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12
“죽고 싶다고요?”
“네·”
“아니 왜?”
“엄청 잘 어울리는데·”
“아무튼 죽고 싶어요·”
이쁘다고 오두방정을 떠는 아우로라와 ‘채널 전데용’ 스태프들· 그리고 부끄러운 지 살짝 낯을 붉힌 채 손을 이리저리 두지 못한 채 왔다갔다하며 눈이 뱅글뱅글 도는 수연· 그런 수연을 카메라 앞에 가져다놓은 채 낄낄대고 있는 Group Sound 멤버들·
“콘서트나 방송 의상 보면 그거보다 노출 많은 것도 입은 적 있었잖아요? 그런데 지금 너무 부끄러워 하는 것 같은데·”
“그건 일이고 이건···”
가은 피디의 질문에 수연은 말을 흐렸다· 그랬다· 어찌되었든 그런 건 일이니까· 이런 거 입고 일을 하라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제복을 입고 부끄러워 하는 사람은 없다···수연은 그런 느낌으로 이제까지 무대 의상을 입어왔다·
하지만 지금은? 이것은 일도 아니요(정확하게는 일이 맞긴 했지만) 목적 또한 수연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주기 위해서다· 이럴때는 ‘부끄러워 하는 쪽이 지는 것이다’ 라는 정신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 제일 좋으나 그렇게 하기에는 수연의 정신력이 최소한 이런 방면으로는 그렇게 단단하진 않았다·
“아무튼 이런 건 좀···”
“잘 어울린다니까요~”
“잘 어울리는 거랑은 별개죠·”
이런 의상이 잘 어울린다니 분명 칭찬으로 하는 이야기겠지만· 수연은 전혀 그것을 칭찬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치욕에 부들부들 떨며 수연은 빛이 사라진 눈으로 저 멀리서 “저거 봐 저거·” 라고 말하고 있는 Group Sound 멤버 3인방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움찔하는 세 사람·
“수연 님 그 캐릭터 어떤 건지 아세요?”
“전혀 모르는데요·”
“이 노래 들어보신 적 없으세요?”
흘러나오는 노래는 확실히 전에 들어본 적 있는 노래였다· 무슨 일본 만화영화 주제가라고 했던 것 같은데· 유명한 곡이라 기타로 몇번 카피를 해 보긴 했지만 결국 흥미가 가는 곡은 아니었기에 그냥 기억 저 너머로 버려둔 그런 곡·
“들어본 적은 있는데···”
“이걸 몰라?”
無敵の笑顔で荒らすメディア
知りたいその秘密ミステリアス
막춤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동작을 하면서 발바닥으로 바닥을 쓸고 다니며 노래를 부르는 이서· 웃기게도 거기에 호응을 해서 같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아우로라 멤버들이 있었다· 그렇게 서로 막 노래를 부르면서 서로 신을 내던 아이들·
“수연 님도 그 옷 입으셨으니까 참여하셔야죠!”
“저는 좀·”
“아니 그렇게 옷 입어놓고서 뭘 빼는 거야· 이럴 때 재미있게 놀아야 이제 팬들도 막 생기고 그러는···”
“나는 안 원했는데 니가 입혔잖아·”
“그러지 말고!”
수연의 어깨를 잡고 순식간에 카메라 앞으로 가져다놓는 이서· 수연은 빠르게 몸을 털어 뿌리치며 아까 전에 있던 자리로 도망가려 했지만 이서의 완력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왜 자꾸 도망가려고 그래·”
“맞아요···입었으니까 한번 즐겨야···”
“너도 입어·”
“저는 좀···수연 님이니까 어울리는···흐힛힛·”
그렇게 비웃으며 도망가버리는 현아· 수연은 그런 현아의 머리채를 잡고 싶었지만 그런 움직임은 허용되지 않았다·
“자 일단 시그니쳐 포즈! 손 들고 역브이자로 이렇게!”
“하기 싫다니까·”
“하기 싫어도 해야 되는게 프로인거야!”
이서는 그렇게 말하며 이미 포기한 수연의 팔을 치켜들어 포즈를 취하게 했다· 그렇게 있으니 옆에서 찰칵찰칵 들려오는 소리· 하린이 사진을 찍는 장면· 수연은 그 상황을 죽은 눈으로 쳐다보다가 컴퓨터 채팅창을 살짝 바라보았다·
– 귀여워 lol
– 수연님 진짜 하찮음 lol
– lol
– 의욕없어보이는게 개웃김 lol
– 아 지나ㅉ 너무귀엽다
– 왜 멤버들이 다 괴롭히는지 알 것 같음 lol
‘도대체 뭐가 귀엽고 뭐가 그렇다는 거냐 뭐가···’
“자! 이제 춤도 춰 봐야지!”
“그만해···”
마리오네트라는 것이 있다· 나무로 된 인형에 줄을 매달아 위에서 조정하는 것을 말한다· 수연이 지금 처한 상황이 바로 그것과 같았다· 마치 마리오네트처럼 아무런 영혼도 진심도 없이 그저 이서에게 팔만 덜렁 들려 춤을 추고 있는 기괴한 모습·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깔깔대며 같이 노는 아우로라 멤버들과 영상을 찍어대며 놀릴 거리를 적립하고 있는 Group Sound 멤버들·
–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채팅창의 한마디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완벽하게 요약해주고 있었다·
* * *
그런 떠들썩한 일이 벌어진 뒤 [유료 와이파이] EP가 발매되었다· 가격은 12900원· 수록곡은 5개·
1· 유료 와이파이· (선공개 싱글 타이틀)
2· 바라마지않는 것·
3· 세상의 끝에서·
4· 비신·
5· 때에 따라서는·
그리고 미공개 라이브 영상이 첨부되어 있는 그런 간단한 구성·
이전의 앨범처럼 친필 사인 카드를 넣는다던가 한정트랙 혹은 히든 트랙을 넣는다던가 하는 상술은 일절 발휘되지 않은 앨범· 기껏해야 시디 디자인이 다르고 같이 포함된 포토카드 정도가 다를 뿐 나머지는 전부 동일한·
그런 앨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앨범 판매량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 주 초동 음반 판매량은 11347장입니다!”
“이전보다 많이 팔렸네요·”
10% 가량 증가한 초동 판매량· 정유영 과장의 말에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여유롭게 이야기를 하는 혜인· 하지만 수연은 보았다· 혜인이 두 손 모아 기도를 하는 장면을· 애초에 EP에다가 구성품이 그렇게 좋지도 않아서 많이 팔릴거라는 기대 자체를 하면 안 되는데도·
“극적으로 늘어난 판매량은 아닙니다만! 앨범 구성을 좀 각박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앨범이 많이 팔렸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앨범 이야기를 좀 많이 하긴 했으니까요·”
오늘 날 음원을 듣기 위해서 앨범을 사는 사람은 최소한 한국에서는 거의 없다· 아직 일본에는 있을지는 몰라도·
그 때문에 수연은 SNS나 라이브 방송 등을 할 기회만 있으면 “앨범 사주세요· 라이브 영상도 첨부되어 있습니다·” 등을 이야기했다·딱히 돈을 벌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락 밴드라면 앨범 판매량으로 증명하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하는 그런 구시대적 사고방식의 발로였을 뿐·
하지만 그런 마음에 팬들이 보답을 해 준 것인지 아니면 미공개 라이브 영상이나 포토카드가 얻고 싶은 것인지는 몰라도···팬들은 꽤나 많은 양의 앨범을 사 주었다·
“이번 앨범은 프로모션도 그렇게 많이 돌린 편이 아니라서 손익분기점은 아주 빠른 시간 내에 돌파하게 될 것 같습니다!”
“현재 예정된 스케줄이 어떻게 되죠?”
“음···이제 며칠 뒤에 콘서트 한번 하고! 상반기쯤에 체조경기장에서 콘서트를 들어갈 예정이네요!”
정유영의 말에 수연은 머리를 살짝 꼬았다· 두 번의 콘서트를 끝내면 그 뒤로는···일본 활동에 집중하게 되겠지·
‘한국에서 못 이룬 것들도 꽤나 있긴 하지만···’
예를 들어 음원 차트 1위라던가· 혹은 음악 관련 상을 수상한다던가 그런 일들· 음반을 10만장 정도 팔아본다 하는 거라던가 진짜 대중친화적인 가수들만 할 수 있다는 3만석 5만석 공연 같은 것도 아직 해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성공하는 것은 좋지· 하지만···’
체조경기장에서 공연을 해야 한다· 단독 콘서트를 열어야 한다· 정규 앨범을 내야 한다· EP를 내야 한다· 자작곡으로 인정을 받아야 한다···그런 이야기들 목표들· 수연이 이제까지 이루어왔던 것들·
사실 그러한 것들은 다시 생각해보면···진짜 목표라고 할 것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과거 이루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미련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었던 것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그런 미련조차 장충체육관 콘서트로 다 털어버렸으니·
부유하는 생각은 내려앉을 데를 모른다· 수연은 무의식적으로 바깥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밀어냈다· 음악에는 끝이 없다지만 무엇을 목표로 삼아야 할지 모르는 상태·
최근에 곡이 잘 나오지 않았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일지도·
“···연 님! 수연 님!”
“아 잠시 생각하고 있었네요· 죄송합니다· 무슨 일이신가요·”
“네! 아무튼 얼마 전에 이야기 하셨잖아요? 일본 시장 파악 관련해서! 한번 일본에 가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고 계신가 해서요!”
“일본이요·”
수연은 잠시 고개를 내려 손 끝을 바라보았다· 딱히 문제는 없는 잘 정돈된 손 끝· 일본이라· 음악의 나라 밴드의 나라 락의 나라·
‘이뤄야 할 것은 이제 다 이뤘지·’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이루고 싶은 것을 이뤄야 할 시간인가· 수연은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하시죠·”
“네! 그러면 자세한 스케쥴은···”
이뤄야 할 것은 이제 다 이루었으니 이제는 이루고 싶은 것을 이룰 시간· 과연 자신의 음악은 어디까지 가 닿을 수 있을 것인가· 수연은 그것이 궁금했다·
과연 수연의 음악은 수연의 밴드···Group Sound는 일본에서 성공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성공의 척도인···부도칸(武道館)·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그리고 도쿄 돔· 그런 곳에서 공연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할 수 있게끔 만들어야겠지·’
수연은 그렇게 생각했다·
* * *
올림픽홀에서 열린 Group Sound의 연말 콘서트도 양일 매진에 성공했으며···성황리에 종료를 맞이했다· 앨범 판매량도 순조롭게 이전 앨범에서 팔았던 최대 판매량인 3만장을 향해서 다가가는 중·
그렇게 바쁘게 하루하루가 흘러가는 가운데 해가 넘어가고· 바쁘게 움직이던 연초가 끝난 이후 수연이 한 숨 돌릴 수 있는 시기가 오자 한 것은·
“어서 오세요·”
얼굴을 보지도 않고 들어오는 소리만 들어도 자동으로 나오는 인사· 수연은 보이지도 않는 카운터에 반사적으로 고개만 까딱 숙이고는 그 상태 그대로 땅으로 눈을 깔며 걸었다· 손으로 집은 것은 육개장 사발 하나· 참이슬 빨간 뚜껑 하나·
“라일락 하나 주세요·”
“라일락···이요?”
“네· 라일락·”
꺼내준 담배는 곽이 없이 말랑말랑하다· 담배를 집어들려 하는데 점원이 빠르게 입을 열었다·
“아 신분증 검사 좀 할게요·”
“네·”
채 잉크가 마르지도 않았을 것 같은 주민등록증· 마스크를 벗어주자 알바는 사진과 얼굴을 이리저리 확인하더니 다시 주민등록증을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인사를 남기고 나온 편의점· 바깥 테이블에 소주와 담배를 올려놓고 수연은 다시 들어가 라면에 물을 받았다· 그런 다음 다시 나와 롱패딩이라는 존재에 감사하며 라면이 익기를 기다린다·
‘담배 같은 것도 옛날 것들이 너무 많이 사라졌어·’
수연이 ‘서명전’이었던 시절 피웠던 담배는 맨 처음에는 아리랑이었고 그 다음은 솔· 단종되기 전까지는 장미를 피웠었다· 단종이 된 다음에는 양담배니 젊은 애들이 피는 담배니를 다 피워보다가···결국 라일락을 피우게 되었다·
‘요즘은 뭔 건강 생각하면서 담배 핀다고 전자담배니 0·1mm니 이야기하던데···’
그럴 거면 애초에 담배를 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하는 것이 수연의 생각이었다· 건강 나빠지려고 피우는 건데 도대체 뭐 하는 건가· 그런 수연을 깨운 것은 핸드폰 알람이었다·
딱 3분·
컵라면의 뚜껑을 열고 젓가락으로 집어든다· 살짝 덜 익은 면에서 올라오는 수증기가 날씨를 짐작할 수 있게 했다· 약간 움직여 국물을 털어낸 다음 수연은 바로 면발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거지·
단지 저축이니 부귀영화니를 누리지 못했을 뿐 ‘서명전’은 부족함 없이 잘 살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날이 있다· 그냥 아무것도 없이 편의점 앞 테이블에서 대충 안주 아무거나 집고 술이나 마시면서 담배 피고· 그렇게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 날·
‘한동안 못할 테니까 즐겨 놔야겠지·’
일본에 가면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겠지만 일본에서 육개장 사발면과 참이슬과 라일락을 찾을 수 있을까? 힘들 것이다· 그러니 먼저 즐겨놔야 한다· 몇년을 참았던 그 욕망을 미리 풀어놓고 가야 맑은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법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수연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으레 그렇듯 거세게 숨을 빨아댕겼다· 그리고···
“크헉! 케헥 엑 어억·”
물밀듯이 밀려오는 니코틴과 타르의 파도에 고통받았다·
그렇다·
과거 ‘하수연’은 담배는 그냥 ‘간지’로만 장착하고 다녔던 아이· 애들 앞에서 폼 잡는다고 한두개 정도 피는 것이 전부· 술이야 줄창 마셨지만 담배는 불 안 붙이고 다닐 때도 많았다·
그런 몸인데다가 담배를 입에도 안 댄 것이 어언 2년이 넘어가는 시점· 게다가 원래 수연이 피던 것과는 다른 독한 담배· 과거 수십년동안 폐암 걸릴 기세로 담배를 펴 왔던 영감의 감각으로 담배를 피려고 하니 고통이 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아오 왜 이렇게 독하냐···”
수연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입을 헹구기 위해 소주를 따서 쭉 들이켰다·
“어허억!! 켁· 크엑·”
그리고 그것조차 뱉었다· 2년이라는 세월은 수연의 몸에게서 알코올이니 니코틴이니 하는 그런 중독물질에 대한 내성을 내보내기에는 충분한 시간·
‘쟤는 뭐 폼 잡으려고 저러고 있나···?’
그것도 생각하지 않은 채 그냥 과거 습관 그대로 술과 담배를 들이켰다가 토할 기세로 쿨럭거리고 있는 수연· 그리고 편의점 알바는 편의점 안에서 그 광경을 보며···
[실시간 편돌이인데 여고딩 한명 쌉가오잡으면서 술담배 사갔다가 바깥에서 토하는중 lol]
인터넷에 그런 글이나 쓰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