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61
“물론 이것은 당장은 불가능한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죠?”
고 팀장의 말에 약간의 실망을 담아 되묻는 혜인· 고경민은 그 말에 머리를 살짝 쓸어넘긴 다음 대답했다·
“일단 우리의 팬덤이 그만큼 성숙하지가 않았으니까요·”
음반을 많이 팔았다고 해서 콘서트에 사람이 많이 오는 것도 아니고 콘서트에 사람이 많이 온다 해서 음반이 많이 팔리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둘은 아예 다른 종류의 컨텐츠이므로·
2020년대의 음반은 굿즈 소장품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제는 CD 플레이어를 가진 사람보다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은 만큼 음반 자체는 더이상 실용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것이다· 포토카드 포스트카드 브로마이드 등의 부속품을 끼워주기 위한 도구로서 사용되는 것이 음반이다·
콘서트는 다르다· 콘서트는 일종의 경험을 파는 행위다· 몇시간 가량 되는 노래를 라이브로 들으며 순간의 해방감을 느끼는 그런 일· 사진이나 영상 기억으로는 남을 수 있으나 물질적인 것은 남지 않는다·
“두 컨텐츠는 소비형태도 다르고 소비층도 다릅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음반은 굶으면 살 수 있는 가격이에요· 하지만 콘서트를 굶어서 가려고 하면 죽을 겁니다· 아예 가격 자체가 차이가 나죠· 예를 들어서···”
고경민은 자료 한장을 흔들었다· Group Sound의 팬 연령대 분포를 알려주는 음반 판매사 자료·
“음반 판매량 자료를 보면 저희 팬층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 많은 것으로 나옵니다· 10대 초반도 좀 있구요· 매우 당연한 일입니다· [공중정원]이 히트한 방식은 SNS와 챌린지 문화를 통해서니까요· 당연히 그러한 포맷에 익숙한 연령대가 우리의 주된 팬층이 될 수 밖에 없죠· 하지만···”
“돈이 없는 연령대라는 거네요·”
“맞습니다·”
혜인의 말에 고 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10대와 20대· 한국의 취직 연령대가 점점 느려지고 있는 지금 10대와 20대의 금전적 역량은 그야말로 제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SNS에서는 명품이니 뭐니 자랑하고 골프니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이 요즘 시대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밥 사 먹을 돈 줄여가면서 주위에 과시를 하는 사람들은 흔하더라도 밥 사 먹을 돈 줄여가면서 콘서트를 가는 사람은 그다지 흔하지 않죠· SNS를 하는 것은 자기과시의 목적도 있는데 콘서트를 갔다고 해서 그게 자랑이 되는 게 아니니까·”
“음···”
혜인은 머리를 긁으며 고 팀장을 바라보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일리가 있는 말이긴 했다· B2B를 주로 하는 그녀로서는 좀 골치아픈 이야기였지만·
“그래서 단독 콘서트 투어는···아마 근시일 내에 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장기적 목표로서 계속 가져가야된다는 의미로 일단 넣어본 것이구요·”
왠지 모르게 자신을 살짝 노려보는 듯한 수연을 무시한 채로 고경민은 계속 말을 이었다·
“올해는 이제 정규 2집 혹은 싱글을 위한···그런 기반작업을 실시하면서 팬층을 다져나가는 것을 주요 목표로 잡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기반을 다지는 것이죠· 우리의 팬들이 10만원 넘는 콘서트 티켓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요·”
“10만원이요?”
이서는 의문을 담아 외쳤다· 하지만 그 목소리의 대답은 다른 쪽에서 나왔다·
“요즘에는 대부분 콘서트 가격이 그 정도 해요! 티어가 높다 비싸다 하는 콘서트의 경우에는 20만원도 가죠! 10만원은 정말 기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기본···이요?”
“네! 기본!”
“뭐 더 낮게 받을 수는 있죠· 저희들의 이익을 깎아서·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결국 금전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모인 집단입니다· 자선사업을 할 필요도 없고 할 이유도 없어요· 이미 대중의 합의는 콘서트 티켓에 10만원 이상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걸 더 싸게 한다고 해서 안 올 사람이 오고 그러지도 않을 거구요·”
“그렇긴 하죠· 애초에 5만원이든 10만원이든 ‘돈을 아낌없이 쓸 수 있는 사람들만 와라’ 하는 가격이니까요·”
서하의 대답에 고경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PPT를 넘겼다· 거기에는 앞으로 Group Sound가 수행할 여러가지 일들이 적혀 있었다· 방송 출연 소규모 라이브 락 페스티벌 참여 팬미팅 등·
“앞으로는 이제 다른 의미로 조금 바빠질 겁니다· 다들 최대한 노력해서 연내에 좋은 성과 거둘 수 있도록 합시다·”
경민은 그렇게 말을 맺었다·
* * *
그녀는 지하철에서 나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목적지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고 예정된 시간까지도 한참 남았음에도 불구하고···뭔가 긴장이 풀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생전 처음 겪는 느낌· 물론 생전 처음이라고 해 봐야 이십년도 안 되는 세월이지만·
그 긴장을 풀어준 것은 걸려온 전화였다· 친구의 이름이 떠 있는 스마트폰·
“왜·”
[“너 지금 들어가?”]
“아니 방금 도착했음· 왜?”
[“아니 니가 됐는데 나는 왜 안 돼? 이거 조작 아냐?”]
“응 아냐~ 야 그러게 착하게 살았어야지· 내가 전에 방청 티켓도 얻어줬으면 그만큼 착하게 살았어야 스택이 깎이는 거 아냐· 자꾸 침대 밖으로 안 나오고 사니까 그 꼴 난 거지·”
[“응~ 아가리~”]
“응 나는 팬미팅 왔어~ 니는 절대 못와~”
뚝 끊겨버린 전화· 그녀는 폰 화면을 보고 낄낄 웃고는 다시 걸음을 빨리했다· 미리미리 가 놔야 무료 굿즈 배포 같은 것도 받을 수 있는 법이니까·
Group Sound의 첫 팬미팅·
공식명칭은 Group Sound Premium이었지만 공모를 통해서 정해진 별명은 [도넛단]이었다· 왜 도넛단인가? 하면 [공중정원]에 나온 [원형도넛]이라는 가사가 나왔고 베이스이자 보컬인 ‘최이서’가 “원형도넛이요? 어···제가 좋아해서 그냥 그렇게 지었어요·”라고 말해서· 그냥 그렇게 되어버린 이름·
‘이전의 이름이 좋았는데·’
[종로구명예구민]이라는 뭔가 멋졌던 이름은 공식 팬클럽이 되면서 갈려버렸다· 이유는 ‘정부조례 등에 있는 공식명칭이므로 혼동을 야기할 수 있어서’라나 뭐래나·
뭐 아무튼 첫 팬미팅은 공식 팬클럽만 응모할 수 있는 추첨제로 진행되었다· 팬클럽 회비가 꽤나 비싼 느낌이라 좀 억울했던 참에 무료로 팬미팅을 보게 해준다니 약간 치료가 된 그녀였다· 게다가 팬클럽 1기들은 거의 다 당첨된 것 같은 팬미팅이라(물론 그녀의 친구는 당첨되지 못했다) 더 좋았다· 뭔가 사람들이랑 이제 같이 시작을 하는···그런 느낌이랄까·
“굿즈 받아가세요~”
팬미팅 장소에 도착하자 군데군데 놓여 있는 의자들· 그리고 입구 쪽에서 전에 한번 들어봤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전 EBS 방송 당시에 굿즈를 나눠줬던 사람· 회장이라고 했던가· 그 사람이 총천연색 도넛 캐릭터가 그려진 아크릴 키링을 니눠주고 있었다·
“네 받아가세요~ 아! 학생 전에 봤던 사람이구나·”
“네? 어 네···”
“팬미팅 재미있게 봐주세요~”
상대가 반갑게 건네는 인사에 그녀는 그저 머리를 긁적이고는 다시 자리로 향했다· 기분이 뭔가 이상한 느낌이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그룹 사운드의 리더 하수연입니다· 이렇게 뭐 팬미팅을 하게 되었는데· 굉장히 어색하네요· 누가 그러더라고요· 방송이나 인터뷰나 뭐 기타 등등···그런 곳에서 말할 때는 제대로 말하더니 무대에만 서면 말이 좀 이상해진다 두서없이 말한다· 뭐 그런 이야기가 있었는데···여러분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이런 게 다 기술입니다· 무슨 기술이냐고요? 지금 이제 여러분 앞에서 시간끌기를 하는 거죠· 컨텐츠가 준비되고 어쩌고···그런 걸 해야 하니까·”
너무나도 솔직한 수연의 말에 웃음이 이어진다· 그런 가운데 관중석 사이에서는 “다에요 한번만 부탁드립니다!”라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방금 그거 누구야· 다에요? 어···제가 정말 해드리고 싶은데 지금 시간이 다 되어가는 것 같아서요· 이제 슬슬 다음 차례로 넘어가야···왜· 어? 아직 한참 남았다고? 너 진짜 맞을래? 네 다음 차례가 지금 진행된다고 하니까· 음···아니 지금 MC로 최이서 양이 스스로 자원을 하신 것 같아요· 아쉽네요· 여러분들과 좀 이야기를 장시간 나누고 싶었는데···빨리 받아· 안 받으면 너 크로매틱 10시간 시킬 거야 내가· 네 그럼 최이서 양과 이야기 나누시구요 저는 좀 있다가 다시 뵙겠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최이서입니다! 오늘의 퀴즈! 자기 하기 싫은 거 하나 이야기 나왔다고 남한테 떠넘기고 가는 저런 무책임한 리더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1번! 탄핵한다! 2번! 가만히 둔다! 3번! 부끄러워하는 영상을 인터넷에 퍼트려서 마구마구 조리돌림···야! 아퍼! 그만! 여러분 얘 보세요! 얘가 이렇다니까!”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들어갔던 무대에서 뛰어나와 최이서를 마구마구 투닥투닥 때리는 하수연·
그 외에도 수많은 웃음 포인트가 있었다·
서로에게 마음의 편지를 읽어주는 코너·
“어 읽어볼게요· 수연아 오늘 이 코너를 빌어서 너에게 말할 것이 있어· 진지하게 말하는 거니까 좀 들어줬으면 좋겠다· 멤버 중에 옷을 정말 못 입는 사람이 있어· 누군지는 말을 안 하겠는데 화려한 무늬의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이야· 네가 최근에 입었던 옷이 그 사람의 영향을 받은 것 같은데 늦기 전에 빨리 뇌를 세탁해서 그런 영향을 받지 않도록···”
“얘 진짜 미쳤다니까요· 무슨 자기가 패셔니스타인줄 아나봐· 야 진짜 내가 내 입으로 나 잘 입는다 그렇게는 말은 안 하겠는데· 너는 그냥 지금 어디 메루카리(일본의 중고판매 사이트)에서 멘헤라 치면 나오는 거 그냥 무더기로 사다가 그거 돌려입는 그런 거 아니냐?”
멤버중에 제일 싫은 사람을 고르는 코너·
“왜 내가 3표인데?”
“그렇게···물어보는 거···양심 좀 없다고···생각하는데···”
“여러분 연수가 진짜 자각이 없어요· 언제 한번은 뭐더라? 우리 공중정원 녹음할 때· 막 택배가 큰게 들어오는거 보고 뭔지 궁금해했는데 그 간이침대 있잖아요· 그거 녹음실에 다 설치해놓고 합주 다 맞출때까지 회사에서 못 나간대· 저는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짜 안보내주더라고요? 그렇게 해 놓고 3표를 왜 받냐니 진짜 양심 없는 거 아닌가요?”
가벼운 게임과 토크· 팬들의 질문을 받아주는 코너· 팬들이 원하는 말을 멤버들이 해주는 코너 등·
“그럼 2부에서 뵙겠습니다! 잠시 쉬도록 할게요!”
‘아 너무 행복하다·’
2부는 사인과 악수· 그리고 멤버들의 공연· 그녀는 몸이 두둥실 뜨는 듯한 기분을 받으며 2부를 기다렸다· 정말 기분이 좋았다·
* * *
“어 죽겠다· 말을 너무 많이 했네· 야 거기 물좀 줘·”
“너는 손이 없니 발이 없니···”
그렇게 중얼거리며 물을 던져주는 서하· 그는 잠시 이죽거리고는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팬미팅·
그도 젊었을 적에는 이 정도의 규모는 아니지만···그래도 팬들을 모아놓고 뭔가를 한 적은 있었다· 예컨데 호프집에서 이삼십명 모여서 같이 술 먹고 기타도 보여주고 그런 거· 공짜 술이라길래 나간 적도 있고 그가 적적해서 한두번씩 사람들을 모았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시절의 감각과 지금의 감각은 전혀 달랐다·
어째서인지는 모른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살아왔던 세월이 달라서일지도 마주한 사람들이 달라서일지도 혹은 뭐···아무튼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
결론은 지금이 더 즐겁다는 것이었다· 그 시절에는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고 아무튼 유흥이란 유흥은 다 했는데도 그렇다· 지금이 더 즐거웠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게·
“재밌긴 하다 그치?”
그 말에 그는 고개를 들었다· 이서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긴 하네·”
“그 직원분한테는 좀 미안하긴 한데 아무튼 그 대본대로 했으면 별로 재미없었을거라니까· 약간 좀 어···우리한테 안 맞는 거라고 해야 하나 뭐라 해야 하나·”
“약간···팬픽같은 느낌도···”
맞어맞어· 현아의 말에 맞장구를 치는 이서를 둔 채로 그는 머리를 살짝 꼬았다· 아무튼 2부는 공연인가· 스탠드에 걸려 있는 재즈마스터가 아닌 하드케이스에 넣어 온 스트라토캐스터를 꺼내든다· 요즘은 그다지 공연에서 사용하지 않았던 블랙 스트랫·
‘한번 진심으로 쳐 볼까···’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튜닝을 손보았다· 많이는 틀어져 있지 않은 튠· 튜너를 봐 가며 아주 조금씩 헤드머신을 움직이는 사이 테이블 위에서 웅- 하고 핸드폰이 울렸다·
“야 누가 그거 좀 나 줘·”
핸드폰을 가져다주는 현아· 그는 전화를 받은 다음 전화를 어께에 끼고 말했다·
“네 하수연입니다·”
[“여보세요? 아 수연 학생!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나요?”]
“아 아 네···근데 혹시 어떤 분이십니까· 제가 연락처를 저장을 안 해 놔서요·”
[“어! 어? 아~ 내가 그때 연락처를 안 줬던가? 철연이가 안 줬었나? 저 김지연이에요·”]
그는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뒤졌다· 김지연이면···[김지연의 음악편지]의 김지연인가· 테일러드 김철연이랑 출연했던 그 심야 음악 프로·
“아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근데 혹시 어떤 일로···제가 팬미팅 중이라서요·”
[“아 그래요? 그럼 바로 본론부터 이야기할게· 우리 프로 출연할 생각 있어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여러분!!! 마작인방에서도 팬아트를 그려주셨던 대화백 ‘그그잘’님의 현란하고 찬란하고 위엄있고 예술적이고 미려하고 장엄하고 기타 등등한 팬아트가!! 노벨피아 팬아트 탭 및 제 소설 일러스트 공지에 탑재되어 있사오니!! 부디 한번 봐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