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5
문이 끼익 열리면서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들어온다· 검은 단발머리 살짝 작은 체격· 전반적으로 어두운 계열의 옷들·
“호랑님!”
정현아의 인사· 그를 받으며 쭈뼛쭈뼛하게 들어오는 폼이 명전의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아 보였다· 정작 나머지 둘은 명전이 무슨 이유로 그런 발언을 했는지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아 그 유서하입니다···”
“안녕하세요~ 최이서라고 합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이서의 인사의 인사를 받아준 다음 명전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서하· 시선의 의미를 너무 잘 알 것 같아 명전은 피식 웃었다·
‘베이스는 평범한 실력이고 주목할 만한 것은 나 밖에 없다 이건가?’
한때 저런 약삭빠른 – 놀랍게도 저런 삶을 사는 본인들은 자신을 약삭빠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삶을 살았던 선배로써 유서하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정도는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명전이었다·
“반갑습니다· 하수연입니다·”
악수를 내민 손· 서하는 무의식적으로 두 손으로 그 손을 받아들려 하다 멈칫했다·
“그 기타···방금 기타 치신 분 맞죠?”
“그렇긴 한데요·”
“너무 잘 치시는 거 같은데· 기타는 언제부터 배우셨나요?”
“글쎄요···”
명전은 배운 시기를 언제라고 말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수십년은 배웠다고 할까? 아니면 한달도 안 되었다고 할까? 어느 쪽이건 진실이고 어느 쪽이건 믿지 못할 이야기다·
‘그렇게 생각하면 별 차이가 없군·’
“얼마 안 됐어요·”
아주 가볍게 내뱉어지는 명전의 대답· 그 말에 서하는 그게 말이나 되냐고 생각했다·
‘무슨 말이 되는···아냐· 의외로 진짜일 수 있어·’
그녀는 드러머라 종목이 다르긴 했지만 좋은 기타 연주가 무엇인지 알아듣는 귀는 있다· 그리고 그녀의 귀에 저 연주는 최소 수십년은 된 밴드의 명기타리스트들이나 선보일 수 있는 수준의 연주였다·
그런 연주는 보통 노력으로는 안 된다·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수십년은 노력해야 가능한 연주· 그런데 그것이 고등학생의 손 끝에서 나왔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1년을 쳤다고 해도 3년을 쳤다 해도 5년을 쳤다 해도 10년을 쳤다 해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그런 세월로 저런 연주는 불가능하니까· 평범한 재능을 가지고 세월만 날린다고 해서 될 레벨이 아니니까·
일반적인 상황 그녀보다 조금 잘 하는 수준의 연주였다면 유서하는 질투심에 불탔을 것이다· 왜냐하면 닿을 수 있는 수준이니까·
충분히 가능해보이니 질시하고 폄훼하며 그에 도달하고자 열의를 불태운다·
하지만 저런 수준이라면? 과연 질투를 불태울 수라도 있을 것인가?
젊음을 덧없이 낭비하며 삶을 살아가는 부유한 대학생을 질투하는 방구석 여포가 있을 수는 있다· 아니 꽤 많은 인간상이다· 자신이 능히 가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질투·
하지만 진심으로 이재용을 질투하는 사람이 있을까? 저 사람의 부가 나의 것이어야 했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많겠지만 그것은 질투라기보다는 어떤 사상에 의한 주장에 가까울 것이다·
그렇기에 서하는 질투하지 않았다·
대신 수연과 함께 승천하고자 했다·
그녀에 비하면 자신의 재능이 미약하긴 하나· 그래도 그녀라면 수연과 능히 함께 하며 음악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으리라·
‘어떻게 하면 골려줄 수 있을까···’
정작 명전의 생각은 전혀 달랐지만·
원래부터 밴드를 하려고 했었고 완전 만족스럽지는 않아도 현재 멤버 정도면 만족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밴드를 깰 생각은 없다·
자신보다 실력이 좋다는 키보드···현아의 말에 따르면 이 아이 덕분에 구성이 더 좋아질 게 분명하기도 하고·
하지만 그 전에 장난 한번쯤은 쳐도 될 것 같았다· 게다가 프로 지망생이라고 하니 가혹하게 굴려서 실력을 올려주는 게 본인에게도 더 좋을지도 모르고·
“그럼 일단 시작을 해 보죠· 드럼···서하 씨라고 하셨던가요·”
“네? 아 네·”
“드럼 들어가시고· 쉬는 시간 없이 일단 한시간 쳐 보죠· 중간에 안 맞고 그러면 제가 끊고 어떤 게 안 맞는지 지적 하고 들어갈 거고· 말이 좀 공격적일 수도 있는데 그 부분은 감안하시고·”
* * *
“드럼! 이번에도 안 맞잖아요·”
“드럼! 아니 지금 연주를 좀 맞춰가면서 해야 할 거 아니에요· 왜 혼자 갑니까?”
“아니···그 합주를 하자고요 합주를· 그냥 솔로 연주를 하는 게 아니라·”
“아니 저쪽이 못 따라오는···”
“당연히 저기는 못 따라오지! 저쪽은 초보들 아냐· 그럼 본인이 그걸 맞춰주면서 연주를 해야 하는데 왜 자꾸 혼자 튀어나가냐고· 나도 지금 맞추고 있는데 도대체 연주를 어떻게···”
하 미치겠네· 살짝 들리게 중얼거린 말에 흠칫하는 드럼· 명전은 고개를 젓고는 “잠시 쉽시다·”를 말하며 방을 빠져나갔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뒤를 쳐다보니 따라붙는 이서와 함께 얼굴이 살짝 질린 서하를 볼 수 있었다·
“수연아 너 왜 그래~! 아니 연주 괜찮게 하잖아···!”
“나도 알지·”
명전은 본능적으로 담배를 꺼내 물려 했다· 하지만 잡히지 않는 담배· 숨을 푹 내쉬고는 자판기에서 캔 커피를 꺼내들었다·
“일단 뭐···만약에 내가 실력이 별로였으면? 그럼 저 애는 우리 트집만 잡다가 집에 갔을걸· 그리고 우리는 저 애의 분풀이에 당해주다가 마음에 상처만 받고 집에 갔을 거고·
그리고 그런 걸 제외하더라도 자기 실력에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미리 꺾어놓는 게 좋아· 우리는 밴드 합주를 하는 거지 그냥 솔로 4명을 모아놓은 게 아니잖아· 당장 내가 너희들에게 연주를 맞춰주고 있는 이유가 뭐겠어?”
“그렇다고 해도···좀 불쌍해· 애초에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그렇게 대하는 것도 그렇고·”
그냥 넘어가자~ 하는 이서의 말· 명전은 머리를 살짝 꼬았다·
‘맞는 말이긴 하다·’
하는 행동만 봐도 그러려고 했던 것이 티가 나기는 하지만 그래서 실제로 그렇게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를 따져보면 하지 않았다고밖에 말할 수가 없다· 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니가 그렇게 음흉한 마음을 먹었으니 벌을 달게 받아라’ 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할 수 있긴 하다· 그러나 그게 뭐 천하의 대역죄가 아닌 한 이렇게까지 몰아세울 일은 또 아니기도 하고·
“뭐···그렇게 할까·”
“그래· 너무 그렇게 막~ 응? 그래도 언니 아냐? 1살 위· 막 그렇게 몰아세우면 저 사람도 나이도 많은데 동생한테 그렇게 당하는게 엄청 쪽팔릴 거 아냐·”
“애초에 동생한테 그런 식으로 구는 거 자체가 쪽팔린 거 아닌가?”
그 말에 빵 터져버린 이서· 명전은 캔커피를 원샷하고는 쓰레기통에 던졌다·
“뭐 여튼· 바로 끝낼 건 아니고 내가 생각하는게 있으니까·”
밴드든 어디든 명전은 사람 대하는 일을 수십년 쯤 했다· 저런 십대 아이쯤은 어떤 식으로 다뤄야 할지 한번에 알 수 있었다·
“걱정하지 말고· 내 생각대로라면 아마 다 잘 될 거야·”
* * *
“괜찮아?”
“···아니·”
서하는 고개를 푹 숙인 후 한숨을 쉬었다· 현아가 다시금 다가와서 괜찮냐고 물어보았지만 손을 저어 현아를 물리쳤다·
‘내가 어떻게 하려고 했는지 아는 건가?’
지은 죄가 있으니 당당하게 들어오지 못했던 서하· 그리고 맨 처음 마주한 기타의 눈빛은 상당히 차가웠다· ‘니가 감히?’ 라고 말하는 듯한 기세에 서하는 움츠러들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질책·
드럼이고 밴드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작정 그냥 훈수만 두는 거였다면 바로 반박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녀가 실수를 하는 대목마다 망설임 없이 들어와서 질책을 가한다· 내용이 틀린 것도 아니고 하는 말이 잘못된 것도 아니라 수긍할 수 밖에 없다·
쉬러 나간 사람들이 들어오고 다시 연주가 시작된다· 그리고 질책도 다시 시작된다·
똑바로 연주하라고 드럼이 지금 기둥을 세워주지 못하고 있으니 연주가 제대로 안 되고 있지 않느냐 하는 꾸짖음· 다른 사람의 실수를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다· 잘 하는 만큼 맞춰줄 줄 알아야 한다는 이상론과 그를 완벽하게 구현해내는 실력 앞에 서하는 논리적으로든 실력적으로든 완벽히 패배했다·
다시 한번 쉬러 나간 두명· 서하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았다가 힘없이 드럼 스틱을 떨어트렸다·
그녀를 이렇게까지 대한 사람은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다 유서하의 재능에 탄복했으므로·
그렇기에 서하는 질책을 받을 일이 없었다· 그녀에게 못 맞추는 사람이 있다면 천재적인 드러머에게 맞추지 못하는 사람의 잘못이다· 천재적인 드러머에게 잘못이 있다고? 그럼 니가 대신 드럼 구해올래?
구하기 어렵다는 드럼의 특성과 서하의 재능이 합쳐진 결과는 비대한 자아의 괴물을 만들었다·
그 결과 유서하는 본인의 재능은 하늘에 닿았으므로 아마추어 밴드 따위는 나를 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름 잘 하는 실력자들이 밴드에 들어오겠냐는 제의를 해도 전부 물리쳤다· 그녀의 성에 못 미쳤으므로·
그리고 오늘 그녀는 천생연분의 기타리스트를 만났다· 저 사람이라면 나와 밴드를 할 수 있다· 자신보다 어린 것 따위 상관없다· 나이가 무엇 중요하겠는가·
문제는 그 기타리스트가···난생 처음 경험해보는 강도로 그녀를 몰아세우고 있단 것이었지만·
유서하는 다시금 한숨을 푹 쉬었다· 그 눈빛· ‘네가 어떤 짓을 하려고 했는지 안다’ 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 그리고 질책·
‘저 사람은 내가 마음에 안 드는 거겠지·’
왠지 모르게 서하는 눈물이 핑 돌았다· 저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다· 저렇게 엄청난 실력을 가진 사람에게 인정받는다면 그리고 같이 밴드를 하자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다·
‘하지만 저 사람은 나를 인정해 줄 마음이 없는 것 같아···’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너를 인정할 마음이 전혀 없다는 눈빛·
‘못 하겠다고 해야겠어·’
보나마나 저 사람은 합주를 끝내고 서하를 쫒아낼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으면 저렇게 나를 몰아세울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 질책 다 받은 다음 너랑 못 하겠다고 일방적인 통보를 듣느니 욕 먹더라도 이쪽에서 끊어버리는 형태를 취하는 게 더 낫지·
서하는 드럼스틱을 의자에 둔 채 일어섰다· 핸드폰을 보고 있던 현아가 움찔했지만 서하는 신경쓰지 않았다· 밖에 쉬러 나간 애들한테 이야기를 하고 짐을 챙기고 집으로 가자· 왠지 울것 같지만···그래도 집에서 울자·
그렇게 연습실을 나와 밖으로 향했다· 그리고 나간 아이들을 찾으려는 와중에 두명이서 나누는 이야기가 들렸다·
“너무 그렇게 뭐라고 하지 마·”
“글쎄···”
살짝 높은 목소리와 낮게 침잠하는 목소리· 아까 들은 바로는 후자가 기타리스트 같았다· 서하는 저도 모르게 벽 뒤로 숨으며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실력이 마음에 안 드는 거야?”
“아니·”
그럼 왜?? 서하는 의문에 가득 찬 채로 뛰어나갈 뻔한 자신의 몸을 가까스로 통제했다·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실력이 저 정도면 남은 3명 중에서는 제일 잘 한다고 봐야지· 이서 너도 그렇고 현아 씨도 그렇고·”
“그런데 왜 그래? 드럼은 구하기도 힘들잖아· 자꾸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 저 사람이 나가버릴지도 모른다고·”
“그렇긴 하지·”
잠시 침묵이 이어지다 낮은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저 사람은 잘 해· 잘 하니까 문제야·”
“응?”
“잘 하는 사람은 잘 하는 만큼 배려가 필요해· 그냥 나 혼자 잘한다~ 이런 생각으로 독주를 해봐야 소용이 없어· 합이 안 맞는데 무슨 소용이야?”
역시 그런 건가· 서하는 고개를 축 늘어트렸다· 저 정도 수준의 사람이라면 나 정도로 잘하는 수준은 별 거 아니라는 건가···그런 생각을 하며 서하는 발을 내딛으려 했다·
그 이야기가 들려오기 전까지는·
“같이 하는 거라면 나도 저 사람이랑 같이 하고 싶지· 잘 하기도 하고 더 발전할 여지도 있어 보이고·”
“아니 그러면···”
뒷 이야기는 잘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들렸던 이야기는 ‘같이 하고 싶지·’ 라는 이야기· 그 목소리는 그녀의 머리 속을 맴돌다 연습실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 * *
“그러니까···”
“됐고 이제 들어가자·”
명전은 웃으며 다시 연습실로 향했다· 그런 수연의 모습에 이서는 쟤가 왜 저러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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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기를 보고 계신다면 제가 연참에 실패했다는 이야기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늘 내에 올라옵니다!! 확실합니다!!
기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