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8
[호랑|유서하 : 그러고 보니 빈이 너 축제 참가 신청은 했냐?]
별 다를 것 없이 지루한 학교를 마치고 피아노 연습을 하던 중 현아에게 날아든 카카오톡 메세지· 아무 생각 없이 확인해본 메세지에는 쉽게 넘겨버릴 수 없는 내용이 있었다·
[정현아 : 웬축제참가신청]
[호랑|유서하 : 너희 학교 축제에서 공연 하기로 된 거 아니었어?]
[정현아 : ???]
[정현아 : 그랬음??]
[정현아 : 아니잘기억이안나는데요]
[정현아 : 잠잠잠만]
현아는 얼마 전의 일을 떠올렸다·
첫 합주를 하고 난 다음 방향성을 정해야 한다던가 뭐라던가 하면서 수연님이 뭐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때 자신은 뭐라고 했더라· 어···아무래도 찬성했던 것 같은 기억이 났다· 하지만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영 아니었던 것 같아서 그 뒤로는 따로 말을 안 하긴 했다·
[정현아 : 아그거]
[정현아 : 우리축제확정아닌거아니엇나??]
[정현아 : 결정은안됏다고그랬던거같은데]
[호랑|유서하 : 근데 너 좋아하더만]
[정현아 : 좋긴한데좀;]
[호랑|유서하 : 왜?]
현아는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뭔가 그 미묘한 느낌이 있는데· 뭐라고 해야 할까 하고 싶기는 한데 또 하기는 싫은 그런···
[정현아 : 약간미묘하다고해야하나]
그리고는 자신의 감정을 더 묘사하기 위해 카카오톡에 장문으로 글을 남기려다 현아는 그 글을 다 지워버렸다· 그런 감정을 일일히 다 묘사하며 공감을 얻어낸 다음 그걸로 설득을 하는 것 보다 적당한 이유를 말하는 게 아무래도 편하다·
[정현아 : 지금연습한게 씹덕노래밖에없는데 그러면 공연에서 씹덕노래부를거아님?]
그녀가 학교 축제 공연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
학교에서 에베베 저놈 씹덕이래요 하면서 괴롭힘을 당하는 상황은 아니다· 오타쿠 그룹에 끼여서 백안시를 당하는 상황도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뭐 친구가 많다거나 그런 상황도 아니다·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쟤 예대지망생이래!’ 정도만 담당하고 있는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는 학생 한명에 불과한 것이 정현아의 삶이다·
그러니 자기 학교 축제에 올라가서 밴드 공연을 하는 일은 현아에게 그다지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주목을 받는 일 아닌가?
주목을 받게 되면 필연적으로 귀찮은 일이 따라온다· 마침 핫한 애니메이션의 곡이니 그 곡을 알아보고 와 나도 그거 좋아하는데~ 하며 달라붙을 애들도 있을 것이요 쟤 완전 개씹덕이었네 라고 멸시하는 애들도 있을 것이다· 여러모로 지금과는 확실히 다른 학교생활이 펼쳐지겠지·
감수성이 풍부한 청소년기 시절 반 규모의 조리돌림만 경험해도 세상 살기 싫어지고 우울해지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학교 단위의 조리돌림을 당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공연을 한 다음 어떻게 하면 놀림을 피해갈 수 있을까? 를 생각하기보다는 그냥 공연 자체를 안 하는 것이 낫다·
[호랑|유서하 : 그게 무슨 상관이야]
[호랑|유서하 : 걍 하면 되지]
물론 그 심리에 대해서 서하는 전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아니 좋아하는 건 하면 되지 뭐가 문젠가·
친구들이니 지인들이니 하는 사람들에 끼어 몇번 갔던 공연 중에도 저런 식의 ‘오타쿠 음악’ 하는 사람들 많았는데 전부 다 즐겁게들 하고 있었다·
“그런 거를 의식하는 게 좀 이상한 거 아냐?”
“응?”
“아 아니에요·”
서하가 무심코 중얼거린 말에 연습실의 청소를 하던 교회 집사가 반응했다· 서하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눈치를 보며 핸드폰을 계속 만지작거렸다·
[정현아 : 그런게잇다니까]
[호랑|유서하 : 뭐가 있는데]
[정현아 : 글고내가걍결정할수잇는문제도아니고한달반밖에안남앗는데어케함]
“···하는 거야 좋긴 하지만·”
현아는 중얼거렸다·
누구나 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가? 예를 들어서 갑자기 외계인이 쳐들어왔는데 리듬게임 최고렙곡을 SS 그레이드로 클리어할 수 있다면 너희를 살려주겠다- 라는 말에 완벽하게 클리어해냄으로써 지구도 구하고 세상의 칭송도 받고·
그런 어처구니없는 상상이 아니더라도 어릴 적에는 다들 인정욕구에 목마르기 마련이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취미로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것은 누구나 다 한번쯤 해볼 생각이다·
현아도 평범한 대한민국 청소년이었으므로 언젠가 한번쯤 남들 앞에서 인정받아보고 싶다!! 이런 생각이 있긴 했다· 피아노도 그렇고 오타쿠 취미로도 그렇고·
그런데 이런 형태인 건 좀···마음의 준비도 해야 할 것 같고·
아무튼 뭔가 부끄러웠다·
* * *
명전은 이서와 함께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구석진 테이블에 현아와 서하가 앉아 있었다·
‘오늘은 무슨 일인지·’
수업 중에 느닷없이 온 서하의 카카오톡· ‘오늘 뭐 정해야 될 게 있을 것 같은데 혹시 저녁에 만날 수 있을까요?’ 라는 내용· 정해야 할 게 있었나? 하면서도 이서를 데리고 카페로 왔다·
짧게 인사를 나누고 테이블에 앉는다· 서하의 표정은 별 생각 없어보이는 데 반해 현아는 왠지 우물쭈물하는 기색이 있다·
“오늘은 무슨 일로 보자고 하셨는지·”
“저희가 정해야 할 게 있는데 안 정한 것 같아서요·”
“그게 뭔가요?”
“밴드명이요·”
그 말에 이서가 “아~!” 라며 감탄을 내뱉었다· 생각해보니 그렇네· 밴드에 있어 밴드명만큼 중요한 게 없는데 그 밴드명을 정하지 않았다라···
“중대문제긴 하네요· 그래서 뭐 생각해 놓은 거 있으신지?”
“어···딱히 없는데요·”
흠· 명전은 팔짱을 꼈다· 좋은 밴드명이라···밴드명 관련 조언이 몇 가지 있는데 명전은 그 중 하나를 말해보았다·
“아무튼 영어로 정하는 게 편해요·”
“네? 왜죠?”
“그냥 대충 아무 의미 없이 지어도 영어로 지으면 뭔가 있어보이거든· 예를 들어 Rolling Stones라고 쓰면 뭔가 멋져 보이잖아요· 근데 밴드 이름이 ‘돌 굴러가요’면 뭐가 멋지겠습니까· The beatles도 마찬가지지· ‘딱정벌레들’ 이러면 다들 흠···이럴 걸·”
그 외에도 무궁무진하다· 예를 들어 AC/DC를 봐라· 교류/직류가 뭔가? The yardbirds는? Cream은? Animals는? The beach boys는? 한국어로 번역하면 다 영 아닌 이름이란 말이다·
한국어로 된 밴드 이름을 볼까· 송골매 들국화 무한궤도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등등· 멋진 밴드명을 짓기 위해서 얼마나 머리를 싸맸을지 상상이 가는가?
“아니 뭐 그렇게까지 생각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아냐? 결속 밴드 같은 것도 괜찮은 이름이잖아· 방과후 티타임이라던가···”
“그런 게 괜찮은건가?”
젊은 아이들의 감성은 잘 모르겠군· 명전은 머리를 살짝 꼬았다·
“당장 정하긴 힘들지 않을까 하는데· 뾰족하게 떠오르는 게 없긴 하네·”
그 말에 “케이블타이라던가···” 라고 중얼거리던 이서가 입을 닫는 시늉을 했다· 케이블타이? 도대체 어떤 의미로 나온 밴드명인가·
“그리고 두 번째로 정해야 하는 건데요 첫 공연은 언제 할 건가요?”
“글쎄요···딱히 정한 건 없는데·”
명전은 테이블을 살짝 두드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현아 씨 학교 축제가 12월 말이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그때 하면 될 것 같은데·”
“그렇죠?”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서하와 좋다고 생각하는지 살짝 웃는 이서·
“그···”
그러나 당사자인 현아의 얼굴은 그렇게 좋아보이지 않았다· 꺼려하는 걸까 아니면 다른 사정이 있었던 걸까· 명전이 기억하기로는 자기 학교 축제에서 공연하자는 말에 상당히 좋아했던 것 같은데·
“저는 약간 좀 그래서···”
“왜요?”
“그 약간 부끄럽다고 해야 하나· 남들 앞에서 뭐 공연 하는 게 그 뭐냐 지금 저희가 하고 있는 첫 합주곡이 애니메이션 삽입곡이잖아요? 일본어 들어가고·”
“네·”
“그게 약간 부끄럽다고 해야 하나· 남들 앞에서 이런 거···씹덕스러운 거 연주하긴 좀 그래서···”
“그게 왜 부끄러워?”
땅을 파고들어갈 기세로 중얼거리는 현아· 그리고 그녀의 말은 이서에 의해 단번에 끊어진다· 진심으로 의아하다는 표정의 이서·
“아니 좋아하는 거 하면 되는 거지· 남이 뭐가 중요해·”
“당연히 중요하지···! 소맛···이서님은 친구가 많은 인싸라서 잘 모르는데 저같은 아싸는 고등학교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분위기 봐 가면서 생활을 해야 한단 말이에요·”
“···?”
명전은 진심으로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위기를 봐 가면서 생존? 요새도 까까머리 선도부들이 학생들 기강 잡고 다니나·
“뭔 소리야· 생존을 왜 해· 학교는 그냥 다니면 되는 거지 뭘 생존을 하고···”
그런 이서의 말에 현아는 테이블을 팍 치며 읊조리기 시작했다·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인싸라서 내 말을 못 알아듣는거야· 학교에 가면 이제 아는 애들이 인사를 해 주고 밥도 같이 먹으러 갈 사람이 있고 심심하면 언제든지 놀 수 있는 친구들이 있으니까·
나 같은 사람은 그게 힘들다고요· 밥 먹는 것도 눈치 화장실 가는 것도 눈치· 존재감도 없어서 우리 반에 저런 애 있었어? 같은 소리나 듣고· 가끔 ‘야 니가 피아노 친다는 애야? 혹시 피아노 쳐 줄수 있어?’ 이러면서 괜히 시비거는 애들 오고·
만약에 내가 결속 밴드 곡을 학교 축제에서 연주했다? 그 다음날부터 바로 ‘야 쟤가 그 축제에서 일본곡 친 애냐?’ ‘와 흫ㅎㅎ흐 완전 개씹덕이었네~’ ‘오타쿠 기분나빠’ 같은 소리나 듣는다고요·”
자신의 경험에 근거한 열변을 토하는 현아· 그 감정이 너무 리얼해보여 이서와 명전은 뭔가 압도당하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너 중학교 때 보면 그냥 학교에서 자기만 하더만· 그러니까 당연히 친구도 없고 존재감도 없고 그렇지·”
그러나 시기적절하게 들어오는 서하의 태클·
“너무 피해망상 아냐?”
“아니 실제로 그런다니까!”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이서의 중얼거림에 빼액하고 소리를 지르는 현아·
“그러면 그러니까 12월달에는··· 현아 씨네 학교 축제에서는 뭐 밴드 공연을 하고 싶지 않다는 건가요?”
그런 모습을 보며 명전은 살짝 머리칼을 꼬다가 질문을 던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었습니다 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