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49
“촬영 끝! 수고하셨어요~”
아수라장이 된 사무실· 정유영 과장의 말에 바깥에서 커피 기계를 만지작거리고 있던 직원이 안으로 들어와 정리를 시작했다·
그렇게 사무실 한켠으로 밀려난 네 명 사이에서는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돌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한마디 꺼내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한마디 튀어나오기만 하면 그때부터 전쟁이 시작될 것 같은 그런 긴장감···
“야·”
팽팽하게 이어지던 긴장감을 깬 것은 수연의 입이었다· 아까 전과는 다르게 매우 차갑게 가라앉아있는 목소리·
지은 죄가 있는 세 사람은 안 돌아가는 목을 삐걱거리며 수연을 쳐다보았다· 평소보다도 더 표정이 없는· 감정이 없는···눈빛의 하이라이트가 완전히 날아가버린·
반쯤 광기에 잠식된 그런 얼굴을 한 수연이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 아 아니~ 내가 그런 말을 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응? 연수·”
야 그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서는 제발이 저렸는지 그 말이 튀어나오자마자 다급하게 변명을 시작했다·
“뭐?”
어처구니 없다는 듯한 말투·
“그그그 있잖아· 우리도 말이 좀 심했다고 생각해· 응? 근데 어···”
“우···우리···?”
필사적으로 말을 주워섬기고 있던 이서의 말을 끊은 것은 옆에 가만히 앉아 있던 밝은 갈색머리의 소녀였다·
“우리···가 아니라고 생각해···요···소맛님만···그런 거 아닌가···”
“뭐?!”
이서는 엄청난 충격을 받은 듯 현아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에너지가 담길 수 있다면 강철마저 뚫었으리라 생각되는 그런 눈빛을 받고도 절대 이서 쪽을 보려고 하지 않는 현아·
배신감에 치를 떨며 이서는 서하 쪽을 쳐다보았다· 마치 그 쪽에는 구세주라도 있는 것마냥 행동하며· 하지만 서하는 피식 웃으며 턱으로 수연을 가리켰다· 너의 짐은 너 혼자 지라는 듯한 행동이었다·
“아니! 나만 그런게 아니잖아! 남들도 다 그랬다고! 어? 지금 쟤들도 다···! 다 양아치니 틀딱이니 그랬잖아!”
“우리야 장난으로 그런 거지· 방송이니까·”
“그래! 나도 방송으로 그랬어! 아니 그보다 너희들도 다 서로 공격했잖아! 이거 봐 이거· 나한테 들어온 거· [패알못] [난잡한 패션으로 지구의 자원을 낭비하고 있음]! 게다가 [트위터에서 만난 약간 컨셉 잡는 이상한 사람] 이건 뭐냐고! 이거 빈님이 작성한 거죠!”
“아···아닌데···”
“아니긴 뭐가 아냐! 여기 중에서 트위터에서 나랑 만난 사람이 당신밖에 없는데!”
어떻게든 자신에게 돌아올 수연의 응징을 받아넘기기 위해서 과장된 동작을 펼치며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시작한 이서·
“우리 이러지 말자· 응? 같이 가는 밴드원들끼리 막 불화가 생기고 이러면 좀 그렇잖아·”
마치 청춘만화에 나오는 가련한 주인공처럼 이서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열성적으로 외쳤다·
“수연이 너도 맨날 말한 거 아냐? 밴드는 항상 같이 가야 한다· 밴드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이게 지금 그냥 자체컨텐츠에 했었던 그런 거 하나 때문에 감정이 상하고 그러는 건 좀 아닌 거 같지 않아?”
“···감정이 상하게 할만한 말은···소맛님 혼자···만 한 게···아닌가···”
“조용히 하세요!”
이서는 탁자 위에 올려져 있던 종이를 돌돌 말아 현아의 정수리에 내려쳤다· 팍! 하는 소리와 함께 현아가 “히엑!” 하며 거북이처럼 목을 움츠렸다·
“아무튼 수연아· 우리는 이제 하나가 될 차례야· 이런 사소한 일 하나때문에 서로 보복하고 그랬다가는 이제 계속될 자체컨텐츠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어!”
“후···”
이서의 열띤 웅변· 그 말이 끝나자 수연은 크게 숨을 들이쉰 후 한숨을 푹 쉬었다· 아이들은 수연의 그런 움직임에 팽팽하던 사무실의 분위기가 한순간에 풀려가는 것을 느꼈다· 저렇게 선을 넘었는데도 용서를 해 줬구나·
“미안해· 응? 다시는 그렇게 안 할게·”
“그래···”
이서의 말에 그렇게 답을 하며 수연은 이서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이서는 싱글벙글 웃으며 손을 맞잡고 악수를 했다· 단단히 쥐어진 1초간의 악수· 그 이후 이서는 손을 풀었지만 자신의 손은 계속해서 잡혀 있었다·
“응??”
“라고 할 줄 알았냐?”
수연은 이서의 손을 꽉 잡은 채 이서에게 그렇게 선고했다· 그리고 사무실에서는 “으아아악!” 하고 높은 데시벨의 비명이 울려퍼졌다· 꽤나 고생을 좀 할 것 같은 느낌으로·
* * *
“아 시험 개같아·”
아윤은 영혼까지 털린 채로 털레털레 걸어 자취방에 돌아왔다· 컴퓨터를 키지도 못한 채 샤워만 대충 하고 침대에 털썩 몸을 던진 다음 핸드폰을 들어올렸다·
‘정말 만사가 다 괴롭다· 이럴 땐 영혼의 양식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하지만 그녀가 애정하는 밴드 그룹 사운드는 컨텐츠를 올릴 기미가 전혀 없었다· 그 사실에 그녀는 통곡을 하며 트위터를 열었다·
트위터의 분위기는 그녀가 예상하던 것과 천지 차이였다·
매일 [제발 뭐 좀 올려줘!!] 라며 절규하던 사람들· 그마저도 점점 사그라들어가던 타임라인은 이전의 모습은 단 하나도 보이지 않은 채 정월날의 츠키지 시장마냥 엄청날 정도로 붐비고 있고···상주하던 사람들은 로또라도 맞은 것마냥 행복해하고 있는 그런 상황·
아윤은 그 모습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게 무슨 일인가· 천천히 훑어본 타임라인에는 공통적으로 하나의 유튜브 링크가 걸려 있었다·
[#EP000· 새단장 및 시작] https://youtube·com/dodwqpoj~
“자컨?!?!?!?!”
이 얼마만에 올라온 공식 유튜브 영상인가· 지난번 라디오 출연으로 일용할 양식을 한번 얻긴 했지만 그것이 유튜브 영상만큼 영양가가 있지는 않았다· 아윤은 그보다 뭔가 더 ‘덕질’을 할 만한 컨텐츠가 필요했기에·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게다가 그냥 평범한 덕질 영상이 아니라! 자컨이라는 대박이 터진!
[#EP000· 새단장 및 시작] 이라는 뭔가 거창한 제목·
이서가 베이스를 든 썸네일이 있는 3시간짜리 [나는친구를놀리지않겠습니다] 영상도 있었지만···일단 그 영상은 무시한 채로 그녀는 기대감을 가지고 영상을 재생했다·
그리고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혼잣말을 뱉어냈다·
“헉 미친·”
[회사 새 단장!]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문구와 함께 소개되는 사옥· 홍대 인근의 작은 빌딩을 리모델링한 듯한 회사· 소속 아티스트의 굿즈와 커피까지 팔고 있는 모습·
그 뒤로도 이어지는 화면· 인재 영입· 앞으로의 계획· 정규앨범 그 외 다른 이야기들· 앞으로 수많은 컨텐츠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는 증거· 뛰던 가슴을 더욱 더 세차게 요동치게 만든 것은 레이블 소식의 소개가 끝난 다음이었다·
[“여러분들의 첫 인상! ‘첫 인상을 알아봅시다!’ 시간입니다!”]
[“화 안 났어·”]
[“난거 같은데?”]
[“···화 안났다고···”]
“으아아아아악!”
아윤은 마음껏 절규했다· 눈치를 볼 사람들도 없었기 때문에· 소리를 지르다가 트위터에 들어가보니 그녀와 비슷한 상태인 사람들이 몇 있었다· 몇분 간격으로 크아아악 하며 너무나도 좋아하는 사람들·
[“이번 컨텐츠의 취지는요·”]
중간중간에 삽입된 편집도 꽤나 공을 들인 것 같아 보기 좋았다· 예산이 많이 들어간 것 같지는 않았으나 뭔가 아는 사람이 했다는 건 확실하게 보이는 영상 퀄리티·
[“일단 우리 아이들을 좋아하시는 팬분들에게 우리 아이들이 어떤 아이들인지? 밴드가 어떤 상태인지? 를 보여드리자는 거에요·”]
= 크아악새로운직원분너무감사합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
@ 진짜미치겟으뮤ㅠㅠㅠㅠㅠ
반응을 올리자마자 따라붙는 다른 트위터리안· 아윤은 심장을 부여잡고 자신이 얼마나 이 영상을 좋아하는지 연설 아닌 연설을 했다·
[“너무 악의적인 거 아니야 이 인상?”]
[“수연님만···하겠나요···”]
[“그건 그래·”]
특히 영상을 재미있게 만들어준 것은 생각치도 못한 부분이었다·
밴드의 리더 카리스마 기타· 전직 일진 혹은 양아치 그리고 상당한 미모· 분명 학창시절에 만났다면 꼼짝없이 말 한번 못 걸고 말이 걸려왔더라도 기 죽어서 “미안해!”를 외칠 것 같은 그런 아이 하수연·
그렇기에 아윤은 기대했다· 오히려 수연이 조금 눌리는 모습도 있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아윤은 그 부분에 있어 전혀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저런 애들은 보통 다른 친구들을 막 휘어잡는 타입이긴 해···’
하지만 하수연이 보여주는 영상 내 모습은 그런 인상과는 완전 반대였다·
[“내가 왜 틀니고 노인이야? 나는 완전 멀쩡한 여자 고등학생이라고· 17세 학생이라니까· 내가 왜 저런 취급을 받아야 되는지 모르겠는데·”]
주위의 놀림에 화를 참지 못하고 부들대는 것이 그대로 보이는 수연의 모습· 그리고 틈을 놓치지 않고 사정없이 놀려대는 밴드원들·
[“완즌멀쪙한고등학쉥이라거~~ 냬갸왜저런취그블~~”]
특히 이서가 심했다· 그야말로 한치도 쉬지 않고 계속 놀려대는 이서·
[진짜 미쳤어요]
[학교가서 수연선배 한번 놀려보고싶어요 ㅠㅠㅠㅠㅠㅠㅠ]
[막 볼꼬집어보고그러고싶음 ㅠㅠㅠㅠ]
‘그런 짓을 하면 진지하게 진짜 혼나지 않을까···’
아윤의 덕질메이트 한승고 1학년에게 날아온 DM· 아윤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다· 아무리 편집이 들어갔다 한들···저런 자컨을 보면 누가 수연을 미워할 수 있겠는가·
아무튼 행복 그 자체인 자컨이었다·
* * *
“그리고···자체 컨텐츠 쪽으로 넘어가자면· 일단 문제가 있습니다·”
자컨이 업로드된지 며칠 후 열린 정규 앨범 프로듀싱 관련 회의· 고경민의 말에 명전은 머리를 꼬았다· 확실히 문제가 있는 컨텐츠긴 했다· 그를 그렇게 취급한 영상이었으니까· 하지만 경민이 말하는 건 그런 쪽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 보였다·
“어떤 문제입니까?”
“일단 이 자료를 봐주시죠·”
회의실 벽면에 프로젝터로 쏴지는 자료· 명전은 무의식적으로 눈을 가늘게 뜬 채 몸을 뒤로 젖혔다· 뭔가 도표나 그래프등이 막 그려진 것이 보이긴 했는데 어떤 식으로 해석을 해야 할지는 감이 안 왔다·
“이 지표와 이 지표· 보시면 총 조회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정작 저희 영상에 댓글을 한번도 달지 않은 즉 신규로 유입된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는 것이 보이고 있죠·”
고경민은 그렇게 말하며 계속해서 자료를 넘겼다· 이러쿵 저러쿵· 복잡한 데이터들· 그리고 그 데이터들에 대한 해석· 명전은 대충 반 정도는 알아들었고 반은 알아듣지 못한 상태로 계속해서 화면을 보았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이번 자컨 영상에 대한 초반 추이를 보았습니다만···결론은·”
“뭔가요?”
잠시 뜸을 들이는 고경민· 그 모습이 답답했는지 질문을 던지는 이서·
“이번 컨텐츠가 지금 저희 팬층에서는 상당히 높은 조회수와 호응도를 보이고 있다는 겁니다· 내부에서 상당히 반복해서 열성적으로 소비를 하고 있고 이와 관련되서 팬 커뮤니티 반응도 매우 좋다는 것· 하지만···”
고경민이 제시한 다른 자료· 이리저리 수치가 적혀 있는 것에 대해 경민은 해설을 곁들여 설명하기 시작했다·
“신규 유입 자체가 적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유입된 유저가 바로 이탈해버리는 그런 일은 일어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실제로 팬클럽 유입 또한 영상 업로드 이후에 유의미하게 발생하고 있는 상태고· 그런데 문제는 유입 자체가 적다는 거죠·”
“음···”
명전은 팔짱을 끼었다· 일리가 있는 말인 것 같긴 했다· 그들이 찍은 것은 이른바 ‘자체컨텐츠’· 내부 팬층을 위한 창작물· 그렇기에 내부 사람들만 돌려보는 것 자체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
문제는 ‘그룹 사운드의 내부 팬층’이라는 게 터무니없이 작다는 거지만·
‘어느정도 외부 유입을 가져와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구만·’
“아니 근데 우리가 다른 사람들한테 밥상을 차려줄 수는 있어도 밥을 막 억지로 먹일 수는 없잖아요·”
서하의 말에 고경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명전 또한 그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까지 만들어줬는데 그걸 안 먹으면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제 생각에는···사람들이 유입될만한 컨텐츠를 만들어 줘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시점에서요·”
“지금이요?”
“네· 자컨이 이제 제작되는 시점· 이 시점에 이번 앨범 및 밴드의 디자인 컨셉을 결정하고 화보를 낸다던가 하면···상당히 유입을 이끌어 올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예를 들어서 이런 것들 말이죠·”
고경민이 든 자료를 명전은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내밀어 쳐다보았다· 밴드 의상 몇개 아이돌 의상 몇개· 그도 알아볼만한 그런 정상적인 의상들 사이에서 위화감이 드는 사진이 하나 있었다· 살짝 왜색이 있는 프릴이 치렁치렁 달린 분홍색···
“아니 무슨 이 사람 큰일 날 사람이네· 우리가 저런 걸 어떻게 입습니까?!”
명전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프릴 치마를 가리키며 외쳤다· 눈에 흙이 들어가도 저런 건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차라리 늙은이라 해라· 얼굴만 내미는 유교적인 의상을 입는 것이 낫지 저런 의상을 입을 수는 없는 것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반인간 님 5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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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선물로 신규 표지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