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42
“다 왔어·”
차가 세워진 곳은 홍대 인근의 어딘가였다· 번화가라고는 하기 힘든 젠트리피케이션이 한참 진행중인 것 같아 보이는 곳· 있는 것이라고는 편의점과 음식점 몇개 가게 몇개· 그리고 주택 정도 밖에 없는 곳·
“원래 회사 여기 아니었잖아요?”
“공사 마무리되면 이쪽으로 옮길 거란다·”
명전의 말에 혜인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공사를 한참 하고 있는 건물로 다가갔다· 1층은 유리창으로 뚫려 있는 상가· 2층과 3층은 사무실 정도 되어보이는 건물· 공사는 1층과 지하 정도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1층은 사무실이랑 스토어로 사용하게 될 거야· 밴드 굿즈 같은 것들 팔고 일반적인 사무 같은 거 보고·”
점심이라 그런지 공사가 잠시 멈춰있는 현장· 이리저리 잡동사니가 어질러져있는 현장을 능숙하게 가로질러가며 혜인은 명전에게 그렇게 설명했다· 저 안쪽은 사무실· 저기는 화장실· 저쪽은 직원들 탕비실· 저기서부터 여기는 굿즈 부스···
“그리고 이 밑으로 내려가면 여기서부터는 이제 연습실이랑 녹음실· 이쪽은 녹음실이고 이쪽은 연습실·”
방음설비가 완전 쫙 깔려있는 지하· 명전은 감탄을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렇게 철저하게 방음설비를 갖춰놓은 곳은 그도 그다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장비는 어떤 게 들어올 건가요?”
“그건 이제 수연이 너 의견 듣고 진행하려고· 엄마는 잘 모르니까·”
그 말에 명전은 꿈에 빠져든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가 이제까지 사용하고 있던 준홍의 작업실도 괜찮은 곳이었지만 여기와 비견할 곳은 아니었다· 그야말로 최첨단 방음 설비와 편의시설이 들어와 있는 곳· 게다가 혜인의 말로는 이제 음악 장비까지 다 명전 자신이 넣을 수 있는 곳이라고 하지 않는가·
마음이 잔뜩 들떠 이곳저곳을 살피며 신나게 구상을 하고 있는 딸을 보며 혜인은 피식 웃었다· 그녀가 이 공사를 시작한 것은 필시 저렇게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다·
“네?”
공사 현장을 돌아본 후 그들이 향한 곳은 인근의 카페였다· 적당히 엔티크한 카페에서 혜인이 해 준 이야기를 듣고 명전은 커피를 뿜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엄마가 계산하기로는 충분히 가능할 것 같거든·”
“어···그게 될까요·”
너무 낙천적 해석이 아닌가· 명전은 방금 들은 이야기를 소화해내기 위해서 머리를 굴렸다· 정리해보면 결국 이러한 이야기였다·
그가 이전에 털어놓았던 이야기를 듣고 혜인은 ‘딸의 소망’을 이뤄주기 위해서 [레이블 에코사운드]를 전격적으로 개편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녀가 원래 계획했던 인디 뮤직 플랫폼에 더해서 레이블과 마케팅 홍보 기능까지 갖춰놓은 그런 기업으로·
방금 보여주었던 공사 현장은 그 일환이었다· 공사가 마무리되면 에코사운드를 그쪽으로 이사하고 연습실/녹음실 대여 사업을 벌이면서 인디 레이블을 확장한다· 동시에 레이블을 플랫폼화하기 시작하는 그런 프로젝트·
문제는 최초에는 이 모든 걸 동시에 할 계획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디지털 플랫폼화를 먼저 이뤄냄으로써 수익 구조를 만든 다음 오프라인 플레이스를 만든다···는 것이 최초 혜인의 계획이었다고 하는데·
그런 계단식 계획이 지금처럼 바뀐 것은 ‘딸의 소망’을 이뤄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엄마도 조금 느낀 게 있다보니까· 처음부터 과감하게 투자를 해서 공격적으로 나가야 되지 않을까 생각을 했지·”
‘너무 낙천적인 기대 아닌가?’
혜인의 이야기를 듣고 명전은 그렇게 생각을 했다· 물론 사업이라는 게 다 잘 될 것을 생각하고 투자를 하지 안 될 것을 생각하고 투자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혜인보다 조금 더 오래 음악에 몸을 담아본 명전으로서는 걱정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뭐 어련히 계산기를 두드려 봤겠지만은···’
아무리 혜인이 속칭 ‘딸바보’라고 한들 그녀의 본질은 사업가· 아무런 채산도 없이 단지 딸이 하기를 원했다는 이유만으로 투자했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되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엄마도 다 생각이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수연이 너는 하고 싶은 음악을 해·”
그런 마음을 읽었는지 자신을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 혜인의 말·
‘어쩔 수 없다· 내가 열심히 일하는 수 밖에···’
하지만 명전은 그 말에 오히려 확신이 더 굳어졌다· 자신이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고·
* * *
정규앨범 컨셉 회의 3회차· 1회차의 실망스러운 모습을 뒤로 한 채 2회차를 넘어 3회차까지 도달한 회의는 상당히 정돈된 느낌이었다· 서로 차분히 자신이 할 말을 하는 분위기·
‘2회차가 그 꼬라지였으니···’
서로 뭐 할지만 주구장창 이야기하다가 결국 “그걸 왜 하냐고! 안 팔린다고!”로 감정이 폭발했던 회의· 일본에서 패션가지고 감정 상했던 일 이후로 처음 있었던 싸움· 그때 아무래도 많이 반성했던 모양인지 다들 조금 분위기가 가라앉은 모양새였다·
“컨셉은 이전의 것을 쭉 이어가는 것이 좋다고···생각 해요·”
현아의 말에 서하는 팔짱을 꼈다· 무슨 말인지 들어나 보자는 태도였다· 그 모습에 현아는 살짝 위축이 된 느낌이었지만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이전에 저희가 시도한···시도한? 컨셉은···일종의 청춘 뭐 그런 것이었잖아요···”
“그렇지· 뭐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조금 다르게 말할 수는 있지만·”
“그런 주제를 이어가야 사람들이 좀···좋아해주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Ep에서 J-rock이었던 분위기가 예를 들어 갑자기 정규앨범에서 메 메탈이 된다거나···그래버리면 좀···”
그 말에 현아에게 눈을 부릅뜨는 서하· “히엑···”이라고 소리를 내며 살짝 무서워하는 기색의 현아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나도 비슷하게 생각해· 이미 우리는 장르를 확정지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이미 그룹 사운드의 장르는 이거다 뭐 그런 식으로 각인해버렸다는 느낌·”
“과오 같은 건 모던 락이잖아? 아직 확정되었다고 볼수는 없지 않나·”
“그건 오디션이니까 특수하다고도 볼 수 있겠지·”
서하의 반론에 반박하는 이서· 명전은 그 분위기를 흥미롭게 쳐다보았다· 대체로 이서와 현아는 J-Rock 쪽으로 가고 싶어하는 분위기였고 서하는 끝까지 ‘메탈’을 고수하고 싶어하는 듯한 모양새·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어· 아무튼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거지·”
명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두 명· 하지만 반론은 기다렸다는 듯 즉시 튀어나왔다·
“옛날 락 밴드를 보던 지금 밴드를 보던 장르를 바꾸는 것은 흔히 있어왔던 일이야· 굳이 우리가 EP에서 J-Rock적인 분위기를 보여주었다고 해서 그걸 계속 가져갈 필요가 없는 거지·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서하의 대답은 반론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듯 단호했다· 그에 현아는 뭔가 할 말이 많은 듯 입을 열려고 했지만 명전은 손을 들어 이야기를 제지했다·
“그만 그만· 오늘도 결국 결정 못 할 것 같은데 그럼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오늘은 그냥 끝내는 걸로 하자·”
* * *
명전이 별 생각 없이 진행했던 앨범의 컨셉 회의는 의외로 난항을 겪고 있었다· 밴드 멤버들 각자가 하고 싶은 것이 의외로 달랐기 때문이다· 명전은 그를 타협해서 조절하고 싶었지만 제시된 컨셉이 그녀들의 내면에서 나온 목소리인 만큼 절충안을 만들어내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내 생각이 잘못된 거였나?’
점멸하는 맥북의 커서· 명전은 그 커서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뭔가 작업방식이 잘못된 것일까· 거창하게 ‘아이들의 의견을 수용해서 정규앨범을 제작하겠다!’ 라고 하다 보니 더욱 더 뭔가 안 되어가는 느낌· 점점 더 미궁에 빠져가는 것 같고·
‘서명전’일 시절에는 전부 겪어보지 못했던 일들이다·
명전은 옛날을 생각했다·
그 시절에는 창작의 재능이 밑바닥을 쳤다는 것만 제외하면···그는 정말 하고 싶은 대로 살았다· 기타를 가르치고자 하면 가르쳤고· 잠적을 하고자 하면 잠적을 했으며· 돈을 벌어야 할 때는 다시 나와 세션을 했다·
그야말로 유아독존의 삶을 산 셈이었다·
‘그 시절에는 뭐 이것저것 고려하면서 살 필요가 없으니까 편했지· 그냥 재미없거나 귀찮게 괴롭히는 사람들 많으면 심산유곡에 들어가서 기타나 붕붕 치고·’
그에 비하면 지금은 매여있다는 느낌이라고 명전은 생각했다· ‘엄마’와 매일 만나야 했고 학교에 가야 했고 친구들과 놀아줘야 했고 인간관계도 관리해야 했으며 밴드 아이들과도 만나야 했고 밴드와도 연습을 해야 했다·
이전과는 정 반대의 삶·
자신을 구속하는 것들이 많은·
모든걸 다 휙 내던지고 떠날 수 있었던 이전과는 다르게 더이상 내던지고 떠날 수 없게 되어버린 그런 삶·
‘그래서 괴로운가?’
그는 자신에게 물음을 던져보았다· 이전과 같이 살지 못해 괴롭냐고·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전혀 나가지 못하는 음반의 진도· 혜인이 해준 ‘이 정도까지?’라고 할 만큼의 지원· 수많은 팬클럽들의 기대· ‘친구들’과의 우정· ‘서명전’이 ‘하수연’으로 살던 동안 덕지덕지 붙은 이전의 삶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고 각별한 인연·
그런 것들을 다 포기하고 뒤돌아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 정도로 그는 매정한 사람이 아니었다· 예전의 삶도 그렇게 즐거운 삶이 아니었고·
왠지 모르게 그는 어린 시절에 봤었던 동화 하나를 떠올렸다· 거기에서 누군가는 그렇게 말했다· ‘네가 오후 네시에 온다면 나는 오후 세시부터 행복해질 것이다·’라고·
얽매임 없이 혼자서 해버리면 뭐든지 쉽겠지· 거추장스러운 것 없이· 얼마나 쉬운가· 반대할 사람도 없고 절충할 의견도 없다·
하지만 그게 뭐가 재미있을까·
그저 혼자 남은 사람일 뿐이다·
그는 워드 프로그램을 눌러 닫고는 DAW를 키고 기타를 잡았다·
‘음악은 자신의 이야기 라고 했던가·’
첫 번째 Ep에서 명전이 만들어냈던 것은···그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수연’의 재능과 감성을 빌려 만들어낸 이야기· Plastic Nostalgia·
그렇다면 이제는 그의 이야기를 해 보자·
지금 그가 느끼고 있는 감정처럼·
살짝 부끄러울 수도 있고 어쩌면 듣기 싫어할지도 모르지만···그동안 하지 못했던· 그러나 해야만 했던· ‘서명전’의 수십년 평생을 들여도 한번 하지 못했던 혹은 하고 싶었던·
그런 이야기들을 들어놓도록 하자·
그게 좋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많이 늦었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