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40
“딱 봐도 이름만 거창한 그런 느낌이었는데 와보니까 뭔가 많네·”
회장 내의 모습을 보며 중얼거리는 서하· 기타를 멘 수연 또한 같은 심정으로 회장을 바라보았다· 100개는 거뜬히 넘길만한 갯수의 기업 부스· 시선을 잡아끌기 위해 화려하게 장식을 한 곳도 있고 악기를 마구 늘어놓은 곳도 있고 무슨 앰프로 왕좌를 만들어놓은 곳도 있다·
게다가 무슨 공유 플랫폼이니 연습실 대여 기업이니 라이브하우스 체인이니 뭐니 이런 이름들도 보이는 걸 보면 악기 관련 기업만 온 것은 또 아닌 듯 해 보였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이렇게 많은 부스들 사이를 더 많은 사람들이 누비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누비고 있는 것으로 모자라서 곳곳에 마련된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하거나 악기를 치고 있는 등의 모습·
“일본에 밴드 많다는 이야기 듣긴 했는데 진짜 이정도로 많을 줄은 몰랐어·”
“그러게·”
수연은 머리를 살짝 꼬았다· 일본 밴드 씬의 인구가 백만명 정도는 될 것이라던 어떤 한 인디밴드의 이야기· 말도 안되는 소리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광경을 보면 또 말이 되는 이야기 같아 보였다·
“오! 워윅!”
그런 감상을 마친 후· 그들은 천천히 부스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펜더 깁슨 아이바네즈 ESP···뮤지션으로서는 이름만 들어도 아는 그런 브랜드를 스쳐지나가는 와중에 이서가 그렇게 외치며 부스 앞에 슥 다가섰다· 나무의 결을 그대로 살려 고색창연한 베이스들·
“너 전에 프렛리스 살라다가 말았잖아·”
“요즘에 한번 도전해보려고· 혹시 연주해봐도 될까요?”
“네 그러세요· 마음껏 쳐보셔도 됩니다·”
부스에 앉아 있던 직원이 일어나 앰프를 직접 켜 준다· 그 말에 이서는 신나게 부스로 들어가 앉더니 베이스를 퉁겼다· 확실히 나는 소리를 들으며 수연은 일본에 처음 왔을 때 프렛리스를 쳐보던 그 시절과는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어 이거 생각해보니 벤딩은 어떻게 하지?”
“프렛리스는 베이스 처럼은 벤딩 못해·”
“뭐? 그럼 어떻게 해?”
“이렇게·”
수연은 이서에게로 다가가 줄을 상하로 문질러 떨리게 만들었다· 그러자 나오는 일반적인 베이스나 기타와는 약간 다른 느낌의 비브라토·
“이러면 아예 처음부터 다시 연습해야겠는데·”
조금 있다 다시 오겠다며 베이스를 내려놓은 이서가 한 말· 수연은 피식 웃으며 멤버들을 이끌고 계속해서 부스를 거닐었다·
“Univox Uni-Vibe 구할 수 있나요? 70년대 제조된 오리지널 모델·”
“죄송하지만 저희도 그런 귀한 건···혹시 복각판이라도 괜찮으시다면·”
“아니오 괜찮습니다·”
빈티지 이펙터 관련 부스에 난입하여 수연이 평소에 찾던 이펙터에 대해서 물어보기도 하고·
“나 저거 사고싶어·”
평소에 베이스 본체 외에는 별 말이 없던 이서가 암펙 앰프를 사고 싶다며 부스 앞을 맴돌기도 하고·
“저 이거···하나만 사면 진짜···연습 잘 할 것···같은데···”
“평소에 너 연주하는 거랑은 안 맞는 스타일인 거 같은데 또 뭐 어디 애니메이션 이런 데서 나온 거 아냐?”
“절대···아니에요···”
라이브 상태에서도 들고 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숄더 키보드인 Roland의 AX-Synth 앞에서 저것만 사면 연습 잘 하겠다고 현아가 중얼거리기도 하고·
“다른 애들 다 사려고 막 그러는데 나도 사주면 안 되나?”
“너도 뭐 성 쌓으려고 그래?”
무수하게 나열된 탐탐과 봉고를 보면서 하나 들여놓고 싶다고 중얼거리는 서하를 끌고가기도 하고· 그렇게 수연과 아이들은 엑스포의 부스를 하나둘씩 돌아보았다· 부스를 그냥 지나치기도 하고 악기를 시연해보기도 하며·
그 와중에 알아보는 사람도 많았다· 다른 아이들보다는 주로 수연 쪽을·
“혹시 그 얼마전에 방송에 나오셨던···‘하수연’ 기타리스트님 맞으십니까?”
“네? 아 네·”
예전에 한번 들어보긴 했지만 딱히 연주해본 적은 없는 브랜드의 기타· 호기심에 한번 쳐 보는 와중에 부스 담당자가 수연을 유심히 보더니 그렇게 말을 걸었다·
“저 ‘슈퍼 기타리스트’ 잘 봤습니다· 진짜 연주 엄청 잘 하시던데요· Acid Rain을 그렇게 잘 치는 여성 기타리스트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어요·”
“아 네···세상은 넓으니까요·”
수연은 그렇게 말하며 기타를 살짝 튕겼다· 그녀의 손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나온 건 Dream Theater의 Under a Glass Moon 솔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가볍게 오가는 손이지만 바깥에 놓인 앰프에서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 사람이다·” “싸인 받을 수 있을까?” 같은 이야기들도 들렸다·
“기타 좋네요·”
수연은 그렇게 말하고 일어섰다· 품질 자체는 괜찮지만 딱히 흥미가 가지는 않는 그런···딱 ‘일본제’ 기타의 느낌· 그 말에 부스 담당자는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혹시 저희 브랜드 엔도서(エンドーサー Endorser) 계약 맺으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엔도서요···”
조금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에 수연은 머리를 살짝 꼬았다· 뒤에서 이서가 중얼거리는 말이 들려왔다·
“엔도서가 뭐야?”
“협찬 같은 거· 기타 주고 이거만 써달라 아니면 공연때 써달라 이런 거지· 계약이라고 한 거 보면 광고나 시그니쳐 제작 같은 거일수도 있을 것 같은데···”
“헐· 완전 개 프로들만 하는 거 아님?”
“우리도 프로야···나도 예전에 야마하 총판에서 엔도서용으로 드럼 받은 거 있어· 밴드 들어오기 전에·”
“왜 나는 개 프로 아님?”
그 대답에 한심하다는 듯 이서를 바라보는 서하와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탄식한 수연·
“써보셨으니 알겠지만 저희 기타가 품질이 좋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룹 사운드의 음악을 잘 듣기도 했구요· 엔도서 계약하시면 일단 저희 프리미엄 모델···계약서 이전에 이거랑 저거 그렇게 바로 지급해드릴 수 있고· 계약서 쓰시고 추후 추이에 따라 시그니쳐 기타 제작까지 저희는 염두에 두고 있거든요·”
“원래는 이메일로 제의 드리려고 했는데 마침 이렇게 만나게 되어 이야기를 드리네요·” 라고 말을 끝맺는 직원· 그 말에 수연은 머리를 한번 더 꼬더니 짧게 생각하고 바로 답변을 했다·
“제의는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어···그러신가요· 유감입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이유를 좀···”
“저는 펜더 스트랫만 써서·”
수연은 그렇게 말하며 옆에 놓인 긱백을 가리켰다· 수십년동안 사용한데다가 수연의 개조를 수도 없이 거쳤기에 이미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고는 볼 수 없는 수연의 동반자·
블랙 스트랫이 놓여 있었다·
* * *
“엔도서는 아예 관심 없어?”
“뭐 나중에 더 좋은 브랜드 오면 해볼 생각도 있는데···일단 저 기타는 조금 재미가 없다고 해야 하나· 돈 몇푼 받자고 굳이 계약 맺고 재미없는 기타 칠 필요가 없지·”
서하의 물음에 대답하며 수연은 부스들을 지나쳐 안쪽으로 향했다· 밴드들이 교류할 수 있게끔 테이블을 놓고 앰프를 갖다놓거나 무대를 설치해놓은···교류 구역· 부스 쪽에도 꽤나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이 쪽은 사람들이 확연히 더 많았다·
“어! 수연 씨!”
그런 사실을 입증해주듯 교류 구역에 들어서자마자 수연을 알아보는 사람이 나타났다· 구역 입구 근처 테이블에 앉아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다가 수연을 보자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
“반갑습니다 하시모토 씨·”
“안녕하세요! 혹시 이 분들은···”
“아 네· 저희 밴드·”
“안녕하세요!”
“안녕 하세요···”
“안녕하세요·”
수연이 연습실에 오며가며 만난 인디밴드 [竜巻舞](류우켄부)·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이 오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다들 표정이 밝은 걸 보면 잘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여러분들이 그룹 사운드 분들? 와 진짜 다들 이쁘시다·”
“그렇다고 했잖아· 전에 라이브 하우스에서 봤을 때 진짜 다들 이쁘셔가지고·”
“오늘 뭐 구매하신 것 있습니까?”
“아니오! 요즘 앨범때문에 돈이 없어요· 그래서 뭐 구매는 못하고 그냥 오늘은 밴드 세미나나 듣고 사람들 좀 만나러 왔네요·”
그렇게 지인과 이야기를 하고 있던 수연은 문득 시선이 느껴져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마치 유명인이라도 목격한 것마냥 근처에 몰려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그때서야 눈치를 챘다·
“아니 뭐야 이거·”
“혹시 밴드 그룹 사운드 분들 맞으신가요?”
“아 네 뭐 맞는데···”
한번도 본 적 없는 얼굴들· 수연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그 질문에 대답했다·
“그럼 질문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한국 시장은 어때?”
“싸인 좀···”
“네네키미 혹시 라인 하고 있어?w”
“슈퍼 기타리스트 잘 봤습니다!”
“혹시 세션 서실 생각 없으신지···”
긍정을 하자마자 날아드는 질문 세례· 한국에서는 이런 일을 많이 경험했으나 일본에 와서는 처음 겪는 일· 게다가 질문의 파도에 허우적거리는 것은 수연 뿐만이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죄송한데 저희도 좀 돌아봐야···”
그런 일종의 광폭화 타임은 몇몇 질문들을 처리해주고 나서야 겨우 끝났다· 사인을 받아가거나 사진을 찍은 사람들이 더 많았다는 것은 Group Sound의 인기가 예상 밖으로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 걸까· 수연은 그렇게 생각하며 류우켄부 멤버들과 인사를 했다·
“무슨 일 있으시면 연락 한번 주세요·”
“어? 그런 말 하시면 진짜 연락 드릴지도 모르겠는데요?”
“···저희 회사랑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싱글싱글 웃는 여성 보컬 하시모토와 다른 멤버들· 수연은 손을 작게 흔든 다음 더 안쪽으로 향했다·
* * *
구역의 더 안쪽으로 들어오자 무대 앞으로 꽤나 많은 사람들이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무대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은 수연 자신도 잘 아는 기타리스트·
“어 저 사람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아사노 쇼헤이(浅野昌平)· 블루문 하모닉스(Blue Moon Harmonics) 기타리스트·”
이서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옆에 있던 서하에게서 나왔다· 블루 문 하모닉스· 90년대부터 활동한 일본의 레전드 밴드 중 하나· 전성기 시절 몇십만장씩 앨범을 팔았던 밴드·
그리고 그 밴드의 기타리스트인 아사노 쇼헤이는 수십년 전부터 일본 기타리스트계에서 명성을 떨쳐왔던 사람이었다· 테크니션 기타리스트를 꼽아보라고 하면 첫 페이지에 무조건 기재될 그런 실력을 가진 뮤지션·
“공연 하나?”
“공연은 아닌 것 같은데·”
누군가의 중얼거림에 대답하며 수연은 무대 근처로 다가가 세워진 안내판을 바라보았다· 아사노 쇼헤이 기타 세미나· 시계를 보니 한 30분 전부터 진행되어···30분 정도 남은 모양이었다·
“이거 좀 듣고 갈까?”
“그러자·”
슬쩍 들어가 앞쪽 자리에 앉으니 집중해서 세미나를 듣고 있던 사람이 옆을 보았다가···수연의 얼굴을 보고 눈을 번쩍 떴다· 얼굴을 알아본 눈치에 수연은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무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톤메이킹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공간계 페달이야· 여기에 대해서 사람들이 경시할 때가 있는데 코러스 페달에 컴프를 제대로 걸어주게 되면···”
‘톤메이킹’이나 ‘솔로 잘 치는 법’ 같은 기타리스트로서 기본적인 흥미를 가지게 만드는 그런 주제들· 수연은 꽤나 재미있게 강의를 듣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누군가가 무대 위로 질문을 던졌다·
“아사노 선생님은 혹시 어떤 식으로 연습을 하시나요? 동기라던가 뭐 마음가짐이라던가·”
“오 그거 질문 잘 했네· 최근에 내가 그걸로 고민을 좀 했거든·”
그 질문을 들은 아사노 쇼헤이는 안경을 한번 슥 고쳐쓰더니 말했다·
“예전에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요즘에는 진짜 긴장하면서 연습을 하고 있지· 요즘 기타 잘 치는 사람들 많잖아? 그런 사람들을 질투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네?”
“이제 왜 나는 저렇게 못 칠까· 나도 저렇게 칠 수 있다! 나도 아직 안 늙었다! 이렇게 생각하고 이제 막 자극되는 영상 보면서 엄청 노력을 하거든· 예를 들어서 유튜브 보고 이제 잘 치는 기타리스트 있으면 나도 저정도는 칠 수 있지! 이러면서 연습하고·”
상당히 공감되는 이야기에 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기는 중요하다· 계속해서 자신을 몰아세우는 그런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저런 걸 보면 확실히 기타를 잘 치는 이유가 있어 보이긴 했다·
“최근에 제일 나를 불태우게 했던 건 그 방송이었지· [슈퍼 기타리스트]· Acid Rain을 친 그 여자애가 진짜 기타를 엄청 잘 쳤잖아? 거기에다가 엄청 이쁘고· 나도 진짜 완전 불타올랐거든· 그 여자애 만나고 싶다· 만나서 기타를 어떻게 치는지 물어보고 싶다! 어떻게 그렇게 잘 치게 되었을까!”
그의 표정은 마치 잃어버린 연인을 찾아다니는 듯 몽롱했다· 애절한 목소리는 그가 기타에 대해서 얼마나 진심인지를 확인할 수 있게끔 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으로 맨날 눈에 불을 키고 다녔지· 오랜만에 라이브하우스도 좀 가보고· 왜냐하면 얼마전에 후배 중에 한명이 걔···‘하수연’ 씨를 라이브하우스에서 봤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딱 얼굴 보면 물어봐야겠다 그런 생각으로· 다녔거든· 그런데 못 찾았어·
그렇게 말하며 아사노 쇼헤이는 수연의 방향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저기 무대 중간에 저렇게 이쁜 여자애···저렇게 생겼거든···어?”
그리고 그의 표정이 잠시 멍해졌다· 그리고 아사노 쇼헤이를 마주보는 수연의 표정도 멍해졌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지난화 내용이 살짝 변경되었습니다!
변경 내용
엑스포 회장이 야외라고 암시된 것 -> 실내로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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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시라이더 님 29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추천곡입니다!
Blind Faith – Can’t Find My Way Home
(저는 개인적으로 24 Night 버전을 좋아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