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70
“아니 다들 스케줄 없는 거 아는데 왜 이렇게들 다 거절하는 건지 모르겠네·”
프로그램 회의실· 임종훈 PD는 팔짱을 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조용한 회의실 내에서 그의 말만 떠다닌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다들 섭외 한 사람 없어? 이거 뭐···야 김성진· 너 그 뭐냐 친한 사람 있다면서? 그 쪽 사람이랑은 연락 됐어?”
“어···그쪽도 거절을 해가지고요·”
“야이씨···니가 데려올 수 있다며! 돌겠네 진짜·”
종훈은 머리를 싸맸다· 평소에 다른 프로그램 제작한다고 하면 수도 없이 기획사에서 자기 애들 좀 넣어달라고 이야기 들려오고 이러는 게 보통인데· 왜 그가 큰 마음 먹고 제작하는 프로그램은 출연을 고사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가·
무슨 특별히 문제가 되는 프로그램을 제작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는 이번 ‘락 밴드 붐’에 편승해서 그가 좋아하는 락 음악을 조금 부흥시켜보고 싶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게 먹힐지 안 먹힐지 모르겠으니 일단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간을 보겠다는 건데···
왠지 모르게 제안을 하는 족족 거절당하고 있는 상황이 지금이었다· 아니 직접 무대에 나와서 음악을 들려주는 기회를 주겠다는데 왜 거절을 하냐 이 말이다· 밴드 차원에서 부르는 게 아니라서 그런가?
“어···약간 짐작은 가긴 하는데···”
“뭐· 왜· 왜 그런대?”
“그 뭐냐· 음···뭐 피디님이 그런 의도를 가지고 하신 건 아니지만· 그런데 그 분들이 이거 서로서로 비교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는 거 아닐까요?”
종훈은 몸을 살짝 젖히며 눈썹을 찡그렸다· 왜? 왜 그렇게 생각한다는 걸까· 비교한다고 생각하면 말이야 되지만은 비교할 생각으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전혀 아닌데·
“그런 거 아닌데 왜 비교를 해·”
“맨처음 기획하실 때 저희한테 서로 음악을 바꿔서 쳐본다고 하셨잖아요· 그거 혹시 바뀌었나요?”
“아니 그대로인데· 그대로 설명도 했고· 그래야 재미있지 않냐?”
그가 출연을 제의한 기타리스트들은 유명한 사람들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 나온다더라! 무조건 봐야겠다!’라고 할정도의 그런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러니 조금 다이나믹한 예를 들어 Led Zeppelin의 Jimmy page가 Pink floyd의 David Gilmour와 악곡을 교환해서 친다거나· 다이나믹함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런 포맷으로 결정한 것인데·
“근데 그러면 서로 막 비교하는 느낌이 들어버리잖아요· 나름대로 자존심도 있을텐데 무대에서 막 삑사리나거나 이러면···”
“야 무슨 십대 이십대도 아니고 그런 거 가지고 그러겠어· 나잇살 먹은대로 먹은 양반들이· 설마 그럴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는 왠지 그 이유가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00% 그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 스케줄이 안 맞는다던가 집안 사정이 있다던가· 하지만 영향을 주는 부분은 확실하게 있을 것 같은 느낌·
“어쩔 수 없다· 그냥 젊은 애들도 부르자· 기타 잘 치는 애들 리스트 좀 뽑아다가 나한테 올려줘· 내가 좀 수소문해볼테니까·”
종훈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는 아쉬운 소리를 해야 될 시간이었다·
* * *
[“···아무튼 그렇게 되었다는 이야기인데 자세한건 나도 잘 몰라요· 내가 그 피디를 잘 아는게 아니라서· 내 친구의 제자라 말이지·”]
“그렇습니까·”
그는 머리를 살짝 꼬며 대답했다· 그 말에 채호근 교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워섬겼다· 내 친구가 누구인데 걔가 왜 그 피디를 제자로 삼게 되었냐면···요샛말로 하면 TMI Too Much Information이라고 하는 것들·
그런 말을 들으며 그는 생각했다· ‘기타리스트들끼리 나와서 소개를 하고 서로의 곡을 바꿔 부르거나 유명한 곡을 커버하는 식의 파일럿 프로그램’이라· 말로만 들어보면 그렇게 막 성공할 것 같지는 않은데·
[“수연 학생한테 세션 맡기고 싶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문제라니까· 나한테도 소개해달라고 아주 난리에요·”]
“그렇습니까·”
[“내 앨범 들어보고 기타 너무 잘쳤다고 도대체 누구냐고 막 물어본단 말이지· 그때 그룹 사운드의 하수연 기타리스트라고 하면 막 자기도 세션 좀 한번만 부탁하고 싶다고···언제 한번 놀러와요· 밥이라도 사주고 싶으니까· 그리고 요즘 우리 손자들이 나 보고 아주 난리라니까· 수연 학생이랑 아는 사이다 이러니 사인 한번만 받아달라고···”]
‘노인의 특성인가···’
그는 어느새 연령대 높은 사람들과 자신을 분리해서 보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렇기에 그는 나이 든 양반들의 이야기는 약간 지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이야기를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외형 말고는 그다지 차이점이 없다는 것을 모르는 채로·
[“아무튼 만약에 생각이 있으면 아까 그 불러준 번호로 연락을 하면 됩니다· 이틀 뒤까지 연락을 주면 된다고 하니까·”]
“아 네· 감사합니다·”
끊어진 전화· 그가 잠시 핸드폰을 보고 있는 사이 혜인이 입을 열었다·
“방송 섭외 전화니?”
“아 네· 피디가 직접 한 건 아니고 다른 쪽에서···그 자주 가는 곳 있잖아요· 대학 교수님· 거기서 연락이 왔네요·”
“어머 그 교수님 신경 진짜 많이 써주시네· 언제 한번 선물이라도 들고 가야겠다·”
“그럴 필요까지야···”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채호근 교수도 자기가 필요하니까 이렇게 하는 것일텐데 말이지· 하지만 혜인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원래 사람들끼리 선물 주고받고 이러는 게 별 거 아닌 것 같아 보여도 인상에 남고 기억에 남고 그러는 거야·” 라며 선물을 검색해보는 혜인·
‘이래서 내 주위에 사람이 없었나?’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머리를 살짝 꼬았다· 물론 그가 죽기 전에 사람이 없었던 것은 ‘인간관계 관리 실패’ 보다는 ‘성격이 지랄맞음’ 때문이었지만·
‘나가는 게 맞을까·’
그는 생각했다· 평범한 상황이라면 나가는 게 맞다· 스케줄도 비고 여유도 있다· 나가야 될 이유도 있다· 아무튼 지상파니 인지도도 높아질 것이고 출연료도 있고···여러모로 손해보다는 득이 될 것이 많아 보이는 방송이었다· 왜냐하면 애초에 ‘실력’으로 밀릴 이유가 전혀 없으니까·
하지만 다른 것이 문제였다·
방금 전까지는 분명 ‘스케줄 잡고 일하는 게 낫지 않나’ 라는 생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진짜 일이 닥쳐오자 ‘아 그냥 쉬고 싶은데’ 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 ‘어쩔 수 없네 쉬어야지’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서일까·
‘나가는 게 맞는데···아 나가기 싫다· 이게 번아웃이라는 건가?’
실은 그냥 쉬고 싶은 것에 불과했지만·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노트북을 스크롤했다· 요즘 들어 밥 먹고 음악에만 전념하다 보니···짜투리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만든 새로운 취미 ‘커뮤니티 탐방’을 이번 결정에 활용해보기 위해서·
[어제 개장한 OO OOOO 오늘 근황·jpg]
(매장 사진)
사람 미어터질 예정
요즘 경기 안좋다더만 살판난사람 개많네
[best] 경기어렵다 해도 돈 많은 사람 존나 많음 lol 오늘 명품도 다 쓸렸다더라
[best] ㄴ 그런거에 현타가 왜 옴? 좌빨새끼냐? ㅉㅉ
[best] 굳이 지금 왜 가는거임? 사람 없어진 다음 가면 되는데 1일차에 가놓고 사람 많다 타령 lol
[댓글 쓰기]
요즘 젊은 사람들이 징징대는 건 옛날에 안 살아봐서 그럼·
옛날 이야기 하면 다 틀니라고 하는데 그 시절 살아봤으면 그냥 말을 못함·
옛날에 백화점이 있길 했ㄴ
“아 씨 이런 거 보고 있을 때가 아닌데·”
그는 어느새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은 채 이미 익숙해져버린 아이폰으로 타자를 치고 있었다· [어쩌고 저쩌고·jpg] [어쩌고 저쩌고·mp3]과 같은 제목· 요즘 말로 ‘도파민 중독’을 유발하는 컨텐츠들· 클릭을 유도하는 제목과 교묘하게 댓글을 달게 만드는 내용· 그런 마력에 빠져서 게시글에 댓글을 달고 다닌게 몇개인지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언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인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하며 그는 그런 컨텐츠들이 발목을 붙잡는 것을 어떻게든 떼어냈다· 이용자가 많은 대형 커뮤니티들을 지나 그가 가끔씩 들어오는 커뮤니티에 진입한다·
[요즘 이 앨범 너무 좋은듯]
[한국 락의 희망]
[솔직히 거품 100%라고 생각하는 밴드]
[근데 전에 비욬 음악 듣고 놀란게]
[올해 한대음 수상 확정인 곡]
[최근 구매한 바이닐들]
어차피 비슷한 커뮤니티이긴 하지만 그래도 음악 관련된 글들이니 뭔가 마음이 평온해지는 기분· 그는 그런 감정을 느끼면서 우선 밴드의 이름을 검색해보았다· 그룹 사운드·
[요새 듣고있는 애들]
(Group Sound 공연 영상)
노래 좋음
– 잘하더라
– 솔직히 노래는 좋은데 가사는 잘 모르겠음 그냥 좆본 니코동출신 밴드새끼들같은
ㄴ 그래도 좋은거 많은데
ㄴ 그냥 안맞는거지 그런감성이;
– 이번에 어쿠스틱 한거도 좋음
‘역시 내 밴드인가···’
가사는 내 잘못이 아니니까·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몇개의 커뮤니티를 더 돌아보았다· 밴드의 이름이 박힌 게시물들은 대부분 음악에 대해서 칭찬을 하고 있는 글들이 많았다· 가장 나쁜 평도 ‘음악은 좋은데 내 취향에는 안 맞다’ 정도·
그는 그렇게 커뮤니티를 좀 더 돌아보다가 자신이 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깨달았다· 소위 ‘기타리스트 예능’의 출연에 대해서 고민해보고자 그랬던 것 아닌가·
그런데 이런 시시한 짓이나 하고 있다니···애초에 커뮤니티 탐방 같은 걸 해서 그런 결정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썩어빠진 일이다· 그는 그렇게 나약해진 자신의 정신에 채찍질을 하며 마지막 한번의 검색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자신의 이름을 넣어서·
[근데 음악이라는 게 들을땐 모르는데 해보면 실력차이 확남]
나도 처음에 들을때는 몰랐는데 기타 쳐보니까 실감나더라
애매하게 잘치는 애들이랑 진짜 거장들이랑 터치부터 시작해서 확차이남
– 실력차가 안날수가 없지
– 잘치는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확실히 난다더라 어떻게 치느냐에 따라 그 사람 인생도 알 수 있다던데
ㄴ 혹시 그분이 에릭클랩튼 불륜 예언은 안하셨다냐?
– 많이 나지 lol 안쳐보면 모름 거품낀애들 진짜 많음
ㄴ ㄹㅇlol 특히 여자들중에 기타치는애들 거품 존나 많이낌
ㄴ 하수연 <- 이년이 거품 최고봉임 빨아주는 사람은 존나많은데 정작 곡 보면 기타 별 거 안침 lol “뭐!” 그는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아니 무슨···무슨 이런 황당한···스크롤을 내려보니 밑으로 쭈우욱 이어져 있는 댓글들· ‘하수연’이 실력이 있느냐 없느냐로 막 싸움이 붙고 여러 사람들이 참관하고 있는 그런 글· 정말 유치찬란한 이유이지만 그는 이 글을 보고 출연을 결심했다· 이 이름도 모를 악플러놈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기 위해서· 과연 알아볼 실력이 있을까는 모르지만··· * * * 제작 회의· 1회 많아봐야 2회 방영에 그칠 파일럿 프로그램이지만···제작 회의의 규모는 큰 편이었다· 아무래도 출연자의 수가 많고 스케줄 조정도 필요한 상황이었으니까· 막내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다과를 준비하고 세팅을 하는 사이 사람들이 속속 도착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모인 사람은 대충 봐도 열명 이상· 기타를 멘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서로 알아보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하지만 굳이 서로 알아보지 않더라도 눈짓과 눈치로 알음알음 서로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분위기였다· 같은 씬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어 새 기타 사셨어요?” “이번에 새로 사가지고·” “이야 좋네· 나도 레스폴 살 걸·” 어느정도 모여가는 분위기가 되자 사람들의 입이 열린다· 서로의 근황을 물어보고 모르는 사람은 인사를 하고· 선배가 있다면 고개를 숙이고 후배가 있다면 인사를 받는다· 그렇게 화기애애해지는 분위기 속에서 누군가가 말을 꺼냈다· “아 이거 줄쟁이들끼리 있으니 누가 한곡 뽑아봐야 할건데···” 별 생각 없이 뱉은 것 같은 말· 하지만 그 말은 거미줄처럼 방 안에 퍼져 사람들을 꼼짝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아주 미약하지만 분명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는 긴장감· “제가 한번 쳐 볼까요?” 그 와중에 누군가 나선다· 오~ 하는 감탄사와 이어지는 연주· “야 잘하네~” 하는 덕담과 박수·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은근슬쩍 감정들이 떠돈다· ‘내가 더 잘하는 것 같은데’나 ‘저 사람 잘하는데···괜히 나왔나?’ 하는 생각들· “저도 한번 쳐보겠습니다·” “같이 칠까요?” “야~ 다들 잘하네· 나도 쳐볼까?”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어쩌면 ‘기술’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는 생겨날 수 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분위기· 선배나 후배의 실력에 자극을 받고 부족함을 인정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겸허하게 물러나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사실 아까는 그냥 손풀기였고 나는 이정도로 잘 침’이라고 말하기 위해서인 듯 격렬한 연주를 선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살짝 달궈지던 분위기를 깬 것은 어느 한 인물의 등장이었다· 문을 열고 등장한 것은 대기실의 성별과 연령대와는 전혀 연관이 없을 법한 여자아이· 살짝 차가운 인상의 여고생· 하지만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도 화제가 되고 있는 최신예 기타리스트··· “안녕하···십니까· 여기···대기실 맞습니까? 제가 잘못 온 것인지···” 하수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