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37
‘저 양반들 아직도 저기서 뭐 해?’
촬영이 시작되기 직전· MC는 잠시 화장실에 갔다 나오면서 아직도 회의실에 모여 있는 심사위원들을 보았다· 자기들끼리 한창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모습· 좀 있으면 촬영 시작 시간인데 뭐 하는 건지·
“여러분 촬영 들어가셔야죠!”
“아 아· 아 그렇지·”
“같이 가시죠·”
“아 카토 씨 먼저 들어가· 우리는 잠시 뭐 이야기할 게 있어서·”
“···? 아 네· 빨리 오세요!”
자기들끼리 뭘 하는지 영 정신이 팔려 있는 것 같은 심사위원들· 그는 대충 웃어넘기고는 지나가는 스태프를 잡았다·
“야· 저기 심사위원들 안 데리고 오고 뭐해? 촬영 늦게 끝나고 싶냐?”
“아 아! 네! 알겠습니다!”
“정신 좀 차리고 살아라· 응?”
황급히 뛰어가는 스태프의 뒤를 보면서 혀를 찬 뒤 도착한 스튜디오에는···이미 자리에 다 앉아있는 심사단 겸 방청객들· 그리고 게스트 몇 명· 스태프 중 한명이 걸어와 그에게 큐시트를 건넸다· 받아들어보니 거기에 기재되어 있는 게스트의 이름·
“이름이 이게 뭐야· 한국인이야?”
“네· 오늘 게스트 한국인분입니다·”
“한국인이라고? 허· 출연 안한 일본 기타리스트들도 많은데 피디님이 그 분들은 안 부르신다던?”
그 말에 딱히 대답하지 않는 스태프· 그는 “잘 돌아가는구만·” 이라고 말을 내뱉고는 스튜디오에 서서 잠시 대기했다· 그러자 허겁지겁 심사위원들을 데려오는 스태프 한명과 늦게 들어오면서도 고개를 당당하게 쳐들고 다니는 심사위원들·
“자 오늘도 슈퍼 기타리스트 촬영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방금 이야기를 들었는데 오늘 게스트가 한국분이라네요? 하하· 아직 못 본 일본 기타리스트들도 많은데 한국 기타리스트가 나오다니요? 물론 나올 수도 있긴 하지만 뭐···한국의 기타리스트는 얼마나 잘할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촬영에 들어가기 직전 그는 방청객들을 보면서 농을 건넸다· 돌아오는 웃음· 한국에 대한 몇가지 악의적인 농담을 더 주워섬긴 후 MC는 피디를 바라보았다· 끄덕여지는 고개 그리고 달려나와 슬레이트를 치는 스태프·
“자! 오늘도 시작해보겠습니다! 슈퍼 기타리스트···전설의 기타리스트를 찾아서! 과연 오늘은 슈퍼 기타리스트를 찾을 수 있을까요! 지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항상 고정적으로 출연하는 게스트들과 관례적인 만담을 몇번 주고받은 후· MC는 큐시트를 한번 쳐다보고는 말했다·
“자 그럼 오늘의 슈퍼 기타리스트 지원자! 는···이때까지와는 조금 다르게 약간 훨씬 더 먼 곳에서 오신 분입니다!”
“군마?”
“아니 군마는 아니죠! 군마도 일본 아닙니까? 자랑스러운 군마 현민분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방청석에서 와하하 터지는 웃음· 그는 군마 이야기를 한 게스트에게 엄지를 들어주고는 큐시트를 읽으며 소개를 했다·
“자 그럼 소개하겠습니다· 오늘의 게스트는···한국의 밴드 그루푸- 사운도? 의! 하 수욘 씨!”
말이 끝나고 스튜디오로 게스트가 들어왔을 때 MC는 눈을 의심했다· 기타리스트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이쁜 아이가 들어왔으므로·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한 것은 그 뿐만이 아니었는지 술렁이는 게스트들과 방청객들·
“안녕하세요· 하 수연 입니다· 한국의 밴드 Group Sound에서 기타를 맡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니!! 너무 이쁘잖아!!”
“귀여워!!”
“한국은 도대체 뭐 하는 곳이냐! 저런 애를 밴드를 시키다니! 재능을 낭비하고 있다고!”
“아이돌 아니에요?”
쏟아지는 외모에 대한 칭찬· 어설픈 일본어로 예의 바르게 받아 넘기는 기타리스트· MC는 잠시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가 칭찬 세례가 지나가고 나서 입을 열었다·
“진짜 밴드 기타리스트 맞죠?”
“네?”
“약간 외모만 보면 기획사 소속···뭐 그런 거 아닙니까? 프로젝트 밴드라던가·”
“무슨 소리에요 그게! 카토 씨 무례하네!”
“무례해도 해야 되는 질문이지!”
“밴드 맞습니다· 기획사 어···뭐라고 해야 하지· 대충 말해줘요·”
“저희 그룹 사운드는 [레이블 에코사운드]라는 인디즈 레이블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편곡 작곡 작사 전부 다 저희 밴드원들이 다 손수 하는 그런 밴드입니다·”
통역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게스트들· “좋네!” “그래야 밴드지·” 같은 말들도 따라나온다· MC는 큐 시트를 탁탁 쳐서 분위기를 환기하고는 다음 코너로 넘어가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럼 하 수연 기타리스트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일단 한국에서 발매된 곡들과 출연했던 방송 콘서트 등을 보면서 슈퍼 기타리스트의 소질을 가졌는지 아닌지 판단해볼텐데요· 영상 틀어주세요!”
MC의 말이 끝나자 스튜디오에 설치된 스크린으로 VCR이 재생된다· [공중정원] [별이 되어가는 것]의 공식 뮤비· [유성]과 [너를 만나는 순간]의 메이킹필름 등· 그들은 처음 들어보는 노래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게스트나 방청객 중 몇몇은 손을 까딱거리거나 리듬을 타는 식으로 자신의 흥겨움을 표현했다·
“자···일단은 여기까지! 여러분 소감은 어떠신가요?”
“좋은데요?”
“너는 항상 좋다고 그러잖아·”
“이런 말 하긴 조금 그렇긴 하지만 이때까지 이 프로 나오면서 들었던 음악 중에 손꼽을 정도로 좋은 것 같아요·”
“음악 자체는 진짜 흠잡을 데가 없는 느낌·”
항상 솔직한 이야기만을 하던 게스트들에게서 나온 호평· MC는 살짝 코를 매만졌다· 저기에서 혹평이 나와줘야 약간 재미가 있는데···이런 식으로 가면 별 재미가 없을 텐데·
그렇게 고민하던 그의 속을 뚫어주는 멘트가 옆쪽 심사위원석에서 터져나왔다·
“곡은 뭐 나쁘지 않은데 곡 내에서 기타의 비중이 너무 작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MC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도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는 표정을 하며 심사위원에게 다가갔다· 마이크를 잡은 심사위원의 말이 이어졌다·
“곡 자체는 좋아· 이 곡을 저기 저 한국인 아가씨가 썼다고 했나?”
“네 맞습니다· 제 이름 하 수연 입니다·”
아까 전 이름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한국인이라고 지칭하는 심사위원· 그리고 그 말에 굳이 대답을 해 주는 수연· 그 대답에 심사위원은 불쾌한 표정을 숨기지 않은 채로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곡 내에서 기타의 비중이 너무 작잖아· 내가 보기에 이건 기타리스트로서의 심장이 없다 자부심이 없다· 이런 걸로 밖에 안 보이거든· 자신이 있으면 치고 나와야지·”
“아···곡 내의 기타 비중이 부족한 걸 보면 자신감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작곡적인 부분은 괜찮지만 기타리스트로서는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다?”
“그렇지· 자신감도 중요한 부분이거든·”
“그리고 악곡 내에 들어간 기타 스킬도 너무 평범해· 뒤에서 아무리 잘치면 뭐 하나? 정작 곡에 드러나는 건 그냥 스트로크 몇번이면 아무 소용 없지·”
“한 곡만 그러면 상관없는데 다른 곡들도 대부분 기타 비중이 작잖아· 스킬도 부족하고 다이나믹함도 적어· 기타 대가들이 자기 곡에 기타 적게 넣는 거 봤나? 그런 이상한 짓을 하는 사람은 없어·”
칭찬 일색이었던 게스트들의 코멘트에 대한 반동인 것인지 아니면 무슨 개인적인 감정이라도 섞인 것인지· 사정없이 하수연의 기타 실력을 까내리는 심사위원들·
“곡은 잘 쓰지만 기타 측면에 집중해보자면···순수하게 ‘기타리스트’로서는 상당히 많이 부족하다· 조금 더 노력해라· 그런 느낌·”
그렇게 끝난 심사위원들의 평가· 보통 저렇게 권위로 찍어누르듯이 이야기를 하면 심약한 사람들은 울음을 터트리기도 한다·
이쁘장한 여자애니까 그게 가장 좋은 그림일 거라고 생각하며 MC는 하수연 근처로 걸어가 입을 열었다·
“여기에 대해서 혹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솔직하게 말해도 되겠습니까?”
“아 그럼요 그럼요!”
하수연은 고개를 살짝 내리고 있다가 다시 들어 MC를 바라보았다· 그 동작에 MC는 뭔가 재미있는 반응이 돌아올 것 같다는 기대를 했다· 그리고 입을 여는 하수연·
“솔직히 말해서 심사위원 분들···작곡을···이해? 하고 계시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말씀하신 게·”
“···네??”
돌아온 대답은 아예 예상 밖이었다· 술렁이는 게스트와 방청객들· 그리고 눈을 크게 치뜬 심사위원들·
이 분위기 속에서 평온한 것은 하수연 뿐·
“그런 곡으로 만들었으니까 그런 기타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거지· Eric Clapton은 기타 못 쳐서 Tears in Heaven Wonderful Tonight에서 그런 식으로 기타를 쳤나? Smoke on the Water는 리프 하나로 곡을 통일했는데 Ritchie Blackmore가 평범한 기타리스트야?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
“···라고 합니다·”
“다이나믹이 없어? 기타 스킬이 부족해? 듣는 사람들의 귀를 편하게 해주기 위해서 그런 부분을 일부러 안 넣은 거지 그걸 꼭 넣어야 하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들 곡 중에서도 당신들이 말한 그런 사례에 들어간 곡 수십개는 나올텐데 그럼 그 사람들은 당신들 말에 따르면 다 그냥 기타 못 치는 사람들인가?”
“···라고 합니다·”
이제까지의 게스트와는 다르게 정면에서 심사위원들의 말을 다 반박해버리는 하수연· 통역을 통해 약간은 순화되어 나가는 말을 게스트와 방청객이 멍하니 듣고 있는 사이에 씩씩거리는 심사위원 한명이 씩씩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기타리스트라면 곡에서 테크닉을 보여줄 줄 알아야 되는 법이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원· 그래야 된다고 도대체 어디에서 그렇게 정했는지 모르겠네· 그건 여러분들 생각 아닙니까? 기타리스트가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아까 전에도 막 와가지고 기타 칠 줄은 아냐고 하더니·”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처구니 없다는 듯 한국어로 이야기하는 하수연· 통역이 이야기를 간추려주었다· 이상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세상에 그러라는 법은 없다고·
“그리고 테크닉? 뭐 어떤 테크닉 말하는지는 모르겠는데···이런 테크닉 말하는 건가? 기타 앰프에 좀 꽂아주세요·”
급하게 말을 전달하는 통역· 빠르게 건네지는 케이블과 세팅되는 앰프· 그리고 수연은 잠시 손을 몇번 접었다 피고는 기타를 오른쪽 허벅지에 올렸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서 울려퍼지기 시작한 것은 난폭하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연주· 기타의 거장 John Petrucci의 대표곡 중 하나···Acid Rain의 솔로가 스튜디오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왼손 손가락이 10개라도 되는 듯 8현 기타라도 연주하는 듯·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모든 박을 전부 정확하게· 한치의 음도 놓치지 않고 몰아치는 피킹과 오른손과 왼손 전부를 활용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해머링·
“뭐···뭐야·”
심사위원석에서 흘러나온 말 한마디는 지금 연주를 듣고 있는 사람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 했다·
죽었다 깨어나도 ‘기타를 못 친다’ 라는 말은 절대 안 나올 연주·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의 능력을 다 합친다고 할지라도 방금 나왔던 것의 50%는 재현될까 의문인 그런 연주·
“어때요· 이 정도면 테크닉은 있는 건지 궁금하네·”
장장 1분 30초동안 스튜디오에 몰아친 폭풍이 지나간 후 수연이 뱉은 말에···대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얼이 빠져 있었으므로·
“저는 오히려 제가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그쪽 심사위원 분들 혹시 요즘 기타는 치시는지?”
그런 분위기를 깨는 수연의 한국어· 통역의 전달에 심사위원 중 누군가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인다· 수연은 바로 그 사람에게 직접 질문했다·
“연습 얼마정도 합니까?”
“연습···내 나이 정도 되면 그래도 하루에 6시간 8시간이면 충분히 하는 거 아닌가·”
얼떨결에 대답을 하게 되었지만 순간 정신을 차린 심사위원은 연습량을 4배는 부풀려서 이야기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이 정도로 이야기하면 충분히 말을 막아세울 수는 있을 거라고·
하지만 그 생각은 완전한 오산이었다·
“적습니다· 게으릅니다· 제대로 해야 합니다· 왜 그렇게 적습니까?”
“뭐?”
“연습 시간 따로 만드는 것 문제입니다· 먹고 자고 씻는 시간· 그 외에는 연습· 왜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수십년동안 기타를 쳐 오면서 수없이 연습을 해온 그들조차 하지 못할 발상· 그런 이야기를 눈 앞의 소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1· 삽입곡
Liquid Tension Experiment – Acid Rain (Live In L·A·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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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님 5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오늘의 추천곡입니다!
Robert Cray – Phone Booth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