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82
“만든 곡···이라고 하긴 애매하지· 만들고 있는 곡이지· 방금 전부터·”
“뭐?”
그게 말이 되냐는 듯 대답한 이서· 서하나 현아나 말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심정인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수연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악상을 떠올리는 것 자체는···방금 전까지는 아니고 어제 밤· 어제 밤이 아니고 오늘 밤이구나· 오늘 밤에 생각을 하긴 했는데· 멜로디를 완성한 건 여기 와서 완성했지·”
마치 “우리 오늘 점심으로 고기국수 먹었지· 그거 맛있더라·”라는 이야기를 하는 듯 평온하게 입을 여는 수연· 다들 황당하다는 듯 수연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 고경민은 생각했다·
‘우리 애들이긴 하지만···’
참 어처구니 없을 정도의 실력·
고경민은 인디 음악 종사자로서 음악을 만든다는 것이 어느 정도의 무게를 가지고 있는지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갑자기 떠오른 악상으로 곡을 만든다’라는 신화 같은 것은 믿지 않는 타입의 사람이었다·
Guns N’ Roses의 ‘Sweet Child O’ Mine’이나 크라잉 넛의 ‘말 달리자’ 같은 곡들은 5분만에 만들어진 것으로 유명한데 그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MSG를 쳐도 적당히 쳐야 하지 않겠는가· 5분만에 멜로디를 만들었다고 해도 믿기 힘든데 5분만에 곡을 다 만들어? 어처구니 없는 소리였다· 자신들의 천재성을 과장하기 위해서 이야기하는 그런 상투적인 농담일 뿐·
매니저 시절부터 수많은 밴드들을 매니지하면서 그리고 직위가 올라가 프로듀싱도 맡으면서· 이 회사에 들어오고 지금처럼 바쁜 시기엔 힘들어도 좀 여유가 나면 Group Sound 외의 다른 밴드도 봐 주면서···그의 생각은 공고해지면 공고해졌지 약해지지는 않았다· ‘뮤지션의 천재성’이란 결국 어떤 파박! 하는 재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수도 없이 쌓아올린 백그라운드에서 온다는 것이 그의 지론·
하지만 수연을 보면 그렇게 굳어졌던 ‘뮤지션의 천재성’에 대한 생각도 허물어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5분은 아니고 하루만에 혹은 몇시간만에···혹시 모르지· 저렇게 말해놓고 진짜 방금 만들었을지도· 원래 그런 아이니까·’
자신의 천재성을 드러내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아이· 다들 어떻게든 “우리 음악 잘해요!!”나 “얘 천재에요!!”라고 자기어필을 해 대며 필사적으로 마케팅을 하는 시대에 아무 말 없이 자기 할 것만 하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진 재능이 너무나도 커서 그것이 드러날 수 밖에 없는 아이 하수연·
“음· 방금 친 거 괜찮긴 했는데· 드럼이나 키보드는 괜찮았는데 베이스가 좀 너무 그냥 밋밋했어· 나는 이것만 하고싶다···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전혀 뭔가 나설 생각이 없는 그런 류의 베이스인데 내가 그런 거 싫어하는 거 알지? 그렇게 어중간하게 가져가면···”
그 말을 듣고는 연극이라도 하는 듯 과장되게 부들부들 떨더니 갑자기 베이스를 내려놓고는 내던지듯 오체투지로 엎드리는 이서·
“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죽일 놈입니다! 이렇게 안이하게 음악을 하려고 하다니! 송구하옵니다 전하!!”
지켜보던 관객들의 웃음이 터지고 서하는 어처구니 없다는 듯 웃으며 현아는 자신이 당한 것도 아닌데 얼굴이 빨개진다· 재미있다는 듯 과연 어떻게 할지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수연은 무감정하게 내뱉었다·
“그래· 안이하게 음악 하는 거 반성했으면 됐고 다음 번에는 좀 더 잘 쳐보자·”
으어~ 하는 사람들의 탄식· 그 말을 듣자 이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일어나 무릎을 탁탁 털었다·
“존나 매정한 년·”
“헛소리 하지 말고 악기나 잡어·”
“녜 알겠쉼니다~”
빈정대는 말투에도 불구하고 전혀 받아줄 것 같지 않은 수연의 분위기· 이서는 베이스를 메다 말고 달려가 수연을 퍽퍽 쳤다· 마치 허수아비 흩날리듯 “아억!” 하며 휘청이는 수연·
그렇게 응징을 마치고 베이스를 잡은 이서와 아이들에게서 다시 음악이 울려퍼지기 시작한다· 기타에서 울려퍼지는 멜로디 자체는 비슷하지만 그 외의 것들은 확실히 다르다· 조금 더 다이나믹해진 드럼과 베이스· 그리고 질감이랄까 뭔가 많이 달라진 키보드·
“아까랑 다르지 않아?”
“그런 거 같은데···진짜 라이브로 만드는 건가?”
“에이· 어떻게 그러겠어· 다 짜놓은 거겠지·”
그 광경을 팔짱을 끼고 보고 있던 경민에게 주위 사람들의 말이 들려온다· 그는 픽 웃고 말았다· 그래 저것이 당연한 반응이다· 그런 일이 가능할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그렇게 했다고 주장하는 뮤지션은 많아도 말이지·
‘왜 버킷리스트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
언젠가 흘러가는 말처럼 수연이 했던 이야기· “즉석에서 곡을 작곡해서 공연을 해 보고 싶은데요·” 같은 이야기였던가· 저런 반응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반응의 끝을 보기 위해서라도 그런 일을 한번쯤 할 법 했다···
* * *
촬영 자체는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몰려든 사람들을 배경으로 연주하는 장면· 어느 부분에 강세를 주고 어느 부분에 힘을 빼야 되는지는 피촬영자로서 잘 모르는 부분이었지만 아무튼 열심히 노력은 했다·
단지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면
‘곡을 완성을 시켰어야 했을 텐데·’
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연습실도 구할 수 없고 앰프조차도 틀어놓기 힘든 그런 환경· 미니 앰프 정도야 민폐를 감수한다면 어떻게든 호텔방에 틀어놓을 수 있겠지만 다른 사람들의 평안을 방해해가며 그렇게까지 뭔가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고민했다·
“내일 그 곡을 하고 싶은데·”
“야·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니 차례니까 빨리 심기나 해·”
“이게 왜 이상한 소리야· 푸르대콩 필요한 사람?”
“저 필요한데요···뭐 주실 수 있어요···?”
“뭘 꼭 줘야 하나? 그냥 받아가면 안 돼?”
“싫으면···그냥 심으세요···”
그는 탄식했다· 도대체 세상이 왜 이러는가· 서로 돕고 살기도 힘든데 어떻게든 이득 하나 더 챙기겠다고· 이놈의 보난자(Bohnanza· 농사를 짓는 컨셉의 보드게임)가 뭐라고 저렇게까지 하는가 말이다·
“딱 봐도 너 필요한 거 같은데 그냥 가져가라 좀·”
“저 별로···지금 어차피 3금화라서···”
“4금화 노리는 건 어때?”
“와 연수 진짜 구질구질하다·”
그는 고개를 젖혔다· 그가 저런 소리까지 들어야 하는가? 하지만 ‘꼴등은 하루동안 심부름 하인 하기’의 벌칙은 너무 강렬했기에 어떻게든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 내가 푸르대 한장 더 줄게· 그럼 이제 4금화잖아·”
“그 정도면 뭐···”
“야! 그거 빈님 좋은 일만 해주는 거라고! 왜 1금화를 그냥 주는 건데?”
그는 옆에서 떽떽거리는 게임 잘 알지도 못하는 녀석의 말은 무시했다· 1등이 중요한 게 아니라 꼴등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닌가· 현아가 어찌되든 서하가 어찌되든 이서보다 앞서나가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내가 말했지 너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결과 꼴등· 이죽대는 이서를 외면한 채 그는 현실을 믿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분명히 계산대로 했는데 왜 이렇게 된 거냐···
그를 마구 떠밀며 “야 빨리 가서 아이스크림 사와·”라고 말하는 서하에게 밀려 그는 숙소 바깥으로 튕겨져 나왔다· 찝찝하긴 하지만 그래도 서울보다는 나은 8월의 밤 공기가 그를 반겼다· 그는 편의점에 들어가며 생각했다·
‘내일 곡을 꼭 하고 싶은데· 어떻게 완성을 시켜야 하나·’
메인 멜로디를 맡을 기타 파트는···이미 다 완성이 되었다고 해도 무방한 상황· 하지만 베이스 드럼 키보드는 미완성된 상태 그대로였다· 소리를 마음껏 낼 수 있는 환경에만 애들을 데려다 놔도 뭔가 괜찮은 것을 만들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지금 상태로 보면 너무 밋밋하지·’
그저 기타에게 끌려갈 뿐인 악기들· 물론 그렇게 내버려 둔다 한들 뭔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충분히 들을 수 있고 충분히 즐길 수 있다· 하지만 관객들이 즐길 수 있는 것과 만든 사람이 납득을 하느냐는 다른 문제다·
‘리허설 때 약간만 잡아주고 본 공연에서는 애들한테 맡겨놓는 쪽으로 갈까···’
이전까지 그들이 공연을 했던 방식은 연습 당시에 애드리브의 틀을 어느정도 잡아놓고 가는 방식이었다· 어느 느낌까지는 허용이 되고 어디까지는 안 되고· 그렇기 때문에 이전 무료 공연 당시에 리허설 없이 갔던 것이 좀 도박적인 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생각한 방식을 택하게 되면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즉흥으로 치는 게 된다· 리허설 때 어느정도의 선은 잡아줄 수 있지만 그 선을 어느정도까지 해석하느냐는 아이들에게 달렸다는 이야기·
세 명에게 그럴 역량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본인들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몰라도 그가 생각하기엔 차고 넘칠 실력· 하지만 자유를 꿈꾸는 동물조차 묶인 시간이 오래되었다면 사슬을 풀자마자 즉시 튀어나가지 못한다· 사슬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며 간을 보는데 사람은 어떠할까· 다들 내켜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들어선 가게는 점원이 아무도 없었다· CCTV 하나와 키오스크 계산기 그걸로 끝· 출입을 막는 것도 아무것도 없고 그냥 아이스크림 냉장고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
‘이런 걸 보면···그냥 밀어붙이는 것도 방법 아닌가 싶긴 하구만·’
그는 가게를 둘러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옛날이었어봐라· 가게를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바로 다 털린다· 그거 때문에 신고를 해? 쪼잔한 거 가지고 신고하지말라고 경찰에게 조인트를 까이거나 도둑 잡으려고 뭘 좀 줘야 하는 시대였다· 교통경찰 하면 단속 뇌물로 차 뽑는다는 이야기가 즐비한 시대였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 가게를 보라·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말건 CCTV 하나만 믿고 밀어붙이는 거다· 사람이 지키면 훔쳐갈 사람도 극적으로 줄어들텐데 그런 건 경찰에게 맡기고 이익을 극대화하는···글쎄· 그는 이런 마음가짐이 그 자신에게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아이스크림을 든 채로 숙소 문을 열었다·
“야·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게 있는데···”
* * *
‘드디어 오늘이다!’
“현지 오늘 어디···”
“오늘 저녁에 갈 데 있어서 안됨· 수고염·”
오후 학원을 마치고· 친구들의 이야기도 전부 무시하고· 저녁 학원을 엄마 모르게 탈주한 채로 그녀는 빠르게 편의점에서 저녁 먹을 것을 산 다음 오늘 Group Sound의 공연이 펼쳐지는 공원으로 향했다· 좌석이 특별히 정해지지 않은 야외 공연이었기에 빠르게 자리를 잡아놓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어디야?”]
“나 가는 중!”
달려가는 중에도 걸려오는 전화· 학교 친구 중 한명이 빨리 오라며 독촉하는 바람에 그녀는 체면이고 뭐고 다 내팽개친채로 두 팔을 달리기 선수처럼 흔들며 후다다닥 언덕을 뛰어올라갔다· 캐리어를 질질 끄는 관광객들이 그녀를 이상하게 보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이거 놓치면 진짜 못 간단 말이야·’
얼마 전이었던가· 지방에서 공연이 취소되었다고 무료 공연을 보여줬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녀는 “아니 뭔 육지면 그냥 갈 수 있잖아!” 라고 외쳤었다· 육지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기차니 버스니 타고 다 갈수 있지 않은가·
제주도는 배나 비행기 아니면 못 간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영영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평생 학원 한번 빼먹지 않고 나쁜 짓 하나 저지르지 않고 살아온 모범생 부현지가 이렇듯 학원을 탈주하고 Group Sound의 공연에 오게 된 계기였다·
“왔어?”
“어헉ㅎ···으헥···죽겠다· 나 죽는다· 나 죽어···”
“그런 걸로 안 죽어· 빨리 일로 와· 너 자리 잡으면 나 굿즈 사러 가야돼·”
핀잔을 주는 그녀의 친구· 현지는 숨을 고르며 자리를 잡고는 “나 이거 좀 사다 줘·” 하며 친구를 보냈다· 육지에서 오는 배송비도 비싸고 온라인은 죄다 품절이기에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나하고는 몇살 차이도 안 나는데·’
그녀는 문득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가 밴드Group Sound를 좋아하는 이유는 음악이 좋아서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녀가 현재 가지지 못한 것· ‘자유로운 삶’을 그대로 체현하고 있다는 것이 컸다· 여고생 시절부터 밴드를 만들다니 그야말로 자유의 상징 아닌가· 네명 다 고등학생 신분일 때 밴드를 만들고 음악을 하며 차트에 줄세우기···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자기들 노래를 다수 올리는· ‘걸크러쉬’ 그 자체·
‘하지만 그래도 원탑은 수연 언니지·’
다른 밴드원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녀는 Group Sound의 밴드원들이 수연보다 확실히 뒤쳐진다고 생각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엄청난 외모나 작곡 실력···그런 것을 다 제외하고 봐도· 뭔가 그 알 수 없는 연륜의 아우라· 즉석에서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미치게 하는 솔로 등···비슷한 나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역량· 그런 ‘하수연’을 그 누가 싫어할 수 있겠으며 누가 다른 밴드원과 같은 급이라고 생각하겠는가·
‘언젠가 더 좋은 밴드로 갈지도 몰라· 더 나은 밴드원들이 있는···’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곧 있으면 공연이 시작할 모양이었다·
“반갑습니다· 밴드 그룹 사운드 입니다· 일단 인사는 곡으로 드렸다고 생각하구요···”
리더 수연의 말· “정식 인사 부탁드려요!” 라고 외치자 왁자지껄하게 웃음이 터진다· 그런 현지의 말에 “그럼 인사를 제대로 해 볼까요· 저는 그룹 사운드의 리더 하수연이구요···” 라는 말이 이어지고·
“두 번째 노래는 음···저희가 어제 와서 만든 곡인데요· 완전 신곡이고 약간 좀 미흡할 수도 있습니다· 좀 즉흥적인 면이 있으니까 감안하시고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말에 그녀는 눈이 번쩍 뜨였다· 신곡! 이전 공연에서 미발표곡이 나온 경우가 있다곤 했지만 그것도 첫 공연이었기에 나온 것이라고 생각해서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완전 라이브로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다니· 그녀는 떨리는 두 손을 잡아 쥐며 옆의 친구에게 말했다·
“야 대박· 너 셀카봉 있어?”
“내가 다 챙겨왔지· 니 것도 있음·”
준비성이 철저한 친구에게 찬사를 보내며 그녀는 셀카봉에 핸드폰을 채우고 녹음 준비를 했다· 그러는 와중 시작되는 노래는 확실히 이전에는 전혀 들어본 적 없는 곡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2024-02-13(화) 23:30 – 후반부 500자 가량이 추가되었습니다·
보충설명을 하는 부분으로 다시 읽으실 필요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