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81
‘침수로 인해 음향장비를 사용할 수 없게 되어 공연을 취소하게 되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라고만 말하고 그냥 지나가도 되는 일이다· 그러나 Group Sound는 전액 환불만을 해 준 것이 아니라 부족한 환경 속에서도 공연을 보여주기 위해서 고군분투했다·
그 결과가 그 날 저녁의 무료 공연이었다· 야외 공연장 안에 사람들이 다 못들어가서 바깥에서 우산이나 우비를 쓰고 노래를 들어야 했던 그 공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듣고싶어했던 그런 공연· 관객들과 진정으로 호흡하는 것이 그대로 느껴졌던 그런 공연·
“이거는 무조건 기사로 써야지·”
다음 날 그 공연에 참석했던 기자가 찍어온 사진을 보고···지역 언론의 편집장이 그렇게 말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동안 이런 전례가 없었으니까·
지방 공연이 취소되는 경우는 많다· 아티스트 본인의 책임이든 천재지변이든 지역 문제든 수익성 문제든· 그리고 그렇게 취소된 공연은 돌아오지 않는다·
지역주민은 그렇게 문화생활의 기회를 박탈당한다· 아티스트들에게는 그저 한 번의 공연일 뿐이지만 지역주민에게는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기회인데도·
하지만 Group Sound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전액 환불을 하고도 대관료와 장비 대여비를 내면서···그들의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공연을 펼쳤다· 형식적인 그런 것이 아니라 그 날 공연에 오지 못한 모든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을만한 스케일로·
어느 누가 이런 일을 그저 ‘그럴 수도 있지’ 라며 받아들이겠는가?
그리고 그 물결은 단순히 지역 언론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점점 넓어지고 커지며 잔잔하지만 단단한 파장을 가져왔다·
[‘음악의 역할’···밴드 Group Sound 천재지변으로 인한 공연 취소에도 불구하고 무료 공연으로 화제]
[“더 많은 분들께 음악을 들려드리고 싶었습니다” Group Sound 하수연 무료 공연의 취지 밝혀]
[여성 밴드 전국 투어 근황·jpg]
단순하게 보면 단지 무료 공연을 1회 해준 것에 불과한 일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무료 공연’을 해주었다는 것 보다는 ‘공연 취소가 자기들 책임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음악을 들려주어야 한다고 무료공연을 개최’한 것에 주목했다·
그 결과 Group Sound의 선행은 다양한 경로로 퍼지기 시작했다· 인터넷 뉴스 라디오 뉴스 지상파 한 꼭지 커뮤니티 베스트 게시판 등···헤드라인을 지배할 정도로 떠들썩한 것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에게 ‘아 Group Sound라는 밴드가 좋은 일을 했구나’라고 각인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시청 밴드 Group Sound 및 [레이블 에코사운드]에 감사장 수여]
‘귀 밴드는 지방문화활동의 증진을 위해 힘써주는 활동으로 지방의 다양한 음악문화를 증진하는데 귀여한 공이 크므로 이 감사장을 드립니다·’
하지만 위와 같은 감사장을 대리로 누군가가 수여받을 때 쯤에는···
“으어어어억···”
“괜찮아?”
그들은 이미 제주로 가는 배에 몸을 싣고 있었다· 상당히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 * *
‘죽겠다·’
“괜찮아?”
“안 괜찮지···어어억!”
“야! 절로 가 절로·”
반쯤 걷어차다시피 그를 밀어낸 서하· 그는 서러워하면서도 저절로 굴러가 옆에 자리를 잡았다· 어지러워 죽을 것 같으면서 토할 것 같으면서도 또 묘하게 토는 안 나오는 이런 기분·
‘내가 배멀미가 있었나·’
배를 타자고 한 것은 그의 아이디어였다· ‘서명전’ 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그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심야 선박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굳이 배를 타고 갈 필요 없이 부산에서 전날 짐을 보내놓고 그들은 비행기로 가도 되는 일이었으나 그는 “배 타는게 더 재미있지 않을까?”라는 이야기를 하며 일행들이 배를 타게 유도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 꼴이었다·
“그렇게 굴러다닐거면서 배 타자고는 왜 했냐? 그냥 편하게 자고 내일 비행기 탔으면 훨씬 나을텐데·”
멀리서 들려오는 서하의 핀잔· 평소같았으면 뭐라고 이야기라도 했겠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냥 시름시름 앓으며 객실에 처박혀 천장을 보고 있다가 다시 또 밀려오는 구토감에 괴로워하다가 다시 또 누웠다가를 반복할 뿐이었다·
‘죽을 것 같다·’
시간이 얼마 지난 후 자정을 넘긴 시각· 그는 괴로움에 굴러다니면서도 어떻게든 멀미약을 사다 먹고 일어났다· 괴로워하고만 있으면 그가 이 여행을 택한 목적이 없어진다· 힘들더라도 즐겨야 하지 않겠는가 밤 여행을·
이리저리 밤의 배를 둘러본다· 매점도 가 보고 1등실도 가 본다· 크루즈마냥 그렇게 화려하지는 않고 그저 실용적인 모양새를 하고 있는 배지만 그는 그것이 좋았다· 한참 차이나긴 하지만 그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감성이었기때문에·
“이거 주세요·”
“이천원입니다·”
아이스크림을 하나 물고 구토감을 필사적으로 참아가며 갑판으로 향한다· 도착하자 뻥 뚫린 검은 하늘이 그를 반겨준다· 주위에 보이는 것은 수평선 뿐·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촘촘히 박혀 있는 별들· 그가 어릴 적에나 볼 수 있었던 이제는 도시의 불빛 덕에 보지 못한 지 수십년이 넘은 그런 별들·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살짝 싸늘한 공기와 배에 부딪혀 철썩대는 파도· 휘청대는 배·
그리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수평선· 아득한 망망대해에 아무도 없이 나 혼자·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린다· 장소는 다르지만· 바다가 아니라 산이었지만· 풍경은 같다· 하늘을 수놓고 있는 별 싸늘한 공기· 이 세상에 마치 나 혼자밖에 없는 듯한 그런 느낌·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그때는 지금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없는데· 그런데도 즐거웠지···’
많은 걸 알지 못했으니 오히려 즐거웠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가 음악을 순수하게 즐기지 못했던 것도 그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냥 좁은 우물에서 내가 최고다 라고 하며 살았으면 행복했을텐데· 더 높은 절대 닿을 수 없는 기라성 같은 사람들이 있음을 깨달았으니···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재능을 얻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르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일까·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지금 음악이 즐거웠다· 이 순간과 같은 풍경을 보던 바로 그때처럼·
* * *
“오늘의 일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일정을 읊는 고경민 팀장· “일정 하나 외에는 전부 다 관광이니까요· 부담없이 노시면 됩니다·” 라는 말에 이서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환호성을 질렀다· 옆에서 수연도 뭔가 호응을 해 주려고 했던 것 같지만 멀미의 여파인지 “그에에엑” 같은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괜찮아?”
“안···으욱· 엑· 괜찮아·”
“있는 일정은···이제 저희가 송악산이랑 가파도 쪽에 가서 이전에 말씀드렸듯이 MV 소스 촬영을 할 예정입니다· 장비랑 허가는 이미 다 나 있는 상태니까요·”
수연의 등을 잠시 토닥거려 준 후 이서는 이전에 고경민이 말해주었던 것을 떠올렸다·아직 명확하게 어떤 곡의 MV를 만들지는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소스로 활용할 수 있게끔 좀 촬영을 하려고 한다던가·
거기에 다큐멘터리 팀의 협조를 얻어서 좀 다음 곡에 대한 기대감도 살려본다 뭐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은데·
‘거기 가면 장비 설치되어 있다고 했었지· 즉석으로 공연도 하려나?’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수연을 들고 마련된 차에 몸을 실었다· 제주도는 처음이라 두근거리는 마음을 숨기기가 힘들었다·
“와아아!!”
애월의 바닷가를 보고·
“와아아아!!”
협재의 바닷가를 보고·
“와아아아아!!”
오설록에도 가 보고·
일로 온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오랜 시간 즐길 수는 없었지만 이서와 아이들(수연 제외)은 필사적으로 제주도를 즐겼다· 현무암이 가득한 바다· 그리고 싱그러운 자연· 일본과 비슷하게 지평선이 보이는 그런 이질적인 풍경· 말고기· 고기국수·
그렇게 즐겁게 몇 시간 정도의 여행을 즐기면서 도착한 곳은 송악산이었다· 관광지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 촬영을 하기 위해서인지 꽤나 정돈된 곳에 앰프와 이것저것들이 미리 날라져 있었다· 그리고 와서 무슨 일인지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까지·
‘어···이대로 하나?’
이서는 문득 궁금해졌다· 사람들이 다 지켜보고 있는데 이대로 가는 걸까? 그런 시선으로 스태프 중 한명을 쳐다보았더니 스태프가 “사람들이 있어야 좀 그림이 나온다네요·” 라는 설명을 해 주었다·
“음· 뭐 어떻게 해야 하지·”
수연이 그렇게 중얼거리는 사이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기웃대던 관광객 사이 초등학생 같아 보이는 애 한명이 슥 빠져나와 그들에게로 왔다· 엄마로 추정되는 사람이 “재후야!!”라고 소리를 치는 사이 그 아이가 이서에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그룹사운드인가요?”
“어 맞아·”
“와! 엄마! 이 사람들 유명한 사람들이야!”
“아이고 죄송합니다!”
그 말에 사인을 받겠다느니 사진을 찍겠다느니 해서 슬금슬금 모여드는 사람들· 이서는 수연을 바라보았고 수연은 고경민 팀장을 바라보았다· “시간은 충분하니까요·” 라는 그의 말에 밴드는 어느정도 팬 서비스를 해 준 후 악기를 잡고 잠시 섰다·
“촬영은 뭐 어떤 식으로 되나요?”
“일단 곡을 쳐 보시면 저희가 한번 잡아보고 필요한 구도가 있으면 어떻게 잡아달라 뭐 그런 식으로 주문을 할게요·”
“그럼 일단 아무거나 쳐 볼까요? 혹시 저희 아시는 분?”
이서가 그렇게 질문을 던지자 사람들 사이에서 환호성과 함께 신청곡이 튀어나왔다· 다들 아는 [공중정원]과 같은 것들· 그 중에 [잿빛의 나날들]을 외치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 말을 들은 수연이 “잿빛의 나날들 하자·” 라고 말했다·
“일단 그럼 한번 쳐 볼게요·”
“네 잠시만요· 사람들 좀 물리고···저희가 신호 드리면 그때 연주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갑자기 이루어진 즉석 콘서트· 촬영을 하거나 그녀들을 보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진 가운데 이서는 한 곡을 마치고 물병을 들이켰다· 으프프픕· 급하게 마셨더니 물이 이리저리 흘러 약간이지만 옷이 젖어버렸다·
“아이 씨·”
“이걸로 닦아·”
수건을 건네주는 수연· 물을 닦느라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든 사이 이서는 주위를 슬쩍 둘러보았다·
촬영을 하고 있는 사람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스태프들 저 멀리 팔짱을 끼고 지켜보는 회사 사람들· 그리고 티셔츠를 거의 나시처럼 만들어 입고도 “더워!”라고 외치는 서하와 말 없이 그냥 해파리처럼 늘어져 있는 현아·
그리고 수연이· 분명 더운 것은 마찬가지일 텐데 아무런 변함 없이 가만히 서 있는 아이· 그녀는 미동도 없이 하늘을 바라보며 뭔가 떠올리려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수연이 너는 안 더워?”
“덥다고 말할수록 더 더운 법이야· 안 덥다고 생각하면 안 더워지는 거지·”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냐 라고 말하려는 순간· 예고도 없이 수연이 기타를 튕기기 시작했다·
‘아니 말은 해 줘야 시작을 하지!’
그렇게 생각하며 이서는 베이스라인을 떠올리려고 했다· 어떤 곡이었더라· 대충 이렇게 울리면서 들어가면 될 것 같은데···라고 하며 치던 근음· 하지만 생각나는 게 없었다·
어떤 곡이었더라·
생소했다 그 멜로디는·
살짝 쓸쓸하면서 혹은 황량하면서· 마치 홀로 아무것도 없는 집에 남아 가만히 손을 쳐다보는 그런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이 떠오르면서도···
왠지 기대감이 드는· 지금까지의 여정은 힘들었지만 앞으로 나아갈 길은 왠지 모르게 희망찰 것 같은 그런 멜로디·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근음을 계속 울렸다· 마치 멜로디가 따라오라는 듯 손짓을 하는 듯 해서· 건너편에서 고민을 하고 있던 서하도 드럼을 조금씩 울리기 시작했다· 현아 또한 마찬가지로 낮게 깔리는 피아노 소리가 들어오고 있었다·
‘어떤 음악인 걸까···’
이서는 그렇게 생각하며 손을 계속해서 움직였다· 지속될 것 같던 그 멜로디는 어느새 음을 닫으며 끝나버렸다· 작은 박수가 이어지는 사이 그녀는 참고 있던 숨을 뱉어냈다·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곡· 완전히 새로운 곡을 맞춰가는 것은 처음 겪어본 일이었기에·
“새로 만든 곡···인가요?”
“음···”
현아의 질문에 수연은 머리를 살짝 꼬았다· 뭔가 고민하는 것 같을 때면 나오는 늘상 있는 그녀의 손버릇· 그렇게 꼬아놓던 머리칼을 풀어낸 다음 수연은 말했다·
“만든 곡···이라고 하긴 애매하지· 만들고 있는 곡이지· 방금 전부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Shoegaze 님 3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슈게이즈 명반!! 이라고 하면 뭔가 생각나는 게 없네요·
그 대신 오늘의 추천곡을 보내드리겠습니다· サカナクション(Sakanaction 사카낙션)의 新宝島(신 보물섬 신 타카라지마)입니다!
매우 활기차서 듣기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