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68
“글쎄 좀 힘들지 않을까·”
그 제안에 그는 일단 거부의 의사부터 밝혔다· 놀랐는지 밴드 멤버들이 그를 쳐다보고 특히 현아는 입을 열기까지 했다·
“왜···왜요?”
“왜냐니· 우리는 이제 프로고 회사에 소속되어 있으니까· 우리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고 그렇게 해도 안 되는 거고· 예를 들어 현아 네가 학교에서 공연을 한다 그러면 개인적으로 그냥 하는 공연이 되겠지만 우리 밴드 멤버 전체가 나가게 되면 문제가 되지 않을까·”
이번 케이스는 일반적인 버스킹 무료 공연과는 조금 다른 성격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한 것들은 그들이 최초에 홍보목적으로 설계를 해서 한 공연이지만 이번은 그냥 ‘죄송한데 무료로 행사 한번만 뛰어주세요’ 라고 하는 것 아닌가· 성격이 완전 다른 셈이다·
“그래도 괜찮은 것 같은데·”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독단적으로 회사랑 아무런 상의도 없이 공연을 할 수는 없어· 만약에 뭐 예를 들어 세션의 댓가로 우리가 공연을 해 준다 그런 거라면 모를까· 많이는 안 나갔지만 그래도 세션비는 꼬박꼬박 나갔잖아?”
그 말에 수긍하는 현아의 친구들· 하지만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 기회를 활용할 방법을 좀 찾아보고자 했다·
‘대학 축제만큼 돈이 되는 것도 없긴 하지·’
콘서트와 페스티벌과는 비교가 될 수 없는 노동강도· 3~4곡만 부르는 게 일반적이요 7~10곡 정도 불러주면 엄청난 ‘혜자’ 라고 불리는 것이 대학축제· 그 시장에 진입할수만 있다면 요즘 유행하는 말로 ‘돈을 복사하는’ 게 가능한 시장이다·
그렇기에 그는 이 기회를 계속 가져가고 싶었다· 잘 살리면 꽤나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서·
* * *
“확실히 좋은 기회긴 합니다·”
다른 사람은 따로 참석하지 않은 비정기 회의· 그의 말을 들은 고경민 팀장은 턱을 쓰다듬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대학 축제가 대목인 것도 맞고! 대학···특히 음악대학에서 ‘음대생들을 뛰어넘는 실력을 보여주는 미성년자들’이라는 그림을 보여주는 건 인터넷에서 충분히 이슈몰이를 할 수 있는 사안이긴 하죠!”
“그런데 우리가 무작정 좋은 기회라고 해서 달려들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게 문제인 거겠죠· 저쪽에서 공식적으로 초청을 한 것도 아닌데 우리가 무대에 서는 거라면 무대 세팅은? 다른 비용적인 부분은?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값어치를 깎는 것이 좋은 행동인가? 뭐 그런 일들이 있으니까요·”
그 말을 들으며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막연히 거부감이 들었던 것이 조금 구체화가 되어가는 느낌· 여러 부분에서 손해를 볼 수 있는 그런 문제·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대학 축제에 출연을 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출연을 통해서 실제 대학 축제의 수요층에 ‘그 밴드 다른 대학 축제 나왔는데 엄청 좋더라’ 라는 이야기가 나갈 수 있다면···분명 상당한 수익을 올릴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맛보기로 공연을 보여주면 나중에 얘들이 콘서트에 오는 효과도 있지 않을까·’
그는 그렇게 생각을 하며 다른 둘을 바라보았다· 서로 몇마디 이야기를 나누더니 이윽고 입을 여는 고경민·
“수연 학생 말처럼 이것저것 다른 것들을 따져본다 할지라도···이게 좋은 기회인 것은 확실합니다· 그럼 이제 저희의 차례인 거죠·”
“여러분 차례라고요?”
“네· 이런 일이 있을때마다 손만 놓고 가만히 여러분들 특히 수연 학생이 해결책을 가져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너무 양심이 없는 일이니까요· 이번 문제는 제 쪽에서 학교와 이야기를 한번 해 볼 테니까 밴드 여러분들은 음악에 집중을 하고 계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 고경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정유영· 그는 몇마디 입을 열까 하다가 그대로 관두었다· 그렇게 생각을 하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본인들이 뭔가 해보겠다고 하니까· 굳이 거기에 있어 그가 끼어들 이유는 없겠지· 이것저것 하느라 바쁘기도 하고·
* * *
이제는 꽤나 공고해진 Group Sound의 팬덤 [도넛단]·
그런 도넛단들 사이에서 며칠 전부터 돌고 있는···꽤나 신빙성이 있지만 믿기 힘들고 검증되지 않은 소문이 있었다·
“내가 친구한테 들었는데 이번에 그룹 사운드인가? 하는 걔들이 우리 대학교 축제에 나온다던데? 친구의 친구가 학생회에 있는데 그 학생회 애들이 막 그걸로 이야기하는 거 들었다더라·”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거 친구의 친구가 한 이야긴데’라는 말의 무게란 ‘이거 그냥 거짓말인데’ 혹은 ‘그냥 해보는 이야기인데’ 와 같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즉 아무런 신빙성이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Group Sound의 팬들은 그들의 ‘덕질 대상’이 연관되어있다는 이유만으로 이성을 잃고 계속해서 정보를 찾아다녔다· 그 대학에 다니는 재학생의 SNS를 염탐하고 하루에 한번씩 서치를 돌리고· 그런 수많은 노력의 결과 끝에 그들이 얻어낸 결론은···
[진짜 축제에 오는 거 맞는 것 같음]
‘친구의 친구의 친구가 거기 학생인데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가 그룹 사운드의 키보디스트 ‘현아’랑 친한 사이라더라· 그런데 이번에 언플러그드 음반 관련해서 녹음한다고 막 같이 이것저것 하다가···얼마전에 어쩌고 저쩌고 해서 출연 결정 된 모양이다’ 라는 사돈의 팔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
믿지 못할 이야기를 누군가는 열렬히 믿었고 누군가는 그 이야기를 믿는 자신을 입증하기 위해 그 날 모든 일정을 캔슬하기까지 했다· 누가 더 믿음이 신실한가에 대한 치킨 레이스· 그날 공연이 없다면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한강에 가야 할 정도의 무모함·
그리고 그런 ‘믿음이 신실한’ 사람들에게 내려진 복은 바로 대학교의 축제 포스터였다· Group Sound의 이름이 선명하게 찍힌·
‘시험 좆까·’
시험은 매 학기에 4번 있지만 Group Sound의 ‘첫 대학교 공연’은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게다가 거의 첫 오프라인 행사이자 그녀의 친구의 언니의 친구가 알려준 말에 의하면 ‘김지연의 음악편지’에서 했던 것과 같이 언플러그드 공연이라고 한다· 이런 것을 어떻게 놓칠 수 있겠는가?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발을 성큼성큼 내딛었다· 첫 대학교 방문· 엄마가 “동기부여 하러 대학교도 좀 가보고 그래라!” 라고 했을때도 안 간 대학교인데 이렇게 온 것이 조금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그런데 뭔가 좀 좁네·’
캠퍼스가 몇개로 나뉜 대학이라고 했던가· 그래서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발을 계속해서 옮겼다· 이리저리 너질러지듯이 있는 부스를 지나 강의를 들으러 다니는 듯한 사람들을 지나친다· 악기니 화구통이니 등을 메고 있는 사람도 꽤나 있는 것이 확실히 예대 느낌이 났다·
[혹시 오늘 우리 애들 축제 공연 오시는 분들 있나요? 굿즈 배포하려고 하는데 어디가 좋을까요?]
공연이 열릴 예정인 듯 열심히 설치되고 있는 무대· 그 근처 나무 밑 벤치에 자리를 잡은 그녀는 트위터를 보고 답신을 보냈다·
[저 지금 근처에 있어요]
[굿즈 배포할만한 장소가 있을까요?]
[여기는 안 되고 이쯤 가면···]
그렇게 팬클럽 회장에게 답을 해 준 후 그녀는 잠시 앉아 핸드폰을 보았다· 할 일 없이 이상한 이야기나 하면서 떠들고 있는 커뮤니티를 지나 오늘의 축제 라인업을 들여다본다·
‘야 이 정도면 우리 밴드도 엄청 무게감 있다는 거 아닌가?’
Group Sound를 제외하면 모두 다 이름을 들어본 아니 음악까지 들어본 사람들· 그런 연예인들 사이에 Group Sound가 끼여 있으니 그녀 자신의 어깨도 으쓱해지는 기분·
“왔냐?”
“야 니 언제왔는데· 자리 이리 잡을라면 존나 빨리온 거 아님?”
“나 한 한시간쯤 전에· 너 진짜 나한테 뭐 줘야 된다니까· 이렇게 친구 자리까지 잡아주는 사람이 어딨냐?”
미리 맡아둔 자리에 앉는 친구· 그녀의 말에 친구는 대꾸조차 하지 않으며 뭔가를 건넸다· Group Sound의 못 보던 굿즈·
“아까 회장님이 이거 배포하더라· 니 안받았을 거 같아서 가져왔음·”
“···오오오~ 좀 놀 줄 아는 놈인가?”
“틀니냐? 그런 말 쓰게?”
그녀는 공연히 과장된 몸짓을 취하며 그 굿즈를 받아들었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 그렇게 굿즈를 잠시 살펴보다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무대위에 오른 첫 타자는 남자 아이돌이었다· 환호성을 지르는 관객들·
“얘들 알아?”
“예전엔 노래 좀 들었는데···훗 이제 나는 ‘진짜’ 노래라는 걸 좋아한달까? 이런 ‘가짜’ 노래는 이제 나한테 안 먹히지·”
“밴드충 다 됐네·”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잠잠히 아이돌의 공연을 바라본다· 농담조로 말하긴 했지만 확실히 그랬다· 예전에는 분명 자신도 옆의 사람들처럼 귀가 터져라 비명을 지르고 좋아했을 것 같은 잘생긴 남자 아이돌인데· 이제는 왜 심드렁해진 걸까·
그에 대한 대답은 이후에 찾을 수 있었다· 몇명의 차례가 지난 다음 여러가지 세팅을 하기 시작한 무대· 악기들이 차곡차곡 놓이는 무대 위로 올라온 MC가 입을 열었다·
“마지막 무대! ···는 아닙니다만 오늘의 반쯤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무대! 이 대학에 다니시는 재학생분들이 올라오는 바로 그 무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네~!” 라는 대답이 이어진다· MC는 이리저리 관객들과 말을 주고 받았다·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느냐 재학생들이 무대에 오를 정도니 정말 대단하다 등등· 그런 가운데 녹음 및 녹화라도 하려는 등 다른 세팅도 차곡차곡 준비되는 모습이 보이고·
“네! 그럼 이제 준비가 끝났으니 맞아주세요! Group Sound입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께 등장한 사람들은 그녀가 수많은 시간을 버려가며 이곳에 온 이유· Group Sound였다·
“반갑습니다· 저희가 데뷔한지 얼마 안 됐는데 이렇게 알아보시는 분들이 많을 줄은 몰랐습니다· ‘김지연의 음악편지’ 보신 분 계십니까? 그걸로 저희를 아셨다면 혹시 손 좀 들어주십시오· 아 네 많이 계시는군요· 반갑습니다· 저희가 그 방송으로 많이 뜨긴 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장황한 인삿말을 늘어놓는 수연· 그녀는 그런 농담에도 히히덕거리며 주위를 슬쩍 둘러보았다· 아까와는 다르게 분명 대학생이 아닐 연령대 사람들의 비율이 높아진 것 같은 기분·
“이번 무대는 이 위대한 ···대학 재학생 여러분· 여기 계신 키보디스트 분도 여기 대학 재학중이신데요 1학년으로·” 그 순간 함성을 터트리는 관객들· “우리 위대한 키보디스트 ‘정현아’ 선생님과 친구분들과 함께 준비한 언플러그드 공연입니다· 정말 솔직하게 말해서 진짜 오랜 시간 준비했으니까···재미있게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괜찮을까?’
언플러그드 공연을 위해 몇명의 사람들이 더 입장한다· 거기에 환호를 보내는 관객들· 그녀는 박수를 치며 생각했다· 들은 바가 있긴 했고 그녀는 기대감이 크긴 했다· 한정 공연이라니 팬으로서는 절대 놓치지 못할 기회니까· 하지만 축제의 열기와 어울릴지는 좀 의문이기도 했다· ‘음악편지’에서 들려주었던 것은 조금 차분한 분위기였는데·
“들어주세요 [공중정원]·”
어둑어둑해진 조명· 명암이 확실하게 나뉜 무대· 그림자로 인해 가려진 멤버들의 얼굴· 사람들은 불안해하면서도 가장 익숙한 곡으로 시작해서 그런지 일단 환호를 보낸다· 그녀는 우려섞인 심정으로 무대를 보았다·
그리고 놀랐다·
‘이건 전에 ‘음악편지’에서 했던 거랑 완전히 다른 느낌···아닌가?’
울리기 시작한 음악은 이전의 무대와는 달리···훨씬 더 쾌활한 느낌의 무언가·
느지막히 일어나 창밖을 보면
저멀리 하늘에 뭔가 떠 있네
아무리 쳐다봐도 알 수가 없는
종이학 원형도넛 그리고 공중정원
원곡과는 전혀 다른 훨씬 빨라진 템포· 베이스와 드럼이 전면에 나서고 무대 뒤에 자리한 사람들이 현악기를 울리기 시작한다· 마치 작은 오케스트라를 보는 듯· 아니면 흥청망청 취한 밴드가 연주하는 신나는 재즈 음악을 듣는 듯·
길을 나선 오늘의 날씨는
황금과 번개를 동반한
구름입니다
맑은지 흐린지 모르는 채
지도만 보고서 터벅터벅
바뀐 것은 음악 뿐만이 아니다· 무대 위의 분위기도 그러했다· 그림자가 드리운 무대 위에서 베이스 최이서는 반쯤 춤을 추듯 세트장을 거닌다·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학생들도 마찬가지로 리듬을 타듯 몸을 움직이며 악기를 연주한다· 그리고 제일 극적인 변화는 수연에게 있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그저 떠 있기만 한
공중정원에 나는 끝없이 올라만 가
너를 향한 내 마음도
흘러가는 세월도
전부 모래 위에 휘청이며 넘어질테니
항상 가만히 무표정으로 기타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하던 수연· 하지만 오늘의 분위기는 다르다· 분명 미소가 어려있을 것 같은 그림자 진 얼굴 밑으로 끊임없이 박수를 치거나 발을 구르거나 하는 몸· 어색하지만 뭔가 귀여운 몸짓은 덤·
그 분위기는 금새 관객들에게 스며든다· 평소에 볼 수 없던 연예인에 환호하던 열광에 젖었던 아까 전의 공연과는 다르다· 의자에 앉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일어서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발을 구르거나 고개를 까딱인다·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음악·
그런 음악이 무대에 자리잡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죔죔 님 2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제가 후원인사가 늦었습니다!! 여행 중에 확인했던 거라서 깜빡하고 말았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런데 후원 시에 무조건 멘트를 선택하게끔 하지 않나요? 어떻게 무언으로 후원을 보내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아무튼 제가 텔레파시를 통해 죔죔님이 하고 싶으신 말을 읽어 보자면···23일날에는 맛있는 저녁을 드시고 잘 주무셨을 것 같습니다! 아닌가요? 아니면 죄송합니다!!
혹시라도 저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후원 공지 댓글을 이용해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