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62
“음···출연할 생각은 당연히 있긴 한데 저희 회사랑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은데요·”
[“회사랑 이야기 해야 돼요? 인디 아니었나?”]
“어 저희는 그래도 좀 그런 걸 관리해서요·”
[“좋은 곳인 것 같네· 아무튼 출연한다는 거죠?”]
“어 네···음 잠시만요·”
그는 잠시 튜닝하던 기타를 내려놓고는 아이들에게 “김지연의 음악편지 나갈 생각 있냐?”라고 물어보았다· 고개를 격렬하게 끄덕이는 아이들· 그는 다시 전화를 잡고 말했다·
“저희는 긍정적이긴 합니다· 회사 입장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회사랑 사이 안 좋아요? 왜 자꾸 회사 이야기를 해·”]
“저희 어머니 회사라서요·”
[“···음 그럴 만 하네·”]
잠시 말을 멈췄던 지연은 그렇게 내뱉었다· 살짝 미묘해진 전화 통화· 그렇게 약 몇초간 지속되던 침묵은 지연의 이야기에 끊겼다·
[“아무튼 그럼 일단···어머님이라고 해도 거절할 이유는 없으시겠지· 나도 피디한테 이야기를 해 볼게요· 우리 쪽도 피디랑 이야기가 된 게 아니니까 이야기가 픽스되면 우리 섭외 쪽에서 연락이 갈 거에요·”]
“네 알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통화가 끝나자 아이들이 그에게로 몰려들었다· “그 밤에 하는 그거?” “지상파 아닌가?” 같은 이야기들· 그는 그런 이야기에 적당히 답해주며 생각했다· 뉴미디어가 점령한 시대 같지만 아직도 레거시 미디어의 힘이 강력하긴 하다고· 지금 이 상황만 봐도 그랬다· 어찌되었든 TV에 나온다고 좋아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나 그거 한번도 본 적 없는데· TV를 안 봐가지고·”
“TV를···아예 안 본다고?”
“요즘 누가 TV를 봐· 우리 엄마아빠나 보지· TV에는 진짜 무슨 트로트랑 아이돌밖에 안 나온다니까· 나이든 사람 전용임·”
나이든 사람 전용· 그냥 평범한 이야기지만 왜 그 말이 그에게는 비수처럼 박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째서일까· 오늘도 그는 이서의 무심한 말에 상처를 받았다· 아니 무심한 말이 아니라 의도적인 이야기일지도···
* * *
[공중정원]이 끝난 후·
아윤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아직도 옆의 누군가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그저 떠 있기만 한···”을 되뇌이며 노래의 여운에 빠져 있었다· 그럴 만 했다· 그녀도 그랬으니까·
관객 한명 한명과 눈을 마주치는 것이 가능해보이는 작은 규모의 홀· 들어온 음향과 무대 장비는 EBS Amplifier Now때와 맞먹는···아니 그보다 더 한 것 같아보이기도 하는 그런 세팅이었다· 팬미팅으로 인해 적자를 보는 것이 아닌가 싶을 수준·
게다가 팬심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던 1부까지 포함하면···이런 환경에서 펼쳐진 무대가 나쁠 가능성은 단 1%도 없었다· 모두가 다 소리를 지르고 떼창을 하고 난리가 난 상황·
“분위기가 너무 과열된 것 같기도 합니다· 누가 좀 실려가지 않을까 생각도 드는데요·”
다들 흥분한 가운데 끼얹어지는 수연의 차가운 말· 마치 불 속에 폭죽이라도 던진 듯 아니에요!! 더 해주세요!! 라는 말이 관객속에서 튀어나왔다·
“오늘은 콘서트를 온 게 아니라 팬미팅을 온 거니까···흥분은 다소 가라앉히시구요· 앞으로도 차례가 좀 많이 남았으니까요· 그리고 아무래도 저희 곡을 계속 하다 보니까 여러분들께서 호응이나 반응을 하실 수 밖에 없는 그런 것 같은데···일단 분위기 전환 용으로 좋은 곡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수연은 옆쪽에 놓여진 기타 스탠드로 걸어가 하나를 집어들었다· 똑같은 검은 색이긴 하지만 이제까지 수연이 쓰던 것과는 다른 모양의 기타· Group Sound 결성 이후로부터 계속 사용해왔던 아윤에게는 매우 익숙한 기타·
“저거···는 뭐에요?”
아는 눈치인 걸 알아본 것인지 옆 자리에 앉은 사람이 아윤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녀가 “아 저건···” 이라고 설명을 해주려는 순간 갑자기 곡이 시작된다· 이제까지는 완전히 다른 헬리콥터가 날아오는 소리와 함께·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은 때에 저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딜레이를 먹인 기타 소리· 그리고 그루비한 베이스 라인· 아윤은 순간 미발표곡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건 우리 애들이 쓰는 스타일의 곡은 아닌데···’
단정지을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때 수연이 마이크에 대고 외친 곡명은·
“Another brick in the Wall!”
We don’t need no education
We don’t need no thought control
No dark sarcasm in the classroom
Teacher leave them kids alone
수연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 들어보는 제목과 가사· 중독성 있는 베이스와 적당한 스트로크· 아윤은 단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곡이었고 팬미팅에 참여한 다른 사람들도 그런 듯 보였다·
하지만 그루브한 리듬에서 비롯되는 디스코풍의 라인은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조차도 리듬을 타게 만들기 충분했다·
All in all it’s just
another brick in the wall
All in all you’re just
another brick in the wall
4명의 합창과 함께 아주 짤막하게 끝날 것 같은 분위기의 곡· 하지만 살짝 아쉬움을 느끼던 아윤의 마음을 읽었는지 아니면 원래 그런 것인지···몇초의 공백 동안 드럼만 울리던 무대 위로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한 점· 수연에게로 집중된다·
“와아아아!”
다시 시작되는 무대· 뭔가 보여줄 것만 같은 분위기에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거기에 대답하는 듯 시작된 연주는 꽤나 경쾌했다· 수연이 많이 사용하는 울부짖는 듯한 느낌이 아닌···라인을 그대로 살려서 들어온 마치 춤을 추는 듯한 느낌의 솔로· 리듬을 타며 연주를 하는 세 사람 사이로 스포트라이트를 오롯히 혼자 받으며 기타를 튕기고 있는 수연·
‘평소랑 조금 다른 것 같은데···’
아윤은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가늘게 뜨고 수연을 바라보았다· 진지한 표정 떨군 고개· 기타도 지면도 쳐다보지 않고 그 사이의 어딘가를 멍하니 바라보는 눈· 모든 것이 다 똑같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데도 뭔가 위화감이 들었다·
‘아 저게···’
그렇게 주의깊게 수연을 바라보던 아윤은 이내 다른 점을 발견했다· 발 뒤꿈치· 전체적인 몸의 리듬· 미동없이 기계처럼 기타를 연주하던 이전과는 다르게 최소한 지금의 수연은 발을 살짝식 구르고 몸을 움직이며 리듬을 타고 있었다·
어떤 심정의 변화가 있을지는 모른다· 음악을 즐기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오늘만 그런 것인지·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며 쳐다본 수연의 얼굴에는 살짝 미소가 걸려 있는 것 같아서···아윤은 기분이 좋았다· 그녀가 좋아하는 사람이 약간 더 행복해진 것을 보았기 때문에·
* * *
“그건 좀 힘들 것 같은데·”
“···뭐?”
Group Sound의 섭외 건 관련으로 프로그램 PD를 찾아간 지연· 그러나 그녀가 들은 것은 전혀 예상 밖의 이야기였다· 뻔히 빈 자리인 것을 아는데도 힘들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는 PD·
“야 왜 안 되는데· 왜 안돼! 너 니가 좋아하는 애들 꽂을라고 그러지!”
“아 누나! 좀 진정 좀 해 봐요·”
멱살을 잡고 흔드는 김지연을 떼어낸 피디는 잠시 옷매무새를 바로잡고 입을 열었다·
“그 자리가 빈 건 맞긴 한데·”
“맞긴 한데?”
말 똑바로 하라며 눈을 부라리는 지연· 하지만 피디는 말을 철회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한두번 있는 일이 아니었으므로·
“일단 걔네 급이 안 돼요 그 자리엔·”
“그게 뭔 소리야? 그런 게 어딨어?”
“누나 우리 현실을 봅시다· 나도 걔들 좋아해· Group Sound? 내 아들래미가 걔들 팬이거든? 얼마전에 앨범도 샀더라· 그런데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아니 그러니까 왜 안 되는건데·”
그 말에 피디는 한숨을 쉬고는 책꽂이를 뒤적거려 서류를 꺼내 지연에게 보여주었다· 날짜별로 출연자 리스트가 정리되어 있는 자료·
지연은 자신이 원하던 날짜를 찾아 같이 출연하는 멤버의 리스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피디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알아들었다·
“빈 자리가 있는 건 맞는데 얘들 봐요· 얘네는 1군급 아이돌· 얘는 탑급 래퍼· 얘는 국내 최정상급 싱어송라이터· 이 자리에 신인 밴드 애들을 끼워넣는다고? 할 짓이 못 돼·”
“아니 그래도 못 넣을 건 없지 않나?”
“누나· 현실을 봐야 된다니까· 걔들 공연이야 제대로 하고 녹화야 제대로 찍히겠지· 그런데 이쪽 기획사도 그렇고 분량적으로도 얘네를 생략을 할 수 밖에 없다니까? 내가 안 그러고 싶어도 그쪽에서 푸시도 오고 심지어 얘는 몇년만에 방송 출연하는 건데· 그 밴드 애들이 나오면 오히려 불쌍해지는 거라니까· 분량을 못 받을 거 아니에요·”
“야 네가 그 분량 편집 좀 제대로 하면···”
머리를 긁적거리는 피디· 지연은 생각했다· 이 애가 누구를 밀어준다거나 뒷돈을 받고 편집을 한다거나 그런 타입의 인간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윗선의 압박을 거절하는 타입의 인간도 아니다· 무엇보다 자기 자리와 시청률을 우선하는 평범한 타입의 피디·
“뭐 레전드급 무대 찍으면 그 쪽으로 돌릴 수는 있긴 하겠지· 그런데 지상파잖아요· 그리고 확률적으로 따지면 이 세명이 무대를 찢어놓을 확률이 더 높을 걸· 얘네 다 라이브도 잘하잖아· 안 그래도 어디 스포츠인지 어떤 기자 새끼는 아직 이거 자료 나가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드림매치인가 뭔가 하면서 야부리를 존나게 털고 있더만·”
“흐···”
그녀도 이해할만 했다· 지금에야 어느정도 지위에 올라 어느 곳에 가든 존중을 받는 가수가 되었지만 옛날에는 그녀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다른 출연진에 밀리고 눌려서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적도 많았다· 아마 이 녀석은 그걸 걱정하는 거겠지·
“그러니까 뭐 다른 날로 미루자고 해요· 출연 약속 했다며? 내가 출연은 시켜줄테니까 어···어디보자· 좀 많이 뒤긴 한데 이 쯤으로 하고· 날짜 빈 날 생기면 땡겨준다고 하고· 그쪽에서도 이렇게 막 박터지는 날에 출연해가지고 찡기고 이러는 거 별로 안 원할 것 같은데· 아니에요?”
“뭐 그럴 것 같긴 하다·”
결국 지연은 납득했다· 후배를 챙겨주는 것도 챙겨주는 거지만 벌써부터 새싹이 짓밟히고 그러면 안 되지 않겠는가· 잘 자라도록 보호를 해 줘야 하는 것이지 화분 채로 바깥에 집어던지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하는 법이니까·
* * *
[“그래서 뭐 좀 힘들 것 같긴 하네·”]
“···그러면 그 날은 계속 빈 날이 되는 겁니까? 출연자 없이?”
[“그건 안 물어보긴 했는데 아마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사실 걔들만 출연해도 상관없긴 하거든· 아무튼 뭐···관련해서 무슨 일 생기면 전화 한번 줘요· 일정 픽스는 내가 정해지는 대로 바로 다시 연락 줄게·”]
“네 알겠습니다·”
[“아이고 미안하네 내가· 이렇게 뭐 잡아준다고 말은 했는데···뭐 그렇게 되어버려가지고· 어쩔 수 있나·”]
“아뇨 괜찮습니다·”
의례적인 인삿말 이후 전화가 끊겼다· 그는 잠시 검은 화면이 뜬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그러는 사이 혜인의 말이 들려왔다·
“그 출연 안 되겠대?”
“그런 것 같아요· 뭐 출연자들이 너무 쟁쟁해서 같이 출연시키기가 좀 그렇다던가···”
“그러니? 뭐 그쪽에서 그렇게 말한다면 그런 거겠지· 다른 날로 잡아준다며?”
“네· 그렇게 말하긴 했는데···”
그는 계속해서 꺼진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뭔가 마음이 좀 불편했다· 아니 불편하다기보다는 음···뭔가 알 수 없는 감정· 최근에는 느기지 못했던 그런···열이 받는다고 해야 하나· 답답하고 짜증나는···
‘호승심인가·’
그는 한숨을 쉬고 자기자신의 상태를 되돌아보았다· 그게 맞는 것 같았다· 호승심· 1군급 아이돌? 탑급 래퍼? 최정상 싱어송라이터? 같이 출연하는 것 좋다· 아무래도 시청자들이 보길 원하는 건 Group Sound보다는 그 쪽이겠지· 일리가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일리가 있다고 해서 납득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아니 만약 그에게 선택지를 줬다면 오히려 납득을 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Group Sound에게 필요한 건 방송 분량이며 홍보니까· 괜히 끼어들어가서 치고박고 싸울 필요도 없으니까·
‘그런데 그걸 왜 니들이 멋대로 결정하느냐·’
이렇게 되어버렸다 한들 그는 한때···아니 죽기 직전까지도 한국 최정상의 기타리스트였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그의 입으로 한번도 꺼내놓은 적이 없는 이야기지만 테크닉만 보자면 전세계를 이야기해야 할 정도였다· 그런데 한낱 한국의 심야 음악 프로그램의 출연자도 못 이긴다고 생각하다니· 그것도 자신의 의사는 묻지도 않고 피디가 그걸 결정해?
예전이라면 수긍했으리라· 그 시절에는 결국 ‘음악’은 할 수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그는 머리를 쓸어넘긴 후 전화를 집어들었다· 뚜루루 하는 신호음이 그의 귀에 들려오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1· 삽입곡
Pink Floyd – Another Brick in the Wall (P·U·L·S·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