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07
예능 코너가 끝난 후·
“조금 쉬었다가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스태프의 쾌활한 목소리가 울려퍼지며 촬영이 잠시 멈춘다· 하린은 축 처진 상태로 망연자실해 있는 수연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하고도 좀 심했나 느껴질 정도로 영 상태가 좋지 않은 모습·
“아 피디님! 최종 벌칙은 뭐 어떤 건가요?”
“아직 고민 중인데 저희 채널 라방 관련해서 뭔가 할 것 같아요·”
피디에게 그런 이야기를 듣더니 수연을 빼놓고 숙덕이기 시작한 Group Sound 멤버들· 수연에게 들킬까봐 은근슬쩍 멀리서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그런 일에 익숙한 듯 보였다·
‘수연 님의 편은 없구나···아니 없을만 해·’
하린의 머리 속에서 고개를 치들던 동정심은 이윽고 몰려오는 과거회상의 파도에 쓸려 사라졌다· 그런 의도가 없긴 했다지만 거의 고문당하다시피 했던 그 때의 기억을 되살려 보면···전부 다 인과응보 아닐까·
하린이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악기들이 세트장으로 들어왔다· 어쿠스틱 기타와 베이스 업라이트 피아노와 드럼· 이전까지의 ‘침묵의 수련회’와는 아예 다른 광경·
“어···프로그램 컨셉이 있는데 저런 걸 써도 되나요?”
“어쩔 수 없죠· 밴드가 왔으니까· 컨셉을 어느정도 희생하는 거죠·”
지나가던 스태프를 붙잡고 아우로라의 멤버 이윤서가 질문을 던졌다· 돌아오는 답변은 평이했다· 하긴 결국 예능이라는 것도 사람이 만드는 거니까···융통성을 발휘하는 게 필요하다고 하린은 생각했다·
“튜닝 좀 만져봐· 간데 없는지·”
아까의 침울한 모습은 어딜 갔는지 악기가 들어오자마자 활기차진 수연· 하린은 그 모습을 보며 잠시 몸을 풀었다· 악기가 들어온 것을 보면 곧 촬영이 시작될 모양이었다·
“자 그럼 이제 내일 공연을 위해서···오늘 마지막으로 연습하고 자자!”
‘그런 컨셉’인 촬영이니만큼 하린은 멘트를 치고 댄스 대형으로 섰다· 오늘 연주할 곡은 [유성]· 원곡 버전의 안무는 당연하게도 외웠고 라이브 버전의 안무도···수연이 미칠듯이 몰아친 만큼 다 외우고 있었다· 하린 뿐만 아니라 아우로라 전부·
하지만 옆 쪽에서 들려온 소리는 그런 아우로라의 첫 움직임을 삐걱거리게 했다· 곡이 약간 달랐던 것이다·
하린과 멤버들이 생각하고 어젯밤 이야기를 나누었던(길게는 아니었다) 것은 그냥 단순하게 [유성]을 어쿠스틱 버전으로 바꾸기만 한 것· 하지만 Group Sound가 지금 연주하고 있는 것은 핑거스타일식 기타를 앞세운··· 재즈 풍으로 편곡된 [유성]·
살짝 처지는 분위기였던 원곡 [유성]도 라이브에 맞게 락 풍으로 불타올랐던 라이브 버전 [유성]도 아니다· 듣는 순간 어깨를 으쓱거리고 발을 구르고 싶어지는 그런 리드미컬한 느낌의 [유성]·
“왜 그러세요?”
달라진 곡에 크림 엔터의 스태프들과 아우로라가 멈춰있는 동안···신나게 기타를 연주하고 있던 수연이 기타를 멈추고 질문을 던졌다· 왜 그러냐는 얼굴로·
“아 약간 버전이 달라서·”
“음···어쿠스틱으로 해야 되기도 하니까 어제 애들이랑 연주하면서 약간 바꿨어요· 바꾼 부분이 크게 있진 않아서 춤 자체는 영향 없을 것 같은데· 혹시 원곡처럼 할까요?”
“아니 아니에요·”
하린은 그렇게 말한 후 크림 엔터 쪽의 스태프에게 OK 사인을 보냈다· 살짝 당황했을 뿐 별 문제될 일은 아니기에· 그렇게 다시 대형을 맞추고 선 하린과 아우로라·
그날 봤던 하늘은
분명 피처럼 붉어
저멀리 보여 가는
힘겨운 유성 하나
하린은 곡의 분위기에 맞춰 느긋하게 목소리를 끌어갔다· 마치 예상이라도 한 듯 거기에 아주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악기 연주· 스텝을 밟고 노래를 부르고· 다른 아이들에게 파트를 넘기고·
저마다의 이유로
꿈을 꾸듯 몰려든
수많은 삶 아래서
너는 과연 어디로
그렇게 흥겹게 추기 시작한 춤· 하린은 댄스를 추면서 멤버들의 동작을 보았다· 항상 칼각이었던 아이들의 춤선은 왠지 모르게 약간 흐트러져 있었다· 훨씬 더 다이나믹하고 아니면 조금 더 즉흥적인 그런 방향으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수많은 것들이 모두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데
너는 알고 있을까
그리고 댄스브레이크 타임 아무런 예고 없이 튀어나간 것은···아우로라의 메인 댄서인 이윤서였다· 이때까지 많이 참았다는 듯 후다닥 뛰어나간 시연은 즉흥적인 춤사위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와 잘 추네·”
전혀 계획하지 않았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유려하면서도 세련된 춤선을 보여주는 수련· 상의 하나 없이도 연주를 이어가는 리듬 악기들과 피아노 그리고 윤서에게 따라붙는 기타·
기타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인지 아니면 춤을 보고 기타가 연주되는 것인지· 알 수 없을 1분 정도의 연주가 지속되는 동안 하린은 댄스브레이크 타임이 끝날 타이밍을 재며 무의식적으로 ‘교관’이 들어올 입구를 쳐다보았다·
‘교관’이 거기 있었다·
왠지 모르게 뻘쭘한 상태로 하지만 뭔가 귀는 세트 쪽으로 열어놓은 채로· 노래를 감상하듯 감은 눈과 뛰쳐나갈지 말지 고민하는 듯한 자세·
“교관님 저기 있어···”
“헉 진짜네·”
하린은 옆에 서 있던 수련에게 그렇게 속삭였다· 그럴 만 했다· 이런 음악 저런 댄스를 어디 가서 듣고 볼 수 있을까· 예능 코너적으로 생각하면 끊어주는 게 맞겠지만 사람으로써는 좀 그랬다·
* * *
– 이번엔 어쿠스틱인가요 곡이 엄청 좋네요
– 누가 대신 편곡해준건가??
ㄴ 그룹사운드는 수연이가 편곡 혼자서 다 함· 밴드가 왜 남의 손을 빌려요
– 윤서 춤선 미쳤다 대박적 ㅠㅠㅠㅠㅠ
– 즉흥으로 추는 것도 멋진데 거기에 연주가 따라붙어주는것도···그룹사운드 밴드 여러분들은 처음 보는데 진짜 완전 천재인듯 다들
– 23:10 교관분 나오려고 하다가 얼어붙은 상태로 감상하는거 개욱김lol
[[SUB] ⛺️ EP 1-1 | 사상 초유! 2개 그룹 동시 출연! 아우로라가 떠받드는 그 그룹은 과연 누구?! | 침묵의 수련회 X 아우로라 X 그룹 사운드]
아우로라와 Group Sound가 받아든 콜라보 성적표· 재생시간 30분· 에피소드 2개· 각각 조회수 100만까지 걸린 시간 단 이틀·
“완전 대박!!”
조회수 이야기를 들은 정유영 과장이 사무실에서 종이를 휙하고 머리 위로 던질 정도로 엄청난 성과· 게다가 그 조회수는 단순히 조회수로만 기능하지는 않았다· 영상 공개 직후부터 그 이후로 계속···Group Sound에 유입되는 팬들이 늘어나는 게 눈에 보일 정도·
그 현상을 본 [레이블 에코사운드]의 직원들은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라는 격언대로 노를 젓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신규 EP 발매 관련 컨텐츠를 준비하고 홍보 준비를 하고· 물이 들어오고 배가 준비되면 바로 출발할 수 있게끔·
하지만 준비는 끝없이 길어지고 있었다· 배가 준비가 안 되었다던지 선원들이 컨디션이 안 좋다던지···그런 이유는 아니었다·
[“[유성]! 이번에 발매된 곡 엄청 좋았거든요· 이야기 좀 들어볼 수 있을까요?”]
[“아 [유성]이 저희가 원래는 그 곡으로 갈 계획이 전혀 아니었거든요· 원래는 아예 다른 곡 준비했었는데· 그런데 갑자기 곡이 엎어지면서 다른 곡 들어온다고 해서·”]
[“아 이야기 들었어요· 그때 막 소문 엄청 흉흉하던데·”]
[“네· 저희도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길래 이게 맞나···? 싶었는데 맞더라고요·”]
[“보통 그런 일 생기면 잘 안 되는게 보통인데 말이죠·”]
[“네· 진짜 그룹 사운드 분들···특히 하수연 리더님이 정말 곡을 잘 써주셔서· 그룹 사운드 분들도 진짜 연주 엄청 잘해주시고· 그룹 사운드 분들이 진짜 최고입니다· 여러분 그룹 사운드 곡 들어주세요· 저희 곡 말고 좀 있으면 신규 EP가 나온다고 하거든요?”]
출연한 모든 예능에서 Group Sound 이야기를 늘어놓은 하린과 아우로라 멤버들· 그런 무차별 TMI 살포는 음악에 관심이 없던 대중들조차도 ‘아니 그룹 사운드가 누군데·’ 같은 생각을 가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Plastic Nostalgia]나 [별이 되어가는 것] 같은 음반을 찾아본 뒤···적지 않은 확률로 Group Sound의 잠재적 고객이 되었다· ‘앨범 나오면 무조건 들어야지’ 나 ‘앨범 나오면 좋아요 눌러놔야지’· 혹은 낮은 확률로 ‘앨범 나오면 무조건 사야겠다’ 까지·
그렇게 Group Sound의 신규 Ep에 대한 기대감이···조금씩 끓어오르고 있었다·
* * *
“그럼 틀어볼게·”
그렇게 말하고 곡을 재생하는 수연· 이서는 가만히 앉아 귀를 기울였다· 피크의 어택감이 아주 쫀득하게 느껴지는 인트로의 기타· 그리고 도톨도톨한 요철처럼 들어가 있는 베이스· 툭툭 치는 듯한 드럼과 배경에서 아름답게 연주되는 피아노·
딱 생각 그대로의 곡·
“이거···진짜 완전···엄청 어···”
“고생 좀 했다 내가·”
감탄하고 있는 곡의 원작자 현아· 그리고 자신이 엄청 고생을 했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수연·
그럴 만 했다·
처음 현아가 들고 왔던 곡은 지금과는 완전 차원이 다른 느낌의 곡이었으니까· 사실 그 곡와 지금의 이 곡이 같은 것은 멜로디 정도 밖에 없지 않나 하고 이서는 생각했다· 아니 멜로디도 약간 다른 느낌···
“다른 곡들도 이거랑 비슷하게 내가 좀 손보긴 했지·”
“그럼 네가 다 한 거 아냐?”
“그건 아니고· 아무튼 결국 중요한 건 메인 멜로디···라기 보다는 뭐· 그 곡이 지향하고 있는 감성 같은 거니까·”
그렇게 말하는 수연의 목소리에는 위로나 위안 같은 것은 전혀 섞여있지 않았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는 느낌에 이서는 작은 안도감을 느꼈다· 거짓말이 아니구나 하고·
[Plastic Nostalgia]는 온전히 수연이 다 만든 앨범이다· 작사 정도는 이서가 했지만 그 외에는 전부 다···편곡 정도를 빼면 모두 수연이 만들었다·
[별이 되어가는 것]은 처음에는 멤버들이 작곡에 참여할 수 있게끔 하겠다고 수연이 말하긴 했다· 그리고 실제로 참여도 했지만···지나고 보니 결국 수연이 다 만든 느낌이었다· 약간 뭐라고 해야 할까· 멤버들은 수연이 내민 숟가락에 올라간 음식을 받아먹기만 했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유료 와이파이]는···
‘이제는 조금 참여를 했다고 말해도 될 수준이려나·’
처음부터 끝까지 멜로디와 기본적인 곡의 정서까지도 수연이 관여했던 [별이 되어가는 것]· 하지만 [유료 와이파이]에서 멤버들이 쓴 곡 3개···최소한 이서 자신이 만든 곡의 경우에는 곡의 정서라던지 멜로디라던지 가사라던지 하는 부분에서 수연의 간섭이 없었다· 수연이 손 댄 부분은 그 외 부분·
“일단 이대로 이제 마스터링 스튜디오에 보낼 거고· 그 다음···정 과장님이 EP 발매 일정 관련해서 어···내년 초에 피지컬 앨범 나간다고 했었고· 연말에 소규모 콘서트 나간다고 했었던 거는 기억하지?”
“이번에도 프리미엄 한정?”
“글쎄· 그건 잘 모르겠네· 아무튼 그때 셋리스트는···지금 만들고 있긴 한데· 선공개곡은 그 전에 미리 나갈 거고 EP 곡들은···연말 콘서트에서 최초 공개할거니까 어디 가서 이거 막 들려주지 말고·”
“그건 서하 언니한테 말해· 요즘 라방하면서 막 시청자들이랑 이야기하는 거 엄청 재미들렸던데·”
그 말에 수연은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서하를 쳐다보았다· “나 아무 짓도 안 했어·” “나도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라는 바보같은 대화가 오가는 가운데·
“아무튼 이번에도 앨범이 나오는구나·”
이서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EP라지만 벌써 3번째 앨범이라니· 낙원상가 복도에서 수연을 만났던 그 날의 자신은 절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일이 이까지 올 것이라고는·
“다음에도 계속해서 내야지 앨범·”
“그래야겠지?”
수연의 중얼거림에 이서는 씩 웃었다·
* * *
Group Sound의 신규 EP [유료 와이파이]· 그 소식을 들은 뒤로부터 그녀는 도파민을 자제하고 수도승의 삶을 살았다· 그 때· 할 일 없이 카페에 드러누워서 차트를 둘러보다 맨 처음 [공중정원]을 들었을 때· 그 때의 감정을 그대로 느끼고 싶어서·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한 것은 그녀 뿐만이 아니었는지 그녀의 친구도 ‘도파민 제로 라이프’에 동참을 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릴스도 쇼츠도 멀리한 채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고· 학교 애들이 “쟤들 정신 나갔음·” 이라고 이야기를 해도 허허허 하고 웃어넘기는 그런 삶·
그리고 그런 삶에 종지부를 찍을 날이 왔다·
“공개됐다!!”
끝없이 눌러지던 새로고침은 [유료 와이파이]라는 글자가 보이자마자 멈췄다· 그리고 그녀는 바로 심호흡을 한번 한 뒤 경건하게 이어폰을 끼고 정면을 응시했다· 친구도 마찬가지로 그런 자세로 그녀와 눈을 마주쳐왔다·
재생·
학교에서 멀어지는 길
와이파이의 신호가 끊겨
실이 떨어진 어느 한 인형과 같이
멈춰버린 화면 안 사람은
바로 나였어
이어폰에서 들리는 것은···항상 그래왔듯이 이서의 목소리···가 아니다· 라이브 환경에서는 가끔 들을 수 있었으나 음원으로는 거의 처음 듣는 것 같은···
“미친 수연이가 노래 불렀어·”
여고생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참고로 하수연이 그녀보다 나이가 더 많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카레가니카레냐 님 20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3월 15일 후원이라 16/17일날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제가 보기만 하고 깜빡하고 말았습니다 ㅠㅠ 죄송합니다!
오늘의 추천곡은 Steve Ray Vaughan – Little Wing 입니다! Jimi Hendrix 버전과는 많은 부분이 다르고 해서 상당히 재미있는 곡이에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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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회차는 과거(촬영 당시)와 현재(영상 공개 시점)가 교차하고 있으니 참고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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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지각을 하고 말았습니다· 패널티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글이 늦게 쓰여지는 것은 막을 수가 없는 것 같네요·
토요일 연재···해야겠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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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부 650자 가량이 추가되었습니다!!
꼭 보셔야 하는 내용입니다!!
(아닐 수도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