 했다· 뭐라고 하더라? 무슨 일본 애니메이션 밴드 곡이라고 했는데· 몇번 쳐보고 대충 외운 후 명전은 그 곡을 잊어버렸다· 치면 대충 기억이 날 것이다·
[Seibin (❁ᴗ͈ˬᴗ͈) : 전에는밴드제발하고싶다고난리던데]
[Seibin (❁ᴗ͈ˬᴗ͈) : 이번에연락하닉가다들실력보고결정한다느니뭐니흠;;;곤란하다에요]
[Seibin (❁ᴗ͈ˬᴗ͈) : 먼가지금은트집잡는거같음]
명전의 기억으로는 처음에 분명 자신있게 데려올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했던 것 같은데· 알고보니 부정적이라 이건가·
[소드맛스타 : 원래도 합주 하자고 했었어?]
[Seibin (❁ᴗ͈ˬᴗ͈) : 전혀;;;]
[Seibin (❁ᴗ͈ˬᴗ͈) : 원래이런건순수실력을바ㅗ야된다이러면서합주곡도안정할라는거;;제가강제로정함어떻게든]
‘그야말로 고등학생의 발상이군···’
명전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었다·
‘순수 실력’이니 뭐니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 수많은 클래식 신동들도 실은 악보를 보자마자 갑자기 영감이 와서 파바바박! 쳐내는 게 아니다· 연습을 해서 칠 수 있게 된 것이다· 세상에 연습 없이 되는 일은 없다·
천재라는 족속도 그러할진대 – 명전이라는 ‘천재’ 또한 마찬가지다 – 그냥 평범하게 악기를 하는 일반인 애들은 어떨까?
명전이 보기에는 뭔가 그냥 마음에 안 들어서 거절하고 싶은데 핑계거리를 만드는 것으로 보였다·
뭐 영 안 내킨다면 어쩔 수 없다· 드러머를 다시 찾는 수 밖에· 아니면 얼치기 한명 데려와서 교육을 시켜도 되고·
오히려 그런 방향이 궁극적으로 봤을 때는 더 나을 수도 있겠다고 명전은 생각했다·
어줍잖은 쿠세(버릇) 없이 밴드사운드를 위한 드럼을 쳐줄 수 있는 사람· 한 6~8개월만 훈련을 하면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 까지 가면 굳이 이 아이들이랑 할 필요 없이 명전이 알아서 결성을 해도 되는 일이지만·
‘너무 근본적인 의문이군···’
명전은 고개를 흔들어 그 생각을 없애버렸다· 아무튼 뭐 보자· ‘순수 실력’으로 남들을 평가하느니 뭐니 과연 그럴 자격이 있는 아이인지 아닌지·
아무리 애들한테 떠밀려 밴드를 시작했다 한들 결국 내 선택으로 결성된 밴드·
과연 저런 말을 들먹여가며 내 애들을 거절할 깜냥이나 되는지 한번 봐야지·
“수연아!”
이윽고 들려오는 목소리· 최이서와 정현아 두명이 뒤에 서 있었다· 언제나처럼 최이서는 살짝 짙은 화장을 했고 정현아는 온라인과 다르게 삐질대며 뒤에 서 있다·
“언제 왔어?”
“방금 전· 안녕하세요·”
“아 네···안녕 하세요·”
“빨리 들어가자· 드럼분 좀 일 생겨서 좀 늦는다고 했던가?”
“한 30분쯤 늦는다고 하던데요···”
“많이 남았네~ 미리 좀 쳐 볼까?”
쓸데없는 소리를 하며 들어간 합주실· 그냥 그저 그렇다· 드럼이 있고 키보드가 있다· 앰프는 마샬의 스택앰프· 하지만 나는 앰프헤드를 가져왔기 때문에 굳이 뭐 필요는 없고·
괜시리 드럼을 몇번 두드려보고 심벌즈를 쳐 본다· 그냥저냥 나쁘지 않은 드럼이다·
“근데 오늘 바로 만나자마자 합주가 한번에 되는 거긴 해? 연습해오긴 했는데···”
“글쎄요···”
“힘들긴 하지·”
명전의 말에 다들 그를 돌아본다· 명전은 드럼을 투퉁! 두드리고는 말을 이었다·
“합주를 하기 위해서는 일단 합주곡의 자기 파트를 어떻게 치는지 숙지하고 있어야 돼· 그 다음 숙지한 상태에서 템포를 맞추고 그 다음 완성도를 올리는 거지·
그런 의미에서 합주까지는 되긴 하겠지만 평범하게 보면 좋은 연주를 하긴 힘든 상황이지· 원래 리듬기타이던 파트를 키보드로 편곡까지 하고 했으니까·”
그 말에 생각에 잠긴 표정이 되는 이서· 현아는 우물쭈물하다 명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그럼? 음 내 생각에는···애초에 거절할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네??”
“그 애가 실력을 보고 판단한다며· 게다가 걔는 밴드에서 제의를 받을 정도의 실력이고· 그런데 합주가 제대로 안 되는데 실력을 보고 뭐 이야기를 할 수 있겠어?
보나마나 합이 안 맞다거나 뭐 내 실력에 너희들이 못 따라온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거절하려는 거 아니었을까· 합리적인 이야기잖아· 너희랑 내 실력이 너무 안 맞으니까 하기 힘들다· 그렇게 얼굴 붉힐 이야기도 아니지·”
명전의 말을 듣고 살짝 침체된 분위기· 현아는 손을 꼼지락대며 곤란하다는 듯 서 있고 이서는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의자에 털썩 앉았다·
“아니 그럼 드럼 그 사람은 애초에 거절하려는 거였다는 거야? 우리 엿먹일라고?”
“엿먹이기까지는 아닌 것 같고· 그런 쪽이 뭐 기분 안 상하는 방법이긴 하니까· 친구 사이에 이미 했던 약속을 깰 수는 없고 그렇다고 무작정 니들이랑 안 맞는다~ 할 수도 없고·
그러니 실력차이를 이유로 대면 수긍하고 넘어간다 뭐 그런 생각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명전은 씨익 웃었다·
다른 둘은 이 상황에서 수연이 왜 그런 웃음을 짓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후회 한번 시켜줘야 하지 않을까?”
“후회?”
되묻는 두명· 명전은 노트북을 꺼내 세팅을 하며 말했다· 곡 연습 해보는 김에 찍어놓고 아이들에게 보내줬던 드럼 미디파일·
“내가 감히 그런 마음을 먹었구나· 이런 밴드에는 무조건 들어가야 하는데· 그런 마음이 들게 해 줘야지· 안 그래?”
세상 높은 줄 모르고 날뛰는 어린 애에겐 충격 요법이 필요한 법이다·
* * *
서하는 느지막히 합주실에 도착했다· 이 시간이면 지금 뭐 어떻게 하고 있을까· 드럼이 없어서 그냥 자기들끼리 맞춰보고 있을까·
‘이쯤 되면 나랑 같이 안 한다고 할 줄 알았는데···’
아무리 결심을 했다 한들 눈을 보고 ‘너랑 하고 싶지 않다’ 라고 말하긴 쉽지 않아서· 스스로 나가떨어져줬으면 했는데·
어쩔 수 없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돼서 다행이지·’
합주에서 보여주는 실력을 핑계로 어떻게든 너희랑 같이 하기는 곤란하다···이런 식으로 말을 하면 되겠지· 그 다음은 뭐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쪽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서하는 지정된 연습실로 다가갔다· 다가갈수록 조금씩 들려오는 방음설비를 뚫고 들려오는 연주 소리·
그리고 문을 살짝 여는 순간 거기에서 새어나오는 연주에···
서하는 귀가 멀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베이스는···그냥 평범하다·
아니 버거워보인다·
자신의 역량에 맞지 않는 연주를 하느라 힘겹게 따라가는 느낌· 연주가 아니라 두더지 잡기라도 하는 듯 급하게 나는 소리·
틀리는 부분도 많다·
키보드는 리듬 기타 파트를 편곡한 부분·
약간의 기교가 들어가긴 했지만 크게 뽐낼만한 것은 없고 그럴만한 부분도 없다·
드럼은···미디·
‘드럼이 있다’ 수준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기타는 어떤가·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저 연주에서 느껴지는 특별함을·
칼날과도 같은 정확도를
있을 수 없는 테크닉을
불가해한 연륜을
자기확신의 감정을·
분명 아래에 깔린 베이스와 리듬 키보드는 그저 평범한 수준이다· 아니 베이스는 평범 이하의 수준이다· 그녀의 파트였어야 할 드럼은 미디로 교체되어 그냥 ‘있다’ 수준이다·
그러나 그 모든 단점을 기타 한대가 묻어버리고 있다· 세상을 오시하는 듯한 하지만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연주로써·
‘이런 곡이 아니었어·’
그녀가 들은 곡은 그저 평범한 일본 애니메이션 밴드 곡· 잘 만들었지만 그 뿐이다· 이 정도의 곡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지금 뿜어져나오고 있는 연주는···기타를 잡고 있는 저 애가 오롯히 홀로 만들어낸 것이란 말인가·
‘같이 하고 싶어·’
이곳에 올 때 품었던 감정은 이미 잊어버렸다· 그런 것? 아무래도 좋다· 저 기타와 함께라면 그녀는 끝없이 연주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이 하자고 말하자· 늦어져서 미안하다고 하고 합주를 하자· 같이 착실히 합주 연습을 해서 같이 밴드를 하고· 그렇게 음악으로써 이름을 남기자·’
그래· 왠지 부탁을 거절하는 게 찜찜했던 이유를 알겠다고···서하는 생각했다·
이런 만남을 위해서 몸이 본능적으로 반응을 한 것이다· 저 기타를 만나게 해 주기 위해서· 운명적인 만남을 위해서·
그러나 명전은 몇분 전부터 합주실 문이 열려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연주를 문 앞의 아이가 심취해서 듣고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연주가 끝나자마자···미리 준비했던 말을 던질 수 있었다·
“우리 드럼···그 사람 좀 소극적인 거 같던데 그냥 아무나 구할까? 그 사람 말고?”
합주실 문이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저택성 님 10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