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10
“그럼 이제 가시죠!”
그렇게 말하는 정유영 과장의 뒤를 아윤과 Group Sound 팬들은 쫄래쫄래 따라가기 시작했다· 가장 어두울 시간의 차가운 공기를 지나 방송국 안으로· 어두컴컴한 복도가 이어지다가 어느새 철제 문 앞에 도달한 그들·
문이 열리고 아윤은 앞으로 무작정 걸었다· 2층 정도 높이의 계단을 걸어 올라간 곳은 관객석 중간쯤· 그리고 그 밑으로 보이는 무대는···아윤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드높히 솟은 철 골조 구조물· 늘어진 덩쿨· 무대 군데군데 널부러지고 부서진 티비와 냉장고 그 외 조형물들· 마치 쇠퇴해버린 도시를 보는 듯한·
그리고 그런 조형물 사이에 놓여있는 것은 4개의 악기였다· 기타 베이스 키보드 드럼· 주인인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외롭게 두어진 네 가지 도구·
“분위기 장난 아니다·”
관중석으로 걸어가는 와중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아윤도 동감이었다· 사녹은 무대 세팅도 힘줘서 한다더니 진짜 제대로 했구나 생각이 드는 무대였다·
“안녕하세요·”
그렇게 잠시 기다리고 있자 들어오는 네 사람· 환호가 이어지는 중 수연이 마이크를 잡고 인사를 했다·
“새벽부터 기다리시는데 저희가 뭐 해드릴 수 있는 것도 없고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그냥 공연 해주는거만 해도 좋아요!!”
“그건 거짓말이지·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진짜에요!!”
“거짓말같은데···”
“아니 너 왜 팬들 말을 못 믿어· 그렇다고 하잖아·”
“너 아플때 부모님이 괜찮냐고 하면 죽을만큼 아프다고 하냐? 괜찮다고 하지?”
“나는 아프다고 하는데?”
“너는 안되겠다·”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수연· 그리고 “뭐가 안돼 뭐가·” 라며 수연의 옆구리를 퍽 치는 이서· 괴로워하는 수연을 두고 “어떡해!” 하며 걱정하는 소리와 대다수의 웃음이 이어진다· 그렇게 약간의 대화 이후 멤버들은 다 각자의 자리로 이동했다·
“카메라 리허설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준비되시면 신호 보내주세요!”
스태프의 목소리· Group Sound의 멤버들은 서로 마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려쳐지는 드럼 스틱· 하나 둘 셋 넷·
학교에서 멀어지는 길
와이파이의 신호가 끊겨
실이 떨어진 인형처럼
멈춰버린 화면 안 사람
나지막히 읇조리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베이스 드럼· 리드미컬하게 울리는 두 악기의 소리는 사람의 심장 속까지 떨리게 하는 듯한 무게를 가졌다·
어차피 버려야 할 인연이라면
이렇게 끝을 내는 것도
아니 다시 되짚어보면
그래야 하는 것 같지는 않아
짧은 스트로크가 들어온다· 파밧- 하고· 주된 라인은 베이스에게 맡긴 채로 수연은 짤막하게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이 곡 속 자기의 역할은 이것뿐이라는 듯·
끊겨 버린 와이 파이의 신호처럼
나는 오늘도 하늘을 표류하며
스쳐가는 인연뿐인 이 시간만을
그저 바라볼 뿐
두 음절씩 끊어지며 불러지는 노래· 공식 응원법 같은 것이 없는 Group Sound의 팬들은 발을 조금씩 구르며 리듬을 맞추었다· 조금씩 올라가는 음 그리고 1절의 하이라이트·
지금부터는
요금을 내셔야 합니다
언제까지
공짜로 쓰실 생각인가요
세상 일은
전부 주고 받음이 전제된 것
이제부턴
돈을 내셔야 한다는 걸 알아두세요
원래 다 이런거랍니다
아리송한 그래서 더 좋은 느낌의· 그런 가사가 울려퍼진다· 수연은 기타를 치던 손을 가만히 놓은 채 소리높여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약간의 베이스·
“애들 긴장 하나도 안 한 것 같아요·”
“그렇죠?”
“뭐 원래 콘서트나 이런 데서도 그냥 막 해버리는 애들이었으니까·”
그 타임을 빌어 아윤은 주변 관객들과 이야기를 했다· 몇번 방송에 서 봤다지만 그래도 이건 ‘음악방송’인데· 조금이나마 긴장을 할 만한데 전혀 그렇지 않은 네 명의 아이들· 아니 오히려 긴장을 너무 안 한 것 같기도 했다· 간주 사이 수연은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싱긋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고 있었으니까·
잠겨 버린 와이 파이의 암호처럼
나는 오늘도 과거를 그리워하며
마주 앉은 그 시간의 기억속에서
과거만 뇌까릴 뿐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노래· 아윤은 주먹을 꽉 쥐고는 옆의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아까 전 대기하고 있을 때 이야기가 나왔던 것· 한번쯤은 해 주고 싶었던 이벤트· 첫 음방 출연을 기념하기 위해 카메라 리허설때라도·
모르셨나요
“사회는 원래 이런 거랍니다!”
관객석 중 일부에서 수연의 노래에 대답하는 듯 떼창이 터져나왔다· 거기에 아주 약간 비틀리다가 다시 제 리듬을 타는 연주· 수연은 약간 놀란 듯 눈썹을 움찔한 뒤 미소를 지으며 계속해서 노래를 이어갔다·
당신은 아직
“제대로 배우지 못했어요”
속고 속이는
“세상 사가 다 그런 법인데”
이제라도
“알아뒀으니 다행인 거야···”
돌아갈 방법은 없으니까
그리고 다시 울리는 베이스의 간주· 화려하게 움직이는 이서의 손가락· 그 위로 수연의 보컬이 얹어진다·
시간을 다시 돌려도
돌아오지 못할 때
놓쳐버린 기회에
끝없이 슬퍼 할 때
와이파이의 신호가
다시 나를 붙잡아 가면
어쩌면 그건
하나의 꿈일지도···
그리고 곡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허밍의 파트· 수연은 기타의 스트로크를 치며 관객석을 바라보았다· 마치 들려올 것을 안다는 듯· 그리고 거기에 답해 관객들은 아까와는 달리 예고된 상태로 허밍을 했다·
짧은 4분간의 교감은 그렇게 끝났다·
* * *
“저희 생각에는 떼창을 넣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저희야 뭐 좋죠·”
전혀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터져나온 떼창· 음악방송의 스태프는 “너무 잠잠해서 좀 걱정했는데 다행이에요·” 라고 이야기를 했다· 사녹에 참여하는 다른 아이돌 팬들은 응원방법도 준비해서 야광봉을 흔들고 소리를 지르고 구호를 부르고 난리인데 Group Sound의 팬들은 밴드라 그런지 그런 게 없어서 뭔가 호응이 너무 적어보였다고·
“응원법이 원래 없으신가요?”
“저희는 밴드니까· 그런 건 원래 없죠·”
“밴드는 그런 게 없구나···”
스태프는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가 “그럼 엔딩요정 같은 건 어떻게 할까요? 아까전엔 그냥 별 말 없으셔서 없이 갔는데·” 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게 뭐냐는 듯 수연은 스태프를 쳐다보았고 옆에서 서하가 튀어나와 설명을 곁들였다·
“마지막 끝날때 클로즈업으로 이제 사람 한명 잡아주면서 길게 여운 끌고 가는 뭐 그런 장면을 엔딩요정이라고 하는데···”
“굳이 그런 거 해야 하나·”
“지정해주시면 좋죠· 요즘은 다 하는 분위기라서요·”
“연수 니가 해야지· 그거 알지? 엔딩요정은 항상 도도하고 치명적으로 딱 포즈 잡아주는 거· 노래 끝났는데 이제 섹도시발스럽게 표정 딱 잡고···”
“너 아까 관객석에서 떼창 터질때 연주 꼬이는 거 내가 들었거든? 회사 들어가면 보자·”
놀릴 수 있는 기회에 신나게 놀리려고 달려들었다가 전문적인 영역에서 두들겨맞고는 침울해진 이서· 수연은 잠시 스태프와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눈 뒤 말했다·
“뭐 그럼 본 촬영 들어가시죠·”
* * *
“무대 한번 더 녹화할건데 끝나시고 바로 가시면 안 돼요~! 아까 모이셨던 집합장소로 가계시길 부탁드릴게요! 가시면 후회합니다 진짜로! 농담 아니고!”
정유영 과장의 당부· 그리고 마지막 녹화· 아윤은 새벽까지 밤샌 정신과 흐물흐물해진 육체를 이끌고 빨리 집에 가서 눕고 싶었지만 정 과장의 이야기가 있어 최대한 참았다· 그 뿐만 아니라 슬쩍 가버리려는 팬들까지 최대한 단속을 했다·
“지금 가시면 안 될걸요·”
“저 너무 피곤해요···”
“정 과장님이 그런 말 농담으로 잘 안 하시니까· 조금 기다려보죠·”
아윤은 팬클럽 회장(전)의 책무로서 사람들을 단속하며 기다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쩍슬쩍 사라지는 몇몇 팬들· 아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인내심이 점점 사라지고 있을 때 그들 앞에 와서 슥 서는 두 대의 밴·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와 아직 많이 계셔!”
“안녕···하세요···”
“너는 왜 팬 분들을 못 믿어?”
“아···안녕하세요!”
내린 것은 Group Sound 멤버들· 몇몇 팬들은 “잘못 봤나?” “진짜야?” 같은 소리를 하는 가운데· 아윤에게 다가선 수연은 아윤의 손을 덥석 잡았다·
“아이고 추운데 고생 많으셨어요·”
“네?? 네???”
말을 잃고 패닉 상태에 빠진 아윤· 수연은 잠시 아윤의 손을 주무르며 녹여주다가 옆에 있던 다른 사람도 안아주었다· 패닉 상태에 빠진 사람이 한명 더 늘어난 상태·
“저희 오늘 사녹 기다려주신 분들을 위해서 간단하게 싸인해드리고 사진 찍고 선물 좀 드리려고 하거든요! 뒤로 조금만 줄 서주시면 금방금방 해드릴테니까 줄 부탁드릴게요!”
새벽녘이 올라오는 거리에서 정유영 과장의 말이 약하게 울렸다· 그리고 일사불란하게 줄을 서는 팬들· 맨 앞의 아윤은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수연이 안겨주는 쇼핑백 하나를 받아들었다·
“오늘 추운데 고생 많으셨어요· 몸 잘 챙기시고 건강하시고· 우리가 부르긴 했지만 이런 곳에 오는 거 건강에 좋지 않거든요? 음악 들어주시는 것도 좋은데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선생님 건강이니까요·”
“아 네 네···”
아윤은 걱정해주는 수연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평생 Group Sound에게 충성하리라고· 그리고 이 은혜를 만국에 알리리라고···
* * *
[종로구비공식명예구민 @GRPSNDFCnonOff
이번에 사녹 참여했을때 받은 역조공!! 진짜 우리애들 너무너무고마워서 눈물한바가지쏟음···수연이 막 우리 걱정돼서 관객 없이 해도 되니까 이런데오지말라고···새벽에 기다리고 이러면 건강 나빠진다며···]
[종로구비공식명예구민 @GRPSNDFCnonOff
역조공내용품!! 친필사인시디!! 애들이 왠지 직접 오려서 만든 것 같은 포카 lol 도시락이랑 막 이것저것 들어있어요!! 손편지도 진짜 개감격 ㅠㅠㅠㅠㅠ]
수연은 커뮤니티에 올라간 [사녹 밴드 역조공 근황 ㄷㄷㄷㄷㄷㄷㄷ ·jpg] 게시물을 보았다· 현아의 아이디어였던 역조공은 커뮤니티에 각종 찬사와 호평을 받으며 홍보 효과를 톡톡히 내고 있었다·
그런 게시물을 잠시 보며 몇몇 악플을 캡쳐해두던 수연은 다시 원래 보려던 유튜브로 마우스를 돌렸다· 그들이 출연한 음악방송 영상· 조회수는 이상하게도 상당히 높았다· 공개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백만을 가볍게 돌파해버린 상태·
‘우리 영상은 뭐 직캠이니 뭐니 그런 게 볼게 없을텐데···’
얼마 전에 정 과장에게 들었던 이야기· 요즘의 음악방송은 대체로 시청률보다는 케이팝 전용 초대형 유튜브 스튜디오로 변해버렸기 때문에···시청률도 시청률이지만 유튜브로 수익이 나는 구조로 변화해버렸다고 했던가·
“그때 막 그러더라고요· 그 피디가 술에 취해서 자기 예능국장한테 칭찬들었다고 다시 나오면 안 되냐고···”
“또 나가기는 좀· 팬들 고생도 시키고 그러는 게 마음이 안 좋아서·”
“그렇긴 해요· 우리같은 밴드는 약간 그런 데 출연 자제하는 것도 일종의 마케팅이라·”
정유영 과장과 나누었던 대화· 수연은 그 대화를 떠올리며 영상을 쭉 다시 보았다· 평이한 무대가 이어진 다음 마지막으로 클로즈업되는 자신의 얼굴· 왠지 버티기 힘든 기분이라 수연은 바로 영상을 꺼버렸다·
“야 대박! 대박 대박·”
그렇게 잠시간 놀다가 다시 작업에 들어가려는 수연을 방해한 것은 이서의 목소리였다· 마치 수연에게 뭔가를 전달해야 한다는 듯 헐레벌떡 뛰어온 이서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핸드폰 화면부터 들이밀었다·
“이거 봐!”
“아니 뭘 보라는 거야· 말을 해 주고 보라고 하던가·”
“그러니까 이거 봐·”
이서가 들이민 것은 누군가의 정보가 적혀 있는 엑셀 파일· 영어로 기입된 이름은 분명 영어였음에도 불구하고 생소한 언어라는 느낌을 주었다·
“어 이거 어떻게 읽는 거지·”
“타카하시 나오토· 그 옆에는 와타나베 사야카· 코바야시 미사키·”
“일본인 이름이잖아·”
수연은 머리를 살짝 꼬았다· 일본인이라· 일본인이 왜 가입했지· 아니 해외에서 건너서 가입하는 경우가 당연히 있긴 하겠지만···
“총무팀 박 대리님이 그러는데 지금 프리미엄 가입하는 일본인들이 꽤 있대! 굿즈도 해외에서 주문하고 투어 문의도 막 들어오고 그런다고 하던데?”
“그렇다고?”
이서의 말에 수연은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유튜브를 열어 아까 전 봤던 영상을 재생시켰다· 몇번이고 봤던 그 영상· 댓글에는 한국인들의 흔적이 가득한 가운데 정렬 기준을 최신 순으로 눌러보니···
[このバンドの曲いいね〜おすすめされたんだけど、いい感じだと思うよ·]
(이 밴드 노래 좋네요~ 추천받았는데 괜찮은 것 같아요·)
[以前、Twitterでライブの動画を見たことがあって、それが良かったんだ。こんなところに出てくるのを見ると、確信に変わるね。]
(이전에 트위터에서 공연 영상 봤었는데 괜찮았음· 이런 데 나오는 거 보니까 확신하게 됨·)
일본어 댓글들이 꽤나 많이 달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