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54
16비트로 울리던 드럼이 이내 잦아들고· 다시 고요해진 무대· 무대 위에는 아직 어둠이 머무르고 있는 가운데
음악이 시작된다·
다이나믹하게 통통 튀는 피아노 소리· 그리고 그 위에 사뿐하게 올라탄 것은 박자 위에서 뛰노는 드럼 클래식한 베이스 사운드와 클린톤의 기타· 무대 위에는 아직 어둠이 머무르는 가운데 약간은 팅글거리는 기타의 소리· 단순하지만 리듬감있게 한 발짝씩 나아가는 베이스·
여기에 있는 사람 그 누구도 지금 무대 위에서 연주되고 있는 노래가 어떤 노래인지 몰랐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조금씩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혹은 그럴 수 밖에 없는 느낌의 노래였으므로·
네게 얼마나 이야길 해야 할까
혹은 얼마나 멀어 져야 할까
아직은 알 순 없지만
뭐 어쨌든
화려하지는 않다· 단순하지도 않다· 요란하지도 않고 심심하지도 않다· 그야말로 ‘적재적소’라는 말이 어울릴 듯한 그런 곡 구성· 그 어떤 것도 들어가지 않을 순수한 ‘Rock’ 그 자체인 음악·
어제는 동네를 걸어 봤어
이미 꽃이 다 피어버렸더라
왜 나는 너와 이걸
보지 못하는 걸까
그리고 확 밝아지는 무대· 단정한 검은색 셋업· 하얀색 무지 터틀넥 셔츠· 작은 금빛 십자가 목걸이가 빛나는 가운데· 수연은 사람들을 보면서 희미하게 웃은 후 발을 티나게 굴렀다· 그 박자에 따라오라는 듯·
저기 하늘 위 구름을 봐
회색으로 빛나는
너도 같은 하늘 아래서
그곳에 있겠지
기다릴게 기다릴게
기다릴게 기다릴게
퉁퉁 튀는 베이스의 슬랩이 하이라이트 부분을 감싸고 돈다· 그 에너지는 아직까지도 공연에 녹아들지 못한 사람들의 발 밑에 깔려 그들의 신발에 낀 서리를 녹이기 시작했다· 데일만큼 뜨겁지는 않아도 뒷꿈치나 앞꿈치를 움직이게 만들기는 충분한 열·
일어나지 않을 일들을
기대하고 있는 건
어쩌면 하지 않아야
할 일인데
2절에 돌입한 노래· 여전히 리드미컬하게 여유롭게 연주되고 있는 드럼과 베이스· 감성을 더해주고 있는 키보드· 하지만 보컬 타이밍에 같이 끼어든 기타는 약간은 달라진 분위기를 선보이며 사람들을 조금 집중시켰다· 마치 조금 뒤를 기대하라는 듯·
저기 하늘 위 구름을 봐
회색으로 빛나는
너도 같은 하늘 아래서
그곳에 있겠지
기다릴게 기다릴게
기다릴게 기다릴게
다시금 등장한 슬랩·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둥둥 울리던 베이스는 갑자기 약식 필인을 선보인다· 그에 순간적으로 집중되는 관객들의 귀·
그리고 그 지점부터 살짝 드라이브가 들어간· 시원시원하게 쭉쭉 내뻗는 기타 소리가 무대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와아아아···!”
수연의 손에서 극한으로 쪼개진 비트는 그렇기에 박자라는 것의 한계를 넘어버린 느낌으로 관객들에게 다가섰다· 분명 드럼과 베이스가 정 중앙에서 자리를 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점 그 무대 위 음악의 주도권은 기타에게 넘어가 버린 상황·
그 소리에 칼같은 박자에 맞춰지고 있던 악기들의 템포가 조금씩 일그러진다· 그리고 그 박자는 조금씩 사람들의 리듬 위에서 뛰어놀기 시작했다· 얼어붙은 관객들의 발을 녹이고 무릎을 녹이며 어깨를 녹이고 손목을 녹인다· 그럼으로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답답하도록 움직일 수 밖에 없게 만든다·
“기다릴게-!”
수연의 낮은 목소리로 펼쳐지는 남성에게는 조금 버거운 고음· 하지만 그 뒤에 기다리는 것은 그런 목소리보다 훨씬 더 높은 음의 기타 소리였다· 거칠 것 없다는 듯 연주되는 하이 프렛 연타· 한 순간도 멈추지 않는 벤딩과 아밍·
피아노와 베이스는 끊임없이 올라가는 셰퍼드 음을 연주하고 드럼은 박자를 쪼개가며 끊임없이 달린다·
“어어어어어···!”
그에 맞추어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새어나오는 관객들의 목소리· 계속될 것 같던 연주는 기타가 뿜어낸 메인 멜로디의 변주로 마무리된다· 거기에 발맞추는 베이스와 피아노 드럼의 필인·
마지막으로 공연장을 메운 것은 관객들이 낸 우렁찬 박수였다·
공연장에 있는 누구도 들어본 적 없는 미발표곡으로 시작된 무대· 그러나 관중들의 반응은 마치 오래 전부터 들어왔던 히트곡을 현장에서 듣는 것마냥 폭발적이었다·
그리고 Group Sound의 공연은 그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일본에 와서 처음으로 발표한 곡 [Under the Satellite]와 한국 시절에 발표한 곡 [유료 와이파이]로 열린 포문·
“여러분 음· 불편하신 분 계시겠지만· 저희는 아무래도 한국 밴드이다보니·”
“주저하지 말고 마음껏 뛰어놀아주세요! 노래를 따라 부르셔도 좋고 뛰어노셔도 좋습니다! 확실하게 놀아주세요! 하고 싶은 말 마음대로 해 주세요!”
게다가 약간은 비겁하다고 볼 수 있는 그런 멘트까지· 하지만 말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기본적으로 조용한 일본 관객들이 갑자기 마약이라도 한 것 마냥 미쳐 날뛰지는 않는다·
“와아아아아!!”
“사랑해요!!”
“결혼해주세요!!”
“결혼은 좀· 저는 독신주의자입니다·”
그러니 관객들이 이렇게 미쳐 날뛰는 것은 전적으로 Group Sound의 실력 덕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별이 되어가는 것] 또다른 미공개곡 [잿빛의 나날들] 등···관객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과정을 거쳐·
의미를 알 수 없는
그저 떠 있기만 한
“공중정원에 난 끝도 없이 올라만 가···”
그들의 최대 히트곡 [공중정원]에 이르러서는···아는 사람들은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고· 가사를 모르는 사람도 떠듬떠듬 멜로디를 허밍하는 경지에 이르러·
“감사합니다!!”
수연이 그런 멘트를 외치고 재킷 안주머니에서 피크를 한움큼 집어 뿌렸을때는···요란한 함성소리와 함께 피를 튀기지는 않는 피크 쟁탈전이 이루어졌다· 하나하나 사인 비슷한 표시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 * *
그렇게 공연이 끝나고·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마에 살짝 맺힌 땀을 훔치며 대기실로 들어온 Group Sound· 그리고 대기실은 사람으로 꽉 차있었다· 원래라면 이 시간에는 친목을 도모할 밴드 몇몇 정도만 남아 있는 것이 보통이지만 극히 일부 인원만 제외하고는 전원 다 남아있는 상태·
수연은 그런 대기실의 상황을 보며 코웃음을 치고는 대기실 중심으로 걸어사 의자에 걸터앉은 후 한쪽 구석을 바라보았다· 눈에서 화염을 뿜으며 수연을 바라보는 여성 [Strange Straight]의 시미즈· 그리고 그 주변에서 한숨을 쉬거나 천장을 바라보는 등의 행동을 하고 있는 밴드 멤버들·
“어떤가요· 졌다는 거 인정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졌다고? 아니·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추하네요·”
피식 웃으며 수연은 턱을 검지손가락으로 살짝 치켜올렸다· 너무나도 뻔하고 당연한 오히려 안 나와주면 섭섭한 반응이었다· 딱 봐도 ‘관객 반응은 주관적이다’ 이런 소리를 하면서···
“객관적인 관객 반응이라는 게 있어? 다 주관적이지· 그리고 나는 우리 반응이 더 좋다고 느꼈거든·”
“아무리 그래도 객관적인 정도···분명히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흥· 그래 객관적이라는 건 있겠지· 그래서 내가 생각한 게 하나 있거든· 지금 여기 있는 밴드들한테 물어보는 거야· 어때?”
이것까지 수연이 생각한 그대로의 반응· 다 맞아들어가는 상황에 수연은 일종의 지적 쾌감까지 느끼며 대기실에 들어와 있는 밴드들을 훑어보았다· 몇몇은 흥미롭다는 듯 상황을 지켜보고 있으며·
“야···괜찮겠어?”
“뭐가?”
“지금 이 대로 가면 저 사람이 다 매수 비슷한 거 해서 우리 졌다고 하는 거 아냐?”
몇몇은 수연의 눈을 피해 고개를 돌리거나 천장이나 땅바닥을 바라보거나 했다· 그런 장면을 보며 이서가 던진 이야기·
“왜 걱정이라도 돼?”
“아니 당연히···”
“제가 한번 여러분에게 여쭤볼게요· 관중 반응 누가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수연이 이서에게 대답하는 사이 시미즈는 마치 관객을 둘러보듯이 대기실 내의 밴드들을 둘러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몇몇 밴드들에게서 약간은 자신이 없는 목소리로 대답이 돌아왔다·
“[Strange Straight]···가 관중 반응이 더 좋았던 것 같은데·”
“진짜요? 그렇게 생각해요? 양심을 걸고?”
Group Sound가 반응이 더 좋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수는 확연히 적다· 나머지는 방관하고 있거나 [Strange Straight]를 택하거나· 그 상황에 수연은 과장된 제스쳐로 상당히 놀란 듯한 반응을 보였고 시미즈는 비릿하게 웃으며 말을 내뱉었다·
“당연히 이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을 하는 거지· 그런데 어때? 너희들 쪽 반응이 좋았다고 하는 사람은 진짜 몇명 안 되네·”
“진심으로 다들 그렇게 생각하나요? 진짜로? 뮤지션으로서의 명예 양심 그런 것들 걸고? 정말로?”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잖아· 왜 못 믿어? 이게 결과야· 내기에서 너희가 졌다는 거지·”
수연의 물음에 대신 답하는 시미즈· 그녀의 입가에 웃음이 진해질수록 그곳에 서 있는 [Strange Straight]를 지지한 다른 밴드들의 반응이 사그라들었다· 그렇게 낄낄대며 웃던 시미즈는 벌떡 일어나 수연의 앞에 다가와서 말했다·
“결과가 이렇게 됐잖아? 빨리 내 앞에서 도게자 해· 너희들 그룹 사운드인지 바카 사운드인지 하는 애들은···우리보다 음악을 훨씬 못하며 한국에서 밀려난 떨거지들이라고···!”
대기실의 모든 사람이 수연을 주목하고 있는 상황· 심지어는 Group Sound의 멤버들마저도 ‘이건 망했다’ 라는 표정을 지으며 수연을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응? 이거 무슨 분위기야? 뭐 재밌는 일이라도 하고 있나?”
갑자기 열리는 대기실의 문· 그리고 그런 심각한 분위기를 깨버리는 발언· 시미즈는 누가 감히 분위기를 깨는 거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그리고 기겁할 정도로 놀랐다·
그곳에는 일본의 전설적인 밴드 블루문 하모닉스(Blue Moon Harmonics)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아사노 쇼헤이(浅野昌平)가 서 있었다·
“아 아사노 씨! 오셨나요? 공연은 잘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이야~ 좋았어· 첫 곡이 진짜 완전 소름돋던데· 혹시 내가 생각하는···”
“네· 80년대 에릭 클랩튼 풍· 맞습니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니까· 진짜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건지 궁금하네· 수연 씨가 태어나기 전에 나온 곡 아냐?”
대기실 안으로 천천히 걸어들어와 수연에게 악수를 청하는 아사노·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마치 시간이라도 멈춘 듯 일순간에 정지한 사이 수연은 마주 악수를 해 준 다음 여유있게 질문에 대답해주며···공연의 소감을 물었다·
“뭐 많이 듣고 많이 치면···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보다 어떠셨는지· 전에 말씀 한번 드렸었죠·”
“아~ 그 내기? 관객 반응이 누가 더 좋으냐? 솔직히 이런 걸로 좀 다투기에는 유치하지 않나? 싶긴 한데· 여기 이 친구들은 뭐라고 했어?”
“글쎄요···”
아사노의 대답에 대기실 내의 밴드들은 번개라도 맞은 듯 소스라치게 놀랐다· 방금 들은 말에 의하면 아사노는 두 밴드가 벌이는 ‘관객 반응에 대한 내기’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듯한 모습·
그런데 이 상황· 30년이 넘는 경력의 전설적인 밴드의 앞에서·
수많은 일본의 뮤지션들이 우상으로 바라보는 심지어는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존경하는 사람이 있는· 그런 밴드 앞에서···과연 [Strange Straight]가 내기에서 이겼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강심장을 가진 사람이 있을 것인가?
‘뻔하지 뻔해·’
수연은 씨익 웃으며 대기실 안의 밴드를 바라보았다· 딱 봐도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는 것이 눈에 훤했다·
“왜 말을 못해? 관객 반응이 누가 더 좋았는데? 다들 뭐 악기 연주해서 귀라도 먹었나?”
“저···저는···”
“저는 뭐?”
“[Strange Straight]가···좋았다고···”
“뭐? 자네 좀 눈이 안 좋은 거 아냐? 누가 반응이 좋아? 어디 아픈가?”
원로라고 해서 다들 성격이 좋은 호호 할아버지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사노의 질문을 가장한 윽박지름에 얼굴이 새파래진 상태로 “아니요! 그룹 사운드가 더 좋았습니다!” 라고 대답하는 사람· 그리고 그 반응에 맞추어 우수수 튀어나오는 “그룹 사운드가 더 좋았습니다!” “그룹 사운드가 이겼다고 생각합니다!” 라는 그런 반응들·
“너 이거 사전에 계획한 거야?”
“당연하지· 뭐 내가 아무런 근거 없이 하자고 했겠냐 이런 내기를·”
뒤에서 속삭이는 서하에게 수연은 대답했다· 내기를 건 시점에 수연은 애초부터 아사노를 부를 계획을 하고 있었다· 조작을 하지 않으면 하지 않은대로 음악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고· 조작을 하면 조작을 하는 대로 참교육을 해 줄 수 있어서 좋다는 계산으로·
“아이고 이런 데 사람 부려먹는구만· 나는 잠시 나가있을테니까 끝나면 와·”
“알겠습니다·”
용건을 끝낸 후 대기실에서 나가는 아사노· 수연은 그 뒷모습을 쳐다본 후 턱을 살짝 쳐들며 시미즈에게 말했다·
“어때요? 누가 이긴 것 같아요?”
“너···!”
불타다 못해 눈빛만으로 수연을 죽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세를 내뿜는 시미즈· 하지만 슈퍼맨이 아닌 이상 눈빛으로 사람을 죽이지는 못한다· 수연은 팔짱을 끼며 말했다·
“내기의 댓가 이행하세요· 도게자? 그거 빨리 하시죠·”
그러나 시미즈는 움직이지 않았다· 주먹이 붉어지다 못해 점점 검은색이 되어가는 상황· 그렇게 조금 침묵이 이어진 후 시미즈는 내뱉었다·
“···인정 못 해· 나는 지지도 않았어· 그러니까 그딴 말은 못 해·”
“뭐 그럼 그러세요· 인정 안하셔도 돼요·”
“···뭐?”
이때까지 일어났던 일들을 모두 부정하는 듯한 수연의 발언· 거기에 놀라는 다른 밴드들과 눈을 번쩍 뜨는 시미즈· 하지만 이어진 수연의 발언은 기대하던 것과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굳이 그런 사과 받을 필요 없습니다· 하지마세요 도게자도· 평생 그렇게 사세요· 당신이 틀렸다는 것· 그리고 그것 인정하기 싫어서 아직 십대인 애들한테 틀렸다는 것 인정하기 싫어서···어떻게든 여기 있는 분들 회유해서· 그렇게 추잡한 짓 했다는 것· 그렇게 생각하고 사세요·”
“너!!”
“내기에 졌는데 사과도 못 해· 트집까지 잡고· 음악성도 낮지· 인성도 쓰레기야· 뭐 제대로 되는 게 아무것도 없네· 뭐 계속 그렇게 사세요 평생· 언젠가는 다 뒤지니까· 당신 안의 열등감 그렇게 가지고 가· 추하게· 부들부들대면서· 그렇게 살다 죽어·”
그렇게 말을 마친 수연은 “가자·” 하고 내뱉은 후 기타를 챙겼다· “너무 심하게 말한 거 아냐?” 라는 말을 멤버 중 누군가가 말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리고 아무런 말 없이 대기실을 메우고 있던 밴드들 또한 하나 둘 떠났다· 대기실에 남은 것은 손에서 피가 날 정도로 손을 그러쥔··· 시미즈 단 한명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