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59
“수연 님이 아니라 다른 사람인 척 하는 방법···즉 아예 다른 명의를 한번 써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다른 명의요? 예명 말하시는 건가요?”
“네· 일명 부캐라고 하죠·”
그 말에 수연은 머리를 살짝 꼬았다· 예명 즉 가수명만 바꾸는 것은···이미 고려했던 바였고 아무런 소용이 없을 거라는 결론을 내려놓은 차였다· 그런데 뭔가 다른 방안 같은 것이 있는 걸까·
“콤카(KOMCA 한국음악저작권협회)는 실명 등록을 전제로 하고 있잖아요· 안 될 것 같은데?”
“그래서 돌려서 등록을 하는 겁니다·”
고 팀장은 그렇게 말을 한 다음 자신의 자리로 걸어가 책 두 권을 들고 돌아왔다· 일본어로 쓰여 있는 일본음악저작권협회(JASRAC)의 약관과 등록 매뉴얼이었다·
“콤카 쪽으로 등록을 할 경우 확률 자체는 낮지만 내부 직원이 수연 님의 본명을 유출할 수도 있습니다· 콤카 쪽에서 내부 자료를 들고 있기 때문에 더 그럴 확률이 높구요·”
“그럼 자스락(JASRAC)으로 등록하면 다르다는 건가요?”
“자스락 쪽에서도 물론 유출 시도가 있을 수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타국이다보니까 콤카보다는 더 안전할 거로 판단됩니다·”
고 팀장은 그렇게 말하며 설명을 해 주었다· 자스락을 통해서 콤카에 등록을 하게 되면 콤카가 특별히 요구하지 않는 한 예명만 알 수 있을 뿐 수연의 본명은 알 수 없다· 그리고 콤카가 특별히 요구를 하게 된다면 수연의 본명을 노출하려는 시도가 있는 것이니···
“방비를 잘 하면 유출을 막을 수가 있는 것이죠· 게다가 일본에서 등록을 했으니 외국인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클 테구요·”
그렇게 말하는 고 팀장을 보며 수연은 머리를 살짝 꼬았다· 말이 되는 이야기이긴 한데 자스락 등록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에 대한 대답은 아주 쉽게 나왔다·
“저희 회사가 대리 등록 해주면 됩니다· 그렇게 등록하고 저희 회사의 자회사 중에 저작권 관리 대행하는 쪽이 따로 있습니다· 얼마전에 갈라냈는데 그쪽에서 래디언트랑 저작권 협상 하면 수연 님 신분은 절대 드러나지 않고 처리 가능합니다·”
“잠시만요· 지금 머릿속이 약간 복잡해지는데 요약하자면···”
수연은 머리를 거칠게 쓸어넘긴 다음 천장을 바라보며 고 팀장이 해준 이야기를 정리해보았다·
1· 저작권 등록을 한국에서 하면 유출될 확률이 높으니 일본에서 저작권을 등록한다·
2· 그리고 등록한 저작권을 저작권 대행 업체를 통해서 관리하면 래디언트 쪽에서는 절대 알지 못한다·
“그런데 저희 쪽 회사인 거 알면 당연히 저인 걸 알 수도 있지 않나요?”
“저 정도 규모의 업체면 자회사 공시를 안 합니다· 저희 회사인 거 아무도 모르죠·”
“음···”
복잡한 설명· 수연은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싶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또 상당히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이게 가능하다면 그동안 생각해왔던 것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만들어놓고 보니 우리 컨셉에 맞지 않는 곡들이 상당히 많았단 말이지·’
몇년을 더 살아왔다 한들 이전에 수십년 동안 해왔던 습관이 사라지기는 쉽지 않다· 부족했던 재능을 극복하기 위해서 괜찮은 곡이라면 닥치는 대로 듣고 분석하고 레퍼런스로 삼고 카피를 하고 변주를 주는···계속해서 창작을 해 나가는 그런 습관·
그런 습관 덕에 수연은 그 퀄리티가 마음에 들던 아니던 상당히 많은 곡을 만들어놓았다· 그 중에는 ‘이건 괜찮지 않나?’ 하는 곡도 있었고 ‘이건 진짜 낼 만한데·’ 라고 생각한 곡도 있었다·
문제는 그런 곡들은 대부분 수연의 밴드Group Sound의 컨셉에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이 발표하기에는 지나치게 루즈한 곡도 있었고 살짝 미묘한 곡도 있었고 이건 좀 대중성이 떨어져서 모험하기엔 조금 그런 곡도 있었고· 아무튼 수연으로서는 아쉬운 부분이 많았는데·
이 방법을 사용한다면 사실 작곡가로서 돈을 벌 수단이 생긴다는 것 이상으로···
‘아예 다른 명의의 활동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물론 밴드 활동이 최우선이겠지만 ‘하수연’이라는 명의를 걸고 하는 프로젝트성 활동이나 솔로 외에도···아예 다른 방향으로의 활동 또한 가능해보이는 방법·
수연은 머리를 살짝 꼬며 생각했다· 다인에게 곡을 준 이후로 귀찮은 일들만 가득했지만 이런 일로 돌아오는 걸 보면 결국 착한 사람은 복을 받기 마련이라고·
“그런데 만약 ‘부캐’를 만드신다고 하면···혹시 뭐 이름은 정하셨나요·”
“글쎄요· 따로 정한 건 없긴 한데···”
그렇게 말하며 수연은 고민했다· 글쎄· 어떤 명의로 해야 할까· 머릿속에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있었다·
“HSY 같은 거 어때요?”
“누가 봐도 하수연인 걸 알 것 같습니다만·”
“Henry S· York는 어때요?”
“왜 그렇게 HSY에 집착하십니까?”
“집착까진 하진 않는데···마땅한 게 떠오르질 않네요· SYH···YSH···”
“일단 본인 이름에서 벗어나셔야 할 것 같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가 하며 수연은 천장을 쳐다보았다· 제일 가난한 게 본인 이름에서 따오는 거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MJ? SMJ? 이거도 결국 아무튼 관련 이름이고· Steve John Myung? 왠지 베이스 연주자일 것 같은 예명인데· 베이스라···
“음···로저는 어때요?”
“로저 Roger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로저로 가죠· 그 쪽이 제일 낫겠다·”
수연은 그렇게 말하고는 펜을 살짝 돌렸다· Roger· 꽤나 마음에 드는 이름이었다·
* * *
며칠 뒤·
래디언트 엔터테인먼트는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곡 저작자의 연락을 받았다· 그야말로 날듯이 달려간 그 장소에는 예상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있었다· 사무직인 것이 분명한 정장 복장· 아무튼 일단 작곡과는 거리가 먼 인상·
“안녕하세요· 아티스트 로저 님에게 저작권 대리 권한을 수임받은 김현호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어···반갑···습니다?”
“일단 이전에 고지받은 대로 따로 저희 쪽에서 곡비를 요청하진 않을 것이고···저작권료는 그냥 일반적인 시장 수준으로 맞춰주시면 됩니다· 제 쪽에서 미리 계약서 작성해놓았습니다·”
상당히 당황한 프로듀서를 제쳐둔 채 대리인은 계속해서 자신이 해야 할 말을 이어갔다· 래디언트의 프로듀서는 간신히 그 말을 끊고는 말했다·
“어 죄송합니다만· 혹시 그 저작권 대리 수임 맡기신···이름이 뭐라고 하셨죠?”
“로저 님입니다·”
“로저 님을 한번 뵐 수 있을까요?”
“그 건 관련으로 로저 님에게 이야기를 들은 게 있는데요·”
“뭔가요?”
혹시라도 그들과 계약하겠다는 말일까봐 귀를 쫑긋 세우고 대리인에게서 들려올 이야기를 기다리던 프로듀서· 하지만 대리인은 그것과 정 반대되는 이야기를 했다·
“로저님의 신원을 알아내려고 하거나 다인 양을 괴롭히는 행위가 한번이라도 있으면 저작권을 회수하는 조항으로 계약을 하자고 하셨습니다·”
“···네?”
예상하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 하지만 래디언트의 프로듀서는 그것 이외에 다른 답을 대리인에게서 이끌어낼 수 없었다· 그가 얻을 수 있었던 힌트는 단 하나· 작곡가명에 적혀 있는 단어···‘Roger’ 뿐이었다·
그리고 그 단어는 얼마 되지 않아 음악 업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우리 애들 데뷔곡 진짜 미쳤다니까·”
“뭘 미쳐· 자기들 곡 다들 미쳤다고 하지· 안 미쳤다고 하는 사람들이 어딨냐?”
“야 그거랑은 차원이 달라· 니들이 들어봐야 아는데 하 참···”
도대체 Roger가 누구냐? 하고 프로듀서가 머리를 싸잡고 있던 사이·
저작권이 클리어되어 그들의 곡으로 확정되기만을 기다렸는지 래디언트의 직원들은 오며가며 업계인을 만날 때마다 그 이야기를 했다· 자기들 곡 너무 좋다 진짜 이건 성공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래디언트 그 새로 데뷔하는 애들 이름이 뭐랬지?”
“제가 듣기로는 뭐 루미너스인가 뭐 그런 이상한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요·”
“그래 그거· 걔네 왜 그렇게 좋은 곡 나왔다고 깝치냐? 개좆소라서 뭐 어디 좋은 곡 받아올만한 그런 형편도 안 될텐데···”
“맨날 무시당해서 뭐 서러웠나보지·”
이번에는 대박난다 이번에는 대박난다· 곡을 들려줄 수도 없으면서 계속 “아 이걸 들려줄 수도 없고 진짜 안타깝네” 같은 소리나 하고 있는 래디언트 직원들· 오죽하면 블라인드에 [요즘 래디언트 사람들 개꼴보기 싫은데 정상이야?] 같은 글이 올라올 정도·
하지만 그런 여론은 도대체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곡을 듣고 온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하면서···조금씩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아니 진짜 이 곡을 너희가 받아왔다고?”
“진짜라니까· 왜 안 믿냐?”
“너 같으면 믿겠냐?”
편곡을 담당하던 내부 작곡가가 엔터 업계의 친구를 불러다가 곡을 들려준다던가·
“이건 완전 로또 맞았네요·”
“그렇죠? 진짜 혜은이가 어떻게 이런 곡을 들고 왔는지 모르겠다니까요·”
“이거 작곡가는 누구에요?”
“그걸 모르겠어요· 우리한테 밝힌 게 없어가지고·”
외부 유출을 금지해야 할 곡임에도 불구하고 안무팀에서 외부자를 불러다가 곡 좋다는 명목으로 들려준다던가·
[나 주변에 래디 현직 있어서 이번 돌 애들 신곡 들어봤는데]
하도 시끄럽길래
존나게 졸라가지고 한번 들어봤는데
래디언트 주식사라
이거 100% 개떡상 장담한다
진짜 손모가지 걸수있다
– 상상력 풍부한 전문가 납셧네 lol
– 아오 또 세력 신발놈들 왔네
– 조작칠라고 만만한 엔터주 하나 잡았나봅니다· 그래봐야 아무것도 안되젼? lol
심지어는 네이버 종토방에도 자기가 루미너스의 신곡을 들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등 그야말로 개판 그 자체인 상황· 하지만 그런 난장판 속에서도 공통적으로 나오는 평가가 있었다·
“곡은 진짜 너무 좋다·”
“이거 웬만큼 홍보 말아먹는 거 아니면 무조건 뜰 듯·”
“여름 대학 축제 행사 뛸 준비 해야 할 것 같은데요?”
곡은 진짜 미쳤다는 것·
그리고 업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해당 곡을 만든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정상적이라면 래디언트가 만들 수 있는 받아올 수 있는 수준의 곡이 아니었으니까· 그렇다면 답은 단 하나·
‘이런 작곡가가 기존 시장에 있었다면 절대 래디언트에겐 곡을 안 줬을 것이다·’
‘돈도 만족할만큼 받을 수 없을 것이고 곡도 퀄리티만큼 안 뜰 수도 있다·’
‘결국 어디서 신인 한명 주워다가 등쳐먹은 게 분명하다!’
단서는 단 하나· 어디에서 주워들은 이름 Roger· 관련 진실을 알고 있는 래디언트의 직원들이 NDA(비밀유지계약)에 걸려 침묵하고 있는 사이 한국 음악 업계는 수면 아래에서 조금씩 끓어오르고 있었다·
* * *
하지만 그런 한국 음악 업계의 상황 같은 것은 이 곳에 있는 사람들에겐 그닥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들은 지금 그런 것 따위보다 훨씬 중요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정 과장님 청심환이라도 드실래요?”
“어···그럴까요!”
부하 직원이 건네주는 작은 금색 단약· 정 과장은 심호흡을 짧게 한 다음 그것을 복용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더 심호흡· 눈 앞에 놓인 자료를 다시 한번 점검을 하고 있으니 왠지 몸에 열이 올라오고 조금씩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먹고 나서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플라시보 효과인 거겠지?’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우황청심환을 항상 구비해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효과가 좋을 줄은 몰랐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울리는 알람· 정각 10분 전을 알리는 진동·
“자 가 보죠!”
짐짓 활기찬 척 일어나 가방을 메고 눈 앞의 빌딩으로 향한다· 오늘 그녀가 가야 할 곳· 그리고 오늘 그녀가 최선을 다해서 설득해야 할 곳· 이곳에서 하지 못한다면 그 다음· 그 다음· 그 다음· 그 다음을 계속 노려야겠지만·
항상 눈 앞부터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 정 과장의 신념이었으므로 그녀는 자신이 벼랑 끝에 매달려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 편이 자신을 더 몰아붙이는 것 같았기 때문에·
“정 유영 이라고 합니다!”
“네 잠시만요·”
로비의 직원은 잠시 전화를 걸더니 이내 어느 층으로 가야 할지 안내해주었다·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동안 정 과장은 계속해서 외워왔던 내용을 되뇌었다· 그룹 사운드는 한국에서 정규 1집 초동 1만장을 팔았으며 그 이후로도 계속 음반 판매량이 증가해···
“과장님 도착했어요·”
“어 어! 아이고·”
자신들 두 명을 바라보는 일본 회사원들의 의아한 시선· 정 과장은 고개를 휙휙 숙이고는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엘리베이터에서 빠져나와 목적지로 향했다· 한 발짝 한 발짝 걸을 때마다 조금씩 자신의 발 위에 무게가 실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어· 내가 에코사운드에 입사한 이후로 이것보다 큰 건을 맡은 적이 없었을 테니까···아마도·’
정 과장은 그렇게 자신에게 되뇌이며 다시 한번 심호흡을 했다· 이 다음 있을···Group Sound의 메이저 데뷔와 정규 앨범 발매와 일본 및 한국 라이브 투어 관련된 협의를 위해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의 김취미는 삼류입니다···